황제의 유언

허무펑 지음 | 비아북 펴냄

황제의 유언 :진나라 시황에서 청나라 강희제까지, 중국사 5천 년의 운명을 바꾼 최후의 말 한마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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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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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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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5천 년의 역사에서 약 600명의 황제가 출현했다. 그러나 이들 가운데 진정한 유언을 남긴 황제는 30여 명에 불과하다. 유언은 시시콜콜한 일상을 언급하는 내용도 있지만 대부분은 후계자 문제와 왕조의 비전을 담고 있어서 현실 정치에 민감한 이해관계가 얽혀 있기 때문이다.

<황제의 유언>은 중국의 역사학자 허무평이 집필한 책으로, 중국 황제 600인 가운데 후세에 막대한 영향을 끼친 12인의 마지막 말을 모았다. 개국 제왕과 중흥 군주부터 난세 효웅과 태평성대 천자까지, 오늘날의 중국 역사를 대표하고 완성한 황제 12명의 깊은 통찰과 혜안을 엿볼 수 있는 유언을 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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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5천 년의 역사에서 약 600명의 황제가 출현했다. 그러나 이들 가운데 진정한 유언을 남긴 황제는 30여 명에 불과하다. 유언은 시시콜콜한 일상을 언급하는 내용도 있지만 대부분은 후계자 문제와 왕조의 비전을 담고 있어서 현실 정치에 민감한 이해관계가 얽혀 있기 때문이다.

<황제의 유언>은 중국의 역사학자 허무평이 집필한 책으로, 중국 황제 600인 가운데 후세에 막대한 영향을 끼친 12인의 마지막 말을 모았다. 개국 제왕과 중흥 군주부터 난세 효웅과 태평성대 천자까지, 오늘날의 중국 역사를 대표하고 완성한 황제 12명의 깊은 통찰과 혜안을 엿볼 수 있는 유언을 담고 있다.

출판사 책 소개

■ 중국 황제 600인 가운데 후세에 막대한 영향을 끼친 12인의 마지막 말!
- “내 말 한마디에 난세와 태평성대가 달려 있다!”


중국 5천 년의 역사에서 약 600명의 황제가 출현했다. 그러나 이들 가운데 진정한 유언을 남긴 황제는 30여 명에 불과하다. 왜냐하면 유언은 시시콜콜한 일상을 언급하는 내용도 있지만 대부분은 후계자 문제와 왕조의 비전을 담고 있어서 현실 정치에 민감한 이해관계가 얽혀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황제의 유언은 대부분 반대파에 의해 왜곡되거나 분실되었다. 《황제의 유언》은 개국 제왕과 중흥 군주부터 난세 효웅과 태평성대 천자까지, 오늘날의 중국 역사를 대표하고 완성한 황제 12명의 깊은 통찰과 혜안을 엿볼 수 있는 유언을 담고 있다.

■ 황제, 그들은 죽음을 앞두고 무슨 생각을 했을까?
- 흥미로운 정치 교과서, 《황제의 유언》


그들의 유언은 분량으로 치면 한두 줄에 불과하지만 거기에 내포된 의미는 한 왕조의 운명을 좌우할 정도의 파괴력을 지니고 있다. 일례로 한나라 유방은 유언으로 승상을 미리 결정하여 여씨에게 빼앗길 뻔한 유씨 천하를 지켜냈으며, 촉나라 유비는 “아들의 재주가 뛰어나지 않으면 그대가 황제의 자리에 오르라”는 유언을 남겨 제갈량이 죽을 때까지 충성하도록 만들었다. 청나라 강희제는 손자인 건륭제를 황제의 자리에 앉히기 위해 그의 아비인 옹정제에게 권력을 넘김으로써 후에 ‘강건성세’를 완성했다.
주목받는 차세대 중국 역사학자인 허무평은 유언을 단순히 정리하는 수준을 넘어서 그 이면에 담긴 정치적 의도와 날카로운 정세 분석 그리고 유언 이후 왕조의 흥망까지 심도 깊게 논평한다. 5천 년 중국 황실의 성패와 왕조 교체의 비밀이 담긴 《황제의 유언》은 흥미로운 대중 역사서이자 정치 교과서로도 손색이 없다.

■ 황제의 유언, 그들은 후세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가?
- 이 책의 내용


#1. 3대의 수까지 내다봤던 정치 9단 ‘청나라 강희제’
“넷째아들 옹친왕 윤진이 가장 현명하니, 내가 죽은 후 황제의 자리를 이어라. 그리고 윤진의 둘째아들은 영웅의 기상이 있으니, 반드시 태자로 봉하라.” -《강희유조》

강희제康熙帝는 손자를 후계자로 삼고 싶었다. 하지만 아들을 제쳐놓고 손자에게 제위를 물려줄 수는 없었다. 그래서 그는 차선책으로 몇몇 경쟁자를 제쳐두고 손자의 아비를 선택했다. 이 과도기는 결코 중요한 것이 아니다. 과도기의 대리 후계자는 뛰어나지도 부족하지도 않은, 일정 정도의 자질을 갖추면 그만이었다. 결국 옹정제는 후에 둘째아들인 건륭제에게 황위를 물려주어서 청나라 최고 전성기를 열게 했다. 옹정제는 강희제와 건륭제를 이어주는 역할을 하면서 청나라 최고의 시대인 ‘강건성세’를 만든 숨은 주역이 되었다.

#2. 말 한마디에 370년 유씨 천하를 완성한 권모술수의 달인 ‘한나라 유방劉邦’
“유씨가 아닌 자가 왕이 되려 한다면 천하가 함께 그를 공격하라.” -《사기》〈여태후본기〉
“여후가 고조에게 물었다.‘폐하께서 돌아가신 후에 소 상국도 죽게 된다면 그 자리에 누구를 앉혀야 할까요?’ 고조가 대답했다.‘조참이면 괜찮을 것이오.’‘그 다음은요?‘왕릉이오. 하지만 왕릉은 좀 우직한 편이어서 진평에게 돕게 하면 될 것이오. 진평은 매우 지혜로우나 그에게 모든 걸 맡기기는 어렵소. 주발은 학문은 부족하지만 행동거지가 무겁고 믿음직하니 유씨 왕조를 안정시킬 자는 바로 그일 것이오. 그를 태위로 삼으시오.’여후가 다시 그다음을 묻자 고조가 대답했다.‘그다음 일은 당신이 알 바 아니오.’” -《사기》〈고조본기〉

유방이 남긴 두 유언은 빈틈이 없다. 이 유언은 한나라 초기의 정국을 직접 반영하고 있고 이후 발전에 대한 방향을 제시하고 있다. 첫 번째 유언인 ‘백마白馬의 맹세’는 크고 작은 반란이나 역모사건이 있을 때마다 이 유언을 다시 살아나 유씨 천하를 370년이나 지속시켜주었다. 또한 인사 안배가 두드러진 두 번째의 유언은 유방이 죽은 후 여후에게 빼앗길 위기에 놓인 유씨 천하를 지켜내는 데에 큰 역할을 했다.

#3. 권력의 본질을 꿰뚫고 제국의 비전을 알려준 ‘몽골 칭기즈칸’
“아마도 내 목숨이 곧 다할 것 같다. 다행히 하늘의 도움에 힘입어 너희들을 위해 광대한 제국을 건설했으니, 나라 안에서 사방의 변방까지 말을 타고 가도 일 년은 너끈히 걸린다. 너희들이 이 제국을 무너뜨리지 않고 잘 보존하려면 반드시 한마음이 되어 적을 물리치고, 오로지 너희들의 친구를 위해 부귀를 쌓아야 할 것이다. 그리고 너희들 중에 한 사람이 제위를 이어야만 한다. 내가 죽으면 오고타이가 칸에 오르도록 하라. 절대 내 유명을 어기지 마라. 차가타이가 지금 이 자리에 없는데, 그에게 딴마음을 먹지 말라고 하라.” -《몽골비사》
“금나라 정예군은 동관에 있다. (동관은) 남쪽으로 험준한 산악지대가 분포하고 북쪽으로 황하가 가로막고 있어서 단번에 격파하기 어렵다. 만일 송나라에 길을 빌리면 송나라는 대대로 금나라와 원수지간이라 반드시 이를 허락할 것이다. 그러면 즉시 당주와 등주의 군대를 이끌고 곧바로 대량을 공격하라. 다급해진 금나라는 분명 동관의 군대를 징발할 것이다. 그러나 수만의 무리가 천리 길을 달려 지원을 오게 되면 사람과 말이 모두 피로해져 싸울 수 없는 지경에 이를 것이니, 격파하는 데 문제없을 것이다.” -《원사》 〈태조본기〉

칭기즈칸의 유언은 그가 권력의 본질을 잘 꿰고 있으며, 몽골 제국의 미래를 내다보는 명문으로 유명하다. 그의 유언은 두 가지였는데, 하나는 후계자를 오고타이로 정하는 것과 다른 하나는 후대에 금나라를 멸망시키는 비법을 전수해주는 것이었다. 하지만 그가 진정으로 남긴 것은 충실한 신앙과 단결이 바로 힘이라는 진리였다. 그는 후계자를 선정할 때, 자식들의 의견을 묻고 자식들이 결정하도록 유도했다. 또한 가장 무서운 적은 내부 권력투쟁임을 확인하고 권력 싸움보다는 전 세계의 정복을 위한 비전을 열어주는 데에 힘을 기울였다. 그가 남긴 유언이 후대의 앞길을 밝혀주는 밝은 등불이라고 한다면 유언의 행간에 드러난 ‘장생천長生天’ 신앙과 단결이 힘이라는 진리는 바로 해가 지지 않는 제국의 태양이라고 할 수 있다. 이 태양이 영원히 그의 후대를 비추어 아무 거리낌 없이 사방을 정복할 수 있었다.

#4. 자식보다는 제국의 발전과 민생 안정을 먼저 생각했던 ‘송나라 태조’
“짐의 아우 진왕은 운구 앞에서 황제의 자리에 오르라.” -《송회요집고》
“사대부와 상소를 올려 말하는 자를 함부로 죽이지 마라. 자손 가운데 이 맹세를 어기는 자는 반드시 하늘이 벌할 것이다.” -《송사》

중국 역사상 가장 미스터리한 사건 가운데 두 가지가 조광윤과 조광의에게서 발생했다. 하나는 ‘촉영부성’이고, 다른 하나는 ‘금궤의 맹세’이다. 이는 송 태조가 너무 급작스럽게 죽음을 맞았고, 제위를 아들이 아니라 동생인 조광의에 물려주라는 한마디의 유언 때문에 벌어진 미스터리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그가 제위를 동생에게 물려준 이유는 당시 송나라의 형세 및 그가 죽기 전의 정황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그는 동생이 자신의 이상을 실현해주길 바랐다. 혹은 송나라가 직면한 일련의 난제들을 아우에게 떠넘겼다고 말할 수도 있다. 그리고 그는 가법을 세워 후계자가 자신의 뜻에 따라 송나라를 공고히 하는지를 감시했다.

#5. 최선의 선택이 없는 상황에서 수많은 고민 끝에 차선을 선택한 ‘촉나라 유비’
“그대(제갈량)의 재주는 조비보다 뛰어나 나라를 안정시키고 대사를 이룰 수 있을 것이오. 만약 유선이 보좌할 만하다면 보좌하고, 그의 재주가 미치지 못하다면 그대가 황제 자리를 취하시오. … 또한 아들인 유선에게 조서를 내렸다.‘너는 승상과 함께 일을 도모하고, 그를 아버지처럼 섬겨라.’” -《삼국지》〈촉서〉‘제갈량전’

이는 겉으로 보면 둘 중 하나를 선택하라는 말이다. 하지만 유비는 유선이 보좌할 만한 군주이고, 제갈량이 섣불리 유선의 제위를 취하지 않으리라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결국 유비는 이런 유언을 남김으로써 자신의 대범함을 만천하에 알리고 제갈량에게는 충정을 약속받았다고 할 수 있다.
제갈량은 유비의 유언에 몸 둘 바를 몰라 나라를 위해 한시도 쉬지 않고 일하는 한편 죽을 때까지 대권을 독점하고 손에서 권력을 놓지 않았다. 유선은 명목상으로만 국가원수였을 뿐, 실질적인 집권자는 제갈량이었다. 어떤 이는 그 이유를 유선이 조정 일에 서툴렀기 때문이라고 지적한다. 하지만 이는 근거 없는 이야기에 불과하다. 당시 촉나라는 안팎으로 위기에 처해 있었다. 유비가 전쟁에서 패한 대가는 형주를 잃는 데에 그치지 않고 민심이 불안해졌으며, 사병의 수가 급격히 감소했다. 촉나라는 갈 길이 너무 무겁고 멀었기 때문에 유선이 감당하기에는 현실적으로 불가능할 것이라고 제갈량은 판단했기 때문이라고 보는 것이 맞을 것 같다.

#6. 역적들 앞에서 목을 매단 마지막 황제 ‘명나라 숭정제’
“짐은 덕망이 부족하고 나약하여 하늘의 잘못을 샀도다. 역적들이 수도를 점령했건만 신하들은 모두 짐을 기만하였다. 짐이 죽어 조상을 뵐 낯이 없어 스스로 관면을 벗고 머리카락을 풀어헤쳐 얼굴을 가리노라. 역적들은 내 몸을 갈기갈기 찢어도 좋으나 백성들은 한 사람도 해치지 마라.” -《명사》〈숭정본기〉

숭정제崇禎帝의 유언은 마지막 황제의 유언 가운데 가장 유명한 축에 속한다. 이자성과 그의 군대가 궁 안으로 들어오자 숭정제는 목 맬 준비를 하고 이자성과 천하의 사람들에게 유언을 남겼다. 하지만 이자성과 농민군은 백성들을 살려달라는 그의 유언을 무시하고 사람들을 무자비하게 죽였다. 또한 숭정제는 자존심이 강해서 농민 기의군에게 멸망당하면서도 시종일관 이를 받아들이지 않고 ‘짐이 망국의 군주가 아니라, 대신들이 망국의 신하이다’라고 이야기하며, 대신들이 자기를 그르쳤다고 생각했다.

#7. 황제의 시호를 버리고 황후로 돌아간 ‘주나라 측천무후’
“황제의 칭호를 없애고 측천순성황후라고 칭하라. 고종황제의 건릉에 함께 묻어 달라. 비석 하나를 세우는데, 비석에는 아무 글자도 새기지 말고 공과는 후대 사람들이 평가하도록 하라. -《구당서》〈측천무후본기〉

측천무후 치세에 당나라는 크게 발전하였다. 그러나 그녀는 자신이 믿었던 충신에게 배신을 당해 축출당하는 수모를 겪어야 했다. 유언으로 황제의 시호를 없애고 스스로를 황후라 칭한 것은 유씨 천하에서 그녀가 보복을 당할 것을 두려워한 부분이 다분히 있다. 또한 그녀는 이미 자신의 나라를 빼앗겼고, 남권 사회에서는 그저 미약한 존재일 뿐이었다. 그녀는 정치적 유언을 남겼으나 남기지 않은 것과 같다. 왜냐하면 자신의 유언이 사람들에게 아무런 영향도 미치지 못할 것을 잘 알고 있었다.

#8. 너무도 사소하고 시시콜콜한 유언을 남긴 간웅 ‘위나라 조조’
“내가 군중에서 법을 집행한 것은 대체로 옳았는데, 작은 분노나 큰 잘못을 범한 점은 본받을 가치가 없다. 천하가 아직 안정되지 않았으니, 고대의 장례 예법을 따를 필요가 없다. 나는 두통이 있어서 일찍부터 두건을 썼다. 그러니 내가 죽은 후 장례복은 살아 있을 때와 똑같이 하라. 절대 잊지 마라. 백관들은 대전에서 열다섯 번만 곡을 하고, 안장을 마치면 모두 상복을 벗도록 하라. 각 지방에 주둔하고 있는 장수와 병졸들은 주둔지를 절대 떠나지 말고, 관리들은 자기 직무를 다하도록 하라. 입관할 때는 평상복을 입고 업 땅의 서쪽 언덕, 서문표의 사당과 가까운 곳에 장사 지내고 금과 옥 및 진귀한 보물을 묻지 마라. 내 비첩과 예기들 모두 애쓰고 고생했으니, 동작대에 모여 살게 하고 잘 대해 주어라. 침실에는 여섯 자 되는 침대를 깔고 고운 휘장을 설치하며 아침저녁으로 마른 고기와 마른 음식을 대접하라. 매월 초하루와 보름에는 휘장을 향해 가무를 벌이고, 너희들은 항상 동작대에 올라 내 서릉의 묘전을 바라보도록 하라. 남은 향은 부인들에게 나누어주고 제사에 쓰지 말도록 하라. 생계가 막막한 측실들은 신발 짜는 기술을 익혀 팔아 살도록 하라. 내 남은 옷가지들은 따로 모아두는데, 보관이 불가능한 것은 너희 형제들이 나누어가져라.” - 조조의《유령》

조조는 죽을 때까지 황제를 칭하지 않았는데, 이유는 그가 공공의 적이 되길 원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렇듯 조조는 사소한 것까지 챙기는 뛰어난 인물인데, 더 뛰어난 것은 바로 그의 유언이다. 그의 유언은 자질구레한 일들의 나열이다. 유언에서 열거한 소소한 일들은 꼭 작은 농지를 경작하는 농부를 연상시키며 일상의 느낌을 적은 편지에 불과했다. 그가 이렇게 유언을 편하게 이야기할 수 있었던 것은 그가 후계자를 이미 정해놓았기 때문이다.

#9. 대신들의 모략에 의해 유언이 뒤바뀐 ‘진나라 시황’
“황제께서 붕어하며 장자인 부소에게 보내는 편지에서 함양으로 돌아와 장례를 치르고 황위를 이으라고 하셨소.” -《사기》〈이사열전〉

진시황이 죽음에 임박해 남긴 유언은 고작 몇 마디에 지나지 않았다. 부소에게 함양으로 돌아와 그의 장례에 참석하라는 것과 진나라의 군사 대권을 몽염에게 맡기라는 내용이었다. 하지만 애석하게도 이 유언은 실행에 옮겨지지 못했다. 조고와 이사는 호해와 짜고 유언을 조작했으며, 이 사건이 성공하면서 부소와 몽염은 자살했으며 결국 고쳐진 유언으로 진나라는 멸망의 길에 접어든다.

#10. 제국의 위기 상황에서 제2의 주공을 만들어낸 ‘한나라 무제’
“‘주공이 성왕을 도와 제후를 조회하는 그림’을 곽광에게 하사했다.” -《한서》〈곽광전〉
“(곽광에게 말했다) 막내 아들 불릉을 황태자로 세우고 너는 주공이 되어라.” -《한서》〈무제본기〉

중국의 전체 역사에서 봤을 때 한무제는 진시황과 마찬가지로 말년에 자신의 삼족을 멸하는 등 무수한 잘못을 저질렀다. 하지만 한무제 때는 나라가 멸망할 정도의 큰 실수가 있었으나 나라가 멸망할 정도의 재앙은 없었다. 그 이유는 한무제가 나이 들면서 정신을 차리고 후사에 일을 걱정했기 때문이다. 그는 한나라가 생사의 갈림길에 놓였을 때, 곽광이란 인물을 발굴했으며 그를 통해 한 치의 어긋남도 없이 후사를 결정했다.

#11. 최선의 선택, 하지만 끝내 실패로 돌아가버린 유언을 남긴 ‘당나라 태종’
“(장손무기에게) 짐은 공에게 대사를 맡기노라. 태자가 어질고 효성스러운 것은 공들도 아는 바이니, 그를 잘 보좌해 달라.” -《신당서》〈장손무기전〉
“(저수량에게) 내가 천하를 차지한 것은 무기의 공이다. 너는 그의 곁에서 정사를 돕고, 아첨꾼들이 그를 해치지 못하도록 하라.” -《구당서》〈저수량전〉
“(이치에게) 무기와 수량이 있으니, 너는 천하의 일을 걱정하지 마라.” -《신당서》〈장손무기전〉

이세민의 정치 유언은 그의 말이 담긴 《제범帝範》이 줄기가 되고, 두 보좌 대신이 가지와 잎이 되며, 끝으로 아들인 이치李治가 수분이 되어서 마침내 무성하고 큰 나무로 탄생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안타까운 것은 이치의 판단이 흐트러지면서 이 모든 것이 수포로 돌아갔다는 것이다. 이치는 이세민의 유언을 실행에 옮기지 않고 후에 나타난 측천무후에게 모든 권력을 맡기게 된다. 결국 이세민의 유언은 실현되지 않았지만 이 시기는 사회경제적으로 안정된 시기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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