답답할 때, 인생이 재미 없을 때, 동기부여가 필요할 때, 일상의 재미를 원할 때, 힐링이 필요할 때 읽으면 좋아요.
분량얇은 책
장르프랑스소설
출간일2012-05-25
페이지110쪽
10%13,800원
12,42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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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르프랑스소설
출간일2012-05-25
페이지110쪽
요약
독서 가이드
1. 이 책은 30대 여성들이 가장 좋아하는 책이에요.
2.답답할 때일 때 읽으면 도움이 돼요.
3.주말 오후에 가볍게 읽기 좋은 분량이에요.
작가
아니 에르노
(지은이)
정혜용
(옮긴이)
상세 정보
프랑스 작가 아니 에르노의 장편소설. <남자의 자리>로 자신이 기억하는 아버지의 삶과 죽음을 덤덤하고도 가슴 뭉클하게 써내려간 아니 에르노가 이번에는 <한 여자>로 어머니의 삶과 죽음을 되짚어 간다. 이 작품은 어머니가 세상을 떠난 이후 10여 개월에 걸쳐 쓴, 자신의 어머니이자 한 시대를 살다 간 '한 여자'에 대한 기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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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약
한 여자 내용 요약
『한 여자』(ISBN: 9788932915708)는 아니 에르노(Annie Ernaux)가 열린책들을 통해 정혜용 번역으로 2012년 5월 25일 출간한 자전적 소설로, 원제 Une Femme는 2022년 노벨 문학상 수상자의 대표작 중 하나다. 에르노는 프랑스 노르망디 출신으로, 『남자의 자리』, 『세월들』 등 자전적 글쓰기로 개인과 사회의 접점을 탐구하며 세계적 주목을 받았다. 이 책은 어머니의 죽음(1986년) 이후 10개월간 쓴, 어머니이자 한 시대를 살다 간 여성의 삶을 기록한 작품이다. 에
10개월 동안 쓴 어머니에 대한 글이라는 작가 아니 에르노의 '한 여자'는 어머니에 대한 애도의 글이라고 해야 할까.
흔히 생각하는 사모곡 하면 떠오르는 애도의 글은 아니라고 느낀다.
공교롭게도 근래에 읽는 소설도 프랑스 소설이고, 그 소설 속 주인공들과 배경도 요양원이라는 공간이다.
어머니의 죽음을 첫 문장으로 시작하면서 어머니의 일생을 자신의 인생과 겹치면서 서술한다.
부모의 마음이 그렇듯 자신보다 더 나은 계층으로 살기 바라는 에르노의 어머니 역시 그녀의 바람대로 성장하는 딸의 모습을, 딸의 입장에서 서술하는 이 글은 건조한 듯 해부적인 느낌이다. 사실을 기록한 것인데도 읽는 내내 노년의 스스로를 생각하게 된다. 그리고 나 자신을 포함해서 함께 연결된 모든 이들의 노년의 모습이 다르지 않을 거라는 요양원에서의 죽음을 맞게 될 대부분의 죽음의 과정과 모습을.
작가의 책을 찾아 읽고 있는데, 어머니의 죽음에 대한 책들은 읽을 때 마음이 가라앉게 된다.
그럼에도 자신의 어머니에 대한 기록을 이처럼 쓴다는 건 작가적 태도인 걸까.
글들을 문장들을 읽을 때마다, 작가들은 사유를, 관점을 기록하고 서술한다는 것에 대한 선천적 혹은 기질적 태도의 성실성을 본다.
어머니의 문장, '나는 나의 밤으로부터 빠져 나오지 못했어'라는 문장이 이 에세이를 통틀어서 가장 강렬하게 인상 지워진다.
스스로의 상태를 자각할 때 쓴 문장, 그 이후 점멸해가는 어머니와 에르노의 시선과 풍경들이 계속 서술된다.
정신이 점점 사라져가는 요양원에서 생활하는 어머니의 모습에서 자신의 미래를 보는 에르노. 에르노의 글 속의 어머니와 딸은 지금 나와 나의 어머니로 옮겨지고 다시 나와 나의 딸에게로 또 옮겨져 간다.
작가가 말하는 마지막 문장을 여러 번 읽어본다. 자신이 태어난 세계의 마지막 연결 고리의 상실. 슬픔에 이르게 되는 과정, 상실에 이르게 되는 과정에서 느꼈던 감정과 사실의 기록들.
에르노의 '한 여자'는 어머니와 딸의 연결과 연결 고리의 상실에 대한 기록들이다.
'나는 어머니를, 나의 딸은 나를 기록할 수 있을까?'라는 의문이 들었다.
사랑과 애증이 공존하는 존재로서 기록된다는 것, 그것이 개인적 의미를 넘어 문화적, 사회적 맥락이라는 에르노의 말을 되새겨 본다.
(책속의 문장들)
-'그런 상태로 여러 해를 사신다는 게 무슨 의미가 있나. '
모두에게, 어머니가 돌아가신 것이 더 나았다. 그건 나로서는 이해가 되지 않는 하나의 문장, 하나의 확신이었다.
-기억의 분석을 보다 쉽게 해줄 시간적 거리를 확보하자면, 아버지의 죽음과 남편과의 헤어짐이 그랬듯 어머니의 병과 죽음이 내 삶의 지나간 흐름 속으로 녹아들 때를 기다리는 게 더 나을지도 모르겠다.
-그녀의 가장 깊은 욕망은 자신이 누리지 못했던 것 전부를 내게 주는 것이었다. 그런데 그런 것은 결국 그녀에게는 과중한 노동, 극심한 돈 걱정을 의미하는 거였다. 아이의 행복에 신경 쓴다는 것은 이전의 교육관에 비춰 보면 너무나 낯선 것이어서, 그 입에서 저절로 튀어나오는 말.
-<넌 정말 돈이 많이 드는구나> 혹은 <이렇게나 가진 게 많은데 넌 아직도 행복하지 않은 거냐!>
-차라리, 어머니가 살아 있는 시간과 장소에서 어머니와 함께 살아간다는 느낌이다. 가끔씩 집에서 어머니가 소유했던 물건들과 맞닥뜨리는 일이 벌어진다.
-심지어, 자기 세대의 부르주아 여인들에게는 젊어서부터 주입되었던 그 지식을, 완벽한 집안 살림 요령을 뒤늦게나마 따라잡은 것에 대해 느끼는 자부심.
-<사랑하는 폴레트, 나는 나의 밤으로부터 빠져나오지 못했어.>
-나는 어머니가 다시 어린 계집아이가 되기를 바라지 않았고, 그녀에게는 그럴 <권리>가 없었다.
-그녀는 마침내 계절이 없고, 늘 적당히 따뜻하고 은은한 향내가 나는 그 공간으로 마침내 들어갔다. 그곳에서는 1년 내내 시간이 흐르지 않고 그저 먹기, 자기 등의 기능이 규칙적으로 반복될 뿐이다.
-그녀를 다시 만날 때마다 매번 전보다 덜 <인간다운> 모습을 보게 될지도 모른다는 고뇌. 그녀와 멀리 떨어져서 그 모습을 떠올릴 때면, 다양한 표정들과 이전의 자태를 지닌 모습으로 떠올렸지 결코 나중 모습으로 떠올리지 않았다.
-21세기의 언젠가, 내가 이곳이든 혹은 다른 곳에서든 냅킨을 폈다 접었다 하면서 저녁 식사를 기다리고 있는 그 여자들 가운데 한 명이 되리라는 생각도 들었다.
-어머니의 열망대로 내가 자리를 옮겨 온 이곳, 말과 관념이 지배하는 이 세계에서 스스로의 외로움과 부자연스러움을 덜 느끼자면, 지배당하는 계층에서 태어났고 그 계층에서 탈출하기를 원했던 나의 어머니가 역사가 되어야 했다. 앞으로는 그녀의 목소리를 듣지 못할 것이다. 여자가 된 지금의 나와 아이였던 과거의 나를 이어줬던 것은 바로 어머니, 그녀의 말, 그녀의 손, 그녀의 몸짓, 그녀만의 웃는 방식, 걷는 방식이다. 나는 내가 태어난 세계와의 마지막 연결 고리를 잃어버렸다.
아니 에르노의 작품은 이번에 처음 읽어본다. 어머니의 죽음으로 시작되는 이 책은 알베르 카뮈의 『이방인』(1942)의 도입부를 떠올리게 한다. 다음에 나올 시몬 드 보부아르의 『아주 편안한 죽음』(1946)은 어머니의 죽음으로 책이 끝난다는 점에서 위 두 책과 다르다(그냥 말해 봄). 어머니의 죽음 이후에 어머니라는 사람이 자신의 인생에서 도대체 무슨 의미였는지를 명징하고 단호한 언어로 직조하려는 아니 에르노, "보다 정확히는, 내가 쓰려고 하는 것은 가족적인 것과 사회적인 것의 접점에, 신화와 역사의 접점에 위치하리라"(19쪽)고 말한다. 어머니라는 신화를 어떤 시간에 고정하는 것, 그리하여 그것이 역사가 되도록 하는 일을 작가는 해낸다. 이런 문장이 인상 깊었다. "이번에는 내가 어머니를 세상에 내어놓기 위해서 그녀에 관한 글을 쓰고 있는가 보다"(41쪽). 나를 태어나게 한 사람, 내게 생명을 준 사람을 내가 다시 '세상에 내어놓는 일'은 글쓰기를 통해서만 가능할 수 있겠다고 생각한다. 덕분에 에르노의 어머니는 21세기를 사는 한국의 한 독자의 마음속에서 다시 살아났으니까. 그것이 그녀가 원하는 일인지는 차치하고서라도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