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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지혜를 얻고 싶은 사람에게
톨스토이가 들려주는 인생 잠언

마음에 힘을 주는 사람을 가졌는가
레프 니콜라예비치 톨스토이 지음
조화로운삶(위즈덤하우스)
 펴냄
12,000 원
10,8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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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럴 때 추천!
힘들 때
용기가 필요할 때
힐링이 필요할 때
읽으면 좋아요.
#명상
#사색
#인생
#잠언
#지혜
264쪽 | 2009-09-01
분량 보통인책 | 난이도 보통인책
상세 정보
러시아의 대문호 레프 톨스토이는 동서양의 고전 10만여 권에서 철학자와 종교가, 작가 등 300만 명으로부터 얻은 잠언들을 자신만의 명상과 사색들을 정리하여 마지막 삼 부작을 완성했다. 이 책은 톨스토이의 마지막 삼 부작에서 행복, 사랑, 이상, 기쁨, 삶, 죽음, 말, 행동, 내면적인 세계, 단순, 자유, 진리, 영혼, 고통, 노동 등의 주제만을 가려 뽑은 것이다. <BR> <BR> 톨스토이가 이 책에서 소개하는 인생의 잠언들은 실천하기 힘든 것이 아니며, 은밀하게 전해진 비법도 아니다. 누구라도 쉽게 실천할 수 있다는 것, 톨스토이가 전하는 잠언들이 가진 최고의 장점이다. 많은 지식을 얻는 일보다 인생의 지혜를 배우는 일이 얼마나 중요한지 톨스토이는 잠언을 통해 우리에게 알려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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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매일 새롭게 / 세상에서 가장 강한 존재 / 행복의 비결 / 말이 적은 사람 / 가장 위대한 지식은 스스로를 아는 것 / 손으로 일하는 즐거움 / 생활 규범 /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 / 좁은 길 / 똑바로 바라보라 / 나의 종교는 ‘사랑’ / 현재만이 당신의 소유 / 좋은 씨앗 / 부담스러운 것 / 적게 먹어라 / 생명 가진 모든 것은 똑같다 / 떼쓰는 아이 / 낯선 손님이 / 소박한 삶 / 참된 앎 / 눈에 잘 띄지 않는 것 / 행동의 진정한 결과 / 이상한 일 / 마음의 주인이 되라 / 허영심 / 생의 목적 / 짓지 말고 심어라 / 가장 현명한 대답 / 몰두할 줄 아는 사람 / 숟가락이 맛을 모르듯 / 용서하라 / 남을 비난하지 말라 / 여행 / 생각 하나가 / 선량한 생활의 기쁨 / 모든 분노는 약함에서 나온다 / 조금 덜 배워라 / 인생은 학교 / 진실의 아름다움 / 지금 이 순간을 살라 / 삶은 왜 존재합니까 / 좋은 책은 먼저 읽어라 / 열 번 자로 측정한 뒤 (하략)

▶ 레프 톨스토이Lev Nikolaevich Tolstoy ― 1828년, 남러시아 툴라 근처의 야스나야 폴랴나에서 톨스토이 백작 가문의 넷째 아들로 태어났으나 어려서 부모를 잃고 친척의 집에 자랐다. 세계적인 대문호로서 <전쟁과 평화>(1864~1869), <안나 카레리나>(1873~1876), <부활>(1899) 등의 위대한 문학작품을 남겼다. 톨스토이는 단순히 위대한 작가로서의 지위만 누리고 있는 것이 아니다. 그는 자신이 추구한 사해동포주의와 무교회주의로 인해 기독교회와 그리스정교회으로부터 숱한 핍박을 받았지만, 원시적인 기독교 신념에 기반을 둔 그의 사상은 민중으로부터 큰 지지를 얻었다. 생의 말년에는 본질적인 신의 의미를 찾아 구도의 길을 걸었지만, 한편으로는 분란이 끊이지 않는 가족사에 고통을 받기도 했다. 때문에 그는 ‘가장 인간적인 모습의 성자’라는 후세의 평가를 받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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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정보
레프 니콜라예비치 톨스토이
1828년 남러시아 툴라 지방의 야스나야 폴랴나에서 톨스토이 백작가의 넷째아들로 태어났다. 어려서 부모를 잃고 고모 밑에서 성장했다. 1844년 카잔 대학교에 입학했으나 대학교육에 실망하여 삼 년 만에 자퇴하고 귀향했다. 고향에서 새로운 농업경영과 농민생활 개선을 위해 노력했지만 실패하고, 1851년 큰형이 있는 캅카스로 가 군대에 들어갔다. 1852년 「유년 시절」을 발표하고, 네크라소프의 추천으로 잡지 『동시대인』에 익명으로 연재를 시작하면서 왕성한 창작활동을 하는 한편, 농업경영과 교육활동에도 매진해 학교를 세우고 교육잡지를 간행했다. 1862년 결혼한 후, 『전쟁과 평화』 『안나 카레니나』 등의 대작을 집필하며 세계적인 작가로서 명성을 얻지만, 『안나 카레니나』의 뒷부분을 집필하던 1870년대 후반에 죽음에 대한 공포와 삶에 대한 회의에 시달리며 심한 정신적 갈등을 겪는다. 이후 원시 기독교에 복귀하여 러시아 정교회와 사유재산제도에 비판을 가하며 종교적 인도주의, 이른바 ‘톨스토이즘’을 일으켰다. 직접 농사를 짓고 금주와 금연 등 금욕적인 생활을 하며 빈민구제활동을 펼치기도 했다. 1899년에 발표한 『부활』에서 러시아정교회를 비판했다는 이유로 1901년 종무원으로부터 파문당했다. 1910년 사유재산과 저작권 포기 문제로 부인과 불화가 심해지자 집을 나와 방랑길에 나섰으나 폐렴에 걸려 아스타포보 역(현재 톨스토이 역)에서 82세를 일기로 숨을 거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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