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귀가죽을 읽으며 샤를르 보들레르의 ‘악의 꽃’이 생각났다.
주인공 라파엘의 삶이 악의 꽃 이었다.
욕망을 충족시키는 만큼 작아지는 수명을 뜻하는 나귀가죽으로 겨우 하는 것이 600만 프랑의 재산을 지니고 죽지 않기 위해 전전긍긍하는 것이다.
방탕에 대하여 생각해본다.
책을 읽고 난 다음 든 생각은 방탕하게 한번쯤 살아보고 싶다는 것이다.
인생은 짧고, 살수록 옳고 그름에 대한 경계가 모호해 진다는 것이다.
선과 악, 정의와 위선, 이런 것들이 뒤죽박죽되어 무엇이 맞는지 모르겠다.
변하는 가운데 불변의 무언가가 있다고 믿고픈 마음과, 인연에 의하여 관계가 형성된다는 것에 깊게 공감 한다.
그가 살았던 19세기 전반은 프랑스 역사에서 가장 역동적인 시기였고, 그는 아마도 사는게 힘들었던 것 같다. 무절제한 가운데 영민하였고? 열정은 높았으나 현실은 빈곤했고, 그런 상황은 그에게 여러 가지 깊고 어두운 사실에 직면하게 하였을 것이다.
이해할 수 없던 사회현상에 대한 궁금증은 인간극에 대한 연구를 하게 된 게 아닐까?
이해는 된다. 격동기에 사는 인간은 유혹에 흔들리기 쉽고, 자본은 그 사회에서 자신을 지키는 중요한 수단이 되었을 것이니까.
그렇지만 책으로 보는 나는 그 삶의 과정이 불쌍해 보인다.
나라면 차라리 폴린과 가난하지만 소박하게 살았을 것이다.
어찌 되었건
그럼에도 불구하고 욕망은 집요하며 인생을 망쳐버리고 말 정도로 강력하다는 건 슬픈 일이다.
(해설 p448~449) 그가 태어난 1799년은 나폴레옹이 브뤼메르 18일의 쿠데타를 일으킨 해이다.
그것은 1789년 대혁명으로 수립된 프랑스 최초의 공화정을 무력하게 만들고 1인 지배의 황제 체제를 연다.
나폴레옹의 몰락 후 들어선 ‘복고왕정’(1814~1830)은 대혁명 이후의 변화를 부정하며 귀족 정치와 노인 정치의 부활을 꾀하고,
부르조아 계급과 젊은 세대의 반발인 1830년 7월 혁명으로,
입헌왕정 체제인 ‘7월 왕정’(1830~1848)으로,
이것은 산업과 금융 자본가 같은 상층 부르주아 계급의 이익에 복무하는 금권정치 체제로 고착된다.
7월 왕정은 급증한 도시노동자 계급과 하층 부르주아 계급의 저항을 불러 1848년 2월 혁명으로 그러나 노동자 계급과 부르주아 계급의 불안한 연합에 기초한 ‘제2공화정’(1848~1851)에서 꿈과 현실의 거리는 아직 멀었다
발췌글
‘얽매이는 것처럼 슬픈 것은 없으며 자유처럼 달콤하고 품격을 누릴 수 있게 해주는 것은 없다’
72 인간은 자신의 존재 원천을 고갈시키는 두 가지 본능적인 행위에 의해 기력이 소진되지.
.... 그것은 바람과 행함...
바람의 행위는 우리를 서서히 불태워 없애고 행함의 행위는 우리를 일거에 파괴시키지. 하지만 앎은 유약한 우리의 심신 구조를 항구적인 평온 상태로 유지시킨다네....
내 삶을 맡기는 곳은 쇠약해지지도 않고 어떤 것보다도 오래 사는 두뇌라네.
74 악이란 어쩌면 격렬한 쾌락과 다르지 않을 테니까 말일세
104 “독재는 불법적으로 엄청난 것을 이루는 데 반해 자유는 합법적으로 아주 사소한 것들을 이룰 수고조차 하지 않으려 들지.“
113 생리학자들이 매우 흥미롭게 밝혀내듯이 인간의 형상 아래 감추어져 있는 동물과 닮은 점이 사람들의 몸짓 속에, 태도 속에 어렴풋이 드러났다.
137 10년동안 천천히 길게 지속되어온 그 고통은 지금 몇 개의 문장으로 표현될 수 있어. 고통은 하나의 사념일 따름이고, 기쁨도 하나의 철학적 사유일 뿐이냐. 난 느끼는 대신 판단하는 거라네...
154 한 사람을 판단하려면 적어도 그가 품은 생각과 그가 겪은 불행과 그가 가진 심상의 비밀 속에는 들어가봐야 하지 않는가. 그의 삶에 대하여 오로지 물리적인 사건들만 알려고 하는 것은 연대기, 곧 바보들의 역사를 작성하는 짓이 아닌가!
210 페도라의 집은 화려하지만 메말랐고 내게 나쁜 생각을 불러일으켰는데, 이 겸허한 가난과 천성적인 선함은 내 영혼을 말갛게 씻어주는 것 같았어. 아마도 난 화려함 앞에서 치욕스러움을 느꼈나봐. 반면에 마음 씀씀이마다 소박한 삶이 깃들어 있는 듯한 그 거무스름한 방 안의 두 여인 곁에서는 남자라면 다 욕심 내는 여자의 보호자라는 역할을 할 수 있을 것 같아서 나 자신과 화해를 했는지도 몰라.
213 아! 친구여, 우리는 가난을 너무 쉽게 비난한다네. 사회를 와해시키는 용해제 중 가장 강도가 센 놈인 가난이 빚어내는 결과에 대해 우리 좀 너그러워지기로 하세. 가난이 창궐한 곳에는 점잖음이고 범죄고 미덕이고 지성이고 뭐고 더 이상 남아날 것이 없다네. 그 당시 나는 호랑이 앞에 무릎을 꿇고 있는 처녀처럼 저항할 힘도 없었고 정신을 차릴 수도 없었어. 열정이나 돈이 없는 사람도 자기 자신의 주인이 될 수 있는 법이지만, 사랑에 빠진 가난뱅이는 더 이상 스스로 뭔가를 결행할 수도, 자살할 수도 없다네. 사랑은 우리에게 우리 자신을 섬기는 종교 같은 것을 심어주니까. 그래서 우리는 우리 안에 있는 다른 삶을 경배하니까. 사랑은 그 때 불행 중에서도 가장 끔찍한 불행이 되지. 희망을 내포한, 고난을 자처하도록 만드는 희망을 내포한 불행 말이야.
220 아! 다락방의 사방 벽에 갇혀 있는 인생도 얼마나 격정적일 수 있는가! 안간의 정신은 요정 같아서 지푸라기도 다이아몬드로 변하게 할 수 있다네.
233 ‘나는 항상 거금을 지니고 있을 거예요, 아, 우린 황금만 있으면 우리의 안락을 위해 필요한 감정까지도 언제나 만들어낼 수 있거든요.’ 나는 그녀의 논리에, 그 사회의 논리에, 그녀가 속한 그 사회의 논리에 치를 떨며 그녀의 집을 나왔어.
233 ‘페도라는 아무도 사랑하거나 배척하지 않는다. 그녀는 자유롭다. 그러나 그녀는 예전에 황금 때문에 팔려간 여자이다..... 정숙하지도, 그렇다고 문란하지도 않은 그 여자는 안간계와는 멀리 떨어져서, 지옥인지 낙원인지 모르지만 그녀만의 세계속에 살고 있었던 거야. 캐시미어와 자수 놓인 옷을 입은 그 불가사의 한 여인은 내 가슴 한복판에 자존심, 야망, 사랑, 호기심 같은 인간의 모든 감정이 들끓어 일어나게 만들었어.
251 그녀의 얼굴에는 순간순간 변하는 아름다움이 서렸는데, 이는 우리가 매 순간 새롭고 유일한 존재라는 것을, 미래의 우리와도 과거의 우리와도 아무런 닮은 점이 없는 존재라는 것을 입증해주는 듯 했다네.
256 ‘당신은 신마저도 모욕하는군요. 당신은 신의 벌을 받을 겁니다! 언젠가 당신은 긴 의자에 꼼짝없이 누워 참을 수 없는 소리에 시달리고 찬란한 빛을 두려워하며 평생 무덤이나 다를 바 없는 곳에서 살도록 선고받은 채 상상을 초월하는 아픔을 겪을 것입니다. 서서히 짓누르는 그 징벌의 고통이 어떤 연유에서 비롯되었는지 궁금해지면, 그 때 그동안 지나온 길 위에다 당신이 너무도 광범하게 뿌려놓은 불행을 떠올리십시오! 당신은 그렇게 가는 곳마다 저주의 씨앗을 뿌려놓았기 때문에 돌아오는 길에 증오를 거둬들일 것입니다. 우리는 우리 자신의 심판관이며, 인간의 정의보다는 위에 있고 신의 정의보다는 아래에 있는, 이승을 관할하는 정의의 집행관입니다.’ ‘아!’ 그녀가 웃으면서 말했어. ‘당신을 사랑하지 않아서 내가 정말 죄를 지은 것 같네요. 그런데 그게 내 탓입니까? 아닙니다. 나는 당신을 사랑하지 않아요. 당신은 그냥 한 남자일 뿐이고, 그걸로 충분해요. 나는 혼자 있는 게 행복해요. 내가 왜 내 삶을, 당신이 원한다면 이기적인 삶이라고 해도 좋아요. 그 삶을 날 지배하려는 주인의 변덕과 맞바꿔야 하나요? 결혼이라는 것은 그 거룩한 이름을 빙자해서 우리가 서로 시름만 주고받는 성사일 뿐이에요. ....
261 방탕 속에 깊이 빠져봐, 그러면 자네의 열정이든 자네든 그 안에서 소멸돼버릴 거야. 이보게, 무절제는 모든 죽음의 여왕이야.
263 한 남자의 인생이 망가지는 데는 그를 전혀 사랑하지 않는 여자를 만나거나, 아니면 그를 너무 사랑하는 여자를 만나는 것으로 충분해. 불행이 우리의 덕성을 저해하듯이 행복도 우리의 기력을 소진시키는 벗이거든.
266 우린 우리가 가진 악덕으로만 서로 교분을 맺는 것인지도 모르잖아?
268 방탕이 주는 가장 희귀한 감동을 일상적인 감동으로 수립하고, 그것을 요약하며, 자기 삶 안에 또 다른 극적인 삶을 창조하고 자기 힘을 최대한도로 신속하게 소진시킴으로써 그 감동을 더욱 풍요롭게 만드는 그런 체계를 가리키지 전쟁이나 권력이나 예술 역시 방탕이 그렇듯이 인간의 능력이 미치기 힘든 곳에 있는, 심오하고 상궤를 벗어난 타락의 행위들이지 그래서 그것들은 모두 접근하기 힘든 속성을 가진 거야.
결국 전쟁은 피의 방탕이고 정치는 이해득실의 방탕인 셈이라네. 모든 방탕은 서로 형제간이야.
271 명정한 상태에서 빠져드는 꿈속의 환영은 종교적인 열광을 통해 만나는 환영 못지않게 흥미진진하지. 그런 상태에 도달하면, 젊은 여자의 변덕처럼 매혹적인 순간, 친구들과의 감미로운 대화, 한 사람의 일생을 압축하여 보여주는 말들, 다른 저의가 없는 순수한 즐거움, 피곤이 따르지 않는 여행, 몇 개의 문장으로 전개되는 시, 이런 것들을 체험하게 돼.
반탕은 천재가 악에게 지불하는 일종의 세금 같은 것이 아닌가?
281 ‘지난 내 삶은 너무 긴 침묵이었어.
282 이 가죽은 내가 욕망할 때 마다 줄어든다네... 이건 일종의 반어법이야. 브라만이지, 이 안에는 브라만이 들어 있어. 브라만은 그러므로 익살꾼이지. 왜냐하면, 자네도 알다시피 욕망은 당연히 늘어나야 하는 것이니까.....
286 그것은 사치 한가운데의 남루한 삶, 인간의 화려함과 비참함의 끔찍한 혼합, 방탕의 깨어남이었다. 방탕은 그 힘센 손아귀로 삶의 모든 열매를 쥐어짜 보잘 것 없은 잔해물이나 방탕 자신도 더 이상 믿지 않는 거짓말만을 자기 주변에 남겨놓았던 것이다.
290 퇴색한 창녀들과 포식한 얼굴들이 둘러싸고 있는 이 으리으리한 향연, 기쁨에 도사린 죽음의 고뇌, 이것이 그의 삶의 생생한 이미지였던 것이다.
291 세상은 그의 것이었고 모든 것을 할 수 있었지만 그는 이제 더 이상 아무것도 원하지 않았다.
292 재산은 무례해도 된다는 면허증이지.
294 “자넨 부자잖아. 어허 참! 장담하건대 자넨 두 달도 안돼서 더러운 이기주의자가 될 걸세.
347 오나그르, 야생 나귀, 학명으로는 에쿠스 아시누스, 타타르인들은 쿨란이라고 불렀지요.
349 오나그르 가죽, 이가죽을 흔히 샤그랭이라 부르는데, 터키어 샤그리라 주장, 도시 이름이 샤그리, 샤아그리가 시냇물을 가리킨다고 알려오기도 했어요(샤머니즘??)
352 대체 내가 무엇을 창조했단 말인가? 창조한 것은 아무것도 없다. 인간은 힘을 만들어내는 것이 아니다. 그는 다만 그 힘의 길을 터줄 뿐이다. 과학의 본령은 자연을 모방하는 것이다.
373 사랑의 봄날에 만끽하는 이 기쁨은 우리 젊은 날의 웃음이 그렇듯이 덧없이 사라져버리고 우리의 기억 속에만 살아남는 운명을 지닌 것으로서, 우리의 내밀한 상념이 변덕을 부릴 때마다 우리를 절망에 빠뜨릭나 아련한 위안의 향기를 전달해주는 구나.
408 힘을 소유하는 것 자체가, 아무리 그 힘이 막대하다 하더라도, 그 힘을 사용할 수 있는 기술을 가져다주지는 않는다는 생각이 들었다.
418 목적한 바도 없는, 그러나 어떤 상념으로 이어지고 마는, 물리적인 현상들에 얽혀드는, 그 무심하면서 동시에 골똘히 무언가를 향하는 몽상 속에 잠겼던 적은? 요컨대 동심의 삶, 게으른 삶, 노동은 빠진 원시의 삶을 영의해 본 적은?
423 동정심은 우리를 절망에 빠뜨리고 약점을 더욱 취햑하게 만든다. 그것은 번지르르한 아첨의 외양을 한 악의이거나 온화함 속에 감춰진 경멸이거나 아니면 공격성을 은폐한 온화함이다.
456 삶에 의해 부추겨졌지만 살지도 못하고 사라지는 우리 시대의 모든 사람들
466 우리는 아주 기이하게 자유로워지고 나서부터 아주 기이하게 슬퍼졌다.
나귀 가죽
오노레 드 발자크 지음
문학동네 펴냄
읽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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