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의 주요 건축물에 대한 그 당시, 건축가, 디자인에 대한 이야기다. 개인건물부터 한 도시의 랜드마크까지. 속사정, 얽혀있는 이야기들을 읽으며 그 곳에 대해 다시한번 생각하게 됐고 전혀 본 기억이 없는 곳은 한번쯤 가서 보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1960년-1970년, 우리나라의 정치, 경제, 문화 등 많은 부분에서 변화가 있었던 때에 대부분 건축된 곳들이 설명되고 있다.(정치적으로 그 정권의 주업적을 만들기 위해, 선동을 위해 이루어 지는 큰 공사들 중 하나로...)
여기서 소개된 장소를 나열해 보면 서산부인과, 당인리발전소, 남산자유센터, 연세대학생회관, 아현고가도로, 세운상가, 성니콜라스성당, 용산국방부구관, 국회의사당, 제주소라의성, 유진상가, 여의도순복음교회, 광주시민회관, 남영동대공분실, 고속버스터미널, 마포도원빌딩, 광화문지하도, 종묘공원, 노을캠핑장, 청계천, 가리봉동, 서울강남이 있다. 이 책을 읽으며 검색을 하다 찾게 됐는데 서울의 건축물을 소개하는 도시건축행사(오픈하우스서울)가 있던데 한번 경험해 보고 싶어진다.
작가는 건축물, 공간에 담긴 역사나 사상 등에 대해 자세히 설명해 줬는데 내 능력은 보이는 것에 한정된 것 같다. 이 책을 읽고 나서 그 건축물, 장소를 보면 작가의 설명이 더 쉽게 닿을 것 같기도 하다.
P.35 (당인리발전소) 서울을 위시한 대도시 주민들이 영위하는 현대 소비생활의 자유와 편리함 이면엔, 방사능 공포와 싸우고, 화석연료가 방출하는 분진, 소음, 매연의 고통을 서푼어치 보상금과 교환하여 생존해야 했던 발전소 입주 지역민, 대도시가 빨아들이는 전력의 이송로를 위해 재산권과 건강권마저 포기해야 했던 힘없는 소수자들의 희생이 존재했던 것이다. 그 태생부터 현대성은 대지를 수탈하고 공동체의 또 다른 내부를 식민화하는 데서 동력원을 찾는 야만성의 짝패였다.
P.91 (세운상가) 건축가의 조형 의지는 사용자들의 무관심과 자본의 근시안적 이윤 논리에 밀려 곳곳에서 참패했다.
P.136 (국회의사당) 반정치주의는 "정치를 경멸하고 조롱함으로써, 시민들이 정치에 기대를 걸지 못하게 하거나 정치의 가능성에 대한 냉소주의를 강화시키는 태도나 경행"을 가리킨다. 문제는 시민이 정치에 대한 기대와 관심을 접을 때 이로부터 이익을 얻는 세력이 반드시 존재한다는 점이다. 권력자, 재벌, 관료집단이다. 시민들은 그 사이 자신들의 삶을 규정하는 공적 의제의 논의 테이블에서 속절없이 밀려난다. 해나 아렌트의 표현을 빌리면 "사생활의 영역에만 머물 뿐 공적 사안과 관련해선 아무런 자격 없는 인간"으로 전락하는 셈이다. 이 존재들을 아렌트는 "정치조직의 상실로 인해 인류로부터 추방된" 존재, '난민'이라고 불렀다.
P.201 (남영동대공분실) 설사 김수근이 내부 설계에 깊숙이 관여했더라도 그 공간이 잔혹한 고문 시설로 사용되리라는 데까지는 생각이 미치지 못했을 것이란 견해도 있다. 그러나 공간의 용도를 충분히 예견 못한 정치적 태만함이 설계자의 윤리적 무감각에 면죄부를 줄 수 없다는 반론도 만만찮다.
P.204 그들의 도덕적 판단 회로는 '간첩 잡는 나랏일'의 위중함 앞에서 작동을 멈췄다. 그 '애국적 판단 중지'가 비극을 낳기까지는 긴 시간이 필요치 않았다.
P.286 (청계천) 새로운 청계천에서 개발 시대의 기념비인 고가도로는 부서지고 방치된 채 새로운 승자의 위엄과 우월성을 과시하는 인용물, 오브제가 된다. 이것이 암시하는 바 명확하다. 영속할 것처럼 보이는 현재의 기념비 역시 덧없고 무상한 것이며, 언젠가 폐배의 기념물로 전락해 새로운 승리자의 영광을 위해 봉사하게 되리라는 사실이다. 방치된 교각이 표상하는 것은 단순히 현재의 승리 또는 과거의 폐배가 아니다. 그것은 공원화된 청계천의 미래를 암시하는 자기 파괴의 알레고리다.
서울의 건축물 및 공간들을 글쓴이가 한겨레 정치부 기자답게 읽어냈다. 각 주제에 대한 미학, 역사 또한 부족함이 없고, 사회현상분석, 주변 인물과의 인터뷰는 주제를 둘러싸는 철학과 사유가 작가의 단순한 개인적 생각이 아니라는 것을 뒷받침 해 주는 듯 하다. 멜랑콜리아. 이름 적절하다. 다만 마르크스주의 사회과학을 전혀 접해보지 못한 분들에겐 어려울 수 있는 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