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 03. ~ 2021. 05.
3개월간 창작과 비평 2021 봄호 계간지를 읽었다.
<미국 분열 이후의 세계, 어떻게 대응할까>라는 주제의 특집도 있었고, <청년, 한국사회를 말하다>라는 주제의 대화도 있었다.
평소의 나라면 잘 읽지 않을 <한 장군의 생애와 한국 정치사의 어떤 단면(남재희)>이나 <우리 시대의 노동 이야기(한영인)>, <시적 시민성의 범주론(신형철)> 등 다양한 주제의 글을 접할 수 있었다.
사실 잘 읽히지 않는 글도 있고 이해하기 어려운 글도 있었다.
아, 나의 책 편식...
맛있는 책만 골라 읽으니 취약한 주제에는 바로 타격이 왔다.
그래도 '미션'이라는 이름 아래 열심히 참여했다.
그렇게 얻은 수확이라면, 시집을 샀다는 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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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정례 시인을 향한 이근화 시인의 애정과 그리움이 담긴 <작가 조명: 그 밖은 다른 사람들의 것>을 읽었다.
한 문장씩 소리 내어 천천히 읽었다. 자꾸 눈물이 목을 탁탁 쳤다. 가끔은 눈물이 나서 읽기를 멈췄다.
<지금쯤 산딸나무 꽃 피었겠다/꽃이 아니라 꽃받침 같았던 꽃/산딸나무 없는 아파트 숲에 살면서/그 동네 떠나온 것, 후회하는 것/공허를 옮기는 일이다//마트에 가서 애써 푸른 사과를 찾아내고/그 사과 4등분으로 쪼개면서 그 색깔 그 향기에 손 넣어보며/대신 사과를 먹으면 되잖아/이런 식으로 위로의 말을 꺼내는 것/그것도 그렇고(4분의 3쯤의 능선에서 중)>
시인이 투병 중에 쓴 시라 그런지 슬픔이 밀려드는 기분이었다.
시가 이렇게 사람을 울린다.
- 스위치 7회 미션 작가조명/대산대학문학상에 기록한 내용
이번 계간지는 플라스틱 방앗간과 함께 하는 미션도 있었다. 페트병 뚜껑과 병목을 제거하는 것! 분리수거할 때 병목을 제거해야 한다는 걸 미션을 진행하면서 처음 알게 됐다. 부끄럽지만 공유하는 이유는 이 글을 보게 될 사람들도 함께 했으면 하는 마음이기에 남긴다.
병목 제거할 때 손으로는 안 빠진다. 포크를 이용해서 빼기도 하고 칼을 이용하기도 했다. 친구한테 병목 제거하는 것에 대해 이야기했더니 인스타에서 제거하는 방법을 찾아서 보여줬다. 고양이 발톱 깎을 때 쓰는 걸 이용하면 쉽게 제거할 수 있다고 한다.
오늘로 3개월간 봄호 계간지 읽기 대장정(?)은 끝났다.
내일부터는 여름호 계간지 읽기가 시작된다!
봄호에서 연재하는 <마주(최은미)>를 빨리 읽고 싶었는데 여름호가 이미 집에 도착해서 기쁘다. 미션이 시작되기 전에 먼저 읽어야겠다.
기후정의는 기후위기에 관한 대응과 조치가 생태의 문제만이 아니라 인권의 문제이고, 불평등의 문제이며, 또한 공동체의 역량 강화와도 관련이 있음을 일러준다. - ‘책머리에’, 송종원 - p. 3
국제질서의 변화와 대외관계에 대한 한국의 대응은 여러 조건의 제약을 받는다. 희망적 사고만으로 움직일 수 없고, 우리의 역량을 냉정하게 평가한 기초 위에서 행동해야 한다. - ‘미중 전략경쟁, 어디로 가는가’, 이남주 - p. 52
누구나 나이가 들고 아플 수 있고 다양한 이유로 취약한 상황에 놓일 수 있는데 이를 시설 수용으로 해결하려는 방식이 구조적 폭력이라는 것을 깨달았어요. /.../ 시설은 누군가를 사회로부터 격리시키는 동시에, 격리된 주체 스스로 더이상 사회의 구성원이 아님을 지속적으로 각인하게 된다는 뜻이에요. - ‘청년, 한국사회를 말하다’, 김주온 - p. 79
시멘트 금 간 마당 틈새
비치파라솔 그늘, 잠시 쉬는 내 허리까지
쑥, 올라온 씀바귀 꽃대
해를 따라왔는지 피해 왔는지
우주의 중심에서 폭발하는 별처럼
사방팔방 달아나는 꽃맹아리들
빠당빠당하고 깐깐하고 눈부시다
이렇게 쬐그만 꽃잎 언저리에도
아침 일벌들은 아이구 좋아라, 덤벼든다
사는 것이 다들 최선이다
햇살 달아오르는 마당 질러
나도 텃밭 가려고 벌떡 일어서는데
뒷집 아이 울어 짱짱하게 담장을 넘는다
저 아이도 고픈 것이 있나보다
눈 감고 숨 멈추고 귀를 세우니
아니다 길냥이 소리다
고픈 것이 힘이다
살아 있는 것들은 그 힘으로 울고
울지 못하는 것들은
더는 삶이 고프지 않은 것이다
- ‘사는 힘’, 배창환
이렇게 함께 누워 있으니
비로소 운명이란 말이 완전해집니다
당신을 향한 모든 절망의 말들이 내게로 와
흰 눈처럼 쌓이는군요
나는 철없는 신부처럼 아름다운
죽음을 얻어 살아 있습니다
가장 적극적인 자세의 천장이
지켜보는 봄날의 오후,
문밖에는 꽃과 새들과 바람이 서성이다
돌아가겠지요
전신 거울을 볼 수 있을까요
공원 호숫길도 궁금한 날
멀뚱멀뚱 나는 두 눈을 뜨고
거룩한 당신이었다가
우스꽝스러운 나입니다
이것은 농담에 가깝습니다
나는 나로부터 멀리멀리 걸어가야 합니다
당신을 따뜻하게 안습니다
그러니까 질문은 받지 않겠습니다
죽음이 슬픔을 우아하게 맞이하도록,
태도는 끝까지 엄숙하게,
- ‘수의’, 이명윤
김종삼을 읽다가 문득 말을 멈춘다
많은 말을 가지면 많은 뜻을 전달할 줄 알았다
그때에야 비로소 남루하였던 나를 알아보고서
의미들은 나의 명령대로 빛나는 거미줄을 짜고
그렇게 되면 밤낮으로 혼자여도 두렵지 않고
거울 없이도 난 내얼굴을 단번에 알아보고
가지각색 의미로 나의 거죽을 쌓아 올려
프랑스에도 가보고 아메리카에도 가보고
살아서 갈 수 없는 단 한곳을 빼고 가는
모든 여행에도 불안한 줄 몰랐을 거다
조금만 더 말을 모으면
나를 설명하는 일이 가능할 거라고
정확한 말을 찾아, 대상 그 자체인 말을 찾아
때가 되면 진리를 치장해볼 것이라고 들떴다
몇권의 말 무덤만 덩그렇게 남길 줄도 모르고
내용도 아름다움도 없는 카드에다
수신인도 발신인도 없는 카드에다
이제 무엇을 더 써보아야 하나
요즘 아이들은 알아듣지 못할 말을 중얼거린다
옛날 사람이 되는 일밖에 남지 않았다
- ‘옛날 사람’, 황성희
우리의 임무는 우리의 행동의 결과가 어떻게 될지 몰라도 최선을 다하는 것이다. 아니, 실은 우리의 노력으로 변화가 초래될 수 있을지조차 모르는 상황에서도 최선을 다해야 한다. 우리는 우리가 하는 일이 중요한지 아닌지는 모른다. 그러나 그것을 실천하는 것이 우리 자신에게 중요하다는 것은 알고 있다. - David Roy - p. 296
자신을 지탱해온 근대의 신화들이 스러진 지금, 노동은 위태롭고 곤궁하다. 근면성실한 노동에도 ‘벼락거지’가 된 스스로를 책망하며 다급하게 ‘영혼을 끌어모아’ 부동산과 주식, 가상화폐 시장으로 발길을 돌리는 사람들의 뒷모습에서 오늘날 노동의 곤궁함은 더욱 도드라진다. - ‘우리 시대의 노동 이야기’, 한영인 - p. 325
‘그린뉴딜’을 소개한 후, 이 운동을 “브랜드화”한 한국의 ‘그린뉴딜’이 “토건뉴딜”로 회귀할까봐 우려하는 부분(82면) 역시 두렵다. 우리가 나침반으로 삼아야 할 것은 ‘이름’이 아니라 철학임을 알려준다. - ‘어떤 영화를 만들 것인가’, 이향규 - p. 44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