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디영화감독 안슬기의 첫 책으로, 영화 <다섯은 너무 많아>의 반대편 가족을 그린 소설. 가난하고 연약한 한 가장이 악마가 되어가는 과정을 그렸다. 사회와 가족의 이데올로기 속에 갇힌 가정의 어두운 모습을 보여주면서, 가족의 해체가 빈번하게 이루어지고 있는 현대 사회의 아픔을 이야기한다. 가족을 위해 악마가 되어가고, 가족에 의해 악마가 되어버린 한 가장의 모습은 우리에게 가족과 가장을 바라보는 시선에 대한 새로운 논란거리를 제공할 것이다.
누구나 속에 악마가 있다고 난 믿는다.
어쩌다 한번쯤은 내 안의 악마를 꺼내고 싶을 때가 있다.
이 작품은 그런 욕망을 실현한다.
읽으면서 생각이 든다: '속은 진짜 시원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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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 56
죽음을 집행한다고 악마가 될 순 없다. 진정한 악마는 인간의 '죽음'이 아니라 '삶'을 지배한다. 인간의 삶에 스미어 그들을 힘과 어둠에 복종하게 하는 것이다. 그래서 기어코 인간 스스로 영혼을 팔고 악마를 흉내 내게끔 하는 것이다.
P. 190
왜 고양이에게 방울을 달아야 하는가? 그것은 고양이가 무섭기 때문이다. 고양이가 우리를 잡아먹기 때문이다. 본질은 거기에 있다. 본질이 해결되지 않은 상태에서 고양이에게 방울을 달자고 결정하면 도대체 어떻게 고양이에게 방울을 달 수 있겠는가? 고양이가 여전히 무서운데 말이다.
해결책은 하나다. 고양이를 안 무서워하는 것이다. 덤벼서 싸워서 고양이가 쥐를 무서워하게 하는 것이다. 사실은 세상엔 그 방법밖에 없다. 그게 진실이고 진리다.
P. 198
죽음은 무엇일까? 석규는 지금까지 누굴 죽여본 적이 없고, 자기도 죽었던 적이 없다. 그래서 그것이 무엇인지 정확히 모른다. 하지만 세상에 뭐 하나 특별한 것이 있겠는가? 죽음은 처음 생명이 생기는 것과 비슷하게 생명이 사라지는 것이다. 생물의 당연한 과정이고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주어지는 약속이다.
P. 206
한때는 세상 자체가 가혹하다고 생각했다. 시트콤을 보다가도 눈물을 흘린 적이 있다. 병원 다큐나 기아체험 특집방송이 아니라 시트콤을 보면서 말이다. 한참을 웃다가 돌이켜 보면 슬픈 일이었다. 꼼지락거리고 웃고 떠드는 우리가 참 속상하고 서러웠다. 당신이라는 존재가, 그리고 당신이 만든 세상이, 그곳에 사는 우리가 참 슬픈 것이었다. 우주에 비하면 티끌도 안 되는 우리 몸의 볼륨이 슬펐고, 당신의 의도에 비하면 얕디얕은 우리 생각의 깊이가 슬펐고, 당신이 만든 자연의 운동에 비하면 우리가 모여 사는 이 사회의 현상들이 너무나 추했다.
P. 223
가짜 선도 선은 선이다. 신의 표현이 설상 가짜더라도 그것이 많아지면 그것에서 진짜가 나온다.
P. 233
사람은 그냥 당장 저 하고 싶은 데로 하고 사는 반푼이들이다. 그걸 말릴 재간 있는 사람은 천지에 아무도 없다. 그러니 후회도 지 몫이다. 아픔도 지 몫이다. 옆에서야 아무리 그 지랄들이 일어날지 미리 알고 있었더라도, 폭풍이 지나간 후에 우는 사람 끌어안고 어깨나 두드리는 수밖에 다른 도리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