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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꺼운 책
출간일
2012.9.10
페이지
522쪽
상세 정보
W. B. 예이츠에게 단테는 “기독교적 상상력의 권위자”였다. T. S. 엘리엇에게 그는 시인으로서나 철학자로서 대단한 중요성을 갖는 인물이었다. 바이런은 단테를 추방한 ‘배은망덕한 피렌체’를 책망했다. 보르헤스는 <신곡>을 “모든 문학의 절정”으로 표현했다.
인류 문학사상 불후의 금자탑으로 불리는 <신곡>은 단테가 조국 이탈리아에서 추방당해 유배생활을 하면서 무려 18년(1304~1321)에 걸쳐 완성한 장편 서사시이다. 중세 종교와 사상의 총체라고 할 수 있는 이 고전은 14세기 초 피렌체 사회를 보여주는 시대사적 문서이자 동시에 “거칠고 요동하는 시와 같은” 삶을 살았던 한 개인의 내적인 여행기이기도 하다.
영국왕립문학협회 특별연구원으로 종교와 역사 분야에 정통한 전기 작가이자 저명한 소설가인 A. N. 윌슨은 <사랑에 빠진 단테>에서 중세 피렌체나 고전 신학과 수비학(數秘學), 기독교 철학, 프톨레마이오스의 천문학 등 <신곡>을 읽기 위해 필요한 배경지식을 제공하는 동시에, 상상력 넘치는 문장으로 인간 단테의 내면 풍경을 생생하게 그려낸다. 단테에 대한 다양한 해석의 관점과 역사적 맥락을 밀도 있게 다루는 있는 이 책은, 교양인을 위한 ‘단테 평전’이자 <신곡> 입문서, 그리고 서양 중세 역사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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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세정보
W. B. 예이츠에게 단테는 “기독교적 상상력의 권위자”였다. T. S. 엘리엇에게 그는 시인으로서나 철학자로서 대단한 중요성을 갖는 인물이었다. 바이런은 단테를 추방한 ‘배은망덕한 피렌체’를 책망했다. 보르헤스는 <신곡>을 “모든 문학의 절정”으로 표현했다.
인류 문학사상 불후의 금자탑으로 불리는 <신곡>은 단테가 조국 이탈리아에서 추방당해 유배생활을 하면서 무려 18년(1304~1321)에 걸쳐 완성한 장편 서사시이다. 중세 종교와 사상의 총체라고 할 수 있는 이 고전은 14세기 초 피렌체 사회를 보여주는 시대사적 문서이자 동시에 “거칠고 요동하는 시와 같은” 삶을 살았던 한 개인의 내적인 여행기이기도 하다.
영국왕립문학협회 특별연구원으로 종교와 역사 분야에 정통한 전기 작가이자 저명한 소설가인 A. N. 윌슨은 <사랑에 빠진 단테>에서 중세 피렌체나 고전 신학과 수비학(數秘學), 기독교 철학, 프톨레마이오스의 천문학 등 <신곡>을 읽기 위해 필요한 배경지식을 제공하는 동시에, 상상력 넘치는 문장으로 인간 단테의 내면 풍경을 생생하게 그려낸다. 단테에 대한 다양한 해석의 관점과 역사적 맥락을 밀도 있게 다루는 있는 이 책은, 교양인을 위한 ‘단테 평전’이자 <신곡> 입문서, 그리고 서양 중세 역사사이다.
출판사 책 소개
1. 중세 유럽의 정치, 신학, 예술, 과학에 대한
탄탄한 배경지식을 바탕으로 그려낸 인간 단테의 삶과 사랑
단테의 『신곡』은 700년이 넘도록 서양문학의 정전으로 이름을 떨쳐왔고 숭배자들에게 성서에 버금가는 지위를 부여받아왔다. 이런 칭송에도 불구하고 단테에게 다가가기는 여전히 어렵다. 주요한 이유는 『신곡』을 읽기 위해서 중세 유럽의 신학, 천문학, 언어학, 시학, 수학, 역사 등 알아야 할 배경지식이 만만치 않기 때문이다. 『신곡』이 기독교적 우주론에 충실한 책인 만큼 다른 역사 문화적 배경 아래에서 자라온 우리와 정서적인 거리감이 큰 이유도 있다. 국내에 『신곡』 연구서가 거의 전무한 현실도 간과할 수 없을 것이다.
십대 때 「지옥편」의 압도적인 힘에 매료되었던 저자 윌슨(1950년생)도 처음에는 번역판에서 시작해서 이탈리아어-영어 대역판을 거쳐 이탈리아어로 『신곡』을 완독하고, 이후 50여 년간 『신곡』을 탐구해온 사람이다. 고전 읽기의 힘겨움을 몸소 체험한 그는, 『신곡』을 중도에 포기하는 사람들은 최고의 미적, 상상적, 감성적, 지적 경험들을 놓치고 있다고 말한다. 이것이 단테라는 광활하고 어두운 숲을 헤매고 있는 독자들을 위해 그가 단테와 『신곡』의 안내자를 자처하며 『사랑에 빠진 단테』를 쓴 이유다.
윌슨은 『사랑에 빠진 단테』에서 단테가 살았던 13~14세기 중세 유럽을 조명하면서 그 시대의 정치사회적 배경이 단테의 삶과 작품세계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탐색한다. 단테는 작가이자 외교관, 군인, 정치가, 학자였다. 내면적으로도 여러 겹으로 둘러싸인 단테의 다중적인 면모들은 창작과 집필 과정에서 직접 드러난다. 단테는 자기 자식들을 낳은 아내 젬마에 대해서는 단 한마디도 쓰지 않았지만, 자신이 잘 몰랐던 베아트리체를 불멸의 이름으로 남겼다. 단테의 삶과 작품 사이에 숨어 있는 이 수수께끼를 풀어나가는 윌슨은 전기 작가가 가진 섬세한 눈과 창작 과정을 이해하는 소설가의 눈으로 단테 알리기에리의 삶을 훌륭하게 그려내며 새로운 세대의 독자들을 위해 위대한 문학작품의 비밀을 밝혀낸다.
2. 추방과 유배의 시인, 새로운 언어의 시인 단테,
그의 정치적·지적 여정을 그리다
단테(1265~1321)가 살았던 이탈리아는 도시국가와 공국들이 저마다 세력을 발휘하면서 폭력적인 갈등에 휩싸인 혼란기를 맞고 있었다. 또 13~14세기에 독립된 민족국가가 처음 출현했고 결국에는 민족국가가 강해졌지만 당시에는 교황 군주제와 신성로마제국이 치열한 다툼을 벌이고 있었다.
단테의 정치 역정은 그 시기에 존재한 모든 의견과 입장들을 두루 거쳤다고 볼 수 있다. 당시 피렌체를 양분하는 세력은 교황권을 지지하는 구엘프파(Guelfs, 백당과 흑당으로 나뉨)와 신성로마제국 황제를 지지하는 기벨린파(Ghibellins)였다. 단테는 처음에는 구엘프 백당을 지지하다가, 나중에 교황권에 반대하는 기벨린 가문을 지지하는 일종의 무소속 기벨핀파였다가, 마침내 신성로마제국의 황제인 하인리히 7세에게 개인숭배에 가까운 열렬한 찬사를 보내는 쪽으로 입장을 선회했다.(단테가 『신곡』에서 구세주로 그리는 인물이 하인리히 7세라는 설이 압도적이다) 윌슨은 이런 단테를 두고 “마치 20세기 중반에 10여 년 만에 트로츠키주의자에서 파시즘 신봉자로 변모한 남자를 보는 것과 같다”고 말한다.
이탈리아의 르네상스를 연구한 영국의 미학자이자 사학자인 J. A. 시먼즈는 “이탈리아 언어의 창조자이자 이탈리아 문학의 창시자인 단테는 이탈리아에 말과 생각을 동시에 주었고, 인종과 땅의 개념에 지적 개별성을 가미했다.”고 한다.(313~314쪽) 윌슨은 19세기 민족주의자들이나 20세기 파시스트들이 단테를 자신들의 명분에 동원하는 것은 시대착오적임에도 불구하고, 어떤 의미에서 단테는 이탈리아 민족주의의 선구자였다고 말한다. 단테는 유배를 당하고 처음 몇 년 동안 최소 열네 가지 이상의 구어의 변형과 방언을 발견했고, 유배 중에 쓴 논문 『속어론』에서 지식인의 공용어인 라틴어보다 각 지역의 일상어인 속어로 시를 쓰자는 주장을 펼친 바 있다. 단테의 생애가 시작될 때, 이탈리아 문어의 어휘는 현대 이탈리아어의 60% 정도였지만, 속어(피렌체 방언)로 쓴 『신곡』을 완성할 무렵 이탈리아어는 현대 이탈리아어 사전에 등록된 단어의 90%였다. 이탈리아어 단어의 30%가 단테가 활약했던 시기에 조성된 셈이다.(312쪽)
3. 『신곡』은 알레고리화된 단테의 자서전
『신곡』은 기본적으로 알레고리화된 단테의 자서전이다. 즉 단테가 우리에게 직접적으로 알려주지 않는 실제 그의 삶이라고 말할 수 있다. 단테의 유랑 생활은 낙원에서 인간이 추방된 것을 상징하고, 피렌체의 타락은 세상이 죄와 부패 속으로 타락하는 것의 알레고리이며, 베아트리체도 이성의 작용이 아닌 은혜의 수용을 통해 신성한 진리를 자각하는 것을 의미하는 알레고리다.
윌슨은 모든 것을 알레고리적으로 읽을 수 있는 사고방식이 우리에게는 부자연스럽지만 단테의 시대에는 일반적이었다고 한다. 성서를 알레고리로 읽는 것이 대표적인 예인데, 그 전통은 성 바울에서 시작되어 고전 시대 후기(354~430)의 철학자인 아우구스티누스가 글을 쓰기 시작했을 때 일반화되었다. 예를 들어 선한 사마리아인을 그저 이웃에게 친절할 것을 권하는 이야기로 읽는 것이 아니라 교회로 인도되는 기독교적 영혼의 알레고리로 읽는 것이다.
한 편의 고백적 자서전인 『신곡』에서 단테는 자신의 적들을 지옥에 던지고, 친구와 존경하는 인물은 연옥에 두고, 베아트리체는 천국에 모신다. 「지옥편」에 등장하는 몇 명의 예를 들어보자. 단테를 정치적으로 몰락하게 하고 피렌체에서 추방되도록 주도한 교황인 보니파키우스 8세(Boniface VIII)는 단테가 『신곡』에서 질책하고 경멸하는 모든 죄인 중에 특히 두드러진 존재다. 또 단테는 그의 추방에 주도적인 역할을 했던 코르소 도나티(Corso Donati)에 대한 당파적 복수심에 불타올랐는데, 단테는 저명한 이름을 자랑스러워하는 코르소 가문 일가족을 「지옥편」에서 뱀으로 변한 망령으로 묘사하는 등 그들을 ‘이름 없는’ 존재로 만들어 모욕한다.
윌슨은 단테가 지옥에서 마주하는 그의 문학적 스승인 동성애자 브루네토 라티니(Brunetto Latini)를 주목한다. 그는 남색의 죄 때문에 지옥에 있는데, 단테가 브루네토와 대면하는 장면은 부드러움과 슬픔이 충만하다.(109쪽) 저자는 브루네토와의 조우에서 단테가 사춘기 시절 자신의 동성애에 직면하고 있으며, 이를 통해 단테가 가톨릭 신앙을 의도적으로 훼손하는 게 아닐까 하고 조심스럽게 가정한다. 왜냐하면 브루네토가 등장하는 장면은 아주 정교하고 탁월하게 브루네토가 존경할 만한 인물이라고 생각하게 만들기 때문이다.(110~111쪽)
4. 단테의 작품 속에서 아내 젬마의 흔적을 추적하다
1274년 빨간 드레스 차림을 한 아홉 살의 베아트리체와 그녀를 보자마자 얼어붙고 만 단테의 만남은 문학사에서 가장 인상적인 조우 가운데 하나다. 처음 만난 지 정확히 9년 만인 1283년 열여덟 살의 베아트리체와 두 번째 조우가 있었고 1290년 베아트리체는 24살의 나이로 요절한다. 두 번의 만남으로 신성한 사랑과 은혜의 상징이 된 베아트리체와 달리, 단테와 결혼하여 그의 자식들을 낳은 아내 젬마에 대해서는 왜 단 한 줄의 언급도 없는 것일까?
윌슨은 『신생(Vita Nuova)』과 『향연(Il Convivio)』과 단테의 삶을 가로지르며 단테가 ‘고귀한 여인’ ‘창가의 여인’ ‘철학의 여인’으로 묘사한 인물이 아내 젬마일 가능성이 크다고 말한다. 베아트리체가 죽고 정확히 1년 만(1291년)에 단테의 자식들이 태어나기 시작했고, 단테가 철학을 발견한 시절이 공교롭게도 그의 신혼 시기와 일치했을 수 있기 때문이다. 보이티우스(Boethius)의 『철학의 위안』은 베아트리체가 죽은 뒤 단테가 철학에 마음을 의존하며 빠져든 책이다. 『철학의 위안』에 비견되는 작품으로 쓰고자 했던 『향연』에서 단테는 ‘철학의 여인’ 또는 ‘창가의 여인’이 베아트리체를 대신하게 했다. 윌슨에 따르면, 높이 떠받들어야 할 사랑의 대상인 베아트리체는 신학의 적절한 상징, 다시 말해 성서가 말하는 것처럼 누구도 본 적이 없는 절대자에 대한 사랑의 상징이 되는 반면, 문자 그대로 그가 붙잡고 씨름할 수 있는 아내는 세속적 철학, 즉 이성적 사유에 대한 적절한 알레고리적 표상이다.
5. 사랑의 전복자이자 혁명가로서 단테를 조명
단테가 주는 지속적 매혹의 중심에는 사랑에 관한 질문이 있다. 단테에게 사랑은 무엇인가? 베아트리체는 단테에게 사랑에 관한 사색의 수단이며, 사랑의 알레고리다. 단테는 사랑이 모든 것을 포괄하며, 태양과 별들을 움직이게 하는 힘이라고 믿었다.
윌슨은 단테의 ‘사랑의 철학’에는 14세기 후반 이탈리아의 젊은 지식인들의 철학적 사상들과 기독교 전통들이 종합되어 있다고 말한다. 시인으로서 단테는 궁정풍 연애(courtly love)의 전통 속에서 청소년 독자로서, 시인 지망생으로서 경험을 쌓는다. 궁정풍 연애는 기본적으로 높은 신분의 귀부인에 대한 기사의 헌신적인 사랑을 특징으로 한다. 사랑의 대상인 귀부인은 이미 결혼한 상태이기에 기사의 사랑은 이루어질 수 없고, 성적인 접촉도 불가능하다. 욕망의 대상이 금지되어 있어 획득이 불가능하다는 사실은 필연적으로 여성에 대한 끝없는 이상화로 귀결된다. 단테는 궁정풍 연애 전통으로부터 이상화된 여인을 향한 숭배를 빌려와서 발전시킨다.
18년간 문학적 스승이자 친구였던 구이도 카발칸티(Guido Cavalcanti)의 ‘사랑의 철학’도 단테에게 영향을 준다. 구이도 카발칸티는 중세 유럽에서 아리스토텔레스의 사상을 부활시키는 데 주요한 도관 역할을 한 사상가인 아베로에스의 생각을 받아들이는데, 사랑은 관조를 방해한다고 보았다. 즉 그에게 사랑은 이성의 일탈이며, 정신적인 평화의 적이며, 삶의 끔찍한 훼방꾼이자 일종의 본능적 욕구다. 단테는 카발칸티에게서 사랑이 지적인 수수께끼라는 것을 배웠지만,(165쪽) 그의 ‘사랑의 철학’을 넘어선다. 단테에게 있어 사랑은 삶을 방해하지 않는다. 더구나 한 남자가 한 여자를 사랑할 때 하느님으로부터 등을 돌리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하느님을 향해 다가간다.(150쪽)
기독교는 육신을 두려워하고 일반적인 자애를 넘어서는 인간적인 사랑의 감정이나 성적인 감정을 폄하하지만 단테는 신성한 사랑과 세속적 사랑의 그릇된 구분도 버린다. 그리하여 기독교적 사랑도 넘어선다. 단테는 자신이 베아트리체를 사랑하는 경험 속에서 사랑의 일반적인 의미를 깨달을 뿐 아니라, 사랑 자체가 엄청난 변화-교회의 변화, 사회질서의 변화, 그리고 남녀 관계의 변화-를 가져온다는 대담한 생각을 했다.(166쪽) 단테와 베아트리체는 인간의 세속적 사랑에서 전복자이자 혁명가였던 것이다.(16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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