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리언셀러 클럽 143권. 세계적인 이야기의 거장 스티븐 킹이 생애 처음으로 집필한 소설. 칠순을 바라보는 나이에도 한해 2편 이상의 신작을 꾸준히 발표하며 노익장을 과시하는 작가 스티븐 킹이 10대이던 1966년 집필하여 완성한 장편소설로서 1979년 리처드 바크만이라는 필명으로 정식 출간되었다.
전체주의 국가가 된 가상의 미국을 배경으로
100명의 10대 소년들이 롱 워크에 참가한다.
소원을 이룰 수 있는 우승자는 단 한 명.
한 명의 우승자가 가려질 때까지 걸음을 멈출 수 없다.
걸음을 멈추거나, 속도가 늦어지거나, 대열을 이탈하는 순간 경고 3번 후 즉각 처형.
물, 튜브음식, 생리현상, 고통, 수면까지 모두 걸으면서 해결해야하는 혹독한 레이스.
1979년도 책임에도 불구하고 전혀 손색없이 읽을 수 있다.
1인칭 주인공 시점 덕분에 점차 망가져가는 주인공의 고통이 생생하다.
1등만을 강요하는 현실을 잘 나타내고 있으면서도,
절대로 그것에 대한 평가를 독자들에게만 쥐어주는 것도 대단하다.
“기억은 한편으로는 길 같았다. 여기서 그것은 실제였고 단단하고 손으로 만질 수 있었다. 그러나 곧 걷게 될 길, 아침 아홉 시의 길은 아주 멀고 무의미하게 느껴졌다.” p.110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 -데카르트
"'다른 시간, 다른 장소.’ 베이커가 말했다.” p.424
멈추면, 죽는다. 자신의 몸뚱아리에 인생의 모든 것을 건—걸어야만 했던—소년들이 자신의 죽음, 그리고 타인의 죽음을 마주하며 겪는 혼란, 공포, 우정... 단어로는 전부 나열할 수 없는 감정의 스펙트럼을 생생하게 느낄 수 있었다.
그들을 살아 움직이게 하는 것은 무엇인가? 희망과 기억의 파편을 지팡이 삼아 힘차게 발을 내딛던 그들이 마지막에 지탱하는 곳은 ‘다른 워커보다 조금 더 살아남으면 된다’는 잔인한 경쟁심이다. 타인의 죽음이 나의 생(生)과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는 상황에서, 한편으로는 타인의 온기를 갈구하는 그들. 친구의 죽음을 기대하면서도 친구와 함께 나아가길 원하는 사춘기 소년들의 모순된 감정을 어찌 이기심, 철없음과 같은 가벼운 말로 치부할 수 있으랴. 그것은 ‘살겠다’는 인간 본연의 욕망이자 다른 인간에게 필연적으로 느끼는 ‘연민’이 어지럽게 뒤엉킨 지극히 ‘인간다운’ 모습일테다.
소설의 후반부로 갈수록, 독자는 ‘워커들’ 만큼이나 ‘관중들’에 집중하게 된다. 자신들의 유희를 위해 워커들의 생사—특히 사(死)—를 제물로 원하는 관중들은 이 소설에서 어떤 역할을 하는가? 워커들이 승리하기를 빌며 열렬히 응원하는 것도 관중이요, 워커들을 계속 걷도록 몰아붙이는 것도 관중이다. 워커들이 죽으면 숨을 죽이면서도 열광하고, 워커들이 떨어뜨리고 간 물건을 기념품화하는데 급급한 이들은 거의 워커들을 자신과 동일한 ‘인간’조차 아닌, ‘위대한’ 롱 워크 대회의 소비품 정도로밖에 인식하고 있지 않은 듯 하다. 우리 주변에서 롱 워크 대회가 일어나고 있지는 않은가? 패자들을 승리, 유희를 위해 필요한 소비품 정도로 여기고 값싼 연민을 보내고 있지는 않은가?
지금 이 글을 쓰면서도 개러티가 그러했듯, 다양한 생각의 스펙트럼이 뒤죽박죽 떠올라 제대로 잘 정리되지 않는다. 하지만 책을 읽으며 마지막으로 깊이 소망했던 건 있다. ‘총사’여, 영원하라.
비록 그들은 쓰러져갔지만 서로에 대한 신뢰는 죽음 이라는 공포 앞에 무너지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