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동규 시집. 시인은 '극서정시'라는 틀을 완성하면서 또 한차례의 조용한 변신을 맞이한다. 전신이 동원된 변신, 삶 자체가 형이상학이 되는 세계로의 진입이다. 그것은 살아 있음의 격렬한 확인을 통해, 시간과의 새로운 만남을 통해 이루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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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약
미시령 큰바람 (문학과지성 시인선 131) 내용 요약
미시령 큰바람은 한국 현대시의 거장 황동규의 시집으로, 문학과지성사에서 1993년 11월 30일 문학과지성 시인선 131번으로 출간되었다. 1958년 『현대문학』을 통해 등단한 황동규는 이 시집에서 강원도 미시령을 배경으로 자연, 인간, 그리고 존재의 본질을 탐구한다. 총 4부로 구성된 이 시집은 약 50편의 시를 통해 바람, 산, 나무, 그리고 인간의 내면을 섬세하고도 강렬하게 묘사하며, 도가적 철학과 서정적 감성을 조화롭게 담아낸다. 황동규 특유의 간결하면서도
저 매미 소리
어깨에 날개 해달기 위해 십여 년을 땅속에서 기어다닌
저 매미의 소리
어깨 서늘한,
나도 쉰 몇 해를 땅바닥에서 기어다녔다.
매년 이삿짐 싸들고
전셋집을 돌아다니기도 했다.
꿈틀대며 울기도 고개 쳐들고 소리치기도 했다.
어두운 봄꽃도 환한 가을산도 있었다.
이제 간신히 알게 된 침묵,
쉰몇 해 만의 울음!
- ‘매미’, 황동규
오랜만에 시골서 묵는 밤
잠이 오지 않아 창문을 연다.
저수지 가득 피어오르는 밤안개 속에 새 우는 소리.
그 소리 귀에 익지만 이름 잊었다.
소쩍센가, 자규샌가, 아니면 안개 속에 길 잃은
외로운 가수(歌手)인가?
나도 자주 길을 잃었다.
때로는 사는 동네에서 길 잃고 헤맸다.
마음 구석구석 더듬어도
얼굴과 이름 떠오르지 않는다.
죽지 않고 지구 껍질에서 헤매다보면
다시 만날 날 있으리.
혹시 서로 못 알아보더라도
미소 머금고 지나가리.
- ‘지구 껍질에서’, 황동규
오늘은 안개비가 내리다 말고
다시 공중으로 올라갔습니다.
먼지 너무 많아 땅을 채 적시고 싶지 않았을까요.
많은 사람 속에서 안 보이는 사람이 되어
거리를 걸을 때 그중 편안합니다
두리번대며 상점 속을 살피기도 합니다.
얼마 안 가 안개비도 나를 피하겠지요.
그때 나는 내 몸 적실 비를 찾아
계속 사람 속을 헤매겠습니다.
- ‘더 비린 사랑 노래 2’, 황동규
빛의 속도로 달리다
달리는 방향으로 빛의 속도로 튕겨나가도
빛의 두 배 속도는커녕 앞선 빛을 뒤따를 수밖에 없는
우주 속에 갇혀 살고 있습니다.
밖으로 나갈래야 나갈 수가 없습니다.
한참 떨어져 따라오는 내 모습이 보입니다.
(뒤를 보세요,
나의 살과 뼈 사라지고
대신 싱싱한 풀과 흙이 서로 얽고 얽힌 지붕 같은.)
그러나 지금은 앞서가는 그대 내내 한 모퉁이 앞서가고
앞이 캄캄할 뿐,
무작정 걸어 낯선 도시의 기차역에 도착했습니다.
캄캄할 뿐,
광장 앞의 가로등 두 개와
역 시계에 불이 켜 있었습니다.
열두시 정각,
아 아직 시간이!
- ‘더욱더 비린 사랑 노래 5’, 황동규
며칠 병(病) 없이 앓았다.
책장문들이 모두 열렸고
책들은 길떠날 채비하고 줄 서 있었다.
더러 외투 껴입고 있는 놈도 있었다.
문밖을 나서니 시야의 초점 계속 녹이는 가을 햇빛.
간판들이 선명해라
지나치는 사람들도 선명해라
책을 들고 걷는 저 여자의 긴 손,
차도(車道)에 바싹 나와 아슬아슬
저 흙덩이의 어깨까지 선명해라,
그 어깨를 쓰다듬는 시간의 손가락도.
눈이 밝아졌구나,
- 이 시체를 끌고 가라
- ‘풍장 45’, 황동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