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들어가는 말
| 우리나라 근대사와 함께 읽는 우리 가족의 역사
| 첫째 이야기 | 고향
나의 집안과 아버지 | 어머니 | 큰형님과 작은형님 | 누님 | 나의 고향 흥남 서호진 | 나의 오른손 | 어린 시절의 심한 장난과 영화 | 주말의 명화 | 보통학교 생활과 중학교, 화가의 꿈 | 평양민술학교 낙방 | 해방 후 북한의 모습 | 마른 북어와 사상 비판 | 아내의 기억(어린 시절) | 아내의 기억
| 둘째 이야기 | 전쟁 그리고 피난
전쟁의 전조 | 전쟁과 큰형님의 죽음 | 기약 없는 타향살이와 어머님의 죽음 | 흥남철수작전 | 새고돌이 | 누이네의 비극 | 거제도 | 부산에서의 고생 | 거제도 미군 부대 | 누이의 장사 | 수송부대 페인트공 | 거제읍으로 이사하다 | 아버지의 임종 | 부산 생활 | 또 좌절
| 셋째 이야기 | 서울
광장시장 이야기 | 아내를 만나다 | 신혼살림 | 아내는 나의 스승 | 장사를 시작하다 | 특정외래품판매금지법 | 때늦은 신혼여행 | 메리야쓰 장사를 시작하다 | 평생의 은인 처숙부님과 은단집 누이 | 광장시장과 화재 | 내 집 마련 | 누비 솜고쟁이 | 나전칠기 사업을 시작하다 | 은행잎표 상표등록 | 직접 카탈로그 제작 | 나의 신조와 상도 | 아버지의 공부 욕심
| 넷째 이야기 | 삼남매와 아내
봉진이의 유난했던 병치레 | 예지동 집 | 막내 지영이가 태어나다 | 지영이가 오던 날 | 동네 아이들과 우리 남매 | 남의 손에 아이를 맡긴 안타까움 | 미아가 된 봉진이 | 우리 가족의 첫 외식 | 현주, 국민학교 입학 | 기특한 봉진이 | 누이를 기다리는 동생들 | 현주의 무단결석 | 낡은 전축의 선율 | 아버지의 고급 취향 | 첫 가족 여행 | 어릴 적의 다양한 경험 | 창경원 스케이트장 | 어린이 일요화가회 | 남산길 놀이 | 자식들 이야기 | 아버지와 어머니, 상극의 조화 | 엄마 도와 드리기 | 엄마 곁에 누워 | 어머니 하늘 가시던 날 | 아내와의 이별
| 마치고 나서
3대를 묶어준 아버지의 든든한 손 이야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