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비령

이순원 지음 | 현대문학 펴냄

은비령 (1997년 제42회 현대문학상 수상소설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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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7.2.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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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3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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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미독서

@kokomerrykok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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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p.
이기주의가 오로지 자기 자신만을 생각하는 것이라면, 개인주의는 다른 사람들 역시 자신과 동등한 존재, 똑같은 욕구를 지니고 복합적인 감정을 느끼는 한 명의인간이라는 사실을 인정하고 받아들인다. 그러한 까닭으로 개인주의자는 많은 이들의 오해와는 다르게 오히려 공동체를 소중히 여긴다. 공동체를 개인의 대립항으로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라, 개인을 오럿이 개인인 상태로 머물게 하는 일종의 보호막으로 생각한다. 그렇기 때문에 공동체는 집단과는 다르며, 개인주의자는 연대의 중요성을 안다. 집단의 규칙이기에 억지로 따르는 것이 아니라 한 명의 개인으로서 다른 개인과 연대한다. 타인도 자신처럼 소중한 존재로 인식하고, 타인의 욕구와 감정 또한 자신의 것만큼 중요시 여긴다. 자신의 권리가 소중하기에 그만큼 타인의 권리도 존중한다.

12p.
대개의 사람들은 자신이 누구인지 제대로 알지 못하는 경우가 많고, 그리하여 자신이 누군지 알고자 끊임없이 애쓴다. 반면 타인에 대해서는 쉽게 규정짓는다. 성별, 학벌, 출신지, 결혼 여부 등으로 뭉뚱그려서 파악한다. 자신은 너무나 복잡한 반면, 타인은 너무나 단순한 대상으로 취급하곤 한다. 각각의 정보마다 특정한 값을 설정해둔 다음, 해당 값에 인물을 가져다 맞춘다. 물론 어떤 의미엣 ㅓ매우 자연스러운 행동이다. 사람들은 바쁘고, 시간은 부족하니 말이다. 정보마다 특정 값을 설정하여 해당 값을 모두 더하는 것은 사람을 파악하는 가장 경제적인 방법일지 모른다. 그러나 문제는 그 정보 값이 편견과 선입견에 근거하여 틀린 경우가 매우 많다는 사실이다. 그리고 가장 경제적이라는 이유로 그러한 방법이 과연 옳은가 하면, 그렇게. 도출해낸 결과값이 누군가를 정확하게 설명할 수 있는가 묻는다면, 그 또한 아니라는 것이다.

57p.
우리 사회에서 주류 혹은 다수의 관념에서 어긋나는 많은 영역에는 이러한 요구가 존재한다. “본인들이 이성애자든 동성애자든 나하고는 아무런 상관이 없어. 내가 궁금한 건 왜 굳이 거리에서 남들 다 보는 곳에서 저런 행동을 하느냐는 거지.” “자기가 성폭력 피해자면 피해자지 왜 굳이 저런 이야기를 만날 하고 다니지?” “이혼했다고 난 특별히 편견 없어. 근데 왜 굳이 저런 말을 해서 주변 사람들을 불편하게 해?” “여성 인권이 더 열악한 거 잘 알겠는데, 그걸 왜 티를 못 내서 안들이야?”
이와 같이 소수자, 마이너적인 정체성을 전면 부정하지는 않되, 티 내지 말라고 요구하는 것을 ‘커버링’이라고 부른다.(…) 요약하자면 “어떤 낙인이 찍힌 사람들이 그 낙인이 두드러져 보이지 않도록 많은 노력을 기울이는 행위”를 이야기한다.

98p.
그러나 시간이 지날수록 나는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그의 언행이나 인식이 특별히 더 나쁘거나 무지한 것이 아니라, 굉장히 보편적이라는 것을. 사람들은 아이랑 놀아줄 바에 차라리 회사에 나가는 것이 나을 정도로 육아가 힘들다고 말하면서도 실제로는 집에 머물고 있거나 실질적인 ‘돈‘을 생산하지 못하는 사람을 두고 ’쉬고 있다‘는 말을 무신경하게 하는 경우가 많다는 사실을. 주부를 백수의 동의어로 생각하는 사람이 상당수라는 사실을.
또한 내가 아무렇지 않은 척하면서 속으로 발끈하며 굉장히 화를 냈던 것은 실은 나 자신이 어느 정도 그렇게 인식하고 있기 때문이었다는 사실 역시 알게 되었다. 스스로는 아니라고 하지만 나 역시 마음속 어딘가에서는 타이틀과 직함을 중요시 하고 있었던 것이다. (…) “집에서 쉬고 계시는 거네요?” 라는 질문을 통해 나는 비로소 그것을 알게 된 것이다.

101p.
책 속에서 그는 “남의 시선을 어떻게 이기나요?”라는 질문에 “이겼다기보단 견뎠어요”라고 대답한다. 마음으로는 이기고 싶었지만 사실은 이기질 못했다고. 그래서 신경은 쓰였지만 그냥 견뎠다고. 그러나, 그럼에도 자신은 그림을 그리고 싶기 때문에, 그림을 그리는 동시에 생계도 해결하기 위해서는 청소일을 계속해야 하기 때문에, 그것이 ‘밥벌이‘수단이기 때문에 견디는 것이라고. 그 말에 왠지 묘하게 위로를 받았다. 그 말에 기대어 이후의 많은 순간을 견뎌왔던 것 같다.
실은 견디는 것이 결국 이기는 것이라 생각한다.

116p.
딸들은 지금의 젊은 여성들처럼 키우면 된다. 좋은 것은 좋다고, 싫은 것은 싫다고 이야기할 수 있도록. 여성이라는 이름에 따라오는 부당한 압력에 순응하지 않도록. 욕망을 드러내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도록. 설사 성폭력을 겪더라도 그것을 자신의 잘못이라 여기며 수치스러워하지 않도록. 누군가 밀쳐서 넘어지면 울지만 말고 일어나서 싸우도록.

133p.
“내가 한 것이라곤 살아남은 것뿐인데 나는 살아남았다는 이유로 범죄자 취급을 받았다.”
허스킨즈 역시 죽지 않았기 때문에, 단지 살아남았기 때문에 모든 사건이 밝혀진 이후에도 끊임없이 진실성을 의심받았다.
성폭력 사건이 발생하면 우리는 끊임없이 ‘완벽한’ 피해자를 찾아 헤맨다. 그러나 ‘악마‘나 ’괴물‘처럼 철저하게 악의로 똘똘뭉친 ’완벽한‘ 가해자가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완벽한‘ 피해자 역시 존재하지 않는다. 그런 피해자는 없다.

159p.
그래도 나는 아무 이야기도 하지 않았다. 늘 웃기만 했다. 예민한 사람이 되고 싶지 않았다. 문제를 일으키고 싶지 않았다. 화를 내면 그드이 비웃고 농담의 대상으로 삼는 다른 많은 여성 중 하나가 되는 것만 같았다. 그러기는 싫었다. 계속해서 쿨한 사람이고 싶었다. 너무도 격하게 남성 커뮤니티의 일부에 속하고 싶었다. 그들과 같은 방식으로 웃고, 같은 방식의 농담을 하면 그들이 가진 권력을 나누어 가질 수 있을 것만 같았다. 그래서 같이 웃었다.

162p.
눈치는 약자의 언어라고 한다. 본인들도 인지하지 못했겠지만 그토록 무신경하면서 무례하기 짝이 없는 용감한 시도를 하 수 있는 이유는 그렇게 해도 되기 때문이다. 줄곧 그렇게 지내왔기 때문에. 그렇게 해도 아무런 문제가 없었기 때문에. 그러나 듣는 입장에서는 자신이 너무 예민한 것은 아닌가 하는 검열에 시달리며 제대로 된 대응을 하는 것조차 힘들다. 또한 부류편함을 표현하는 순간마저 침착함과 상냥함을 유지하는 경우가 많다. 상대가 어떤 해코지를 할지 몰라 두려우니까.

173p.
나는 당혹스러웠다. 그리고 다시금 깨달았다. 내가 사는 세상과 그가 사는 세상이 같지 않다는 것을. 돈을 번다는 것과 ’살 만하다‘는 것의 의미가 꼭 같지는 않다는 것을. 하루 종일 노동을 해서 돈을 벌 수는 있지만, 그 삶이 반드시 인간답다고 할 수는 없다는 사실을.

295p.
별것도 아닌 말을 듣고 왜 그렇게까지 화가 났는가에 대해서 오래도록 생각했는데, 아마도 그의 말이 사실이라는 걸 마음 깊은 곳에서는 알고 있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알고 있어서 용서할 수 없었다. 그가 했던 말이 내가 마음에 들어하지 않는, 내가 싫어하는 나의 모습을 비추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싫어하는 게 너무나 많은 나. 비뚤어진 나. 부정적인 나. 그런 나를 마음에 들어하지 않는 나 자신.

296p.
그러고 보니 무언가가 괜히 마음에 들지 않거나 거슬리던 때는 늘 비슷했던 것 같다. 타인에게서 내 안의 어떤 거슬리는 지점을 찾아냈을 때. 어떻게든 인정받고 싶어 발버둥치는 사람이 보기 싫게 느껴지던 순간은 내 안에 인정욕구가 갈급한 상황이었고, 타인의 비위를 맞추려 무리하는 사람이 괜히 눈에 밟히던 때는 내 안에 비굴함이 넘치던 시기였다. ‘쿨한 척‘하는 사람들이 마음에 들지 않고 우스워 보일 때는 나 지신이 냉소로 가득할 때였다. 누군가의 속내를 간파할 수 있다고 여긴 것은 내가 그와 같은 속내를 품고 있었기 때문이었으며, 세상이 악의와 음모로 가득해 보이던 때는 나의 내면이 황폐하던 시점이었다.
스스로에 대한 불만이 극대화되었을 때, 내가 나를 사랑할 수 없을 때 분노는 늘 밖으로 뻗어나갔다. 그렇게 뻗어나간 뒤 내가 가장 마음에 들어하지 않는 나의 어떤 지점을 타인에게서 정확히 찾아냈다. 그리고 나는 ’마음에 들지 않는 나’를 잊기 위해, 내가 싫어하는 나의 단점을 지닌 상대방을 맹렬히 미워하곤 했다. 내가 현재 미워하는 상대방의 속성이 분명 내 안에 존재한다는 사실은 애써 외면했다. 인정하려고 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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