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날 이 사회에 넘쳐나는 무차별 살상, 학대 등 다양한 종류의 사건과 사고, 폭력과 상처를 마주했을 때, 과연 우리는 무엇을 할 수 있을까? <붕대 클럽>의 작가 텐도 아라타는 이 질문에 대한 대답을 한 편의 소설로 대신한다. 자신과 아무런 관계가 없는 타인의 죽음을 애도하기 위해 전국을 떠도는 청년의 이야기로, 나오키 상 수상작이다.
중학교 때 엄마가 추천해줘서 처음 읽었던 소설인데, 그때 받은 인상이 아직도 선명하게 남아있다. 애도하는 사람은 제목 그대로 시즈토라는 인물이 전국을 떠돌면서 낯선 사람들의 죽음을 애도하는 이야기다. 그런데 이 사람이 애도하는 대상이 특별한 게 아니라, 신문 사회면 한 귀퉁이에 짧게 실리고 잊혀지는, 이름조차 낯선 사람들이라는 게 이 소설의 핵심이었다. 시즈토는 밤마다 라디오 뉴스와 신문을 뒤지면서 그렇게 죽어간 이들의 흔적을 찾아, 직접 그 죽음의 현장까지 찾아가서 그 사람을 애도한다.
내가 이 소설을 처음 읽고 좋았던 건, 시즈토가 애도하는 방식 때문이었다. 그는 죽은 사람이 살아생전 좋은 사람이었는지, 나쁜 사람이었는지는 아예 묻지 않는다. 남을 해친 사람이든, 존경받던 사람이든, 그 삶의 무게를 저울질하지 않고 그저 그 사람이 누구를 사랑했고, 누구에게 사랑받았고, 어떤 일에 감사했는지만을 기억하려 한다. 세상은 늘 누군가의 죽음 앞에서도 그 사람이 어떤 삶을 살았는지 따져 묻고 판단하려 드는데, 시즈토는 그 잣대 자체를 걷어내 버린다. 그 앞에서는 누구나 그저 한 사람으로서 똑같이 애도받을 자격이 있는 존재가 된다. 중학생이었던 나한테 이 생각이 굉장히 크게 다가왔던 것 같다. 사람을 판단하지 않고 그저 있는 그대로 존재했다는 사실만으로 존중한다는 게, 그때는 되게 낯설면서도 맞는 말처럼 느껴졌다.
소설 속에는 시즈토 말고도 여러 인물이 나온다. 특종을 좇는 기자 마키노는 처음엔 시즈토를 이상한 사람, 심지어 위선자로 의심하면서 취재를 시작하는데, 그를 따라다니면서 점점 다른 시선을 갖게 된다. 시즈토의 엄마 준코는 말기암 환자로 죽음을 앞두고 있고, 남편을 죽인 죄로 감옥살이를 하고 나온 유키오는 시즈토를 따라다니며 자기 나름의 방식으로 속죄를 찾아간다. 다들 각자 다른 방식으로 죽음과 마주하고 있는데, 그 인물들이 시즈토라는 존재를 통해 조금씩 자기 자신과 화해해가는 과정이 이 소설의 또 다른 축이었다.
지금 다시 생각해보면, 이 소설이 던지는 질문은 결국 우리가 죽음을 어떻게 대해야 하느냐는 거였다. 세상엔 매일 무수히 많은 죽음이 뉴스 몇 줄로 지나가고, 우리는 그걸 스치듯 읽고 잊어버린다. 근데 시즈토는 그 스쳐 지나가는 죽음 하나하나를 붙잡아서, 그 사람이 이 세상에 존재했다는 사실 자체를 온전히 기억하려 한다. 그게 얼마나 무모하고 비현실적인 일인지 알면서도, 그런 사람이 있다는 상상만으로도 위로가 됐다. 세상 모든 죽음을 그렇게 대할 수는 없지만, 적어도 내가 마주치는 죽음이나 상실 앞에서는 판단부터 하지 않고 그 사람 자체를 있는 그대로 봐야겠다는 마음을 갖게 됐다. 지금도 뉴스에서 누군가의 죽음을 접할 때마다, 습관처럼 그 사람이 어떤 사람이었는지부터 따지려는 나 자신을 발견할 때가 있는데, 그럴 때마다 이 소설이 떠오른다. 그리고 그 판단을 잠깐 내려놓고, 그냥 한 사람이 이 세상에 있었고 지금은 없다는 그 사실 자체를 가만히 받아들이려고 한다. 중학교 때 엄마가 이 책을 건네준 게 지금까지도 내가 세상을 보는 방식에 이렇게 오래 영향을 주고 있다는 게, 새삼 신기하고 고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