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구는 둥글다. >
"잠깐만요! 돌아오십시요! 그건 쓸모없는
짓입니다!"
그러나 그는 내말을 듣지 못했다. 그는 어느새
지붕 위에 다다라 사다리를 끌어올리고는 힘겹게
지붕 꼭대기를 타 넘어가 지붕 반대편으로 사라질
때까지 그는 한 번도 뒤를 돌아보지 않았다.
나는 그 남자를 다시는 보지 못했다. 그게 십 년
전 일이고 그때 그는 여든 살이었다. 이제 그는
아흔 살이 되었을 것이다.
아마 중국에 다다르기 전에 그 사실을 깨닫고
여행을 그만두었을 것이다. 어쩌면 죽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따금 나는 대문 밖으로 나가
서쪽을 바라본다.
그리고 그가 어느 날엔가 지쳐 느릿하게,
웃음을 띠며 숲에서 걸어나오는 것을 본다면,
그리고 내게 다가와서 이렇게 말해 준다면
나는 정말 기쁠 것이다.
"이젠 지구가 둥굴다는 사실을 믿게 되었다네."
책상은 책상이다/ 페터 빅셀
***
여기 실린 일곱 편의 이야기의 주인공들은
편집증 환자로 보일 수도 있는, 나이가 많은
남자들이다.
스스로를 고립시키고 사회와 소통이 점점
어려워지는 남자들. 나이 들면서 유연하기
보다는 어딘가 딱딱해 보이는..
이 책은 술술 잘 읽히는 얇은 책이지만,
우리들에게 산업화에 의한 의사소통의
부재를 이야기한다.
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