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9.19.
지루한 장마가 이어지던 어느 여름날 아침, 그녀의 책장에 오래도록 꽂혀있던 이 책이 상큼한 편지와 함께 내게로 왔다.
그녀의 흔적이 묻어있는 책을 읽는다는 것은 참 즐거운 일이다.
앞장에 휘갈겨 쓴 메모를 어렵게 해독하다 <행성 B> 라는 단어가 여러 번 눈에 들어왔다.
이 책의 출판사인 행성 B!
이 행성 B의 의미는 과연 뭘까? 찾아보니
오 ~ 너무 심오한 의미들이 함축된 이름이었다.
이런 취지를 담은 출판사라면 뭔가 달라도 다를 것 같다는 느낌? 으로 책을 펼쳤다.
한강의 <채식주의자> 3부에 보면 주인공 영혜가 이런 말을 한다. 자기는 나무들이 똑바로 서 있다고 생각했는데 이제야 알게 되었다며 나무는 모두 두 팔로 땅을 받치고 있는 거라고, 자기도 나무처럼 물구나무 자세로 서서 모든 음식을 거부한 채 물만 마시기를 원하는 장면이.
그때 그 부분이 참 신선하게 다가왔었다.
아 그렇구나. 나도 여태 나무는 서 있다고만 생각했는데... 사람으로 보면 머리가 뿌리이겠구나. 가지가 다리이고....
그랬던 끄덕임이 이 책에 보니 아리스토텔레스보다 한 세기 이전에 살았던 데모크리토스도 이미 주장한 바 있는 내용이었다.
그는 그 당시 나무를 거꾸로 선 인간과 비교하여 머리는 땅속에 다리는 공중에 있다며 거꾸로 선 인간의 이미지로 설명 했었다. 또한 식물도 원자수준에서는 움직이는 존재라며 식물이 무생물에 가깝다고 주장한 아리스토텔레스와는 상반된 의견을 주장하였는데 이 두 주장은 수세기동안 뜨거운 논쟁의 대상이었다고 한다.
종교적 관점에서 보면 구약성서 노아의 방주 이야기에 신이 대홍수를 일으키기 전에 방주에 태울 생물들을 각기 지정하면서 식물들에 대한 것은 그 어떤 언급도 없었다며 당시에는 식물이 너무 하찮은 존재라서 굳이 돌볼 필요를 느끼지 못했던 것이 아니었을까라고 조용히 뒤로 물러나 있던 식물의 역사에서부터 하나 하나 이야기를 풀어나가는데 그렇게 쭈욱 따라가다보니 술술 읽혔다.
식물은 인간 없이도 잘 살 수 있지만, 인간은 식물이 없다면 곧 죽고 말 것이다. 그런데도 많은 언어권에서는 사람이 죽은 것이나 다름없는 상태를 <식물인간>이라고 부른다며 '식물을 도대체 뭘로 보는 거냐' 언급한 부분이 있다.
한때 아무 생각 없이 사용한 벙어리 장갑이란 말도 엄지장갑이라는 순화된 용어로 사용하듯 식물인간이란 말도 다른 말로 대체되어야 할 단어가 아닌가 싶다. 식물 입장에서 보면 얼마나 혐오성 단어일까?
알면서도 입에 붙은 말이라 계속 써 왔던 말이지만 이제부터는 의식적으로라도 사용하지 않는 걸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