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손에는 논어를 한 손에는 주판을

시부사와 에이치 지음 | 사과나무 펴냄

한 손에는 논어를 한 손에는 주판을 (올바르게 번 돈을 올바르게 쓰는 것 그것이 진정 국가와 사회에 공헌하는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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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간일

2009.11.25

페이지

300쪽

상세 정보

오늘의 일본을 경제대국으로 이끈 인물로 전 국민의 존경을 받고 있는 시부사와 에이치. 시부사와 에이치는 메이지유신 이후 "한손에는 논어를 한손에는 주판을"이라고 외치며, 공자의 인의도덕 사상을 자신의 경영철학으로 삼아 500여개의 기업을 세운 '일본 자본주의의 아버지'로 추앙받는 인물이다.

어린 시절부터 시부사와 에이치의 곁에는 늘 <논어>가 있었다. 그리고 "개인의 이익을 좇지 않고, 국가와 사회에 이익이 되겠다"는 일념을 가지고 있었다. 또한 공자의 가르침을 몸소 실천한 덕분에, 자본주의 경제를 받아들이는 시점에서 '기업의 사회적 책임을 강조하고 천민자본주의의 발호를 막아낸 훌륭한 경제인'으로 추앙받을 수 있었다.

<한손에는 논어를 한손에는 주판을>은 1927년 초판이 출간된 이후 지금까지 일본 경영인들 사이에서 경영의 바이블처럼 읽히고 있는 책이다. 이 책에서 시부사와 에이치는 <논어>의 사상을 바탕으로 '도덕과 경영의 합일설'이라는 이념을 명확히 했는데, 경제를 발전 시켜 이익을 독점하는 것이 아니라 나라 전체를 풍족하게 해야 한다고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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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ang-hoon Yoon

@rolxgvyrnn7q

어떻게 살아야 할까?

한 손에는 논어를 한 손에는 주판을

시부사와 에이치 지음
사과나무 펴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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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2월 28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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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라이북

@flyboo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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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일본을 경제대국으로 이끈 인물로 전 국민의 존경을 받고 있는 시부사와 에이치. 시부사와 에이치는 메이지유신 이후 "한손에는 논어를 한손에는 주판을"이라고 외치며, 공자의 인의도덕 사상을 자신의 경영철학으로 삼아 500여개의 기업을 세운 '일본 자본주의의 아버지'로 추앙받는 인물이다.

어린 시절부터 시부사와 에이치의 곁에는 늘 <논어>가 있었다. 그리고 "개인의 이익을 좇지 않고, 국가와 사회에 이익이 되겠다"는 일념을 가지고 있었다. 또한 공자의 가르침을 몸소 실천한 덕분에, 자본주의 경제를 받아들이는 시점에서 '기업의 사회적 책임을 강조하고 천민자본주의의 발호를 막아낸 훌륭한 경제인'으로 추앙받을 수 있었다.

<한손에는 논어를 한손에는 주판을>은 1927년 초판이 출간된 이후 지금까지 일본 경영인들 사이에서 경영의 바이블처럼 읽히고 있는 책이다. 이 책에서 시부사와 에이치는 <논어>의 사상을 바탕으로 '도덕과 경영의 합일설'이라는 이념을 명확히 했는데, 경제를 발전 시켜 이익을 독점하는 것이 아니라 나라 전체를 풍족하게 해야 한다고 말한다.

출판사 책 소개

일본 자본주의의 아버지 시부사와 에이치의 도덕경영!
중국 CCTV <대국굴가>에서 일본을 경제대국으로 이끈 인물로 극찬했고, 피터 드러커가 자신의 경영학의 지침으로 삼았던 인물!


공자가 부활했다.
중국 CCTV는 특별기획 다큐멘터리 <대국굴기>를 통해 “진정한 대국이란 어떤 의미인가?”, “진정한 강국이 되기 위해서는 다른 대국의 역사와 교훈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를 진지하게 모색하고 있다.
근대 이후 서구 열강의 힘에 밀려 온갖 수모와 시련을 겪은 아픔은 중국인들의 마음에 큰 상처로 남아 있다. 이제 그 상처를 치유하고 경제대국의 길로 나아가는 새로운 출발점에 선 중국은 “강대국들을 만든 원인은 무엇인가”를 생각하며 원대한 안목으로 세계를 보고 있다. 과거 찬란한 역사와 문화를 되살려낼 수 있다는 중국 국민들의 뜨거운 자부심과 열망의 표현이기도 하다.
<대국굴기> 일본 편에서는 오늘날 일본이 세계 제2의 경제대국으로 우뚝 선 데에는 시부사와 에이치(澁澤榮一)라는 인물이 가장 큰 역할을 했다고 소개하고 있다. 시부사와는 메이지유신 이후 “한손에는 논어를 한손에는 주판을”이라고 외치며, 공자의 인의도덕 사상을 자신의 경영철학으로 삼아 500여개의 기업을 세운 “일본 자본주의의 아버지”로 추앙받는 인물이다.
21세기 G2의 반열에 올라 세계 경제의 중심에 우뚝 선 중국이 자신들이 문화혁명 때 돌팔매질을 한 공자孔子를 부활시켜 중화사상의 뿌리가 바로 공자임을 전 세계에 알리면서 일본의 기업가이자 경세가(經世家)인 시부사와 에이치를 앞세운 셈이다.
시부사와 에이치는 일본 에도막부 말기인 1840년, 농업과 상업을 겸하는 집안에서 태어났다. 원료의 구매, 판매, 원가 계산 등을 위해서 어릴 적부터 항상 주판을 손에서 놓지 않았다. “학문이란 무사들이나 하는 것”이라는 인식이 팽배할 때, 5세 때부터 글 읽기를 배우고 7세 때부터는 사서오경을 배웠다. 어린 시절부터 그의 곁에는 늘 <논어>가 있었다. 그는 마음 수양과 함께 호연지기를 기르기 위해 각 도량을 찾아다니며 검술도 배웠다.

21세기를 이끌 유상(儒商)들의 바이블!

에도 말기의 시대상황은 극심한 혼란기였다. 누가 옳고 누가 그른지 아무도 단정할 수 없는 시대였다. 시부사와는 지사志士들의 영향을 받아 ‘근왕양이(勤王攘夷)’에 심취하기도 했지만, 자신이 모시던 주군이 일본의 마지막 쇼군이 되자 막부의 막신(幕臣)으로 들어가면서 그의 인생에서 일대 전기를 맞게 된다. 이듬해에는 프랑스 파리에 열린 만국박람회에 사절단의 일원이 되어 난생 처음 선진국 문물을 접하게 되는데 이때 그의 나이 28세였다.
1867년 1월 프랑스의 우편선을 타고 요코하마 항을 출발하던 심경을 기록한 그의 글을 보면 시골 출신 지사志士에 불과한 한 청년의 생생한 감동을 느낄 수 있다.
“우리 일행은 요코하마에서 프랑스의 우편선을 타고 인도양 및 홍해를 거쳐 수에즈 지협에 이르렀다. 운하를 뚫는 대공사가 이미 시작된 상태였으나 아직 완공 전이라 일행은 배에서 내려 지협(地峽)으로 올라가 철도로 갈아탔다. 기차는 이집트를 횡단하여 카이로를 거쳐서 알렉산드리아에 도착했고, 거기서 다시 배를 타고 지중해를 항해하여 비로소 프랑스의 마르세유에 도착할 수 있었다. 요코하마를 떠난 지 55일 만의 일이었다.”
시부사와는 자신이 수행했던 쇼군의 동생 도쿠가와 아키다케가 파리에 머무르게 되자, 함께 2년 가까이 파리에 머무르며 유럽 각국을 방문하였다. 그 당시 유럽의 자본주의 체제를 보고 그가 느꼈을 충격이 얼마나 컸을지 짐작이 간다. 그는 유럽에 체류하는 동안 금융이며 보험, 주식 같은 신천지를 경험했을 것이다. 당시 일본의 한 젊은이로서는 대단한 행운이었다.
또한 그는 당시에 풍미하던 ‘제국주의의 열풍’도 함께 보았을 것이다. 해가 지지 않는 나라 대영제국은 물론, 세계의 패자(覇者)가 되기 위해 각축을 벌이는 프랑스, 독일 같은 나라들의 열기를 보고 움찔했을 것이다. 나카사키를 통해서만 서구문물을 접할 수 있었던 한 일본의 젊은 지사의 눈에 비친 선진 유럽의 모습은 우리의 상상을 뛰어넘는 충격이었을 것이다.
대정봉환(大政奉還, 1867년 11월 9일, 에도 막부가 권력을 천황에게 넘겨준 사건)으로 급거 귀국한 그는 29세의 나이로 1869년 10월 대장성의 관료로 들어가면서부터 자신이 경험하고 생각한 바대로 “서양 열강들과 어깨를 나란히 할 수 있도록” 사회 전반의 체제 개혁을 시도해 나간다. 도량형과 조세제도를 정비하고, 1871년에는 막부의 행정제도인 번을 폐지하고 중앙정부의 직접 관리하에 현을 두는 ‘폐번치현(廢藩置縣)’의 개혁안을 기초하는 일을 맡았다.
그러나 개혁 과정에서 마찰을 빚고 1873년 33세의 나이로 그는 관직에서 물러났다. 관료시절에 자신이 설립을 지도한 제일국립은행의 행장으로 취임하면서 기업가로 변신했다. 그는 유럽에서의 경험을 바탕으로 국가에 꼭 필요한 기업들을 설립하기 시작했다. 주로 금융업을 중심으로 하여 도쿄증권거래소 설립과 함께, 제지, 맥주 등 제조업은 물론 철도 회사 등 무려 500개 이상의 기업 설립에 관여했다. 그는 또 상업을 통한 경제 부흥 외에도 교육, 문화, 외교, 사회사업 등을 통해 사회에 많은 기여를 했다.
그는 또 미쓰이, 이와사키(미쓰비시 창업자), 스미토모 등 메이지 재벌 창업자들과는 다르게 ‘시부사와 재벌’을 만들지 않았다. “개인의 이익을 좇지 않고, 국가와 사회에 이익이 되겠다"는 일념 때문이었다. 후계자인 손자 시부사와 게이조에게도 “기업의 사회적 책임”대해 엄격하게 가르쳤다. 이것은 피터 드러커(Peter Drucker, 1909~2005)가 “경영의 본질은 책임”이라고 한 말과 일맥상통하며, 드러커 자신도 시부사와로부터 깊은 영향을 받았음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다른 재벌들이 모두 남작의 작위를 받은 데 반해, 시부사와가 한 단계 높은 자작의 작위를 받은 것도 경제인으로서 국민들의 깊은 존경을 받고 있음을 보여주는 예이다.
이처럼 시부사와 에이치가 자본주의 경제를 받아들이는 시점에서 “기업의 사회적 책임을 강조하고 천민자본주의의 발호를 막아낸 훌륭한 경제인"으로 추앙받을 수 있었던 이념적 배경에는 바로 그가 공자의 가르침을 몸소 실천했기 때문이다.

올바르게 번 돈을 쓰는 것, 그것이 진정 국가와 사회에 공헌하는 길이다
<한손에는 논어를 한손에는 주판을>은 1927년 초판이 발행된 이후 일본인들 사이에서는 ‘경영의 바이블’처럼 읽히고 있는 책이다. 시부사와는 이 책에서 ‘도덕 경제 합일설’이라는 이념을 밝혔다. 이윤 추구가 본질인 자본주의 사회에서 “도덕과 경제가 하나"라는 논리는 자칫 모순인 것처럼 보일 수도 있다. 그러나 시부사와는 <논어>의 구절들을 인용해 가면서 “진정한 부를 증진시키는 근원은 무엇인가? 나는 단호히 인의도덕이라고 말하고 싶다. 올바른 도리로써 얻은 부가 아니면 그 부는 영원할 수 없다”라고 단호히 말하고 있다.
이러한 시부사와의 인의도덕 사상은 작금의 한국 현실에서도 절실히 짚어봐야 할 문제이다.
한국은 “2차대전 이후 원조를 받는 나라에서 다른 나라를 원조하는 유일한 국가"가 되었다. 실로 세계인들이 놀랄 만한 발전을 이룩했다. 그러나 압축성장 과정에서 자칫 천민자본주의가 발호되지 않을까 염려스럽다는 우려와 경계의 목소리가 사회 곳곳에서 들려오고 있다. 바로 지금이 기업의 사회적 책임이 강조되고 있는 시점이기도 한다.
이미 세계 경제의 흐름은 동북아 쪽으로 옮겨오고 있다. 그 중심에 한, 중, 일 세 나라가 있다. 이들 세 나라는 오랜 동안 알게 모르게 공자 사상의 젖을 먹고 자랐다는 공통점이 있음을 눈여겨봐야 한다. 이제 21세기의 세계 경제를 이끌 우리 유상(儒商)들은 시부사와 에이치가 그랬던 것처럼 “한손에는 논어를 한손에는 주판을" 들고 개인과 국가의 부를 이루기 위해 애써야 할 것이다.
그리고 “올바르게 번 돈을 올바르게 쓰는 것, 그것이 진정 국가와 사회에 공헌하는 길이다”라는 시부사와 에이치의 말을 깊이 새겨야 할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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