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석은 유교 경전 중에서도 특히 <중용>을 형이상학적 진리를 담은 경전으로 소중히 여겨 직접 번역하고 강의하였다. 이 책은 967~1968년에 다석 류영모가 우리말로 완역한 <중용>과 강의 내용을 40여 년 만에 그의 참제자 박영호가 쉽게 풀이한 책이다.
이 책 어때요?
Q&A
이 책의 한줄평
0
아직 등록된 한줄평이 없습니다.
게시물
1
이 책이 담긴 책장
요약
공자가 사랑한 하느님 :다석 강의로 다시 읽는 중용 사상 내용 요약
이 책은 한국의 대표적인 사상가 다석 류영모 선생이 평생을 바쳐 연구한 『중용』의 정수를, 제자 박영호가 현대적 언어로 풀어낸 기록입니다. 저자는 공자가 말한 ‘중용’이 단순히 중간을 지키는 소극적인 처세술이 아니라, 하늘의 뜻을 온전히 받아들여 자신의 삶을 완성하려는 치열한 자기 수행의 과정임을 역설합니다. 여기서 공자가 사랑한 ‘하느님’은 서구 기독교의 인격신적 존재를 넘어, 우주 만물을 관통하고 내 마음속에 살아 숨 쉬는 ‘얼나(참나)’의 근원을 의미
☕길잡이 말 (13p~42p)
📚 공자는 하느님 아들이다
기원전 5세기에 석가, 노자, 공자가 이 세상에 오기 전에는 사람의 역사는 없었다. 오직 짐승의 나라(동물의 세계)가 있었을 뿐이다. 그런데 석가, 노자, 공자가 와서 짐승인 제나로 죽고 하느님 아들인 얼나로 솟나 비로소 사람의 나라인 영성 시대가 열렸다. 영성 시대는 예수가 말한 하느님의 나라이다. 예수가 하느님의 말씀을 전하고자 나서서 하신 첫 말씀이 '얼나로 솟나라(회개하라). 하느님 나라가 여기에 왔다."
하느님 나라(영성 시대)가 열렸으니 짐승인 제나(自我, ago) 죽고 하느님 아들인 얼나, (道, 德)라는 말이었다. 비
(마태오 24 : 14, 박영호 의역)이다. 그런데 사람들은 이 말씀을 바로 알아듣지 못하였다. 록 짐승인 몸을 지녔으나 짐승 노릇은 그만하고 하느님 아들 노릇을 하라는 하느님의 뜻을 전하였다
사람은 제 집을 떠나서 나그네가 되어 애쓰고 고생하며
생각하는 데서 철이 나고 속알이 영근다.
공자가 섭길 임금을 찾아 이 나라 저 니라로 들아
다나느라고 않은 차리가 더위질 겨를이 없었다고 한다.
공지자는 집에서 밥을 먹울 때가 없었다. 밤낮으로 집을 떠나 고생하면서 얻은 인간지 人間智가 유교의 가르침이다. 유교가 오늘에도 우리에게 소용이 있다면 (그것은 유교가) 고난의 종교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고난을 떠나 안일
(安逸)을 찾으면 유교의 정신은 죽고 만다. 사람은 안일에 죽고 부귀에 썩는다.p18
공자도 예수, 석가처럼 얼나를 깨달았음에 틀림없다.
그런데 분명히 다른 것은 예수, 석가는 하느님 나라 (니르바나)에 들어가는 진리에 치중하였는데
공자는 "이 세상을 다스리는데 치중하였다 "
공자에게서는 '내 나라는 이 땅에 속한 것이 아니다."
라고 한 예수의 말이나 "이 세상 마음 둘 데가 없다.
(應無所住 而生其心 )" )라고" 한 석가의 말을 들을 수
없다. 류영모도 예수, 석가의 길을 좋아했다
얼나밖에 정신이 만족할 만한 것이라고는 상대 세계에서는 없다. 그러므로 상대 세계에 한눈팔 겨를이 없다. 이 상대 세계에 머무르지 않는 참 나인 얼나에 맘을 두고 깨달아야 한다.
◈응무소주 이생기심(應無所住 而生其心).
머무는 바 없이 그 마음을 내라는 뜻이다. 구하되 결사적으로 구하지 말 것이며 두드리되 열릴 때까지 목숨 걸고 두드리지 말라는 말일 것이다.
공자에게는 그래도 하느님을 밝히는 형이상의 말이
보이는데, 공자의 제자들에게는 그마저 없고 주된 말은 이 세상살이의 禮가 대부분이다. 증자의 孝조차도 예에 속하는 것이다. 공자 뒤에 나온 것이 禮記 인 것은 이상할 것이 없다. 그 (예기)> 속에 (중용)이 들어 있었다니 진주 가운데서도 가장 값진 진주가 아닐 수없다.
📚 분서갱유의 역정울 이겨낸 <중용>
◈톨스토이는 권력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국가 권러의 토대는 백이다. 물리적 폭력 행사가 가능한 짓은 집킨자 한 사람의 의지 따라 일치단결하여 행동하는 무장 병력 조직 덕분이다.
군대는 언제나 그래 왔고 현재도 여전히 권력의 근간이 되고 있다. 권력은 언제나 군대를 지휘하는 자의 손아귀에 있다. 그리하여 원뿔의 꼭짓점과 같은 최고 권력자가 앉은 정상의 자리는 대개 다른 사람들보다 사악하고 교활하고 후안무치한 사람들이 차지하고 있다. 집권한 이는 권력을 소유했다는
사실 때문에 권력을 소유하지 않는 사람보다 악을 저지르기
쉽다. 그러므로 권력은 완전무결한 사람에게 맡겨져야 한다. 적어도 해롭지 않을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유익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톨스토이<국가는 폭력이다>)
국가 권력이 폭력이라는 말은, 국가가 사람이 지닌 수성
(獸性)의 소산(所産)이란 뜻이다. 따라서 권력을 지향하는 사람은 대개 수성이 더 강한 사람들이다. 역사학자들은 인류 역사에서 국가가 나타난 것을 인류역사의 발전으로 기술하는
데. 발전이 아니라 타락으로 보아야 바로보는 정견(正見)이다
동물행동학자 드 발은 이렇게 말하였다.
침팬지의 행동을 좌우하는 주요 동기는 권력이다. 권력을 가지면 크나 큰 혜택을 얻지만 권력을 잃으면 엄청난 좌절을
맛보기 때문에 권력은 침팬지 사이에서 하나의 강한 강박관념 으로 지리 잠고 있다."(드 발, <내 안의 유인원>)
공자와 맹자가 정치에 관심을 두있던 것은 국가가 지닌 수성을 정화시켜보려는 이상적인 생각에서 나온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공자와 맹자가 인간의 수성이 맹위를 떨치던 춘추전국시대에 살았던 접을 기억해야 한다. 춘추전국시대는 기원전770년~ 기원전 257년까지 513년 동안을 말한다.
공자는 기원전 552년에서 기원전 479년까지 73년을 살았고 맹자는 기원전 372년에서 기원전 289년까지 83년을 살았다.
소로는 사람이 되어 다른 사람을 함부로 죽이려 드는 이는 실성한 놈이라 정신 병원에 입원을 시킬 수밖에 없는테, 싸움을 일삼는 실성한 국가를 입원시킬 병원은 어디 있느냐고 한탄.
마하트마 간디는 정치에서 손을 떼고 수도 생활이나 하라는 말을 듣자 정치가 독사처럼 내 몸을 감고 조여 오는데 어떻게 가만히 있을 수 있느냐고 말하였다.
토머스 홉스가 '리바이어던(괴물)'이라고 한 국가를 수성에서 건질 길이 없는가? 민주주의 정치 제도로 무해유익한 지도자 를 뽑는 길밖에 없다. 어쨌던 권존민비(權尊民卑)는 버려야 할 동물 집단의 법칙이다.
◈맹자의 바람과는 달리 기원전 213년에 탐욕스럽고 포악한 정(政)이 진나라 진시황제에 올랐다. 진시황 못지않게
교활하고 잔혹한 신하들이 차례로 시황제의 등국을 찬양하
는데 '순우월'이 유식한 경전을 끌어대며 칭송하였다.
그러자 시샘이 많은 이사(李斯) 지금은 새 시대인데 낡은 경전을 잇대는 것은 황제의 권위를 손상시키는 일이라며
모든 경전을 불태워야 한다는 주청을 하였다. 미련한
진시황은 '이사'의 궤변을 받아들여 온 나라에 있는 경전을 불태우라는 국령을 내렸다
그리하여 고을마다 경전을 불사르는 야만적인 풍경이 벌어겠다. 뜻 있는 유학자들은 들고 일어나 진시황제의 야만적인 정책을 규탄하였다. 그러자 진시황은 유학자 460여 명을 잡아다 생매장을 하여 죽여다.
이것이 듣기도 끔찍한 분서갱유이다.
맹자의 예언이 헛되지만은 않아 진나라는 15년 만에 멸망하였다.
이 후 가장 센 항우와 유방의 대결이었다. 장기판
의 초나라, 한나라가 바로 그것이다. 이번에는 맹자의
예언이 맞아 조금 덜 포악한 유방의 승리로4년 만에
싸움이 끝나고 기원전 202년 漢나라 시대가 열렸다.
공자도 위정자는 반드시 백성을 잘살게 하고
다음은 백성을 가르쳐야 한다고 말하였다.
나라를 일으키기는 칼로 하였지만 백성을 가르치는
일은 글이라야 한다. 한나라 7대 황제인 한무제는 대학을 세워 오경박사를 두어 가르치게 하였다. p32
진시황의 분서갱유를 격은 뒤라 가르칠 스승이 될 만한 선비와 교재로 쓸 경전이 귀하였다.
한무제의 뜻을 받들어 제후 헌왕(獻王)이 분서갱유를 겪는
가운데 그래도 살아남은 유학자와 불타지 않은 문헌을 모았다. 그 가운데 아직 세상에 알려지지 않은 문헌을 모은 것이 131편이 되었다
이것이 훗날 <예기(禮記) 가 된 원본인 셈이다. 이를 유학자 유향(劉向)이 교열하여 214편이 되었다. 한나라 10대 황제인 선제(宣帝)때 이름난 유학자들을 불러 모아 <예기> 원본의 진위를 가리는 석거각회의를 열었다. 석거각 회의에 참석한 바 있는 대덕(戴德)이 214편을 85 편으로 정리하고다시 대성(戴聖)이 85편을 49편으로 간추렸다
오늘날 우리 손에 전해 오는 <예기)>가 바로 대성이 간추린 49편이다.책을 불태운 잿더미 속에서 불사조처럼 살아 나온 <예기> 속에 <중용)과 (대학)이 들어 있었던 것이다. <예기)에는 아직도 <중용)과 <대학)의 본문은 빠졌으나 목차가 남아 있어 <예기>가 <중용>과 <대학)의 모본(母本)임을 실증하고 있다.
<예기>가 골라지고 다듬어진 것이 여러 차례인 것은 곧 지금의 <중용>도 그런 과정을 겪었다는 것을 말해준다. 그리고 예기 라고 이름을 붙인 것은 예절에 관한 내용이
주를 이룬다는 뜻이다. 이것은 또한 공자 사상을 배우고
익힌 후학들이 주로 예(禮)에 치중하였다는 증거이기도
하다. <예기>에 저자 이름이 없듯이 <중용>에도 저자
이름이 밝혀져 있지 않다.
전한 시대 사람인 사마천(司馬遷)기원전 1459~기원전 86?)의 사기에 <중용>은 공자의 손자인 자사(子思)가 쓴 것이라고 밝혀 놓은 기록이 있을 뿐이다
중용은 예기에서 분리되어 독자적 경전이고
유교 경전인 사서오경 가운데 한권으로 중요한 경서이다.
중용은 앞쪽은 (中庸) 뒷쪽은 지성(至誠)을 말하다
그러므로 중용은 자사 혼자 썼다고 말 할 수 없다
중용에는 하느님 말씀이라고 믿어지는 공자의 아들이나 손자라도 스스로 정진하여 얼나(영원한 생명)를 깨달아야만 공자의
진리정신을 이을 수있다.
하느님의 말씀이 누구를 통해서 나왔는가도 궁금하지
않는 것은 아니지만 결국은 하느님 아버지로부터
온것이다. 하느님 아버지의 말씀이냐 아니냐가 중요하다.
<중용)에는 하느님의 말씀이라고 믿어지는 소중한 말씀이 있다. 비록 쌍끌이 어망에 걸려 나와 세상에 알려졌지만
고전이 될 만한 가치는 있다.
최호(崔浩)선생 댁을 방문했을 때, 방명록에 남긴 다석
의 글씨. 집주인의 '호(浩)' 자의 뜻을 살리기 위해
(중용) 32월의 문구 '순순기인 연연기연 호호기천
(肫肫其仁 淵淵其淵 浩浩其天 ) 중에서
인(仁), 연(淵), 천(天)을 빼고 썼다.
즉 "지극히 정성되게 어질고, 연못처럼 깊고 심오하며
하늘처럼 크고 넓으라" 는 뜻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