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는 것 자체에 대한 이야기도 어려운데 하물며 '시체'에 대한 이야기라니! 미국의 한 저널리스트가 발로 취재해 쓴 <스티프>는 바로 그 '시체'에 대한 이야기이다. 이 세상의 그 많은 죽은 자들의 시신은 어떻게, 어디로 가는 것일까? 죽음 이후에는 과연 무엇이 있을까? 하는 궁금증을 관념이 아닌 취재로 알아보고자 한 것.
노경원 에세이 <그저 나이기만 하면 돼>에서 이 책의 추천을 봤다. 죽음에 대해 다룬 책인데 참신하다는 평이었다. 재밌을 것 같아서 도서관에서 찾아 빌려왔다. 절판돼서 서점에서는 구할 수 없다. <인체재활용>이라는 제목으로 2010년에 재출판됐는데 이것도 절판이다. 그래도 도서관에서 찾아볼 수 있다. 2010년 판이 찾아보기 쉽다.
저자 메리 로치는 누구나 두려워 마지않는 죽음, 그 이후의 영역에 용감하게 직면한다. 사실 용감이라기 보다는 호기심때문이란 말이 맞다. 책을 쓰기 전 저자는 신기한 세상을 접하기 위해 여행 칼럼니스트 일을 했고 남극에도 세 번 갔다고 한다. 그러다 문득 가장 신기하고 신비로운 것은 주변에 그것도 아주 가까이 늘상 존재해왔다는 것을 깨닫는다. 죽음이다. 저자는 지금까지 이곳저곳 누볐던 것처럼 죽음을 파헤친다. 정확히는 죽음을 한 번 겪은 인간에 대해서다.
책 제목 '스티프'는 시체를 의미한다. 죽음 전의 사람은 부드럽고 따뜻하지만 죽으면 사후경직으로 차갑고 딱딱해진다. 저자는 이러한 상태를 빗대어 'STIFF'라는 단어로 시체를 지칭한다. 섬뜩하다. 그다지 예의있는 표현은 아니라고 저자도 짧게 반성하는 대목이 도입부쯤에 나온다. 그렇지만 앞으로 내가 읽을 책이 무엇을 얘기하는 지에 대해 전달하는 기능은 뛰어난 것 같다. 즉시 소름끼치고 털이 곤두서는 느낌으로 전달받을 수 있다.
'인체재활용'이라는 재출간용 제목은 책을 펼치지 않은 사람에게 어떤 책인지 소개하기에 적절하다. 실제로 책은 해부실습의 현실, 해부학과 장례의 역사, 시체부패 과정, 화장장에서 시체가 타는 과정, 시체 충격실험 등을 다룬다. 막연하게만 생각했던 것들을 과학적 사실에 기반한 생생한 묘사로 접할 수 있다. 솔직히 처음엔 썩 낯선 기분이었다. 하지만 찝찝한 기분을 안고 좀만 더 읽다 보면 어느새 순수한 호기심으로 책장을 얼른 넘기는 자신을 깨닫게 된다. 그만큼 저자의 취재력, 묘사력, 유머 감각은 훌륭하다.
시체로서 할 수 있는 일은 누워있는 것 뿐만이 아니라는 것을 알았다. 시체가 할거라고 절대 상상하지 않았던 영역에서의 활동도 알게 된다. 죽음 혹은 시체는 귀하게 다루어야 한다는 막연한 관념과 처음 접하는 그러한 진실이 충돌하기도 한다. '이래도 되는 거야...?' 당장 내가 판단하거나 결론내릴 수 있는 건 없다. 나는 그저 죽음에 대해 살짝 맛만 봤을 뿐이다. 하지만 죽음에 깊이 관여한 일상을 살거나 이해관계로 둘러싼 사람들의 다양한 견해가 지금 이 순간에도, 세상 곳곳에 존재한다는 것은 분명하다.
책을 읽다 보면 나의 죽음에 대해 자연스레 상상하게 된다. 죽음은 닥쳐오는 것이지만 내가 선택할 수 있는 선택지는 생각보다 무궁무진하다. 기회는 인간이라면 한 번 주어진다. 그 선택지가 조금이라도 가치있도록 하기 위해 한평생을 바치는 사람들도 있다. 저자도 이 책을 세상에 내놓음으로써 거기에 기여한 것 같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자의 궁극적인 동기가 호기심이라는 믿음에는 변함이 없다. 읽는 내내 책을 쓴 이 사람은 과학자에 가까운 성미를 지녔다고 생각했다.
죽음은 두렵고 슬프다. 그러나 이 책을 읽고 나면 죽음 앞에서 슬퍼하지만 않을 수 있다. 죽음 너머 생활을 구경도 해봤고 예상도 해놨다는 거다. '올게 오는구나.'라고 생각하게 된다. 이런 변화만으로 충분히 의미있다. 더불어 내가 죽은 후의 처리가 어떤 방식이었으면 좋겠다는 구체적인 목표 설정을 하게 되는데, 이러한 사고를 들여다 보면 내가 무엇을 중요하게 여기는지 문득 깨닫는다. 내 인생 마지막으로 스스로 하게 될 선택이 가치있기 위해서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고민하기 시작한다.
유시민 저 <어떻게 살 것인가>에서 어떻게 살 것인지 알기 위해서는 내 죽음에 대해 생각해야 한다고 읽었다. 솔직히 와닿지 않았다. '생각이 안돼. 안 하는게 아니라 못 하겠다니까.' 근데 이제는 조금 알 것 같다. 그 어떤 조언보다 시체에 대해서만 내내 떠드는 책을 읽고 나서야 깨닫고 말았다. 아이러니다. 다시 한 번 책을 다양하게 꾸준히 읽어야 겠다는 다짐한다. 언제 어디서 불쑥 이런 깨달음이 나타날지 모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