맑스의 사위로 유명한 폴 라파르그
원제는 Le droit a la paresse.
영역본은 The right to be lazy.
역시 맑스의 사위인가? 노동에 대한 유물론적 고찰이 돋보인다.
예로부터 혐오의 대상이었던 노동이 어떻게 자본주의 시대에 금욕, 절제, 근면의 이데올로기를 쓴 미덕이 되었는지를 밝히며, 노동의 변화가 가져온 과잉 생산으로 인해 어떤 파국으로 치닫고 있는지, 그 파국을 어떻게 막을 수 있는지에 대해 짧고 굳게 그리고 담백하게 얘기하고 있다.
자본주의는 그 동안의 역할을 다했고 이제는 풍요속 빈곤이 만연해 있다. 어쩔수 없이 우리는 게을러져야 한다.
“노동자 계급은 어쩔 수 없이 금욕과 절제에 길들여진 취향을 버리고 자본가 계급과 마찬가지로 소비 능력을 무제한으로 개발해야만 할 것이다.”
상품이 넘쳐나는 시대에는 노동을 나눔으로 노동시간을 단축하고 여가를 갖을 수 있어야 한다.
우리가 노예를 부리며 그리스 철학자들 처럼 살 순 없겠지만, 대신 우리에겐 기계가 있다.
폴 라파르그는 증기로 움직이는 기계가 인류의 구원이 될 수 있다 했는데, 심지어 우리는 스마트한 기계를 갖고 있지 않은가!!!
오해는 하지 말자 노동은 인간 사회의 본질이며, 모든 가치의 근원임을 폴 라파르그도 잘 알고 있다. 게을러질 권리란 손과 머리 둘 중 아무것도 사용하지 않고 사회라는 구성체에 기생하는 소모성의 무용지물의 인간으로부터 뺏긴 것들을 찾아오기 위한 구호이다.
일과 놀이, 여가의 경계가 무너져, 좋아서 일하고 무상으로 원하는 것을 얻을 수 있는 역사의 마지막 단계가 오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