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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모두 살기 좋은 나라를 만들고 싶을 때
다시는 반복되서는 안될 약자들의 이야기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
조세희 지음
이성과힘
 펴냄
11,000 원
9,9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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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장이
#마음
#뫼비우스
#비극
#사회
#산업화
#인간
351쪽 | 2000-07-10
분량 보통인책 | 난이도 쉬운책
상세 정보
70년대 암울했던 우리 사회의 현실을 우화적 기법으로 형상화해낸 걸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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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작가의 말

뫼비우스의 띠
칼날
우주 여행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
육교 위에서
궤도 회전
기계 도시
은강 노동 가족의 생계비
잘못은 신에게도 있다.
클라인씨의 병
내 그물로 오는 가시고기
에필로그

해설 | 대립적 세계관과 미학_김병익
신판 해설 | 대립의 초극미, 그 카오스모스의 시학 | 우찬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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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정보
조세희
대표작 <난장이가 쏘아 올린 작은 공>을 통하여 1970년대 한국사회의 최대 과제였던 빈부와 노사의 대립을 극적으로 제시하고 연작 형식으로 소설 양식의 확대를 가능하게 하면서 이야기 형식의 긴장과 이완을 동시에 추구하였다. 1942년 경기도 가평 출생으로, 서라벌예대 문예창작과와 경희대 국문과를 졸업했다. 1965년 <경향신문> 신춘문예에 「돛대 없는 葬船」으로 등단했으며, 10년 동안 작품 활동을 하지 않았던 그는 1975년 <문학사상>에 난장이의 첫 연작인 '칼날'을 발표하면서 활동을 재개하였고, 1976년 난장이 연작 '뫼비우스의 띠' , '우주공간',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 등을 발표하였으며, 1977년 역시 난장이 연작 '육교 위에서', '궤도회전', '은강 노동가족의 생계비', '잘못은 신에게도 있다' 등을 발표하였다. 1978년 '클라인씨의 병', '내 그물로 오는 가시고기', '에필로그'를 발표하고, 이로써 같은해 연작 소설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을 완성하였다. 그의 난장이 연작은 1970년대 한국사회의 모순에 정면으로 접근하고 있다. 여기에서 난장이는 정상인과 화해하며 살 수 없는 대립적 존재로 등장하고 있으며, 1970년대 한국사회의 최대 과제였던 빈부와 노사의 대립을 극적으로 제시하고 있다. 이러한 소설적 접근을 통해 한국의 1970년대가 이 두 대립항의 화해를 가능케 할 만큼의 성숙에 이르지 못했다는 것을 말해주고 있다. 그는 가장 현실적인 문제를 그려내고 있는 난장이 연작에 환상적 기법을 도입함으로써, 계급적인 대립과 갈등이 마치 비논리의 세계나 동화의 세계에 존재하는 것처럼 묘사하고 있다. 그 결과 현실의 냉혹함은 더욱 강조된다. 연작 형식은 소설 양식의 확대를 가능하게 하면서 이야기 형식의 긴장과 이완을 동시에 추구할 수 있다. 이같은 형식이 난장이 연작에서 성공할 수 있었던 것은 1970년대 소설이 종래의 단편 형식으로는 현실에 적절히 대응할 수는 없으며 그렇다고 장편 양식으로 현실을 개괄할 수 있을 만큼의 성숙에는 이르지 못했다는 사실을 말해주는 것이다. 이 소설에서 볼 수 있는 주제와 양식과 기법에 대한 도전과 그 성과는 1970년대 문학의 중심에 자리잡고 있다. (--- 두산백과사전) 그는 이 작품으로 1979년 제13회 동인문학상을 받았다. 그밖의 작품으로는 <오늘 쓰러진 네모>(1979), <긴 팽이모자>(1979), <503호 남자의 희망공장>(1979), <시간여행>(1983), <하얀 저고리>(1990)를 비롯하여, 사진산문집 <침묵의 뿌리>(1986), 희곡 <문은 하나>(1966)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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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긴 글 12
송도 사는 김군님이 이 책을 읽었어요
1달 전
아주아주 오래 전에 읽었던, 그래서 내용이 기억나지 않던 그 책을 알라딘에서 발견하여 데려왔다. 난장이와 그 아들 영수를 주 이야기로 삼고 그외의 주변 인물들의 이야기를 더한 이 책은 70년대 급성장하는 대한민국, 위대한 대한민국에 취해 그 발전을 위해 잊혀진, 쥐어짜내지고 갈아져 거름이 되어버리고만 영혼들을 향한 서사시다. 전태일이 1인칭의 르포이자 규탄이라면 난쏘공은 전지적 작가의 소리없는 눈물이다. 철거촌에 사는 영수의 아버지 김불이는 난장이다. 나름의 의지와 노력으로 가족을 건사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던 그는 공권력이라는 이름으로 들어오는 철거팀을 막을 수 없었고 결국 아무도 보지 못한 어느날 굴뚝에서 투신하여 생을 마감한다. 남겨진 삼남매는 연명하기 위해 은강의 공업단지에 모두 취업하여 밤을 새가며 일하지만 인간적인 대우는 받을 수 없었고, 인간적인 삶을 위해 노조를 설립하고 투쟁했으나 번번히 실패에 부딪힌 첫째 영수는 은강의 기업총수의 형을 살해하고 사형집행을 당한다. 지금은 2020년. 많은 것이 바뀌었다. 이제는 어느날 갑자기 불량배들에게 끌려가 얻어맞는 노조위원장은 없고, 노조는 기업의 앞잡이가 아니라 독자적인 세력이 되었으며, 순수히 정치적인 힘에 의해 집행되는 사형도 없다. 하지만 아직도 대한민국은 OECD국가 중 최악의 빈부격차를 자랑하고, 노조는 실제 노동자의 편이 아니며, 여전히 계층이동의 사다리는 없다. 우리는 과연 역사에서 무엇을 배웠으며, 무엇이 나아졌는가. 발전이란 배가 불러진 것을 말하는가, 아니면 인간이 인간을 존중할 수 있게 되는 것을 의미하는가. 많은 생각이 든다. 아래는 마음에 들어온 문장들. 97p. 세상은 공부를 한 자와 못 한자로 너무나 엄격하게 나뉘어 있었다. 148p. "너희들이 다시 혼란을 불러일으키려는 것을 알고 있어. 질서가 잡힐만 하니까 또 시작야." "그 말씀은 틀렸습니다." "틀려?" "틀렸습니다." "어째서?" "시작이 아닙니다. 끝이 나지 않았어요." 177p. "난 몰랐어" "그게 너의 죄야. 그게 모르고 있는 모든 사람들의 죄야." 220p. 우리는 사랑이 없는 세계에서 살았다. 배운 사람들이 우리를 괴롭혔다. 그들은 책상에 앉아 싼 임금으로 기계를 돌릴 방법만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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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ookWorM님이 이 책을 읽었어요
8달 전
#고전 #노동자 #7080 #카오스모스 먼저 공교육이 얼마나 학생들의 고전에 대한 관심으로부터 멀어지게 만들었는지 생각했다. 후발주자들에게 공교육은 고전의 가치들을 음미할 시간조차 주지 않았다. 그 모순된 굴레로부터 5년이 지난 지금에서야 이 고전의 가치를 알아볼 수 있었다. 소설은 서문인 "뫼비우스의 띠"부터 시대에 국한된 책이라는 내 선입견을 깨고 시작했다. 앉은뱅이와 곱추의 이야기는 지금도 일어날 수 있는 일이다. 그리고 이어지는 난장이의 가족과 은강시의 이야기는 어떻게 이 소설이 70년대에 만들어진 소설인지 놀랍게 느껴졌다. 그 가족이 느끼는 구조적 대립과 단절을 못 느끼는 사람이 있을까 싶다. 조세희 작가가 만든 가상의 인물은 멀어진 진리와 가까워진 허위에 사는 우리를 자극하고 있다. 그 당시보다 잘 사는 사람들이 많아진 현재도 소설에서 나온 단절은 조금도 해소되지 않았다. 오히려 주목받지 못하는 사회적 약자에 대한 편견과 탄압의 정도는 당시보다 심할 정도이다. 틱 장애로 중얼대는 어린아이에게 헛소리한다고 다그치는 교사들, 기본소득이 국민 혈세만 빼먹는다고 핀잔을 놓는 어른들, 소득의 재분배가 사회를 위축시킨다고 법인세를 낮추라는 학자들 등 자신의 눈으로 그 밑 사람들의 상황을 상상할 능력도 없는 사람들이 아직 사라지지 않았다. 우리는 마음을 열고 또 열어서 내 삶에 보이는 것만으로 판단해서는 안 된다. 소설의 사회적 기능은 이 점을 해결해주는 인도자 역할을 하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작가가 말하는 '사랑'의 가치에 대해 이야기한다. 이 소설이 카오스모스라고 하는 이유는, 형식적으로는 시적 장치들로 인해 복잡해진 문체를 끌어안고 일관적으로 흐르는 서사성을 의미하고, 내용적으로는 단조로운 노사의 대립을 이야기하면서 던지는 '사랑'의 혼잡성을 대안으로 제시함을 의미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여기서 혼잡성이란 불안을 야기하는 무질서함이 아니라 단절된 사회 계층의 대립을 해소해줌을 의미한다. 사랑은 서로 다른 개인들을 공감하게 만들고 서로 공생할 수 있게 만든다. 뫼비우스의 띠와 클라인 씨의 병이 사랑을 상징하는 긍정의 메타포라는 점이 매우 신선했다. 세상과 삶이란 역시 복잡하고 모순되나 때로는 그것이 좋은 것일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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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ameless님이 이 책을 읽었어요
1년 전
종종 일상을 지내다보면 갑자기 이 책 등장인물들이 생각난다. 그러면서 나는 지금 등장인물들 중 누구와 가장 가까울까 라는 질문을 해본다. 누구와 가까운지 알 수 없지만, 언제나 난쟁이가 되지 않기 위해 발버둥치고 있다는 건 안다. 그런데 책 속에서는 이런 내용이 나온다. '천국에 사는 사람들은 지옥을 생각할 필요가 없다' 다른 구절은 기억이 안나는 데 이상하게 이 구절은 생생하다. 이 구절이 생각나면 다시 마음 속으로 질문을 하게 된다. 사실 내가 난쟁이기 때문에 난쟁이가 되지않기 위해 발버둥치는 걸까? 만약 내가 난쟁이가 아니라면 난쟁이를 생각할 이유가 없지않을까? 답이 안나오는 질문이지만 이상하게 계속 하게 되는 질문들이다. 언젠가 질문에 대한 답을 찾고 다시 책을 읽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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