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음의 시 285권. 김언 시인의 일곱 번째 시집. 전격과 파격 혹은 변격의 시도를 지나, 2년 만에 선보이는 시집 『백지에게』에는 여전히, 그러나 새로운 실험을 출발하는 김언 시인의 역동적인 문장들이 형형히 담겨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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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약
백지에게 (김언 시집) 내용 요약
김언 시인의 시집 『백지에게』는 언어와 사물, 그리고 존재의 본질을 끊임없이 질문하며 시 쓰기의 불가능성과 가능성 사이를 오가는 탐구의 기록입니다. 이 시집은 제목처럼 ‘백지’라는 무(無)의 상태를 향해 끊임없이 말을 건넵니다. 시인은 우리가 매일 사용하는 언어가 사실은 얼마나 불완전한지를 폭로하며, 그 틈새에서 비어져 나오는 진실을 포착하려 애씁니다. 🖋️
시집의 전체적인 분위기는 차분하면서도 예리합니다. 시인은 익숙한 풍경이나 사물을 낯설게 바라보는 시선을 통해 독자로 하여금 일상을
나는 오늘 산책을 했고 나는 어제 결혼을 했고 나는 그저께 이혼을 했고 그 전날에 죽을 뻔했고 그 전전날에 실제로 죽었고 앞으로도 영원히 존재하지 않는 사람이 그 전전전날에 태어났고 그 전전전전날에 울음을 터뜨렸고 태어나서 운 것인지 아니면 죽고 나서 운 것인지는 불확실하지만 아무튼 울음은 크고 우렁찼고 더할 나위 없이 슬펐다. 그래서 산책하는 사람이 내일은 위로라고 할 것이고 모레도 격려라고 할 것이고 그런 것들이 하나도 귀에 안 들어올 때 어디서부터 잘못된 것을 어디까지 수습해야 할지 도무지 모르겠을 때 그가 찾아왔다. 새로 태어나는 것이 어떻겠냐고 권하던 그는 어제도 찾아왔고 그제도 찾아왔고 앞으로도 찾아올 것이 분명한 태도로 말했다. 내일은 같이 갑시다. 모레도 같이 갑시다. 언제나 같이 갑시다. 내가 올 때마다 같이 갑시다. 그게 싫으면 내가 다시 오지 않도록 조치를 취해야 할 겁니다. 오늘 중으로. 아니면 내일 중으로. 아니면 두 번 다시 방문하는 일이 없도록 영원히 같이 가는 겁니다. 어떻습니까? 나는 좋다고도 싫다고도 말 못한다. 그냥 따라갈 뿐이다. 산책로를 따라서. 이렇게 구불구불한 길은 처음 본다는 듯이.
- ‘영원’, 김언
누가 나를 부른다.
누가 나를 부른다.
누가 나를 부르고
곧 잠잠해진다.
조용해진다.
누가 나를 불렀을까?
누가 나를 부르고
가 버린 것일까?
가 보면 누가 나를 부른
장소만 남는다.
거기가 어딜까?
가 보면 없다.
감쪽같이 나를 부르고
모두 어디로 간 것일까?
한 사람이면 좋겠다.
두 사람도 괜찮다.
너무 많은 사람이
나를 부르고 갔다.
어디로 갔을까?
누가 나를 부른다.
누가 나를 부른다.
가 보면 없다.
가 보면 아무도 없고
나 같은 사람들뿐이다.
당신은 누가 불러서 왔습니까?
- ‘누가 불러서 왔습니까?’, 김언
똑바로 보지 않고 얘기한다. 그는 어딘가 다른 곳을 보고 있다. 거기 내 얼굴이 있는 것도 아닌데, 거기에 대고 얘기하는 듯한 이 사람이 신기해서 묻는다. 누구하고 얘기하는 건가요? 그는 똑바로 보지 않고 얘기한다. 당신이면 좋겠어요.
- ‘당신’, 김언
한낮에는 한낮에 어울리는 울음이 있다.
저녁에는 저녁에 어울리는 울음이 있다.
한밤중에는 한밤중에도 어울리는 울음이 있으니
조용히 운다. 삭히고 운다. 엉엉운다. 참다가 운다. 터지듯이 운다. 폭발하고 운다. 꺼지듯이 운다. 모자라서 울고 지나쳐서도 운다. 다 운다. 한밤에는 한밤에도
아침에는 아침에도
울지 못하고 나가는 사람이 있다.
어울리지 못하고 울음은 따로 운다.
저 많은 사람들 틈에
누가 숨어서 우는가?
- ‘누가 숨어서 우는가?’, 김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