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차피 인간은 다 죽고, 죽으면 생존의 모든 것이 끝나는 것이라면, 불멸의 명성을 얻어 살아 있는 사람들의 기억 속에 대대로 영원히 남는 것이 좋은 삶인가?
아니면 주어진 삶을 편안하게 누리는 것으로 기뻐하고 만족하는 삶이 좋은 삶인가?
나는 타고난 각자 성질대로 사는 것이 좋은 삶이라 생각한다. 고흐는 살면서 가난에 시달리고 그의 작품으로 인정 받지 못한 불행한 삶을 살았지만, 한국이라는 나라의 아무것도 아닌 나도 그의 이름과 작품을 안다. 고흐가 바란 게 그런 명성 아니었을까? 그렇지만 나는 평온한 삶을 포기하면서 무언가에 나 자신을 전부 바치고 싶은 분야도 없고, 그럴 열정도 없다. 오히려 인간이라면 그렇게 살아야 한다고 믿으며 되지도 않은 능력으로 아등바등하다가 번아웃이 와버렸다. 나에겐 그냥 만족하면서 평탄한 삶을 사는 것이 좋은 삶이고 내 최선인 것이다.
내가 피하려 해도 피할 수 없는 궤적, 그것에 순응하는 것이 운명에 충실한 것일까? 아니면 그 모든 운명의 조건들에 불만을 품고, 거부 반응을 일으키며 저지르는 나의 모 든 짓이 다 그 궤적을 이루는 과정인 것일까?
플라톤은 『향연」에서 인간에게 삶이 살 만한 가치를 갖게 되는 것은 "아름다움 바로 그것 자체를 바라보면서 살 때”라고 말했다.
세상은 본래 곧고 바른 이를 싫어하는 이들로 우거지는 법, 하여 무도한 자들이 권력을 잡아 옳은 이들이 늘 다치기 마 련이라는 『춘추좌전』의 통찰을 이미 꿰차고 있는 듯했다.
나라에 도가 없다고 하여 같이 혼탁해지는 대신 기꺼이 물러나 글을 쓰며 미래를 준비하기도 한다. 이는 귀족들, 조선시대로 치자면 양반들에게만 요구됐던 덕목이었다. 그런데 이 대목에서 유념해야 할 바가 있다. 근대 문명에서 바로 그러한 귀족의 덕목이 부르주아, 곧 시민 계층의 교양 으로 확산됐다는 사실이다. 달리 말해 그러한 덕목은 민주주의 사회의 시민이라면 응당 갖춰야 할 소양의 일부라는 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