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징비록 (독특한 18세기 한국지도 첨부)
류성룡 지음
형설출판사
 펴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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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78쪽 | 2013-11-15
분량 두꺼운책 | 난이도 보통인책
목차

추천서推薦書/1
역자譯者 서문序文/5
일러두기/18
자서自序/20

징비록 제1권
1. 일본국 사신 귤강광橘康廣이 다녀가다 27
2. 일본국 사신 평의지平義智 등이 오다 35
3. 통신사로 왜국에 갔던 황윤길.김성일의 서로 다른 정세 보고 41
4. 명明나라를 치겠다고 길을 빌리자는 일본日本 48
5. 발등에 불은 떨어지고 다급해진 방어대책 51
6. 이순신李舜臣을 전라좌도 수군절도사水軍節度使로 임명하다 55
7. 신립申砬 장군의 인품 66
8. 임진왜란壬辰倭亂이 일어나다 70
9. 추풍낙엽秋風落葉처럼 떨어진 영남嶺南 지방 76
10. 패전敗戰의 급보와 신립申砬의 사모紗帽 82
11. 왜국의 정세 보고를 받고 잘못 판단한 선조宣祖 91
12. 첨지 김늑金?이 경상좌도 안집사安集使가 되다 94
13. 상주 싸움에서 이일李鎰이 패하여 충주로 도망하다 96
14. 서울 방어와 선조宣祖의 서쪽 지방으로 피란 102
15. 충주忠州에서 신립申砬의 전사 112
16. 선조宣祖는 서울을 떠나고 119
17. 1592년 5월 3일 왜적은 서울京城에 입성하고, 선조 宣祖는 평양平壤에 도착하다 132
18. 삼도군三道軍은 용인龍仁 전투에서 무너지고 137
19. 전투에서 공을 세우고도 억울하게 죽은 신각申恪 140
20. 임진강臨津江 방어선도 무너지다 143
21. 1592년 7월 국경인鞠景仁은 반란하여 두 왕자를 결박하여 148
22. 이일李鎰은 평양平壤으로 도망 오고 153
23. 명明나라 사자使者가 오고 평양성을 지키는 문제 157
24. 평양성에서 영변寧邊으로 떠나는 선조宣祖 170
25. 평양성平壤城은 왜적에게 함락되고 181
26. 민심은 어지럽고 선조宣祖는 정주.선천으로 떠나고 186
27. 드디어 명明나라 구원병이 의주義州에 주둔하다 193
28. 명明나라 구원병 5천 명이 먼저 오다 197
29. 평양성平壤城에서 패전敗戰한 명나라 군사 203
30. 이순신李舜臣이 거제해전巨濟海戰에서 대승 206
31. 창원昌原 사람 조호익曺好益의 충의忠義 215
32. 웅치 전투에서 김제군수 정담鄭湛과 해남현감 변응정 邊應井이 전사하다 217
33. 이원익李元翼.이빈李? 등이 평양을 탈환하려 하였으나 221
34. 명나라 심유경沈惟敬의 강화회담講和會談 223
35. 경기 감사 심대沈岱가 왜적의 습격을 받아 죽다 227
36. 원호元豪가 왜적과의 전투에서 전사하다 232
37. 권응수權應銖.정대임鄭大任 등이 영천永川을 수복하다 234
38. 경상좌병사 박진朴晋이 경주慶州를 수복하다 236
39. 의병장義兵長 김천일.고경명.최경회 등의 활약 241
40. 이일李鎰이 순변사巡邊使가 되다 256
41. 왜적의 간첩은 김순량金順良 만이 아니었다 258

징비록 제2권
42. 명明나라 구원병救援兵 4만 명이 오다 263
43. 이빈李?을 다시 순변사로 임명하다 275
44. 이여송은 벽제역에서 왜적의 간계에 속아 패전하다 276
45. 행주대첩幸州大捷에서 권율權慄이 승전하다 290
46. 굶어죽는 민초民草들 298
47. 서울에 있는 왜적에게 물러가라는 심유경沈惟敬의 말 302
48. 서울京城이 수복되다 311
49. 지난날의 패전을 갚는다고 진주성晋州城을 총공격 316
50. 선조宣祖는 서울로 돌아오다 326
51. 왜적의 간계에 속아 이순신李舜臣을 옥에 가두다 339
52. 명明나라 군사가 도우러 오다 345
53. 원균元均.이억기李億祺는 전사하고 배설裵楔은 도주하다 347
54. 황석산성의 싸움에 패하여 곽준.조종도가 전사하다 355
55. 이순신李舜臣을 옥에 가두지 않았더라면 361
56. 남원성을 방어하던 명나라 장수 양원陽元은 패주하고 많은 장수가 전사하다 363
57. 적선 2백여 척을 대파시키고 왜장 마다시馬多時를 죽인, 이순신李舜臣의 배는 12척 370
58. 왜적은 삼도三道를 짓밟고 백성들의 코를 베어 가는 만행을 저질렀다 376
59. 명나라 장수의 울산 서생포西生浦 왜성 공격 380
60. 아아! 하늘이여! 이순신李舜臣이 전사하다 385
61. 나라를 구한 이순신李舜臣의 인품 389
62. 귀신과 같은 이순신李舜臣의 예지豫知 394

징비록 제3권 : 녹후잡기錄後雜記
63. 국가에 변란變亂이 있으려니 이상한 일들이 일어났다 399
64. 간사하고 교묘하며 잔악한 왜적 405
65. 지형지세地形地勢 이용이 전쟁의 승패를 좌우한다 409
66. 성城을 굳게 지키는 전법戰法 413
67. 김성일金誠一 그리고 진주성 축성築城 문제 417
68. 왜적을 어떻게 방어할 것인가? 420
69. 칡 줄로 만든 임진강臨津江 부교浮橋 424
70. 명明나라 장수 낙상지駱尙志에게 병법兵法을 배우려 했지만 428
71. 공적功績은 간 곳 없고 심유경沈惟敬의 책임만 남다 432

임진왜란壬辰倭亂 관련 연표年表 449
서애西厓 류성룡柳成龍 선생 연보年譜 4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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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정보
류성룡
본관은 풍산이고, 자는 이현, 호는 서애다. 16세에 향시에 급제했고 25세에 별시문과에 병과로 급제해 승문원 권지부정자로 관직을 시작한 뒤, 여러 자리를 거쳐 1590년 우의정에 올랐다. 왜란에 대비해 형조정랑 권율과 정읍 현감 이순신을 각각 의주 목사와 전라도 좌수사에 천거했으며, 조선의 기존 방어체제인 제승방략 대신 진관제도를 주장했다. 1592년 임진왜란이 발발하자 도체찰사로 임명되어 군무를 총괄했다. 영의정이 되어 피난을 떠난 선조를 수행했으나 평양에 이르러 나라를 그르쳤다는 반대파의 탄핵을 받고 면직되었다. 평안도 도체찰사로서 명나라 장수 이여송과 함께 평양성을 수복한 뒤 충청·경상·전라 3도의 도체찰사가 되어 파주까지 진격했으며, 뛰어난 외교적 역량으로 명과 왜의 조선분할 획책을 저지했다. 신분이 아닌 전문성과 실무능력을 중시한 인재채용 정책을 주장했으며, 백성들을 위해 면천법.작미법 등의 각종 민생 개혁정책을 만들었다. 1598년 북인의 탄핵을 받아 삭탈관직당한 후 고향으로 돌아가 저술과 학문에 몰두했다. 1604년 다시 풍원부원군에 복직되었으나 이를 사양하고, 1607년 66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전쟁 후에 집필한 『징비록』『서애집』『신종록』『영모록』『운암잡기』등이 전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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