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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 의지할 곳 없이 위태로운 어른들에게
두렵고 고단한 삶에 보내는 잔잔한 위로

어른으로 산다는 것
김혜남 지음
걷는나무
 펴냄
13,000 원
11,7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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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56쪽 | 2011-04-26
분량 보통인책 | 난이도 보통인책
상세 정보
대한민국 서른 살 60만 명의 마음을 움직인 베스트셀러 <서른 살이 심리학에게 묻다>의 저자 김혜남의 몸은 어른이지만 마음은 아이인 사람들을 위한 따뜻한 카운슬링. 그녀는 만일 어른으로 사는 게 두렵다면 마음속에 상처 입은 어린아이가 울고 있는 건 아닌지 살펴보아야 한다고 말한다. 그리고 그 아이가 마음껏 울 수 있게 해 주어야 한다고 말한다.<BR> <BR> 크게 기뻐할 일도 슬퍼할 일도 없다고 말하는 사람들, 상처 입는 게 두려워 사랑조차 피하는 사람들, 떠올리기 싫은 과거를 가지고 있는 사람들, 나이 드는 게 너무 끔찍하다는 사람들, 부모 노릇이 힘들다는 사람들, 언제나 우울하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읽어 보면 좋을 책이다.<BR> <BR> 2006년에 발간한 책의 개정증보판으로, 5년 동안 독자들이 궁금해했던 질문들을 정리해 새롭게 구성하였다. 사는 게 우울하다는 사람들을 위해 우울을 느끼지 못하는 사람보다 우울한 사람이 나은 이유를 설명한 4장 '왜 나만 우울한 걸까?'와 만성피로증후군, 화병, 중독 등 한 번쯤 들어본 증상에 대한 원인과 해법을 담아낸 '김혜남의 정신분석 카페'를 추가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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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prologue 플러스 에디션을 펴내며

chapter 1 내 맘 같지 않은 사람들, 내 뜻대로 안 되는 세상
듣기 싫지만 많이 하는 말 ‘나잇값’에 대하여
크게 기뻐할 일도, 크게 슬퍼할 일도 없다?
내 맘 같지 않은 사람들, 내 뜻대로 안 되는 세상
왜 나는 갑자기 불안해지는 걸까?
사랑, 노력해도 내 맘대로 안 되는 이유
결혼, 그 미친 짓을 하기 위해 알아야 할 것들
내 병이 나에게 가르쳐 준 것들
김혜남의 정신분석 카페-왜 나는 아픈데 남들은 꾀병이라고 말하는 걸까?

chapter 2 혹시 당신도 어른으로 사는 게 두려운가?
몸은 어른 마음은 아이인 사람들
21세기가 낳은 슬픔, 피터 팬 신드롬
혹시 당신도 어른으로 사는 게 두려운가?
살아간다는 것의 의미
누구나 마음속에 상처 입은 어린아이가 살고 있다
왜 떠올리기 싫은 과거와 만나야 하는가
우리 모두는 행복해질 권리가 있다
행복해지고 싶다면 이제 그만 떠나보내라
상처는 살아가는 힘이 될 수도 있다
김혜남의 정신분석 카페-피터 팬 VS 키덜트족

chapter 3 제2의 성장통을 겪고 있다면
어른 노릇, 그 어려움에 대하여
남의 눈을 지나치게 의식하는 당신에게
진지한 관계를 싫어하는 당신에게
권위를 극도로 싫어하는 당신에게
모든 게 시시하다는 당신에게
인터넷 폐인인 당신에게
어른으로 산다는 것
김혜남의 정신분석 카페-죽도록 먹거나 혹은 죽도록 먹지 않는 사람들에게

chapter 4 왜 나만 우울한 걸까
결코 당신만 우울한 건 아니다
언제나 우울하다고 말하는 당신에게
사랑하면 더 이상 우울은 없을 거라 믿는 당신에게
눈물을 보이는 약한 사람이 되고 싶지 않은 당신에게
단지 당신이 여자라는 이유 때문일 수도 있다
외모에만 집착하는 당신에게
항상 밝고 유쾌한 사람에게 너무 주눅 들지 말라
우울을 느끼지 못하는 사람보다 우울한 사람이 나은 이유
우울은 때로 창조의 샘이 될 수 있다
김혜남의 정신분석 카페-자살 사이트가 늘어만 가는 이유

chapter 5 슬픔 앞에서는 굳이 어른인 척하지 마라
언니의 갑작스러운 죽음이 나에게 남긴 것들
이별을 견딜 수 없는 사람들의 심리
‘안녕’이라고 말하기가 중요한 이유
슬픔 앞에서는 굳이 어른인 척하지 마라
억지로 잊어버리려 애쓰지 마라
슬픔은 강물처럼, 바람처럼 흘려보내라
김혜남의 정신분석 카페-마음 대신 몸으로 우는 사람들도 있다

chapter 6 정신분석에서 배우는 나이 듦의 지혜
나이 드는 게 두렵다는 사람들에게
부모 노릇이 힘들다는 사람들에게 1: 너무 좋은 부모가 되려고 애쓰지 마라
부모 노릇이 힘들다는 사람들에게 2: 아이는 아이의 길을 걷게 하라
중년의 삶이 우리에게 주는 선물
노인이 된다는 것에 대하여
유쾌하게 나이 드는 법
두려움 없이 죽음을 맞이하는 법
내 슬픔을 등에 지고 가는 자, 친구에 대하여
김혜남의 정신분석 카페-중독녀&중독남에게

chapter 7 행복한 삶을 살고 싶다면 기억하라
용서하라는 것이 그를 사랑하라는 뜻은 아니다
나도 남에게 상처를 줄 수 있다
유머러스한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라
우울의 강을 현명하게 건너는 법
가끔은 어린아이처럼 놀아라
꿈을 꾸어야 살 수 있다
혼자만의 시간을 가져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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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정보
김혜남
1959년 서울 출생. 고려대학교 의과대학을 졸업하고 국립서울병원에서 12년 동안 정신분석 전문의로 일했다. 2006년에 한국정신분석학회 학술상을 받았고, 경희의대, 성균관의대, 인제의대 외래 교수이자 서울의대 초빙교수로 학생들을 가르쳤으며, 김혜남 신경정신과의원 원장으로 환자들을 돌보았다. 2001년 마흔세 살에 파킨슨병 진단을 받았지만 절망은 접어둔 채 병을 관리하며 진료와 강의를 하고, 책을 출간하고, 두 아이를 키우는 엄마로서 며느리로서 열심히 살았다. 2008년 출간한 《서른 살이 심리학에게 묻다》가 60만 서른 살들의 열렬한 지지를 얻어 그 해 최고의 베스트셀러가 되었고, 지금까지 모두 여섯 권의 책을 출간하여 130만 독자들의 사랑을 받았다. 2014년 갑자기 상태가 악화되어 진료를 더 이상 할 수 없게 되자 병원 문을 닫고 치료에 전념하면서 보냈다. 걱정과 절망으로 시간을 낭비해 버리기엔 인생이 너무 아깝다는 깨달음에 그녀는 몸의 마비가 덜한 시간에 운동을 하고, 정원을 가꾸고, 물방울 사진을 찍고, 스마트폰으로 그림을 그리고, 글을 쓰면서 자신에게 주어진 ‘오늘’을 충분히 즐기며 살고 있다. 지금까지 쓴 책으로는 《서른 살이 심리학에게 묻다》, 《나는 정말 너를 사랑하는 걸까?》, 《어른으로 산다는 것》, 《오늘 사는 게 재미있는 이유》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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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긴 글 2
새바님이 이 책을 읽었어요
7달 전
2년 전에 읽었던 책을 모르고 다시 읽었다. 젊은 나이에 파킨슨 병에 걸린 정신과 의사가 저술한 책으로, 슬픔, 기쁨, 불안, 사랑, 감사, 행복, 애도, 책임, 고통, 우울, 울음, 이별, 두려움, 유머의 감정에 교훈을 주고 있다. 용서와, 책임에 대해 다룬 내용도 인상적이다. 그나 저나 나는 언제나 어른이 될까? Prologue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행복하게 살 수 있을까? 그것은 우리가 슬픔을 어떻게 맞이하고 어떻게 떠나보내느냐에 달려 있다. 어른으로 사는 것은 결코 슬픈 일이 아니다. 그것은 삶을 깊이 이해함으로써 인생에서 진정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를 알게 되고, 마음의 평화와 행복을 찾아가는 과정이다. 우리는 행복해지기 위해서 이 세상에 태어나지는 않았다. 태어난 것은 내 뜻과는 무관한 것이었다. 그러나 생명을 얻고 이 세상을 살아가면서 우리는 행복해지기를 바란다. 그것이 결코 지나친 욕심은 아니다. 인생이란 상실의 강을 열심히 헤엄쳐 왔기에 우리는 충분히 행복해질 권리가 있다. 그것은 그저 나를 짓누르는 과거의 무게와 나 자신에 대한 지나친 기대를 조금씩만 덜어내도 얻을 수 있다. ​ 듣기 싫지만 많이 하는 말 ‘나잇값’에 대하여 기대치에서 얼마나 벗어났느냐에 따라 ‘나잇값도 못하는 사람’이 될 수 있고, ‘나잇값을 하는 사람’이 될 수도 있다. 그렇기 때문에 나잇값은 나에게 지워진 책임과 의무의 양과 비례한다. 쾌락원칙에 따라 행동하면 아이이고, 현실원칙에 따라 행동하면 어른이다. 어른이 현실은 제쳐 두고 자기가 하고 싶은 것만 하려고 들면 ‘철이 덜 든 사람’이라 부른다. 사실 아무리 어른이어도 모든 것을 알고 책임질 수 있으며, 실수하지 않고 감정에 흔들리지 않으며 매사에 합리적인 사람은 없다. 아무리 어른이어도 빈틈이 있고 실수도 한다. 더구나 인간이기에 나이 들어도 감정의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다. 어른도 운다. 어른도 겁을 내고 무서울 때가 있다. 어른도 아이 같은 면을 갖고 있다. 그런데도 우리는 어린 시절 우리가 원했던 이상적인 부모의 모습을 어른이란 이름에 덮어씌운다. 어떤 상황에서도 흔들리지 않고, 든든하게 우리를 지켜 줄 수 있는 완벽한 부모의 모습을 기대하는 것이다. 어른은 별다른 게 아니다. 어른이란 제 인생의 짐을 제가 들고 가는 사람이라 할 수 있다. ​내 맘 같지 않은 사람들, 내 뜻대로 안 되는 세상 당신도 분명 기쁠 때가 있고, 슬플 때가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그 순간을 충분히 즐겨라. 다른 복잡한 생각은 떨쳐버리고 즐겁게 웃고 슬프게 울어 보라. 당신이 살고 있는 건 바로 그 순간이다. 그리고 삶의 묘미는 순간순간의 감정을 충분히 느끼고 즐기는 데 있다. 세상에 내 맘 같은 사람들만 있다면 정말 좋을까? 아니다. 그러면 아마도 내 안에 있는 모순과 불합리한 부분들을 말해 주고 교정해 줄 그 누구도 없을 것이고, 타인과 다른 나만의 정체성을 발견할 수가 없을 것이다. 결국 내가 누군지도 모른 채 살아갈 수밖에 없을 것이다. 다행히 세상 사람들은 내 맘 같지 않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다른 사람에게 계속해서 흥미를 느낄 수 있고, 서로를 발견해 가는 기쁨을 누릴 수 있다. 그리고 서로 보완하고 충고하면서 서로를 성장시킬 수 있다. 다양한 사람들과 변화무쌍한 관계를 맺게 되고, 그 관계 안에서 인생을 사는 재미를 느낄 수 있는 것이다. 왜 나는 갑자기 불안해지는 걸까? 불안장애는 가장 흔한 심리적 문제다. 전에는 더 힘든 일도 끄떡없이 잘 이겨냈는데, 아무것도 아닌 일에 이유 없이 초조와 불안감을 느끼고, 사람들 앞에 나서면 움츠러들면서 자꾸 사는 게 자신이 없어진다. 그럴 이유가 없다는 걸 뻔히 아는데도, 마치 창피한 일을 저질러 놓고 들킬까 봐 두려워 안절부절못하는 어린아이처럼 왜 그러는 걸까? 불안은 어느 정도까지 점점 강해지다가 시간이 지나면 스스로 사그라든다. 대부분 불안은 오래가지 않는다. 그리고 아무리 불안해도 죽지는 않는다. 걱정하는 것처럼 무슨 큰일이 생기는 것도 아니다. 누구나 한 번 이상 그런 불안을 경험했기 때문에 다른 사람들도 그냥 넘어간다. 그러니 절대 불안을 두려워하지 말라. 그리고 잘 생각해 보라. 불안의 근원은 분명 우리의 마음속에 있으며, 그것을 알아내는 것만으로도 불안은 줄어들 수 있다. 불안을 두려워하지 않는 것, 그것이 불안을 달래는 첫 번째 발걸음이다. 결혼, 그 미친 짓을 하기 위해 알아야 할 것들 결혼은 본질적으로 비극적인 관계다. 상대로부터 채워지지 않는 욕구들이 미움과 증오를 키우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결혼 생활의 본질을 설명할 때 미움과 증오라는 잔혹한 단어를 사용하는 것은 우리를 움츠러들게 만든다. 만일 자신이 다정다감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배우자에 대해 미움과 증오 같은 난폭한 감정이 생긴다는 것조차 스스로 납득하기 어려울 것이다. 사랑하는 사람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게 되면 사랑은 우리를 감사의 땅으로 이끈다. 그 감사란, 우리가 오래전부터 그토록 열망해 왔던 사람을 지금 현재 내 사랑 속에서 찾았다는 감사다. 과거에는 결코 가질 수 없었던 것들을 현재 사랑하는 사람과 같이 맞이하게 되었다는 감사다. 사랑하는 사람과의 성적 결합을 통해서 먼 과거에 경험했던 둘이 하나로 합쳐지는 환희를 경험한 것에 대한 감사다. 그리고 사랑하는 사람이 나를 알고 나를 이해해 주는 것에 대한 감사다. 내 병이 나에게 가르쳐 준 것들 그런데 어느 날 문득 내가 정작 잃어버리고 있는 것은 현재의 소중한 내 시간이요, 세상과 나 자신에 대한 믿음과 희망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단지 조금 불편하고 힘들며, 불확실해졌다는 이유만으로 그 소중한 것을 잃고 있는 것이었다. 그러자 나의 병은 앞으로 내가 잘 보살피고 다스려야 할 손님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왜 나는 아픈데, 남들은 꾀병이라고 말하는 걸까 어떤 일이 닥쳤을 때 지나친 걱정은 오히려 문제 해결을 어렵게 만든다. 그러므로 어떤 일이든 그 일에 국한해서만 생각하고, 다른 것들과 연관 지어서 복잡하게 생각하지 않는 게 좋다. 또 설령 그 일이 풀리지 않았다 할지라도 집에 와서, 혹은 쉬는 시간에는 그 일을 잊어버려야 한다. 걱정을 달고 다니면 쉴 수도, 숙면을 취할 수도 없게 된다. 충분한 휴식을 취하고 머리가 맑아진 다음에 일을 대하면 그 해결이 더 쉬워진다. 때론 ‘안 풀린다고 지구가 망하나?’ 하는 배짱도 필요하다. 그래서 우리 자신을 쉬도록 내버려 두어야 한다. 그럼으로써 만성적인 피로가 우리의 몸과 마음에 축적되지 않도록 하는 것, 이것이 만성피로증후군으로부터 우리 자신을 지키는 길이다. 왜 떠올리기 싫은 과거와 만나야 하는가 마음의 고통을 씻어내기 위해서는 우선 내 마음을 열 수 있어야 한다. 서로에게 상처를 내보이기, 그리고 자신의 상처에 대해 말하기. 이 과정은 정신분석과도 흡사하다. 정신분석 역시 신뢰할 만한 사람에게 마음을 열어 자신의 상처를 풀어가는 과정을 겪기 때문이다. 그처럼 마음을 열고 분노와 절망, 외로움 그리고 슬픔을 쏟아내고 나면 우리는 비로소 울 수 있게 된다. 과거의 고통과 원한을 씻어내고, 그것의 실체와 마주한 뒤 자신에게 상처를 준 사람들과 거기에 매달려 살아온 자신을 용서하고 화해하는 법을 배우는 것이다. 우리 모두는 행복해질 권리가 있다 우리는 행복해질 수 있다. 우리가 진정으로 행복해지길 원한다면 말이다. 그리고 우리는 이 삶이란 고된 강을 열심히 헤엄쳐 왔기에 충분히 행복해질 권리가 있다. 그것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다. 나를 짓누르는 과거의 무게를 조금 덜어내고 나 자신에 대한 지나친 기대를 조금 덜어내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 상처는 살아가는 힘이 될 수도 있다 어른이 되기 위해서는 애도할 수 있는 능력이 꼭 필요하다. 왜냐하면 크고 작은 애도의 과정을 거쳐야 우리는 비로소 어른이 될 수 있고, 세상을 살아가는 동안 우리는 계속 떠나보냄과 맞아들임을 반복해야 하기 때문이다. 애도를 한다는 것은 잃어버린 대상만을 애도하는 것이 아니다. 우리가 성장하는 동안 어떤 중요한 시기에 우리를 지배했던 태도나 사고로부터도 떠나오는 것을 의미한다. 성장한다는 것은, 어른이 된다는 것은 옛것을 보내고 새로운 것을 맞아들이는 과정이다. 친숙했던 것들과 이별하고 소중했던 것들을 떠나보내는 것은 고통스러운 일이기에 모든 성장에는 성장통이 따른다. 이러한 성장통은 우리가 자라고 성숙하기 위해 꼭 겪고 넘어야 할 산이다. 그 산을 넘은 뒤에야 우리를 기다리고 있는 새로운 것들을 맞아들일 수 있다. 어른 노릇, 그 어려움에 대하여 어른은 아이들이 마음껏 뛰놀 수 있는 울타리 역할을 한다. 어른은 아이들이 헤매고 있을 때 올바른 조언을 해 주고, 감정의 소용돌이에 휘말렸을 때 적절히 통제하며, 잘못했을 때는 야단을 친다. 아이들이 바라는 어른은 바로 이런 모습이다. 아이들은 자신의 말을 무조건 다 들어주는 어른을 원하지는 않는다. 잘못한 것을 빤히 아는데도 야단치는 어른이 없다는 것은 관심을 갖고 걱정해 주는 사람이 없다는 것이다. 이럴 때 아이들은 자신 안에 있는 파괴적이고 위험한 충동을 억제하지 못하고 어느 순간 밖으로 터뜨려 버린다. 진지한 관계를 싫어하는 당신에게 책임질 수 있는 능력은 아이와 어른을 구별하는 중요한 기준이다. 어른들은 자신의 행동이나 결정에 책임을 지는 대신 마음대로 생각하고 선택할 권리를 얻는다. 그러므로 책임감은 내 소중한 인생을 내가 주도적으로 살아가겠다는 뜻을 내포하고 있다. 또한 내 감정과 느낌과, 행동 하나하나를 믿겠다는 뜻도 담고 있다. 모든 사람은 각자 자기만의 사연을 갖고 있다는 사실을 잊지 말라. 오늘 당신의 인사를 받지 않은 상사는 아침에 부부 싸움을 했거나, 자기 윗사람에게 야단을 맞았을 수도 있다. 분명한 건 당신 탓이 아닐 가능성이 98%다. 그리고 설령 누군가가 당신에게 인상을 찌푸렸다고 해도 당신에게는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만일 그 사람이 친한 사람이라면 이유를 물어보면 된다. 그러나 그렇지 않은 사람이라면 무시하라. 그 사람은 당신 인생에서 중요한 사람이 아니니까. 모든 사람에게서 사랑받는 것이 인생의 행복은 아니다. 당신이 사랑하는 사람으로부터 사랑받는 것이 인생의 행복인 것이다. 어른으로 산다는 것 어른이 된다는 것은 그 꿈과 현실 사이의 차이를 인정하고 고통을 이겨내는 것이다. 건강한 어른은 떠날 수도 있고 혼자 남겨질 수도 있어야 한다. 또한 관계의 소중함을 깨닫고 다른 사람들과 다양한 관계를 맺으며 사랑도 하고 다른 사람에게 기댈 수 있어야 한다. 건강한 어른은 자신이 사랑스럽고 가치 있으며 성실하다고 느낀다. 그리고 자신은 세상에 하나뿐인 존재이며 어떤 상황에 있든 늘 흔들리지 않을 자아 정체성이 있음을 믿는다. 그리고 자신을 무기력하고 나약한 사람이 아닌 자기 인생을 결정짓고 책임질 줄 아는 씩씩하고 능동적인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건강한 어른은 인생을 단순하게 봤던 어린 시절에서 벗어나 다양한 세상 경험을 거치면서 여러 각도에서 인생을 폭넓게 바라본다. 또한 자신의 의견과 반대되는 것도 중요한 진실이라는 것을 깨닫는다. 건강한 어른은 양심과 죄책감을 느끼고, 후회하는 능력과 자신을 용서할 수 있는 능력도 갖고 있다. 그리고 즐거움을 추구하고 즐길 수 있으며, 고통에 맞서 싸워 헤쳐 나가기도 한다. 원하는 것을 어떻게 얻을 수 있는지 배우며, 이룰 수 없는 것은 과감히 포기할 줄도 안다. 건강한 어른은 잃는 것이 있으면 얻는 것 또한 있다는 사실을 안다. 잃어버림으로써 얻을 수 있고, 좌절에서 희망을 찾아내며, 불완전함 속에서 감사와 용서를 배운다. 건강한 어른은 인생이란 완벽하지 않으며, 사람은 혼자가 아니라 여럿이 더불어 살아가야 한다는 사실을 받아들인다. 내가 잘났다고 혼자 살 수 있는 세상이 아니라, 다양한 사람들과의 관계 안에서 서로 부딪히며 때론 승자가 되고 때론 패자가 될 수밖에 없는 복잡한 현실을 인정한다. 그리고 그 안에서 자신의 욕심을 적절히 조절하며 행복을 찾고 자신이 꿈꾸던 세상을 이루려고 노력한다. 어른이 된다는 것은 결국, 세상은 내가 바라는 대로 움직인다는 어린 시절의 전지전능함을 포기해 가는 과정이다. 그리고 무엇이든 가능할 것만 같았던 어린 시절의 꿈을 떠나보내는 과정이다. 또 어떤 잘못도 용서받고 어떤 나쁜 일이 일어나도 누군가 해결해 줄 것이라는 어릴 적의 기대를 포기하는 과정이다. 사랑하면 더 이상 우울은 없는 거라 믿는 당신에게 사랑이라는 감정에 행복만 깃들 수 없는 것은 사랑이 그 안에 좌절, 미움, 외로움, 인내 등의 여러 속성을 안고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아무리 두 사람이 사랑한다고 한들 그들은 한 몸이 될 수 없다. 우리가 그토록 바라던 완전한 합일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깨닫는 순간, 사랑 속에 자연스럽게 슬픔이 깃들게 된다. 그러나 사랑의 행복은 그 슬픔과 외로움으로 인해서 더욱 빛난다. 서로 다른 두 사람이 이 모든 한계에도 불구하고 서로를 받아들이는 것, 그리고 서로에 대한 굳건한 믿음 아래 배려와 이해를 나누는 과정은 그 자체로 우리 인생에서 맛볼 수 있는 가장 큰 축복이기 때문이다. 그것은 언젠가는 끝나 버릴 우리 인생을 영원하게 이어 줄 수 있는 가치가 되어 준다. 그리고 그 영원성은 언젠가 죽음으로 끝날 수밖에 없는 우리 존재의 우울함을 조용히 달래 준다. 눈물을 보이는 약한 사람이 되고 싶지 않은 당신에게 울음은 우리 마음속에 있는 분노와 공격성을 씻어 내는 배출구의 역할을 한다. 누구나 어릴 때는 발버둥 치고 소리치면서 운다. 그럼으로써 우리의 내부에 있는 분노나 공포를 방출하는 것이다. 그러나 성인이 되면 울 때 오히려 온몸의 근육이 이완되는 상태가 된다. 울 때는 교감 신경이 저하되고, 부교감 신경이 활성화한다. 이는 우리 안에 있던 공격성이 위험한 행동이나 동작으로 곧바로 튀어나오는 것을 한 박자 늦춰 준다는 의미다. 공격성이나 공포 혹은 슬픔이 눈물이라는 맑은 분비물을 통해 방출되는 것이다. 그래서 울고 나면 마음이 정화되는 것을 느끼게 된다. 좌절이나 슬픔을 경험할 때 해결되지 않은 공격성이 울음이라는 통로를 통해 빠져나가게 놔두는 것은 그래서 중요하다. 어떠한 이유에서든지 울음을 억제할 경우, 공격성을 방출하고 중화시키는 눈물의 기능이 억압된다. 그리고 방출되지 않는 공격성은 내부에 쌓여 결국 자신을 공격한다. 그래서 어느 순간 우울에 확 빠져 버리는 것이다. 우울은 때로 창조의 샘이 될 수 있다 천재 중에는 유달리 괴팍한 성격이 많다. 대부분의 천재는 날카롭고 예민한 안테나로 보통 사람들과는 다르게 사물을 지각한다. 흔히 광기나 우울, 자살 등의 수식어가 따라다니는 이들의 삶은 분명 보통 사람들의 그것과는 다르다. 그리고 이러한 특성은 그들의 가족과 친구에게뿐만 아니라 자신에게조차 고통이었지만, 그 대가로 인류는 세계를 변화시키는 힘을 얻을 수 있었다. 천재들의 삶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그들 대부분이 우울한 상처투성이의 어린 시절을 보냈음을 알 수 있다. 창조적인 사람들은 유달리 어린 시절에 부모를 잃은 경우가 많다. 어린 시절 부모를 잃은 작가로는 보들레르, 브론테 자매, 단테, 뒤마, 포, 톨스토이, 볼테르, 도스토옙스키 등이 있다. 바이런, 키츠, 워즈워스, 콜리지, 기번 등은 열다섯 살 이전에 모두 고아가 되었다. 루소의 경우에는 그가 태어났을 때 어머니가 죽어 버렸으며, 니체는 다섯 살 때 아버지가 미쳐 죽었고 일곱 살 때 동생이 죽었다. 스탕달은 어린 시절 어머니를 잃고 아버지로부터 버림받았으며, 카뮈나 사르트르 역시 모두 어린 시절에 아버지를 잃었다. 조이스, 파스칼, 프로이트 등도 실제 창조적이 된 것은 그들의 아버지가 죽고 난 이후였다. 어린 시절, 부모의 죽음은 아이에게 무엇보다 커다란 상실감을 안긴다. 그것은 아이의 무의식 속에 자신의 잘못으로 인해 부모가 떠나 버렸을 거라는 생각을 심어 준다. 그리고 아이는 그러한 상실감을 복구하고자 끊임없이 노력하게 된다. 그래서 세갈은 예술가들이 새로운 작업에 돌입할 때마다 이 유아기의 우울 위치에서 다시 작업하는 것이라고 했다. 예술가들에게 있어 창조나 창조적 행위는 완전한 만족을 주던, 그러나 분리되어 잃어버린 어머니를 복구하는 것이다. 그래서 창조는 예술가들에게 잃어버린 것을 복구함으로써 결핍을 채워 주고 영원성을 보장해 준다. 피카소는 이러한 것을 다음과 같이 설명한 바 있다. “내가 그림을 그릴 때마다 나와 같이 작업을 하는 누군가가 있다. 그러나 끝날 때쯤이면 나는 도와주는 사람 없이 혼자 작업하고 있다는 느낌이 든다.” 이별을 견딜 수 없는 사람들의 심리 이별과 상실은 우리의 의지와 상관없이 불쑥 다가오기도 하지만, 그 상실의 슬픔을 이겨낼 수 있는 힘은 바로 그 사람과의 추억으로부터 나온다. 그리고 추억을 소중히 간직하고 추억으로부터 무언가를 배울 수 있기 위해서 우리는 그 사람을 떠나보낼 수 있어야 한다. 길이 갈라지는 교차로에서 아쉬운 이별을 나누면서 말이다. 아직 자아가 충분히 발달하지 못해 죽음의 의미를 모르는 어린아이가 부모나 형제자매를 상실한 경우, 그 고통은 이루 말할 수 없다. 특히 어린아이의 경우 정신적인 지지자로서의 부모를 잃었다는 슬픔 이외에도 생존을 위해서 꼭 필요한 부모를 상실했다는 현실적인 문제에 부딪치게 된다. 그러면 이러한 상실에 대한 방어로서 더 이상 이별이 없는 세상을 꿈꾸게 된다. 슬픔 앞에서는 굳이 어른인 척하지 마라 때로는 혼자 조용히 슬픔에 잠겨 내리는 비를 맞듯 슬픔을 맞을 필요도 있지만, 그 슬픔 안에 너무 오래 머물게 되면 우리의 영혼은 병들고 생기를 잃게 된다. 혼자 힘으로 슬픔에서 빠져나오기 힘들 때 우리는 우리의 손을 꽉 잡아 주고 등을 토닥거려 줄 친구가 절실히 필요하다. 억지로 잊어버리려 애쓰지 마라 잃어버린 것에 대해 충분히 슬퍼하고 떠나보낸다면 우리는 그것을 가슴에 소중히 간직한 채 새로운 것을 향해 시선을 돌릴 수 있다. 기억과 추억이 소중한 이유는 그 때문이다. 하지만 나영 씨처럼 억지로 잊어버리려 하면, 기억을 지워 버리려고 하면 역효과가 날 뿐이다. 추억이 없는 그녀가 허공에 붕 뜬 느낌을 가지고 늘 불안에 시달렸던 것처럼 말이다. 우리는 때로 사랑하는 사람을 잃은 이에게 ‘그만 잊어버려라’라는 위로를 건넨다. 물론 그 말도 맞지만 잊고 싶어도 잘 잊히지 않는 게 있다. 그럴 때는 억지로 잊으려 애쓰기보다는 오히려 잃어버린 사람에 대해 회상하는 게 더 좋다. 사진이나 초상화, 일기장 등을 펼쳐 보면서 떠나가 버린 그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 그것은 우리에게 그가 실제로 살아 있었음을 확인시켜 준다. 그리고 실제로 그가 있었다는 사실은 우리를 위로하고 안심시킨다. 그러므로 떠나간 그에 대해, 우리가 잃어버린 것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을 두려워하지 말아야 한다. 부모 노릇이 힘들다는 사람들에게 잃어버린다는 것을 받아들이는 일은 무척이나 힘들다. 그러나 다시 찾을 수 없는 것에 매달리다 보면 결국 더 많은 것을 잃게 된다. 내가 의미 있게 써야 할 시간, 내가 더 사랑해야 할 사람들 그리고 나 자신까지도. 결핍되고 상실한 것을 스스로 찾아 메우려는 노력이 바로 사람이 성장하는 과정이다. 부모가 모든 것을 다 충족시켜 주면 아이는 성장할 필요를 느끼지 못하게 된다. 그러나 부모가 아이에게 감당할 수 있을 정도의 좌절을 주면 아이는 서서히 좌절을 견디는 법을 배워 나가고, 현실감을 얻게 되며, 스스로 필요한 것을 찾아가는 법을 배우게 된다. 그러면서 한 사람의 건강한 어른으로 성장하는 것이다. 두려움 없이 죽음을 맞이하는 법 인생을 어떻게 살아야 한다는 특별한 기준은 없다. 각기 자신이 살아온 방식대로, 아니면 자신에게 가장 만족스러운 방식대로 살아가는 것이 최선의 삶이다. 유쾌하게 나이 드는 법에 대한 이야기가 너무 싱겁다고 느끼는가? 하지만 나는 이렇게 말하고 싶다. 결국 중요한 것은 두려워하지 말아야 한다. 노인들은 이제껏 그들의 인생을 살아오면서 크고 작은 굴곡을 지나고 삶의 쓴맛 단맛을 다 경험하며 성실하게 자신의 운명을 개척해 왔다. 앞으로도 계속 그렇게 나아가면 된다. 우리가 어린 시절부터 쭉 그래왔듯이. 다만 ‘내 인생은 결국 내 책임’이라는 사실 하나만 정확히 알고 있으면 된다. 죽음은 삶의 일부다. 사람들은 살 때도 죽을 때도 인간의 존엄성을 잃지 않고 싶어 한다. 그러면 도대체 어떻게 죽음을 맞이해야 할까? 어떻게 죽음의 두려움을 극복하고, 죽음의 운명을 받아들이며, 죽음을 통해 우리의 삶을 성숙시키고 완성시킬 수 있을까? 내 슬픔을 등에 지고 가는 자, 친구에 대하여 죽음에 대한 두려움을 극복하는 방법은 거창한 것이 아니라 바로 순간순간의 삶 속에 있다. 지금 이 순간을 충분히 느끼고 감사하면서 살 수 있다면, 내가 세상을 떠날 때 내 손을 잡고 어린아이처럼 우는 나를 다독여 주며 나의 공포를 나눠 가질 사람을 만들 수 있다면, 그의 손에 내가 이제껏 들고 있던 삶의 배턴을 넘겨 줄 수만 있다면 죽음이 그리 두렵지만은 않을 것이다. 그리고 죽음은 끝이 아니라 삶의 연속된 한 부분이라는 사실을 받아들일 수 있다면, 죽어가는 나에게 ‘사랑한다’라고 속삭여 줄 사람과 내가 ‘사랑한다’라고 작별의 인사를 나눌 수람이 있다면 죽음은 끝이 아니라 오히려 내 인생을 최종적으로 완성시키는 과정이 될 것이다. 용서라는 것이 그를 사랑하라는 뜻은 아니다 몇 년 전, 나도 어떤 사람에 대한 미움 때문에 한동안 시달린 적이 있다. 누굴 미워하기 시작하니까 웃음을 잃게 되고 나중에는 식욕마저 떨어지고 불면증에 시달리게 되었다. 그러나 어느 날 새벽 서너 시까지 잠이 오지 않아 뒤척이다가 퍼뜩 '이러다 내가 망가지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 사람이 내게 그리 중요한 사람도 아닌데 그 사람에 대한 미움 때문에 나 자신을 파괴시켜서는 안 되겠다는 마음이 든 것이다. 그랬더니 솥단지처럼 부글부글 끓고 있던 내 속이 거짓말처럼 고요해졌다. 그 뒤로는 다시 단잠을 잘 수 있게 되었다. 용서란 바로 나 자신을 위해서 하는 것임을 깨달았던 것이다. 하지만 용서를 했다고 싫어하는 사람을 다시 사랑하게 되는 것은 아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용서를 너무 거창하게 생각한다. '원수를 사랑하라'라는 성경 구절처럼, 용서는 그 사람의 잘못까지 다 이해하고 인정하며 그 사람을 사랑해야 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 하지만 이러한 용서는 신만이 하는 용서다. 그러기에 우리는 너무도 감정적이고 인간적이다. 때로는 용서에 대한 이런 오해가 스스로를 괴롭히고 오히려 용서를 막는다. 왜냐하면 상대를 용서한 뒤에도 아직은 상대를 사랑할 수 없는 자신을 왠지 잘못하고 있으며, 거짓 용서를 한 것 같은 죄책감이 들기 때문이다. 우리 인간의 용서는 결국 상대도 나와 똑같은 어쩔 수 없는 인간임을 인정하는 것이다. 그래서 비록 내 마음속에 미움의 찌꺼기는 남을지라도 나의 정신적인 에너지를 나의 행복을 위해 사용할 수 있도록 만드는 것이다. 아마도 '원수를 사랑하라'라는 말은 우리가 신의 수준에까지 도달하지 못하는 존재이기 때문에 계속되는 가르침으로 이어 오는 지도 모른다. 나도 남에게 상처를 줄 수 있다 상처로부터 서로를 보호하려면 타인의 감정을 공감하고 배려할 줄 알아야 한다. 이때 공감한다는 것은 다른 사람의 슬픔이나 기쁨을 같이 느끼고 그 감정을 통해 상대를 이해하게 된다는 뜻이다. 그러나 공감은 동정과 염연히 다르다. 동정이 이차원적인 감정이라면 공감은 삼차원적인 감정이다. 동정은 상대의 슬픔과 불행 등의 감정을 마치 내 감정처럼 느끼며 같이 슬퍼하고 같이 분노하는 것이다. 그래서 내가 상대가 된 듯한 느낌을 갖게 하지만 거기에서 그친다. 하지만 공감은 감정이 같아지는 것에서 끝나지 않는다. 상대의 감정을 같이 느낀 뒤에 다시 자신의 마음으로 되돌아와 상대의 마음을 헤아린다. 그래서 상대가 왜 그런 처지에 놓이게 되었는지 그 상황을 깊이 이해하고 상대에게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알게 된다. 유머스러워한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라 "인간에게 가장 큰 재앙은 죽음이 아니라 살아가는 동안 내면에서 죽어가는 것들이다." 슈바이처의 이 말은 우리에게 가장 큰 재앙은 죽음이나 이별이 아니라, 그러한 인생의 비극 속에서 웃을 수 있는 능력이 없는 것이라고 일러준다. 웃음을 잃어버리면 감정적인 여유마저 잃게 된다. 건강한 어른으로 살아가려면 유머를 사용하고 즐길 줄 알아야 한다. 어른으로 살아가기 위해, 어쩔 수 없는 상실을 인정하고 흘려보내며 그 상실과 슬픔을 잘 감싸 안기 위해 우리에게는 유머가 꼭 필요한 것이다. 우울의 강을 현명하게 건너는 법 긍정적으로 생각하고 긍정적으로 느끼려 한다면 우리는 부정적인 측면도 객관적으로 관찰하고 받아들일 수 있게 된다. 또 그러다 보면 세상은 때로 우울하고 힘들기도 하지만 살 만한 가치가 있음을, 그리고 나에게 불어오는 바람을 맞을 수도, 피할 수도 있음을 알게 된다. 허락하지 않는 한 그 무엇도 우리를 계속 우울하게 만들 수는 없음을 기억하자. 그런 마음으로 우울의 강을 건너자. 그럴 수 있다면 우리는 우울을 두려워하지 않고 그 강점을 경험하면서 우울이 우리에게 주는 '성숙'이라는 선물도 받을 수 있을 것이다. 가끔은 어린아이처럼 놀아라 놀이는 기나긴 여정에서 우리가 겪어야 하는 갈등과 박탈, 상실, 그리고 갈망 등을 처리하는 중요한 역할을 한다. 또 대인관계를 맺고 유지하는 데도 중요한 틀을 제공한다. 특히 나이 든 뒤 비슷한 인생의 문제를 공유하는 사람들끼리 모임과 놀이는 그들의 내적 갈등과 외로움을 해결해 준다. 그리고 친구라는 공동체를 만들어 자칫 위축되고 소외되기 쉬운 나이 든 사람들을 외부 세계와 연결하도록 한다. 어른이 되면서 우리는 차츰 노는 법을 잊어버린다. '이 나이에', '남부끄러워서' 하면서 점잔을 빼고 체면을 차리느라 마음껏 놀지 못하는 것이다. 하지만 놀 수 없는 사람은 불행하다. 그는 더 이상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고 자기 자신 안에 갇혀 있는 사람이다. 그는 인생이 주는 가장 큰 즐거움 가운데 하나를 놓쳐 버린 사람이다. 그리고 결국 나중에는 웃음마저 잃어버리게 된다. 아무리 나이가 들어도 우리는 때때로 어른의 짐을 잠시 벗어 놓고 놀 수 있어야 한다. 마치 어린아이처럼 마음껏 자신을 풀어 놓고 깔깔대며 즐길 수 있어야 한다. 그래야 한바탕 신나게 놀고 난 다음 툭툭 일어나 다시 현실로 되돌아와서도 있는 힘껏 세상을 살아갈 수 있다. 꿈을 꾸어야 살 수 있다 자기만의 방에서 홀로 있는 시간을 갖는 것. 그것은 커다란 상실에 직면했을 때 꼭 필요한 일이다. 혼자 조용히 슬픔에 빠져 있는 시간을 가져야 하는 것이다. 그렇게 혼자 슬퍼하는 동안 마음은 과거의 기억을 정리하고, 자신이 맞이한 상실의 의미를 파악하며, 떠나간 대상을 마음속에 영원히 담아두는 작업을 하게 된다. 혼자만의 시간을 가져라 그러나 혼자 있는 것이 두려워 슬픔을 충분히 경험하지 못하고, 금방 새로운 사람을 찾아 나서거나 재빨리 다른 일에 몰두해 버리면 오히려 슬픔은 더 길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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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오리님이 이 책을 읽었어요
2년 전
중년의 분들이 읽으면 좋을 책. 내용은 좋은데 아직 연륜이 쌓이지 않아서인지 마음에 와닿지는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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