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에서 빠져나온 혀들이 공중에 둥둥 떠다니는 현상을 다룬' 독특한 알레고리 소설 '혀'로 2007년 「세계일보」 신춘문예를 통해 등단한 김희진의 첫 장편소설. 중세 유럽의 성을 연상시키는 거대한 저택에서 188마리의 고양이와 함께 사는 아름다운 주인공의 이야기이다. 김희진 작가는 <아무도 편지하지 않다>로 2009년 문학동네작가상을 수상한 장은진의 쌍둥이 동생이기도 하다.
- 때론 아무 말도 하지 않는 게 더 좋을 때가 있다. p.44
- 웃음을 참는 일도 누군가 옆에 있기 때문에 생긴다는 사실이 깨달음처럼 와 박힌다. p.46
- 징크스라는 건 우연의 반복이 만들어 낸 덫이다. 헤어 나오려고 하면 할수록 그 덫에 걸려 들게 만드는 묘한 마력의 소유자 징크스. p.68
- 꿈이란 건 이상하게도 그다음이 궁금해지는 순간 깨고 만다. 그 순간에 잠을 깨서 그다음이 궁금해지는 건지도 모르지만, 어쨌든 꿈은 꼭 중요한 타이밍에 주인공을 몰아낸다. p.72
- 그러고는 예전에도 몇 번 들락거린 방인데 그때는 왜 이런 냄새를 인지하지 못했던 것인지에 대해 곰곰이 생각했다. 그때 내가 내린 해답은 후각도 성장을 한다는 것이었다. 예전에 몰랐던 냄새에 매료되는 건, 사람이 자라면서 오감도 같이 자라기 때문이다. 입맛이 변하는 것도, 좋아하는 색이 달라지는 것도 모두 그 때문이다. 그게 바로, 인간이 세상에 진력내지 않고 계속 살아가게 되는 이유였다. p.77
- 그 아래는 "Ex-Libris"라는 꼬부랑글자가 쓰여 있다. 엑스리브리스. 그것은 '책으로 부터'라는 뜻의 라틴어로 아주 옛날부터 장서표에 쓰여 온, 그러니까 국제 공용의 표식 같은 거라고 엄마는 어린 내게 설명해 주었다. p.78
책 냄새에 반하던 바로 그날, 나는 이 방에서 처음으로 책을 꺼내 읽었다. 나는 그때 알았다. 책을 읽을 때는 누구나 혼자이고, 혼자 해야만 하는 행위 중에서 유일하게 외롭지 않은 것이 바로 책을 읽는 일이라는 걸. 그때부터 열심히 책을 읽기 시작했다.- p.78
다 이어지지 못한 물음에 아주머니가 고개를 가로젓는다. 무슨 말을 어떻게 해 줘야 할지 모르겠다. 그래도 뭐든 물어야 한다. 슬픔에 잠긴 사람에게는 오히려 그게 위로가 될 수 있다. p.101
- 여자들만의 공통된 습성은 어디에나 존재한다. 다른 여자에게서 내 여자를 떠올리게 만드는 구조가 우습긴 하지만 나쁘지는 않다. 왜냐하면 여자들만의 공통된 습성으로 인해 이별을 겪은 남자는 금세 다른 여자에게 익숙해질 수 있는 것인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그래서 다시 사랑을 하게 되고, 사랑의 상처는 그렇게 치유되는 것이다. 이 지구에 사랑이 넘쳐 나는 이유다. p.105-106
- 그는 이런 상황에서도 날 웃게 만들고 있었다. 그래서 얄밉다가도 다시 그를 바라보게 된다. 누군가 옆에 있다는 건 바로 이런 것이다. 웃음을 참아 내야 하고, 나도 모르게 신경질과 짜증을 부리게 되고, 무엇보다 말하고 싶지 않아도 말을 하게 된다는 것. 그는 그새를 못 참고 또 말을 걸어 온다. 저 끈질긴 근성을 어떻게 감당해야 할지 모르겠다. p.152
"전 제 얘기 남한테 하는 거 안 좋앟아해요."
"이해받고 싶지 않아요?"
"제가 왜 이해받고 싶을 거라 생각해요?"
"혼자잖아요."
"혼자라는 이유가 해받아야 하할 이유는 아니에요."
"혼자라 외로웠잖아요."
"혼자라고 다 외로운 건 아니에요. 두 명학하고 있어도 열 명하고 있어도, 아니 100명하고 있어도 외롭긴 마찬가지예요." p.153
- 겉은 멀쩡해 보여도 인간이란 모두 저마다의 아픔과 상처를, 고작 단추 몇 개로 숨긴 채 살아가고 있었다. 나만 그런 게 아니었다. p.155
- 집에 가족사진 있느냐고요. 없으면 빨리 찍으라고 종용하곤 하죠. 가족사진이 가족의 행복을 지켜 준 다고, 가족을 잃어버리지 않게 잡아 준다고 생각했거든요. 부적처럼요. p.156
"없긴 왜 없겠어요. 사연 없는 인생은 세상에 하나도 없어요." p.158
- 때론 진실보다 거짓이 더 잘 통할 때가 있는데, 방금 같은 상황이 그렇다. p.160
"가끔 어른이 더 아이 같을 때가 있잖아요." p.162
"그냥요."
"그냥이라고요? 여자들은 정말 이상해요. 왜 그냥이 이유가 되는 거죠?"
"그냥이라는 건 이유가 많다는 뜻이기도 하고 없다는 뜻이기도 하니까요. 근데 왜 그렇게 예민해요? 그냥이라는 말에 뭐 맺힌 거라도 있어요?" p.162
- 행복이 사라지는 순간은 누구에게나 눈물겹다. 불행은 결코 서서히 오지 않는다. 예고도 없이 어느 날 갑자기 들이닥친다. 단 몇 시간, 아니 단 몇 초만에 찾아오기도 한다. 그래서 불행은 늘 찰나적으로 맞닥뜨려야 하는, 세상에서 가장 어이없는 짓거리다. 불행이 배신적일 수밖에 없는 이유는 그 때문이다. 예고도 없는 그 찰나성! p.164
"그래도 그쪽은 얼마든지 다시 사랑할 수 있잖아요."
"더는 하고 싶지 않다면요?"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해야만 하는 게 사랑이에요. 하고 싶지 않아도 자기도 모르게 하게 돼 버리는 게 사랑이기도 하고요."
"그런가요?"
"공기를 마시는 것처럼 그건 당연한 거예요."
하고 싶지 않은 사랑을 죽을 때까지 해야만 하는 게 인간의 숙명이란 걸 이제야 깨달았다는 듯, 그가 씁쓸하게 웃는다. 실연연의 상처가 뼛속 깊이 파고든 모양이었다. p.169
"- 그리고 작가에겐 대표작이라는 게 있어요. 대부분 수많은 책 중에 단 한 권의 책만이 그 영광의 자리를 차지하죠. 결국 작가란 단 한 권의 책을 만들어 내기 위해 다른 책을 써내는 시행착오를 거치는 건지도 몰라요. 그래서 제가 낸 단 한 권의 책이 대표작이 되는 것도 나쁘지 않다고 봐요. 시행착오를 경험해 보지 못한 작가라니, 그것도 괜찮을 것 같지 않아요? 처녀작이 출세작이 되고 대표작이 된다는는 거요." p.192
"작가란 작품 뒤에 숨어 있어도 상관없다고 생각해요. 소설은 소설 그 자체만으로도 완벽한 그 무엇이에요. 어쩌면 소설에 있어서 작가란 장식에 불과할지도 몰라요. 그래서 멀리 떨어져 있자 생각한 것뿐이에요." p.193
- 절...... 사랑이라는 건 어느 날 갑자기 찾아오기도 하잖아요. p.247
- 한번 베스트셀러 작가는 앞으로도 계속 베스트셀러 작가가 되게 돼 있다. 구조적으로 그렇다. 새 작품이 전작에 못 미치더라도 70만이란 독자는 그녀의 이름에 이끌려 자동으로 책을 사 보게 돼 있다. 그건 베스트셀러 작가에 대한 독자들의 신뢰가 무한하기 때문이다. p.250-25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