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비시선 464권. 세상을 응시하는 예민한 감각과 탁월한 시적 감수성이 돋보이는 단정한 시 세계를 펼쳐온 정다연 시인의 저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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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약
서로에게 기대서 끝까지 (정다연 시집) 내용 요약
정다연 시인의 첫 시집 『서로에게 기대서 끝까지』는 우리 곁에 머무는 일상의 풍경과 그 속에 스며든 감정의 결을 아주 섬세하고 따뜻한 시선으로 포착해낸 작품집입니다. 이 시집은 거창한 관념이나 난해한 은유를 쫓기보다는, 누구나 한 번쯤 겪어보았을 법한 작고 소박한 순간들에 주목하며 독자의 마음을 어루만집니다. 시인은 타인과 맺는 관계의 거리감, 홀로 남겨졌을 때 느끼는 막막함,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시 누군가의 어깨에 머리를 기대고 싶어 하는 인간의 근원적인 고독과 연대 의식
축하는 축하를 해줄 수 있는 사람에게 받자
슬픔은 슬픔을 나눠 가질 수 있는 사람에게만 말하자
언젠가부터 나는 혼자 말한다
최악과 최고의 일이 동시에 벌어지자
사람들이 떠나간다
기쁜 거 아냐? 최악의 일만 벌어진다고 생각해봐
수화기 너머로 들려오는 목소리를 끊는다
나는 믿는다 미래에 올 당신들을
사랑한다
우주와의 아브라쏘
두 눈을 짓밟는 구둣발의 방식이 아니라 양 눈에 가득 담긴 구름의 방식으로
원 투 쓰리 프러시안 포 피루엣
춤추기 위해
슬픔은 혼자서만 하자
넘치는 기쁨으로
홀로 빛나자
내가 내 마음을 미워하는 날에도
백지를 잘라 꽃다발을 만들 수 있다
그 꽃을 심어 거대한 공중정원을 만들 수 있다
내 얼굴에 흐르는 금을 수평선으로 알고 헤엄쳐 오는 범고래에게
바다는 저쪽이야, 말할 수 있다
빈방에서
몇번이고 몇번이고
뒷모습을 보이고 돌아서고 정면으로 내게
다시 올 당신들과 아브라쏘
피루엣 포
프레스 식스 세븐 에잇
트럭처럼 들이받고 들이칠, 넘치는 장미가 내 몸 안에는 많다
- ‘러프 컷’, 정다연
빛이 지나치다.
지나치게 네가 온다.
나는 구멍을 하나 가지고 있다.
언제든 널 숨겼다가 꺼낼 수 있는,
창에 기댄다. 체리처럼 번져오는 노을, 노을을 따라 전속력으로 달려오는 사람, 색색의 플라스틱 빨대들. 그런 건 내가 훔치고 싶은 것이 아니다.
숨기고 싶은 것이 아니다.
물은 튼다
하루가 정직하게 차오른다.
보고 있어
한번은 말하게 된다.
수도꼭지를 돌리듯 네가 따뜻해진다면 좋겠다.
회오리치는 빗물 배수관의 소용돌이, 합쳐지는 꽃잎과 이끼들, 구덩이를 가득 채우고 솟아오르는 빛의 입자들이
너는 아니지만
흠뻑 젖게 된다.
기댄다.
네가 아닐 리 없지.
그렇지 않다면 이렇게 숨막힐 듯 가득 찰 리가.
- ‘사랑의 모양’, 정다연
폭우가 내린다
욕조에 눕는다
피부가 하얗게 저물어간다
지워지고 지워지다 사라질 수도 있겠다
나의 질량으로 당신이 넘쳐흐른다 수조의 돌고래가 되는 일은 한 인간이 평생토록 욕조 안에서 죽어가는 일 손끝으로 물을 휘젓는다 당신의 표정이 부드럽다 눈물이 무한대로 가득 차서 우리는 부력으로 떠오를 수 있다
당신과 오래 누워 있으면
해부된 생쥐처럼
금방이라도 쏟아질 것 같다
잘 보관된 표본
감정은
단정하다
폭우가 내린다 나와는 무관하게 손목과 다리가 씻기고 밤은 익어간다 당신이 차려놓은 꿈속으로 나는 빨려갈 것이다 빗물이 차오른다 몸이 떠오른다 당신이 가득하다
- ‘유리로 만든 관’, 정다연
잘 지내?
누가 묻지도 않았는데 잘 지내 답하고 싶은 순간이 있습니다
오늘은 당신에 대해 참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당신이 좋아하던 음식을 올려놓고 기름기 묻은 손을 세제로 씻으며
물기를 닦던 사소한 습관과 벨을 누르면 가장 먼저 반겨주던 당신에 대해 수화기 너머로 들려오던 음성에 대해
-
잘 지내고 있어?
벽장에 비치는 것이라곤 그림자 하나뿐인데
문득 묻고 싶은 순간이 있습니다
비를 모으고 모으다 못 견디고 무너지는 댐처럼
폭설에 쓰러지는 나무처럼
어떻게 지내
묻고 싶은 순간이
-
오늘은 당신에 대해 이야기를 참 많이 나누었습니다 당신이 좋아하지 않던 음식을 앞에 두고
왜 싫어했을까? 이렇게 먹기 좋은 것을
웃으면서
월화수목금토일
당신을 잊다가
- ‘월화수목금토일’, 정다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