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징비록 (국역 정본)
류성룡 지음
역사의아침(위즈덤하우스)
 펴냄
17,000 원
15,3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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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6쪽 | 2007-05-20
분량 두꺼운책 | 난이도 보통인책
상세 정보
<징비록>은 서책으로는 드물게 국보 제132호로 지정되어 있으며, 우리 역사에 드물게 보존되어 온 기록문학이다. 그 내용은 임진왜란 이전의 국내외적 정세로부터 임진왜란의 실상, 그리고 전쟁 이후의 상황에 이르기까지를 체계적이며 종합적으로 구성하고 있다.<BR> <BR> '징비懲毖'란 <시경> '소비小毖'편에 나오는 문장, '予其懲而毖後患(내가 징계해서 후환을 경계한다)'로부터 유래한다. 즉 자신이 겪은 환란을 교훈으로 삼아 후일 닥쳐올지도 모를 우환을 경계토록 하기 위해 쓴 글이다. 이러한 집필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저자는 자신의 잘못으로부터 조정 내의 분란, 나아가 임금에 대한 백성들의 원망 등 임진왜란을 둘러싸고 발생한 모든 일을 있는 그대로 기록하고 있다.<BR> <BR> 부산대학교 명예교수인 이재호 교수가 번역 했으며 생소한 어휘와 사물들에 대한 각주를 세세히 달음과 동시에 각종 지도와 사진, 그림자료들을 함께 실었다. 또한 원문을 병기에 한문을 아는 이들이 비교독해할 수 있도록 배려해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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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징비록 서설序說
자서自序

제1권
제1장_ 전란 전의 일본국과의 관계
제2장_ 우리의 국방 태세와 이순신의 기용
제3장_ 일본군의 침입과 서전緖戰의 붕괴
제4장_ 충주성의 패전과 수도의 위급
제5장_ 국왕의 피란과 구원군의 요청
제6장_ 수군의 승전과 전세의 만회
제7장_ 민중의 분기와 의병의 활동

제2권
제8장_ 명군의 내원과 평양 수복
제9장_ 전선의 교착과 화의의 제기
제10장_ 수도 수복과 국민의 적개심
제11장_ 강화 실패와 정유재란
제12장_ 이순신의 하옥과 수군의 복몰覆沒
제13장_ 적군의 재침과 지방 의사의 분전
제14장_ 이순신의 재기와 전세의 정비
제15장_ 적군의 철퇴와 수군의 최후 공격
제16장_ 국난을 극복한 이순신의 인품

녹후 잡기錄後雜記
제1장_ 전란 발생의 징조
제2장_ 전시 중의 각종 대비책
제3장_ 명·일 양국 강화 사건의 시작과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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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정보
류성룡
본관은 풍산이고, 자는 이현, 호는 서애다. 16세에 향시에 급제했고 25세에 별시문과에 병과로 급제해 승문원 권지부정자로 관직을 시작한 뒤, 여러 자리를 거쳐 1590년 우의정에 올랐다. 왜란에 대비해 형조정랑 권율과 정읍 현감 이순신을 각각 의주 목사와 전라도 좌수사에 천거했으며, 조선의 기존 방어체제인 제승방략 대신 진관제도를 주장했다. 1592년 임진왜란이 발발하자 도체찰사로 임명되어 군무를 총괄했다. 영의정이 되어 피난을 떠난 선조를 수행했으나 평양에 이르러 나라를 그르쳤다는 반대파의 탄핵을 받고 면직되었다. 평안도 도체찰사로서 명나라 장수 이여송과 함께 평양성을 수복한 뒤 충청·경상·전라 3도의 도체찰사가 되어 파주까지 진격했으며, 뛰어난 외교적 역량으로 명과 왜의 조선분할 획책을 저지했다. 신분이 아닌 전문성과 실무능력을 중시한 인재채용 정책을 주장했으며, 백성들을 위해 면천법.작미법 등의 각종 민생 개혁정책을 만들었다. 1598년 북인의 탄핵을 받아 삭탈관직당한 후 고향으로 돌아가 저술과 학문에 몰두했다. 1604년 다시 풍원부원군에 복직되었으나 이를 사양하고, 1607년 66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전쟁 후에 집필한 『징비록』『서애집』『신종록』『영모록』『운암잡기』등이 전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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