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움의 정원에서

크리스티앙 보뱅 (지은이), 김도연 (옮긴이) 지음 | 1984Books 펴냄

그리움의 정원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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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12.15

페이지

128쪽

이럴 때 추천!

외로울 때 , 힐링이 필요할 때 읽으면 좋아요.

#가을 #그리움 #삶 #슬픔 #외로움 #이별 #죽음

상세 정보

사랑하는 사람을 영영 떠나보낸 슬픔 속에서
지나간 추억을 되돌아보며 일군 작고 아름다운 그리움의 정원

프랑스가 사랑하는 시인이자 에세이스트, 크리스티앙 보뱅이 사랑하는 여인을 잃고, 그녀에 대한 그리움으로 가꾼 작은 글의 정원 『그리움의 정원에서』가 1984Books에서 출간되었다. 그녀의 이름은 ‘지슬렌 마리옹’, 1979년 가을에 처음 만나, 그로부터 줄곧 그가 가장 바쁘고도 고요한 방식으로 사랑한 여인. 1995년 여름 파열성 뇌동맥류로 세상을 떠나고, 같은 해 가을과 겨울, 크리스티앙 보뱅은 형언할 수 없는 상실감을 넘어서 그만의 섬세하고 부드러운 목소리로 여전히 생생한 그녀의 모습을 이 책 속에 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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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주연

@yijuyeonxm0c

프랑스의 시인이자 에세이스트인 보뱅의 이 글은 삶과 죽음을 지켜보고 사랑했던 여인에 대한 애도의 기록이면서, 애도에 대한 생각을 가다듬게 한 에세이다.

보뱅의 문장은 일상의 순간을 포착한 시적 언어의 문장이다. 읽으면 읽을수록 보뱅의 수사학이 놀랍기 그지없다. 에밀리 디킨스의 평전인 '흰옷을 입은 여인'을 읽을 때도 같은 느낌이었다.

지슬렌과 보뱅의 관계는 보통의 연인 이상의 정서적 교감을 보인다. 일상을 공유했던 기억의 서사들을 읽다 보면, 그들의 인연이 어떻게 시작되었을까 궁금해진다. 그저 단순한 호기심으로 유추해 보자면 지슬렌이 프랑스어 교사(국어 교사)였고 보뱅 역시 학생들을 가르쳤던 것 같은 묘사들로 보면 같은 직장 선후배의 관계에서 시작되지 않았을까 싶다.

지슬렌을 바라보는 보뱅의 관점은 객관성과 주관성을 오간다. 대립적인 명사와 동사가 같은 문장 안에서 표현되지만, 한 존재에 대한 깊은 응시와 사랑이 묻어난다.

43쪽 다시 말해, 너의 사랑과 지성을 사랑했다. 그 까닭은 진정한 사랑과 관능적인 지성과 몸소 체험한 자유만이 우리에게 고동치며 비상하는 단 하나의 심장을 만들어주기 때문이다.

지슬렌이 보뱅이 삶 속 함께 한 순간부터 자신의 삶과 분리되지 않는 일체의 삶 속으로 걸어들어간 느낌이다. 함께 아이들과 시간을 보내고 여행을 하고 일상을 보냈던 순간순간들의 기억들이 가득하다. 산책의 일상과 그 잠깐의 산책을 위해 애쓰던 지슬렌에 대한 기억에 관한 문장들은 섬세하고 다감한 눈길이 느껴진다.

사후에 누군가가 나를 이토록 세밀하고 맑은 수채화 같은 느낌으로 기억하고 애도할까를 생각하다가 반대로 또 나는 누군가를 이토록 맑은 수채화처럼 애도할 수 있는 기억과 글을 쓸 수 있을까 하는 생각으로 바뀐다.

조금씩 더 나이를 들어감에 따라 기억되는 것과 기억하는 것의 지분들이 바뀌는 듯하다. 기억되길 바라는 바라는 마음과 기억해야 할 마음을 동일한 지분으로 갖고 살아갈 수 있을까 하는. 보뱅의 글은 그런 마음을 한 번 더 들여다보게 한다. 기억의 밀도와 지분의 역학성이라고 이름 붙여보고 되뇌어 본다. 나에게 있어서는 부모이자 자식인 지금의 내 삶의 모습에서 그 두 관계의 밀도와 지분을 생각해 보게 한다.

애도가 더 일상성으로 다가온다. 그리고 그 애도의 하나인 '기억'하는 것은 곧 김연수 작가의 글과 말처럼 사랑의 기억이다. 사랑했던 기억. 그것이 삶에 있어서 전부라는 작가의 말이 보뱅의 이 에세이에 오버랩 되어 올라온다.

보뱅은 지슬렌의 죽음을 과거시제가 아닌 현재의 '지금'에서 '지금'이라고 말함으로써 영원한 기억으로 자신의 삶과 함께 하는 의미와 존재임을 다시 내보인다. '변함없이 계속 살아가라. 더욱더 잘 살아가라. 무엇보다 악을 행하지 말고 웃음을 잃지 말라.'라고 말하면서 애도의 과정을 밟는다.

필멸의 존재인 인간에게, 죽음으로 인한 상실은 어떤 것으로도 상쇄될 수 없는 슬픔이다. 그러나 그 상실의 과정과 마침에 대해서 보뱅과 같은 애도의 과정들을 행하거나 행하여 준다면 그런 슬픔마저도 애도의 과정을 통과하면서 사랑의 기억으로 지상에서의 삶을 끝나고 다시 만난 날을 약속할 수 있으리라.

보통의 애도에 관한 글들이 대부분 슬픔의 농도가 너무 짙어서 읽어 나가기가 주춤거리거나 멈춰 버릴 때가 있다.

그러나 보뱅의 이 에세이는 그런 전형성에서 벗어나, 상실의 슬픈 기억이 아닌 사랑과 함께 했던 삶의 충만한 기억으로, 남은 생애 동안에도 웃음을 잃지 않고 살아가겠노라는 고백으로 들린다.

죽음이라는 상실을 충만했던 일상의 사랑의 기억으로 가득했던 글이다. 함께 하지 않았다면 알 수 없었던 희로애락의 기억과 그림들이 교차하면서 생에 대한 긍정과 열정의 소유자였던 지슬렌에 대한 보뱅의 이야기이다.



14쪽
'지슬렌, 널 사랑해.' 과거시제로 이 말을 한다는 건 생각할 수 없다. 이제르의 생통드라 묘지에 놓인 꽃은 장례식 후 일주일이 지나 시들었으나 널 사랑한다는 말은 여전히 살아 있고, 이 말을 하는 시간은 더도 덜도 아닌 삶 전체의 시간을 뒤덮는다.


22쪽
그러므로 나는 이제 네 죽음 안에 감춰진 고귀하고 순수한 것을 찾는다. 어디서든, 심지어 최악이 곳에서도 찬탄할 만한 소재를 찾는 일, 나는 네가 가르쳐준 대로 글을 쓴다.


27쪽
완벽한 어머니란 너처럼 아무 조건 없이, 보상을 받을 생각도 하지 않을 사랑을 주고, 무엇보다도 아이들만을 위해 살지 않는다. 그녀들은 다른 곳에서도, 다른 사랑으로 산다.

다르게 말한다면, 가장 훌륭한 어머니는 아이만 생각하지 않는, 세상이 나쁜 어머니라고 부르는 존재라고 할 수 있다. 또 다르게 말한다면, 훌륭한 어머니는 여성, 애인, 아이가 되겠다는 강한 열망을 가지고 있고, 그 사실을 잊지 않는다.


30쪽
삶은 네 웃음처럼, 그리고 네가 살아 있는 동안 내가 감지할 수 있었던 네 목소리처럼, 결코 끝나지 않고 침묵 속으로 들어갈 때까지 계속 이어진다는 것을.


34쪽
삶과 마찬가지로 죽음에 있어서도 다른 이의 말에 귀기울이지 말아야 하며, 죽음을 말할 때는 사랑을 이야기하듯 부드러운 목소리로, 열정 어린 목소리로 말해야 한다는 것을. 죽음의 고유한 특성과 사랑의 감미로움에 어울리는 세밀한 언어를 선택해야 한다는 사실을.


39쪽
질투는 눈물과 비명으로 자신의 사랑의 크기를 증명한다고 믿지만, 각 사람이 가지고 있는 자기 자신에 대한 원초적인 편애를 표현할 뿐이다. 질투에 세 사람이 연루되는 건 아니다. 심지어 두 사람도 아니다. 불현듯 자신의 광기에 사로집힌 한 사람이 있을 뿐이다.


49쪽
죽은 자들에게 말하는 방법은 수천 가지가 있다. 우리가 그들에게 말하는 것보다 그들의 말을 들어야 한다는 것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어린아이의 순순한 마음이 필요하다. 그들이 우리에게 전하는 말은 단 한가지뿐이다.

변함없이 계속 살아가라. 더욱더 잘 살아가라. 무엇보다 악을 행하지 말고 웃음을 잃지 말라.


76쪽
그림을 아이의 눈높이에 딱 맞게 걸어야겠다는 생각보다 더 훌륭하게 지혜를 증명해 보여주는 것이 있을까. 지혜로움이란 가장 소중한 것을 다른 이에게 제안하는 것이며, 만일 그가 원한다면, 원할 때 사용할 수 있도록 모든 채비를 갖춰놓는 것이다. 지혜로움, 그것은 자유를 수반한 사랑이다.


90쪽
분명 나는 결혼생활에 대해 잘 알지 못한다. 사람은 경험으로만, 살다가 불현듯 붙잡는 인생의 파편을 통해서만 이해할 수 있다.


98쪽
큰 깨우침을 주는 아무리 위대한 텍스트들일지라도 처음 내리기 시작하는 눈송이들보다 더 환한 빛을 발하지는 않는다.


108쪽
현재의 순간이 우리가 죽는 순간과 조우할 때까지, 우리에게는 단지 현재의 순간만 주어져 있을 뿐이다. 사랑은 인생에서 가장 연약하고 부드러운 것들 가까이 머무르며 이 순간을 사용하는 가장 훌륭한 방법이다.


110쪽
너로 인한 그리움과 공허와 고통마저도 내 안으로 들어와 나의 가장 큰 기쁨이 된다. 그리움, 공허, 고통 그리고 기쁨은 네가 내게 남긴 보물이다. 이런 보물은 결코 고갈되지 않는다. 이제 내가 해야 할 일은 죽음의 시간이 올 때까지, '지금'에서 '지금'으로 가는 것뿐이다.


113쪽,114쪽
나는 사람들의 얼굴에 깊은 관심이 있어서, 시시때때로 그들의 얼굴을 응시하곤 한다. 응시는 뒤로 물러남을 전제로 한다. 어떤 것 안에 있으면 더는 그것을 보지 못하게 된다. 그러니 이 삶에서 뒤로 물러나 있어야 한다. 우리가 삶 속에 온전하게 있는 건 불가능하다. 삶과 죽음은 그로 인해 생기는 우리의 마음과 매우 밀접한 관계를 맺는다. 그리고 우리 안에는 언제나 거기에 없는 누군가, 바라보고 침묵하는 누군가, 인생의 사건과 무관한, 아주 거의 무관한 누군가가 있다. 1951년 봄, 나는 세상에 왔고, 잠자기 시작한다. 1979년 가을, 나는 너를 만나고 깨어난다. 1995년 여름, 나는 일을 잃고, 뼛속까지 사무치는 한기에 떨고 있다. 온종일 내가 하던 진짜 일은 너를 바라보고 너를 사랑하는 것이었다. 16년 동안, 그늘에 앉아 길에서 춤추는 너를 바라보았고, 그 일만으로도 나는 세상에서 가장 바쁜 남자였다.

그리움의 정원에서

크리스티앙 보뱅 (지은이), 김도연 (옮긴이) 지음
1984Books 펴냄

읽었어요
2023년 9월 18일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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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호

@gimyounghoozrs

온전히 한 방향으로 써내려간 책.
큰 줄기는 흐트러지지 않은 채
다양한 방식으로 추억한다.
모든 게 지슬렌을 향해 있고
모든 문장이 그녀에게 종속되고 자유롭고
애뜻하지만, 너무 무겁지 않은
사랑의 말이었다.

그리움의 정원에서

크리스티앙 보뱅 (지은이), 김도연 (옮긴이) 지음
1984Books 펴냄

👍 달달한 로맨스가 필요할 때 추천!
2022년 9월 9일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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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코댁

@haeeun

처음부터 끝까지 한 사람을 위한 책이다.
글이 어려워도 깊게 생각하지 않고
그냥 느껴지는데로 읽었다.

누군가를 위하여 이렇게 절절한 글을 쓴다는 것은
어떤 느낌일까

그리움의 정원에서

크리스티앙 보뱅 (지은이), 김도연 (옮긴이) 지음
1984Books 펴냄

2022년 5월 9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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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세정보

프랑스가 사랑하는 시인이자 에세이스트, 크리스티앙 보뱅이 사랑하는 여인을 잃고, 그녀에 대한 그리움으로 가꾼 작은 글의 정원 『그리움의 정원에서』가 1984Books에서 출간되었다. 그녀의 이름은 ‘지슬렌 마리옹’, 1979년 가을에 처음 만나, 그로부터 줄곧 그가 가장 바쁘고도 고요한 방식으로 사랑한 여인. 1995년 여름 파열성 뇌동맥류로 세상을 떠나고, 같은 해 가을과 겨울, 크리스티앙 보뱅은 형언할 수 없는 상실감을 넘어서 그만의 섬세하고 부드러운 목소리로 여전히 생생한 그녀의 모습을 이 책 속에 담았다.

출판사 책 소개

프랑스가 사랑하는 시인이자 에세이스트, 크리스티앙 보뱅이 사랑하는 여인을 잃고, 그녀에 대한 그리움으로 가꾼 작은 글의 정원 『그리움의 정원에서』가 1984Books에서 출간되었다. 그녀의 이름은 ‘지슬렌 마리옹’, 1979년 가을에 처음 만나, 그로부터 줄곧 그가 가장 바쁘고도 고요한 방식으로 사랑한 여인. 1995년 여름 파열성 뇌동맥류로 세상을 떠나고, 같은 해 가을과 겨울, 크리스티앙 보뱅은 형언할 수 없는 상실감을 넘어서 그만의 섬세하고 부드러운 목소리로 여전히 생생한 그녀의 모습을 이 책 속에 담았다.

“나는 이 책에서 동시에 발산되고 있는 두 사랑들을 보았다. 삶 전체를 향한 지슬렌의 사랑, 그리고 그런 지슬렌을 향한 보뱅의 사랑. (..) 삶을 사랑하는 사람을 사랑하는 사람의 글. 그리고 나는 이 사람들을 사랑하는 글을 쓰고 있다. 이중의 사랑의 기록들을 따라가며, 삼중의 사랑이 차가운 동심원처럼 숲처럼 피져나가는 것을 느끼며 내내 피곤한 미로 속을 헤맸다. 그 안에서 점차 단순해지고 맑아지는 무언가를 느끼면서.” - 김연덕 시인

나는 이 책에서 동시에 발산되고 있는 두 사랑들을 보았다. 삶 전체를 향한 지슬렌의 사랑, 그리고 그런 지슬렌을 향한 보뱅의 사랑. (..) 삶을 사랑하는 사람을 사랑하는 사람의 글. 그리고 나는 이 사람들을 사랑하는 글을 쓰고 있다. 이중의 사랑의 기록들을 따라가며, 삼중의 사랑이 차가운 동심원처럼 숲처럼 피져나가는 것을 느끼며 내내 피곤한 미로 속을 헤맸다. 그 안에서 점차 단순해지고 맑아지는 무언가를 느끼면서. ? 김연덕 시인

프랑스가 사랑하는 시인이자 에세이스트, 크리스티앙 보뱅이 사랑하는 여인을 잃고, 그녀에 대한 그리움으로 가꾼 작은 글의 정원 『그리움의 정원에서』가 1984Books에서 출간되었다. 그녀의 이름은 ‘지슬렌 마리옹’, 1979년 가을에 처음 만나, 그로부터 줄곧 그가 가장 바쁘고도 고요한 방식으로 사랑한 여자. 1995년 여름 파열성 뇌동맥류로 세상을 떠나고, 같은 해 가을과 겨울, 크리스티앙 보뱅은 형언할 수 없는 상실감을 넘어서 그만의 섬세하고 부드러운 목소리로 여전히 생생한 그녀의 모습을 이 책 속에 담았다.

상실은 문학에서 자주 등장하는 주제이다. 사랑하는 사람의 잔인한 죽음에 직면하여, 그것을 견디기 위해 혹은 그 사랑을 영원히 보존하기 위해 우리는 글을 쓰고 싶은 충동을 느끼는지도 모른다. 무엇을 쓸지는 분명하다. 사랑하는 이의 존재와 부재, 전해야 할 말과 끝내 전할 수 없어 택한 침묵, 고통과 그리움, 남겨진 시간과 영원. 그러나 이것들을 어떻게 쓸지는 저마다 다를 것이다. ‘나는 사랑하는 사람을 잃은 후에도 읽을 수 있는 책을 쓰고 싶다’(『환희의 인간』, 1984Books)라고 말한 바 있는 보뱅의 모든 작품의 근원에는 실상 사랑하는 이의 죽음이 담겨있다. ‘죽음을 말할 때는 사랑을 이야기하듯 부드러운 목소리로, 열정 어린 목소리로 말해야’ 하며, ‘죽음의 고유한 특성과 사랑의 감미로움에 어울리는 세밀한 언어를 선택해야’ 한다고 보뱅은 말한다. 이 부드러운 목소리, 열정 어린 목소리, 세밀한 언어는 말과 침묵 사이에서 태어나 고통을 넘어 영원한 사랑을 전한다.

보뱅은 함께했던 일들을 추억하며 ‘과거시제가 아닌 순수한 현재시제로, 오로지 현재의 시점으로 써야 한다’고 느끼는데, 때때로 어떤 기억들은 불완전하거나 단순한 과거 시제를 사용해 이야기하기도 한다. 과거시제의 사용은 시간적 거리를 나타내어 부재를 느끼게 하고, 현재의 사용은 지슬렌의 생생한 존재를 느끼게 한다. 이 시간적 불일치는 양쪽 모두를 강렬하게 만드는데, 말하자면 때로는 시간과 죽음의 지배가 지슬렌을 지배하기도 하지만 때로는 영원한 현재로 지슬렌을 불러오기도 하는 것이다. 그렇게 존재와 부재를 오가는 지슬렌은 보뱅에게 사랑 그 자체였다. 그리고 사랑은 여전히 현재로서 여기에 존재한다. 그리하여 보뱅은 묻는다. “죽음은 ‘사랑’을 빼앗을 수 없다. 그렇다면 도대체 죽음이 네게서 낚아챌 수 있었던 건 무엇이었을까?”

그의 시적 언어 속에서 말과 침묵은 서로 화해한다. 시간과 영원은 영원한 현재라는 개념을 중심으로 합쳐지고 ‘그리움과 공허와 고통마저도’ ‘가장 큰 기쁨이 된다’. 16년 동안 어디든 함께했지만 1995년 8월 12일만큼은 그럴 수 없었던, 자신은 넘어가지 못한 저편을 보기 위해 애를 쓰고 그녀와의 기억들을 현재시제로 이야기하며 부활의 작업은 이루어진다. 그렇게 쓰여진 보뱅의 글은 위안할 수 없는 슬픔에 머물지 않고 사랑하는 이의 환원할 수 없는 부분을 자신의 내면에 보존할 수 있게 해준다. 슬픔이 허무와 맞서 싸우는 방식이라면 보뱅에게 기쁨은 사랑하는 사람이 사는 영원으로 들어가는 방식이다.

지성을 강조하는 프랑스 문학계에서 이 책이 받은 사랑은 이례적인 것이었다. 무엇이 프랑스 독자들의 마음을 움직였던 것일까. 지슬렌은 보뱅에게 만약 자신이 죽는다면 그 후에 무엇을 쓸지에 관해 묻고서는 아래와 같이 당부한다.
“문학을 해서는 절대로 안 돼, 글을 써야지. 그건 전혀 다른 거거든. 약속해.”
보뱅은 지슬렌과의 약속을 지킨듯하다. 이것이 문학인지 아닌지는 더이상 그에게 중요한 것이 아니었을 테다. 그해 가을과 겨울, 그가 침묵 속에서 써야만 했던 글, 오로지 그리움으로 가꾼 작은 글의 정원. 이것은 문학이 아니다. 사랑하는 여인을 잃고도 끝없이 계속되는 현재 속에서, 여전한 사랑과 삶과 웃음에 대한 찬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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