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근 몰랐던 일본 문화사 – 조재면
저자는 일본에서 공부를 했고 일본 사회를 10년 이상 가르치고 있는 사람으로서 다양한 일본의 모습을 보여줘야 한다는 사명감이 이 책을 썼다고 밝힌다. 이 책은 일본에 대해 관심을 가지기 시작한 분들께 입문자용으로 추천 한다고 스스로 밝혔다. 그펀데 막상 읽어보면 일본에 대해 어느정도 안다고 생각하고 읽었는데 재미있고 몰랐던 내용들이 많았다. 일단 내용이 흥미롭고 쉽게 씌여졌고 재미있다.
좀비의원
일본 국회에는 좀비의원이라는 속칭이 있다. 일반적으로 좀비가 살아 있는 시체를 의미한다면, 정치계에서 좀비는 선거에서 낙선했다가 부활한 사람을 의미한다. 썩 유쾌하게 들리지 않는 이 표현은, 사실 원래 썩 나쁜 의미로 시작한 것은 아니었다.
일본의 중의원은 1994년 이래 두 가지 선거 방식으로 선출되고 있다. 소선거구제와 비례대표제인데요. 제도명만 보면 우리와 크게 차이가 없어 보이지만 조금 들여다보면 다른 부분들이 보인다. 가장 두드러지는 차이는 바로 중복입후보 가능 여부다. 중복입후보란 지역구에서 당선자가 한 명 나오는 소선거구제와, 각 정당의 명부에 근거하여 의석수를 배분하는 비례대표제에 동시에 입후보할 수 있는 것을 말한다.
쉽게 말해, 지역구에 출마하였다가 낙선하여도 비례대표로 당선이 가능하다. 예를 들자면 A정당 후보가 종로구에서 출마했다가 떨어졌는데 A정당의 비례대표 후보로 등록되어 있어 당선되는 것이 가능하다. 그리고 실제로 이런 방식으로 다시 당선된 의원을 비꼬아 좀비의원이라 하는 것이다. 물론 무조건 부활하는 것은 아니고 일정 이상의 득표(석패율)가 필요하다.
소선거구제는 영국 등에서 사용하는 제도인데요 이 제도의 가장 큰 단점은 낙선한 후보자에게 던져진 사표가 많다는 점이다. 사표가 많다는 것은, 국민들의 의견이 잘 반영되지 않는다는 뜻이기도 하다. 그래서 이런 사표를 조금이나마 반영하기 위해 시작한 것이 바로 중복입후보였던 것이다. ‘표를 많이 받았는데도 아쉽게 떨어진 사람은 국민의 지지가 높으니 당선시켜주자’라는 의도였다.
일부에서는 국민이 낙마시킨 후보를 다시 부활시키는 것이 도리에 맞느냐는 비판도 있다. 언론에서는 부활당선이라는 표현을 자주 사용한다. 소선거구제의 단점을 비례대표제가 보완하는 것이지만, 부활당선이라는 표현은 소선거구에서 패배한 후보가 부활했다는 부정적인 인식을 만들기도 한다. 물론 정치에서는 그런 인식을 이용해 해당 정치인의 약점을 잡기도 한다. 중복입후보로 여덟 번 당선된 의원도 있다.
욕심부리지 않는 득도한 젊은이들 。
득도한 것은 우리나라 청년들뿐만이 아니다. 소확행이라는 단어만 없었지 일본에도 득도한 세대가 있다. 이른바 사토리 세대다. 여기서 사토리(さとり)는 ‘득도, 깨닫다’라는 뜻이다. 학자마다 의견은 다양하지만 일반적으로 사토리 세대는 1980년대 중후반에서 1990년대 중후반에 출생한 사람들을 말하며, 2009년 야마오카 다쿠(山岡拓)의 《욕심부리지 않는 젊은이들(欲しがらない若者たち)》이라는 책이 출판되면서 특히 주목받게 되었다.
많은 언론과 서적 등에서 사토리 세대에 대해 그다지 물건을 가지고 싶어 하지 않으며, 자동차는 필요 없고 술도 즐기지 않고 익숙한 동네에서만 있으려 하며, 집에 틀어박혀 있는 성향이 있다고 이야기한다. 야마오카는 대략 2005년부터 젊은이들에게 그런 경향이 나타났다고 했다. 득도라는 표현은 젊은이들과 참 어울리지 않는다. 그렇기 때문에 사토리 세대는 인터넷상에서 더욱 반응이 컸고, 2013년 한 언론사에서 사토리 세대에 대해 연재하면서부터 본격적으로 알려지게 되었다.
그러면 사토리 세대는 어떤 배경을 가지고 등장했을까. 한 세대의 배경을 단순하게 볼 수는 없지만, 그들이 무엇을 보고 성장했는지 당시의 일본 경제 상황을 보면 조금은 이해할 수 있지 않을까?
1991년은 일본에서 부동산 버블이 붕괴한 해이다. 많은 사람들이 그해부터 일본 경제가 폭격을 받은 것처럼 한순간에 무너졌다고 생각하지만 사실 그렇지는 않다. 버블 붕괴와 더불어 그 이후 여러 복합적인 요인이 겹쳐지면서 장기적인 불황이 온 것이다. 버블이 붕괴된 1991년부터 중간중간 큰 문제들이 발생한 10여 년을 잃어버린 10년이라고 한다.
버블 붕괴의 여파는 1990년대 중반부터 본격적으로 표면화되었다. 그중에서도 1995년과 1997년의 기억은 조금 특별하다. 아마 이 두 해를 유쾌하게 기억하는 일본인은 별로 없을 듯하다. 불안한 경제와 흔들리는 사회. 이러한 모습을 보면서 자란 세대가 바로 사토리 세대다.
학업을 마치고 사회로 나온 사토리 세대. 그들을 기다리고 있는 현실은 어땠을까? 버블 붕괴와 장기불황은 일본 사회를 많이 바꿔놓았다. 일본은 일본식 경영이라고 하여, 종신고용제와 연공서열을 바탕으로 한 안정적인 고용과 노동을 자랑으로 여겨왔다. 버블경제가 붕괴되자 불황과 함께 파견사원이나 계약사원 등 비정규직이 증가하였다. 어느 사회에서나 젊은 층이 여기에 포함되는 경우가 많다. 일본에서는 당시 사토리 세대가 그 세대였다.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차이는 우리 사회의 문제이기도 하기 때문에 자세히 설명할 필요도 없을 것 같다. 비정규직은 경력을 쌓아서 이직하기가 힘들고 승진할 기회도 거의 없다. 쉽게 말해 일본 사회는 격차가 심해진 ‘격차사회’가 되었다. 격차사회라는 용어는 2006년 일본의 신조어・유행어 대상 후보에도 올랐다. 언제 그만둘지 모르는 비정규직, 또는 운이 좋아 정규직이 되었다고 할지라도 예전처럼 고용이 안정적이지 않은 상황에서 사람이 안정 지향으로 나아가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일지도 모르겠다. 크게 욕심내지 말고 현실에 안주하며 소소한 행복을 누리는 방향으로. 장기불황 속에서 힘내서 일해도 더 나은 풍요를 누리지는 못한다고 생각한 것일까?
일본 사회에서 사토리 세대에 관심이 높았던 이유도 이러한 성향이 경제와 소비패턴에 많은 영향을 주었기 때문이다. 자동차나 명품과 같이 비싼 물건 또는 비싼 소비재는 수요가 감소하였고, 사치나 허세를 부리기 위한 소비도 감소하였다. 사토리 세대가 스스로 물욕을 내려놓은 것도 있지만, 버블 붕괴 이후의 장기불황 속에서 일본 전체의 소비패턴이 바뀐 영향도 있었다. 불황이니 비싼 물건은 팔리지 않았고, 흔히 말하는 가성비 물건이 대세로 자리 잡았죠. 사토리 세대가 등장하면서 ‘코스파’라는 용어도 나왔다. 코스트퍼포먼스(cost performance)의 줄임말로, 가성비를 뜻한다.
오타쿠의 유래
덕업일치는 우리나라에서 만들어진 신조어다. 덕질과 직업이 일치한다는 의미로, 덕질은 좋아하는 일에 광적으로 빠져 있는 것을 뜻한다. 따라서 덕업일치는 관심사가 직업이 된 것을 의미한다. 좋아하는 일로 돈을 번다는 이 표현에는 그렇지 못한 사람들의 작은 부러움이 들어 있기도 하다.
하지만 오타쿠와 직업은 사실 공존하기가 쉽지 않다. 그 이유는 뒤에서 서술하기로 하고, 일단 오타쿠를 조금 더 이해하기 위해 1980년대의 일본을 살펴보겠다. 1950년대 후반부터 1970년대까지를 우리는 흔히 일본의 고도 경제성장기라고 부른다. 그 시기를 지나면서 일본인들은 많은 풍요을 누리게 되었다. 그리고 자본주의 2위라는 경제 규모와 그로 인한 자신감은 대중문화의 발전을 가져오게 된다. 동시에 독자적인 서브컬처도 성장했고, 그중에서도 특히 만화와 애니메이션은 그 대상이 어린이를 넘어 다양한 연령층으로 확대되며 성인 팬도 늘어나기 시작하였다.
이렇게 늘어난 팬들은 자신의 취향을 타인과 공유하기 시작했다. 상대방에게 “댁은 어떤 작품을 좋아하시나요?”라고 물었던 것이다. 여기서 상대방을 지칭하는 ‘댁’이 바로 ‘타쿠’이다. 여기에 존경어의 ‘오’를 붙이면 ‘오타쿠’가 된다. 그렇지만 일본에서도 상대방을 지칭하는 용어로 ‘오타쿠’를 쓰는 것은 일반적이지 않았다. 특히 젊은 10~20대에게 그랬다. 가령 우리나라의 10~20대가 상대방을 “댁”이라고 부르면 어색한 것처럼. 그리고 이 호칭은 1980년대 대중평론가 나카모리 아키오(中森明夫)에 의해 그들을 지칭하는 이름으로 굳어졌다.
이런 이야기들을 총 4가지 파트로 나눠서 재미있게 다루고 있다. 일본에 관심있는 사람이라면 한번 읽어볼 것을 추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