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먼카인드 // 뤼트허르 브레흐만
인간 본성의 사악함을 믿는 토마스 홉스는 리바이어던에서 '만인에 대한 만인의 투쟁상태'를 이야기한다. 인간의 선한 본성을 믿는 장자크 루소는 문명의 압력과 규제를 벗어나 인간 본성에 맞는 교육을 통해 이상적인 인간을 형성할 수 있다고 이야기한다. 인간은 환경에 따라 선하게 될수도 악하게 될수도 있다고 본 존 로크의 사상이 사회계약설의 기초가 되어 근대를 열었다.
하지만, 현대를 사는 지금까지 인간 본성의 사악함을 근거로 규제와 처벌을 요구하는 목소리와 인간의 선한 본성을 근거로 자유의지와 자율, 자치를 강조하는 목소리가 대립되어 왔다.
문명이란 아주 가벼운 도발에도 갈라져버리는 얄팍한 껍데기 표면에 지나지 않는다는 '껍데기 이론'에 근거한 수많은 억측과 오해들. 소설 '파리대왕'(조난당한 소년들이 서로 무자비해지는 모습)의 내용이 현실에서는 정반대로 나타났다던가, 스탠포드 교도소 실험(교도관 역할을 맡은 대학생들이 수감자 역을 맡은 대학생들에게 혹독하게 대하는 모습)과 스탠리 밀그램의 전기충격시험(교사역을 맡은 사람이 오답이 나오면 참을 수 없을 정도의 전기충격을 계속 높이는 모습)이 조작되었다는 사실들을 저자는 여러 자료를 통해 밝히고 있다.
'잔혹한 세계 증후군'을 조장하는 뉴스매체는 사회에 부정편향이라는 독을 퍼뜨리는 약이며, 그 증상은 냉소주의, 염세주의, 비관주의가 되기싶다.
냉소주의는 게으름의 또다른 단어이며, 이는 책임을 지지않기 위한 변명이라고 하는 작가의 말이 와닿는다.
이 책의 많은 부분이 논란의 여지가 있지만, 베스트셀러가 될 만한 '시대정신'을 갖고 있다고 여겨진다. "인간이 원래 다 그렇지" 라고 하면 할 일이 적어진다. "대부분 사람들의 내심은 고상하고 선한 의지를 가지고 있다"고 믿을때 나의 의지도 힘을 낼수 있을것이다.
# 집단내 성향별 발언권의 불균형
인간은 '내 편', '네 편'을 나누는 본능을 가지고 있다. 접촉을 하거나 유사성을 발견하거나 공통의 적(위험)을 가지게 되면 같은 편으로 뭉치기 쉽다. 그래서 전쟁 전선에 있는 사람끼리는 서로 다르지 않은 인간임을 확인하면서 유대감이 생겼을 것이다. 런던에 폭격이 떨어지거나 재난이 일어났을 때도 위험을 공유하기 때문에 각 정치 이념과 사상으로 분리되어 있던 사람들도 '내 편'으로 뭉치고 강한 유대감을 느꼈을 것이다. 만약 외계인이 지구를 침공한다면 역사상 가장 큰 지구촌 '우리 편'을 볼 수 있을 것이다. 인류 공통의 적이 생겼기 때문이다. 침공은 우리를 뭉치게는 하겠지만 우리가 원한다고 오는 것도 아니고 일어나더라도 위험한 일이다.
우리는 '내 편'의 영역을 넓히는 다른 방법을 찾아야 한다. 접촉을 늘리는 것이다. 그것은 주위 사람들과의 대화도 해당되지만, 시간과 공간을 가로지르는 책도 아주 유용한 도구가 될 수 있다. 생각의 다양성을 접할 수 있기 때문이다. 불교의 교리에서 '내 편'의 개념을 우주까지 확장하는 것에 대해서 본적이 있다. 그렇게 될 수만 있다면, 우주가 내 옥시토신 영향 범위 아래 들어오게 된다. 그런 사람들이 많아진다면, 저자가 바라는 세상이 오지 않을까? 그런데 그 경지까지 가는건 정말 어려울 것이다. 또한 책을 읽는다고 무조건 그런 방향으로 가는것도 아니다. 어떤 마음을 가지고 읽는지, 어떤 책을 읽는지도 중요하다. 그리고 어느정도 선천적인 기질도 있다고 본다. 히틀러와 스탈린도 독서광이었다.
'내 편' 영역이 좁거나 공격적인 사람이 인류에 아예 필요가 없을까? 나는 아니라고 본다. 사람은 개인으로 평가하면 안되고 집단에서 어떤 역할을 맡고 있는지를 봐야 한다. 원시시대에도 모든 걸 수용하고 신뢰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그걸 의심하는 사람도 있었을 것이다. 만약 그런 사람이 없었다면, 외부인들을 너무 아무 검증 없이 받아들이거나, 새로운 먹거리 (버섯, 식물)에 조심성 없이 접근해서 위험할 수도 있다. 5명 중 1명 정도는 비관적인 사람이 필요하다. (서로 다른 성향의 개체들이 뭉쳐 집단의 중립성을 유지하지 않는다면, 모든 개체가 중립적이어야 한다. 그것은 무작위 변동되는 유전자 구조로는 유지하기 어렵다.) 집단의 의견은 희석되어 적절한 판단을 내리도록 동작했을 것이다. 회사 회의에서 일부러 반대 의견을 내는 '악마의 대변인'을 두는 이유도 그런 것이다.
문명이 발전하기 전에는 그 1명은 폭주할 수 없었다. 동일하거나 비슷한 발언권을 가진 나머지 4명에게 막혔기 때문이다. 그런데 현대의 문제는 여기서부터 발생한다.
"대담한 행동은 대중매체가 막강한 영향력을 가진 현대사회에서 보상으로 돌아온다. 뉴스는 비정상적이고 터무니없는 것을 집중 조명하기 때문이다. 이런 유형의 세상에서 정상에 오르는 것은 가장 친절하고 공감력이 큰 사람이 아니라 그 반대인 사람이다. 오늘날의 세상에서는 가장 뻔뻔한 자가 살아남는다." - 휴먼카인드
그 1명이 더 높은 자리로 오를 수 있는 사회가 된 것이다. 그가 주도권을 잡고 독재를 해버리면, 집단에서 적절한 역할을 해오던 그의 생각과 발언은 지구를 위협하는 핵무기가 되어버린다. 이전에 4명 아니 수억 명도 이를 막지 못한다.
본래 집단에서 각 역할을 해오던 성향 사이 힘의 불균형이 생겼다. 그것은 문명이 만들어낸 군대고 권력이다. 저자가 말하는 진화적 부조화가 여기 있는 게 아닐까? 인류 유전자 풀에 있는 공격적이고 비관적인 DNA의 모수는 현대에 맞지 않다.
(2022.03.18에 쓴 독후감)
130권째
인간의 본성은 악한가? 선한가?
나는 성무선악설을 지향한다
이 책은 인간이 악하다고 생각한 본성에 관한 비관주의에 새로운 관점을 제시해주는 측면에서 좋다
전쟁에 대한 우리의 착각
하지만 그러한 이유로 모든 인류가 본성이 선하다고 할 수 없는 것 같다. 본성이 선하다는 혹은 악하다는 것의 설명들은 모두 귀납적인 추론에 불과한 것 같다. 결국 연역적 추론에서 인간의 본성이 악하지도 선하지도 않다면 결국 인간이 행하는.모든 행위들은 이 전제에 의해 설명되기 때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