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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량
보통인 책
출간일
2021.11.18
페이지
228쪽
이럴 때 추천!
답답할 때 , 에너지가 방전됐을 때 , 인생이 재미 없을 때 , 힐링이 필요할 때 읽으면 좋아요.
상세 정보
점점 자신감을 잃어가고 있다 느껴질 때
지금 나의 마음을 들여다보고 다시 일어나게 하는 책
문학평론가 허희의 첫 산문집. 2012년 《세계의 문학》 신인상을 받으며 등단한 이래 비평 작업을 통해 꾸준하게 목소리를 내온 그가 처음으로 타인의 글이 아니라 자신에게서 비롯된 글을 내놓는다. 그래서 이 책은 감히 예쁜 내일을 꿈꿀 수 없지만 그럼에도 오늘을 살아내야 하는 스스로를 바라보면서, “글을 읽고 쓰라”는 권유가 마땅한지 주저하다가 서투르게 타인에게 말을 거는 것보다는 스스로에게 먼저 말을 걸어야겠다는 마음에서 써내려간 고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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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세정보
문학평론가 허희의 첫 산문집. 2012년 《세계의 문학》 신인상을 받으며 등단한 이래 비평 작업을 통해 꾸준하게 목소리를 내온 그가 처음으로 타인의 글이 아니라 자신에게서 비롯된 글을 내놓는다. 그래서 이 책은 감히 예쁜 내일을 꿈꿀 수 없지만 그럼에도 오늘을 살아내야 하는 스스로를 바라보면서, “글을 읽고 쓰라”는 권유가 마땅한지 주저하다가 서투르게 타인에게 말을 거는 것보다는 스스로에게 먼저 말을 걸어야겠다는 마음에서 써내려간 고백이다.
출판사 책 소개
“우리는 왜 때때로 글을 읽고 때때로 글을 쓰는가?”
낙관은 너무 늦었고 비관은 아직 이른 삶에서
어렴풋한 희망을 포기하지 않으려는 노력에 대하여
“나는 스스로가 싫어지는 상황을 자주 경험한다. 내가 꿈꾸는 이상은 터무니없이 숭고한 데 비해 내가 실제 사는 현실은 비루하기 짝이 없어서다. 도무지 좁혀지지 않는 양자의 거리가 나를 좌절하게 만든다. 아무리 발버둥 쳐도 앞으로 나의 삶이 크게 나아지지는 않겠지. 이미 반쯤은 체념하고 있다.
그런데 나머지 반은 어떤가 하면 그렇지가 않다. 포기하지 못했다. 향상의 기대 없이, 나는 현재를 살아갈 수 없기 때문이다. 무엇이 되었든 조금 더 만족스러운 쪽으로 바뀌어 가리라는 희미한 희망이 나를 숨 쉬게 한다.”
문학평론가 허희의 첫 산문집. 2012년 《세계의 문학》 신인상을 받으며 등단한 이래 비평 작업을 통해 꾸준하게 목소리를 내온 그가 처음으로 타인의 글이 아니라 자신에게서 비롯된 글을 내놓는다. 그래서 이 책은 감히 예쁜 내일을 꿈꿀 수 없지만 그럼에도 오늘을 살아내야 하는 스스로를 바라보면서, “글을 읽고 쓰라”는 권유가 마땅한지 주저하다가 서투르게 타인에게 말을 거는 것보다는 스스로에게 먼저 말을 걸어야겠다는 마음에서 써내려간 고백이다.
희미함이 절망이 아닌 희망일 수 있도록,
우리는 타인에게 귀를 기울이고 자신을 고백한다
“힐링은 사람과 사람 사이를 시혜자와 수혜자라는 차별적인 위계로 설정한다. 그 범위 안에서 존재감을 확인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아파야 한다. 그래서 내게는 위로가 더 힘이 세 보인다. 어떤 책임이 아닌 사랑에 의해, 위아래가 아니라 옆으로 이동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사랑의 문법은 ‘그렇기 때문에’라는 가정이 아니라 ‘그럼에도’라는 역접과 결부되어 있다. 우리는 누군가를 ‘그래서’가 아니라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랑한다.”
책을 쓰는 일을 업으로 삼은 이들은 “문학이 무슨 쓸모가 있는가?”라는 질문을 종종 받는다. 근원적인 질문에 답하는 일은 언제나 버겁다. 그나마 세월의 더께가 글로 밀려 나올 수밖에 없는 창작자들이라면 저마다의 삶과 글을 증거로 내밀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자기라는 여과를 거쳐 타인의 목소리을 재배열하는 비평가들은 저 질문을 받고 소설가나 시인보다 훨씬 오래 주저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희미한 희망의 나날들》은 한 비평가가 자신이 왜 자주 읽고 또 때때로 쓰는지 오래 자문한 끝에 내놓은 답이다. 나아가 읽고 쓰는 것과 무관하게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사람으로서 처음으로 시도하는 일상에 대한 고백이기도 하다. 그래서 이 짧은 분량의 글이 가진 호흡은 깊고 서늘하다. 구체적으로는 소설 《빨강머리 앤》부터 영화 〈비포 선라이즈〉에 이르기까지 우리에게 비교적 익숙한 소설과 영화, 그리고 노랫말을 빌려 살아오며 마주해온 편린들을 이야기한다.
저자는 다음과 같은 고백으로 이야기를 시작한다. “내가 비평을 쓰는 까닭은 내 이야기를 하고 싶지만 끝내 직접 하고 싶지 않은 (무)의식에 바탕을 두고 있다. … 나는 그러한 용기가 없기에 경외하는 작가들을 평하는 척하며 슬며시 나 자신을 끼워놓을 뿐이었다.” 비평가란 스스로는 갇혀 있는 자기를 꺼낼 수 없기에 작품을 빌려 어떻게든 자신을 해명하고자 발버둥 치는 존재다. 그러한 노력들은 헛되고, 또 쓸데없다고 폄훼되지만 그들은 그것을 할 수밖에 없다.
《희미한 희망의 나날들》 또한 평론가로서 소설이나 영화 등을 통해 자신이 하고 싶은 이야기를 우회하는 형식을 취하는 듯하지만, 거기서 한 걸음 나아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왜 자신이 비평을 할 수밖에 없는지를 함께 드러내는 에세이적인 형식을 취한다. 예를 들어 〈공허를 부수는 이야기, 허무를 허무하게 하는 글〉에서는 ‘왜 글을 쓰는지’에 대한 질문에 매번 다르게 답한다고 하면서 여기에 매춘부와 작가 사이의 착종에 놓였던 넬리 아르캉의 삶을 덧댄다. 2001년 ‘창녀’라는 도발적인 제목의 자전소설로 데뷔한 그에 대해 저자는 이렇게 이야기한다. “타인을 통해 자기 자신을 발견하거나 혹은 상실한다는 점에서, 이자벨(아명)과 신시아(매음굴에서의 가명), 넬리(필명)은 결코 다르지 않았다.”
저자가 이 책을 통해 처음으로 자신의 이야기를 꺼내는 까닭도 바로 여기에서 비롯된다. 영화 〈미스트〉의 상황을 굳이 예로 들지 않더라도 인간은 막막함 앞에서 절망하지 않기 위해 상상하게 되고, 상상은 곧 비관으로 이어지며 결국에는 절망으로 치닫게 된다. 그러나 안개가 걷힌 실제 삶은 대개 완전한 희망도, 그렇다고 완벽한 절망도 아닌 흐릿한 그 무엇인가다.
그 희미함을 막막함이 아니라 낙관으로 살아내게 하는 것이 바로 타인과 자신에게 귀를 기울이는 태도다. 이러한 저자의 주제의식은 앞서 소개한 넬리 아르캉뿐만 아니라 자신에게 말을 거는 이가 스스로를 찾을 수 있도록 인도했던 마하엘 엔데의 모모와, 세상과 스스로를 끝내 포기하지 않는 자세에 대해 이야기하는 황정은의 글을 소개하는 데에 이르기까지 일관되게 이어진다. 이처럼 《희미한 희망의 나날들》에서 이야기하는 읽고 쓰기란 나의 범위를 확장해 누군가를 상상하도록 추동하는 행위이며, 저곳의 모르는 사람이 이곳의 나와 다르지 않다는 가능성을 잃지 않도록 소통과 공감을 지향하는 노력이다.
문학에게 쓸모를 묻는 세상에서,
공허를 공허하게 만들기 위해 읽고 쓴다는 것
“글은 현실에서 힘이 없다. 그러나 우리는 글을 통해 기억하고 재창조하고 타인을 껴안을 수 있다. 글은 세상에서 무력하지만, 그 세상을 품어내 또 다른 세상을 만들어낸다. 실재는 우리가 딛고 선 땅이 아니라 우리가 날아가려는 곳에 있다. 폴과 ‘나’가 헬싱키 로카마티오 일가를 만들어냈듯이 말이다. 쓸모없는 몽상 덕분에 그들은 끔찍한 현실에 무너지지 않았다. 그들은 최선을 다해 상상하면서 가장 불행한 시기를 가장 행복한 시기로 바꿔놓았다. 그렇게 그들은 공허를 공허로 부숴냈다.”
저자는 타인을 꾸준하게 읽고 대화하듯 글을 썼다는 고백을 통해 나와 당신, 기쁨과 슬픔 사이에 끼어 있는 불투명한 일상을 ‘그럼에도 불구하고’ 희미한 희망으로 받아들이자고 권유한다. 그리고 바로 그 지점에서 세상을 읽어 스스로를 정리하는 자기학대적인 행위인 집필과, 그 결과를 경청하는 독서라는 소통이자 착각의 의의를 찾는다.
넬리 아르캉은 첫 책을 내고 팔 년이 지난 다음 갑작스럽게 세상을 떠났다. 그러한 완결에 대해 듣고 우리가 우울에 빠지기보다 얄궂게도 위안이라는 불경한 심정이 든 까닭도 이 때문일 것이다. 얀 마텔과 김현 그리고 김수영의 입을 빌리자면 “글은 현실에서 무력하지만, 인간의 생에서 공허를 부수고 허무를 허무하게 만드는 것 또한 글이기 때문”이다. 넬리 아르캉은 자신과 대화하고 타인에게 손을 내밀며 허무와 싸웠기에 끝내 쓰러질 수도 있었다. 그런 의미에서 문학은 우주에 홀로 내팽개쳐진 우리에게 희미한 희망을 선사한다. 이 책의 제목이 ‘희미한 희망의 나날들’인 까닭은 바로 여기에 있다.
이 책에 담긴 담백하면서도 섬세한 사유들은 그의 바탕인 문학평론을 떠올리게도 하지만, 삶이라는 막막한 매 순간마다 주저앉으면서도 어떻게든 살아내려 노력하는 한 인간의 모습은 현학에 홀리는 교양 속물이 아니라 바로 지금 여기에서 일상과 버거운 싸움을 벌이는 우리와 포개진다. 그래서 작가는 원하지 않았을지도 모르겠지만, 그의 글은 그 자체로 어떤 위로가 되기도 한다. 여느 문학이 그러하듯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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