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기 사건을 벌이기 전 황 교수는 이미 한국에서 유명한 과학자였고 세계에서도 저명한 생물학자 중 한 명이었다. 그가 그런 위치에서 사람들의 관심을 크게 받고 있었음을 감안할 때, 어떻게 그렇게 노골적이고 부주의한 사기 행각을 벌이고도 무사할 수 있다고 생각했을까? 그에 대한 대답은 단지 황 교수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과학적 시스템의 붕괴로부터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우리가 앞에서 다루었듯이 과학적 시스템은 대체로 상호 간의 신뢰를 기반에 두고 있다. 모든 사람은 기본적으로 다른 사람들도 윤리적으로 행동할 것이라고 가정한다. 불행하게도 바로 이런 환경이 사기꾼이 마음 놓고 활개 칠 수 있는 조건이 된다. 기생충 같은 가짜들이 공동체의 집단적 선의에 편승하는 것이다. 황우석이 그렇게도 뻔뻔한 사기를 칠 수 있었다는 사실은 반대로 현실에서는 논문 검토자와 편집자가 얼마나 쉽게 속아 넘어가는지를 잘 보여주는 반증이다. 우리는 논문 검토자와 편집자들이 모든 과학적 발견에 매우 엄격한 회의적 태도를 취할 것이라고 굳게 믿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이들도 흥미진진하고 ‘획기적인’ 결과에 직면했을 때는 보통 사람들과 다름없이 잘 속아 넘어간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좋은 사례가 되었다.
편향은 인간 본성에 있어서 피할 수 없는 부분이다. 따라서, 우리가 하는 모든 일에서 편향을 근절시킬 수 있다고 생각한다면 너무 순진한 것이다. 하지만 우리에게는 좀 더 객관성을 높이기 위한 도구들이 있다. 통계 분석과 같은 도구들은 편향적인 인간의 손에 의해 결정이 내려지는 것을 피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그렇지만 여전히 우리는 통계적 숫자들도 얼마든지 입맛에 맞게 바꿀 수 있다는 것도 알게 됐다. 동료 평가 과정은 저자가 편향적인지 점검하는 역할을 해야 한다. 하지만 논문을 발표하기 위해서는 동료 평가자와 저널의 편집자를 설득해야 하므로 불편한 결과를 완전히 감추거나 혹은 선입견에 결과를 맞추는 일들이 실제로 벌어지고 있다. 과학적 신조, 정치적 편향성, 재정적 압박 또는 통계적으로 유의미한 결과를 보고 싶은 욕구로 생긴 편향들은 완전히 무의식의 세계에 머무를 수 있다. 무의식적이라는 점은 오히려 강력한 힘으로 작용하기도 한다. 자신의 논문을 동료 평가자와 세상이 납득하게 만들려면 먼저 자신부터 확신을 가져야 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편향들은 우리를 불안하게 만든다.
아주 오래된 철학적 질문이 있다. ‘왜 무(無)가 아니고 무언가가 있는 걸까?’ 우리는 과학적인 과정에 대해서도 비슷한 질문을 던질 수 있다. ‘왜 연구를 시작하면 아무것도 발견하지 못하는 일은 없고 항상 무언가를 찾는 일만 있을까?’ 독자들이 신문의 과학 페이지를 읽으면서 과학자들의 주장은 항상 검증되고 그들의 가설은 확실한 연구 결과로 뒷받침된다고 생각하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일이다. 흥미로운 것을 찾지 못한 연구가 신문에 나는 것은 닭에게 이빨이 나는 것만큼이나 드문 일이기 때문이다. 충분히 이해가 가는 일이다. 신문은 항상 ‘새로운’ 것을 싣고 있을 것이라는 기대를 사람들로부터 받기 때문이다. 신문은 ‘이미 일어난 모든 일에 대한 철저한 기록’이 아니다.
반면 과학 문헌은 신문과는 달리 ‘과학 과정에 일어난 모든 일에 대한 철저한 기록’이어야만 한다. 물론 현실은 다르다. 과학 문헌 역시 신문과 유사하게 새롭고 흥미로운 스토리를 편애하고 있다. 과학 저널을 읽어보면 사람들은 끝도 없이 긍정적인 연구 결과들이 발표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과학자들이 예측했던 일이 실제로 일어나거나 더 새로운 사실이 발견되는 경우에만 과학 저널에 실린다. 연구자들이 아무것도 발견하지 못하고 빈손으로 끝나게 되는 연구가 발표되는 경우는 매우 드물다.
우리는 NASA가 그러한 불충분한 연구 결과를 과장하는 것이 좋은 생각이라고 진심으로 생각했을 가능성도 무시해서는 안 된다. 가장 유력한 이유로는 NASA가 겪고 있던 재정적 압박을 들 수 있겠다. 모든 과학 기구들은 후원자들에게 그들이 가치 있는 일을 하고 있다는 확신을 주기 위해 열심히 노력하고 있다. NASA의 경우에는 그 대상이 미국 정부가 된다. 비소-생명체 연구에 대한 분석 논문에서도 지적됐듯이 NASA로서는 ‘지속적으로 자신들이 의미 있는 연구를 하고 있다는 이미지를 보여줄 필요가 있었던 것이다’. 이런 종류의 조급함이 극단으로 치달을 때 이렇게 과장된 기자회견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물론 새로운 연구 결과를 둘러싼 과장을 자제하고 우리가 알고 있는 것에 겸손한 태도를 취하는 것은 가뜩이나 지루한 과학을 더 지루하게 만들 수 있다. 하지만 거의 모든 상황에서 따분하지만 신뢰할 수 있는 결과는 흥미진진하지만 공허한 결과를 이기게 된다. 더 많은 무효 결과와 재현 연구를 출판하도록 장려하는 것이 우리의 지식 창고를 채우는 데 있어 훨씬 더 신뢰할 수 있는 방법인 것처럼, 과학을 제대로 평가하기 위해서는 장기적으로 불확실하고 예비적인 연구 활동의 본질에 대해 잘 이해해야 한다. 반짝이는 물건을 모으는 까치처럼 새로운 것을 선호하고 눈에 띄는 연구 결과에만 관심을 두려는 우리의 본능을 다스리고, 당장은 덜 흥분되더라도 좀 더 견고한 결과를 중요시하는 법을 배워야 한다. 다른 말로 표현하자면, 과학을 다시 지루하게 만들어야 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