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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통인 책
출간일
2009.6.3
페이지
264쪽
상세 정보
원시림 속 의사 슈바이처의 치열한 휴머니즘 기록을 담은 책. 슈바이처가 1913년 7월에 랑바레네에 도착하여 1917년 9월에 그곳을 떠나기까지 4년 반의 세월 동안, 원시림 속 의료 활동을 기록한 것이다. 6개월마다 유럽의 친구와 기부자들에게 편지 형식으로 쓴 보고서와 자발적으로 적어둔 수기에 의거했다.
이야기의 가장 큰 부분은 의료 활동이지만, 아프리카의 풍토에서 몸소 수많은 질병을 관찰하고 진료하는 동안 습득한 의학적 발견과 선교 활동, 인류학적 통찰 등이 담겨 있다. 이 책은 환자의 고름과 종기, 작은 상처, 고통으로 찡그린 표정 등 인간이 가장 비참한 순간을 살 때의 마음과 감정 상태에 대한 성찰에서 시작한다.
비좁은 카누 안에서 균형을 잡는 법, 강을 건널 때는 급물살을 피해 강둑에 최대한 붙어서 나아가야 한다는 것, 들짐승과 식물이 넘치는 곳이 한순간에 굶어죽기 십상인 곳으로 변하는 원시림, 햇빛의 날카로운 각도를 피해 어느 시간에 산책을 해야 한다는 등 생태와 생존을 논파하는 대목들이 수록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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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세정보
원시림 속 의사 슈바이처의 치열한 휴머니즘 기록을 담은 책. 슈바이처가 1913년 7월에 랑바레네에 도착하여 1917년 9월에 그곳을 떠나기까지 4년 반의 세월 동안, 원시림 속 의료 활동을 기록한 것이다. 6개월마다 유럽의 친구와 기부자들에게 편지 형식으로 쓴 보고서와 자발적으로 적어둔 수기에 의거했다.
이야기의 가장 큰 부분은 의료 활동이지만, 아프리카의 풍토에서 몸소 수많은 질병을 관찰하고 진료하는 동안 습득한 의학적 발견과 선교 활동, 인류학적 통찰 등이 담겨 있다. 이 책은 환자의 고름과 종기, 작은 상처, 고통으로 찡그린 표정 등 인간이 가장 비참한 순간을 살 때의 마음과 감정 상태에 대한 성찰에서 시작한다.
비좁은 카누 안에서 균형을 잡는 법, 강을 건널 때는 급물살을 피해 강둑에 최대한 붙어서 나아가야 한다는 것, 들짐승과 식물이 넘치는 곳이 한순간에 굶어죽기 십상인 곳으로 변하는 원시림, 햇빛의 날카로운 각도를 피해 어느 시간에 산책을 해야 한다는 등 생태와 생존을 논파하는 대목들이 수록되어 있다.
출판사 책 소개
1. 슈바이처는 왜 원시림으로 들어가 그들의 의사가 되었는가-이 책의 집필 동기
슈바이처가 알자스 지방의 고향 마을을 떠나 프랑스령 적도아프리카의 랑바레네(현재 가봉공화국)로 향한 것은 1913년 7월이었다. 의사학위를 받은 것이 그해 봄이었다. 1905년 서른 살의 나이에 교수직을 그만두고 의사가 되기 위해 7년간을 매진한 결과였다. 1904년 우연히 프랑스의 한 잡지에 실린 기사를 읽었다. 콩고 강 유역에 사는 아프리카 흑인들의 참상에 대한 기사였다. 당시 그는 스트라스부르 대학의 신학교 교수였고, 스트라스부르 성 니콜라이 교회의 부목사였고, 신학교의 책임자였으며, 바흐의 오르간 곡 연주의 권위자였다.
슈바이처는 프롤로그에서 이렇게 스스로 묻고 답하고 있다. “내가 어떻게 그렇게 할 수 있었을까?” 의사가 없는 곳에서 고통에 시달리는 원시림 속 흑인을 돕는 일이 인도주의적 과제로 여겨졌다. 원시림 속 흑인이 성경 속의 거지 라자로라면, 이를 방관하고 도외시하는 유럽인은 배부른 부자로 보였다. 육체의 고통은 인종을 막론하고 모든 인간에게 가장 절박한 실존이라는 깨달음이었다.
2. 치열한 휴머니즘과 그 기록-이 책의 특징
1913년 독일의 고향 마을에서 기차를 타고 출발하여, 프랑스 파리를 거쳐 보르도로, 다시 기차를 타고 포이약 항구에 도착하여 콩고행 증기선을 타는 여정이 책의 서두에 등장한다. 파리 복음 선교회가 랑바레네에 거처를 마련해주고 병원 건물을 짓는 것을 도와주기로 약속했다. 그러나 여행경비와 의료 활동에 필요한 물자는 스스로 충당해야 했다. 많은 친구들의 성금 모금이 있었지만, 자신의 저서 ??음악가-시인 요한 제바스티안 바흐??의 인세와 오르간 연주회에서 나온 수익금으로 마련했다. 당시 슈바이처는 유명 파이프오르가니스트, 특히 바흐의 오르간 곡에 능통했다.
배 이름은 ‘유럽’이었다. 혼잡한 소음과 짐꾼들의 외침 속을 지나 배에 올라타면서, 슈바이처는 하나의 계획을 세운다. “여기 함께 배를 타고 있는 우리 모두가 이 시기에 행하는 것을 기록한다면 과연 어떤 책이 될 것인가? 어느 한 부분도 그냥 대충 읽어 넘기지 못하리라!”
‘과연 어떤 책이 될 것인가?’ 그 대답이 바로 이 책이다.
집필 기간
1913년 7월에 랑바레네에 도착하여 1917년 9월에 그곳을 떠나기까지 4년 반의 세월 동안, 원시림 속 의료 활동을 기록했다. 6개월마다 유럽의 친구와 기부자들에게 편지 형식으로 쓴 보고서와 자발적으로 적어둔 수기에 의거했다.
이야기의 가장 큰 부분은 물론 의료 활동이지만, 아프리카의 풍토에서 몸소 수많은 질병을 관찰하고 진료하는 동안, 저자는 의학적 발견과 선교 활동, 인류학적 통찰에 대한 해박한 지식을 습득한다.
의학적 탐구
먼저 의학적 방면에서 그는 원주민에게 맞는 약과 치료를 개발하기 위해 물심양면으로 애를 쓴다. 당시 랑바레네 지방은 수면병이 크게 창궐하던 지역이라, 수면병에 대한 치료는 의료 활동의 관건이었다. 또한 피부병, 말라리아, 나병, 코끼리피부병, 열대성 이질 등 각종 질환이 유행했다. 열대 지방의 풍토적 특수성과 부족한 의료 물자를 감안할 때 치료약을 찾으려는 슈바이처의 열정은 인간에 대한 커다란 긍정 그 자체이다.
__체체파리는 흰옷을 피한다!
__아무 데서나 조는 사람은 수면병 초기증상일 수 있다!
__배를 젓다가 하마가 보이면 어떻게든 돌아가야 한다.
__변비 환자는 우선 니코틴 중독을 의심해야 한다.
__일사병은 잠복한 말라리아가 재발한 것일 수 있다! 그러니 말라리아와 똑같이 처방해야 한다.
인류학적 통찰
인류학적 통찰 또한 빛을 발한다. 유럽의 소송광(狂)은 아프리카 원주민에 비하면 한낱 순진한 어린애에 지나지 않는다. 한 번 소송이 걸리면 만사를 제치고 여기에 몰두한다. 닭 한 마리를 두고 마을 어른들이 모여 오후 내내 논쟁하는 것이다. 그러나 슈바이처가 보기에, 이들이 소송에 그토록 매달리는 이유는 “소송 중독이 걸려서가 아니라 정의감이 아직은 남아 있기 때문이다.”
원주민이 보기에 마취 상태는 죽은 것이나 마찬가지다. “의사선생님은 일단 환자를 죽이신 다음, 병을 고치셔.” 놀랍게도 원시림 속에는 아직도 식인 부족이 상존한다. 이곳에서 ‘실종’이란 말은 곧 ‘잡아먹혔다’는 뜻이다. 그리고 자칭 ‘랑바레네 병원의 수석 간호조무사’ 흑인 요제프 이야기. 병원에서 번 돈의 반을 양복과 구두, 넥타이와 설탕을 사는 데 써버린다. 그리고 백인 의사보다 훨씬 신사답게 차려 입고 다닌다.
선교활동과 연계
슈바이처의 의료 활동은 구미 여러 선교회의 선교 활동과 공생 관계를 맺고 있다. 기독교 선교 본부는 아프리카 원시림 속에서 그야말로 막대한 임무를 떠맡은 형편이다. 교회일 뿐만 아니라 학교이자 시장이며 농업 기지이다. 이런 선교 본부의 일원인 서양의사는 원주민에게 가장 현실적이고 직접적인 도움이 되는 존재이다. “우리는 모두 죽기 마련이다. 그러나 그를 위해 고통의 나날을 줄여줄 수 있다는 것, 이야말로 언제나 새로이 나에게 주어진 커다란 은총이다.” 백인과 흑인이 마주 앉은 병상에서 슈바이처는 “너희는 다 형제니라(마태복음 23장)”라는 말의 참뜻을 깨닫는다.
3. 슈바이처의 휴머니즘은 어디서 유래하는가-이 책의 출간 의미
‘슈바이처는 알자스 지방의 작은 마을, 카이저스베르크에서 루터교 목사의 아들로 태어났다.’
여기엔 여러 의미가 함축되어 있다. 알자스 지방은 독일과 프랑스의 국경지대여서 예부터 두 나라의 경제적, 군사적 쟁탈장이었다. 프랑스 쪽에서는 알자스, 독일 쪽에서는 귄스바흐라고 불렀다. 양쪽 문화가 혼재한 곳이었다. 즉 다른 타자에 대한 인정, 상대편의 신앙과 믿음에 대해 관용이야말로 사회질서의 근간이 되는 곳이었다. 제1차 세계대전으로 독일이 패배하면서 이곳은 프랑스의 영토로 편입되기에 이른다.
종교와 정신적 측면에서도 이곳에선 가톨릭과 개신교, 독일과 프랑스의 정서가 공존했다. 당시 두 종파는 한 교회 안에서 다른 시간에 다른 자리에 모여 예배를 보았다. 이렇게 예외적일 정도로 종교적 관용이 받아들여지는 곳에서 자라났다. 문화적/인식적 상대성이 지성의 계기가 되고, 보편적 신념 체계에 대한 열의가 자연스레 발생하는 곳이었다.
이런 사정이 생래적인 환경이었다면, 아프리카 활동 이후 슈바이처 삶의 궤적은 이것을 뛰어넘은 신념의 산물이다. 1917년 9월 제1차 세계대전의 와중에, 슈바이처와 그의 아내 헬레나 브레슬라우는 국적이 독일인 까닭에 프랑스령 랑바레네에서 추방당한다. 급기야 프랑스의 포로수용소에 감금당한다. 이 전쟁 중에 그의 어머니가 프랑스 군의 군마에 치여 죽는다. 이후 풀려난 슈바이처는 랑바레네 병원으로 돌아가 계속 활동하기 위해 프랑스 국적을 취득한다. 예사롭지 않은 선택이다. 한 열린 정신이 어떻게 형성되고 어떤 계기를 통해 단련되는가를 이 책은
구체적인 단서를 통해 증명한다.
‘이 책으로 말미암아 슈바이처가 다양한 각도로 사물을 투시할 줄 아는 인간임이 드러난다.’
의료 활동이 급선무였던 까닭에 한 의사의 휴머니즘 열정을 기억하는 독자들이 많다. 그러나 책의 곳곳에서 인간과 자연에 대한 세밀한 관찰과 자연과학적 지식을 만나다 보면, 생각이 달라질 것이다.
슈바이처에게 형이상학적 열정은 선험적으로 도달해 있는 것이 아니다. 19세기 말부터 20세기 초, 유럽 대륙의 지식인 사이에서 유행처럼 떠돌던 신대륙 원주민에 대한 동경, 낭만주의에 뿌리를 두고 있는 원시성과 자연 친화에 대한 신비감과는 다른 차원이다. 샤토브리앙과 루소에 시작하여 바이런, 스트린드베리 등 많은 지식인들이 상찬하고 수식했던 ‘고귀한 원주민’(noble savage), 즉 오리엔탈리즘의 기원이 된 그런 개념적 지식이 보이지 않는다.
슈바이처는 자신의 행복을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일 수 없었다. 일찍이 결심했다. 서른 살까지는 학문과 예술에 정진하고, 이후부터는 인류를 위해 봉사하는 삶을 살기로 했다. 이렇게 학문적 탐구와 실천 사이의 극명한 대립을 스스로 자각한 상태에서 아프리카로 출발한 것이다. ??물과 원시림 사이에서??는 프레이저의 1890년 작품 ??황금가지??처럼 책상물림 인류학자가 쓴 그런 학술적 저작이 아니다. 슈바이처는 파우스트처럼 행동하는 인간이었다.
이 책은 환자의 고름과 종기, 작은 상처, 우는 눈, 고통으로 찡그린 표정 등 인간이 가장 비참한 순간을 살 때의 마음과 감정 상태에 대한 성찰에서 시작한다. 비좁은 카누 안에서 균형을 잡는 법, 강을 건널 때는 급물살을 피해 강둑에 최대한 붙어서 나아가야 한다는 것, 들짐승과 식물이 넘치는 곳이 한순간에 굶어죽기 십상인 곳으로 변하는 원시림, 햇빛의 날카로운 각도를 피해 어느 시간에 산책을 해야 하며, 원시림 속 생활의 무서운 단조로움을 피하기 위해선 자주 어려운 철학책을 놓고 궁리를 함으로써 상쇄해야 한다는 등 생태와 생존을 논파하는 대목 등은 누구나 고개가 끄덕여지는 논리적 진술이다. 감상적 진술은 비정한 자연, 생사의 현장에 대한 절박한 입장 뒤에서 자제된다. 차라리 극명한 묘사와 사실적 관찰이 대부분이다. 윤곽이 뚜렷한 텍스트, 한 자연과학자의 탐사 수첩에 가깝다.
종교적 선각자, 휴머니즘의 투사라는 슈바이처의 이미지에 사로잡힌 독자에게 이 책은 그것이 추문이라는 것을 알게 해준다. 슈바이처는 부득이하게 선교 단체와 협력하여, 그의 표현대로 ‘공생 관계’로 의료 활동을 펼치지만, 그는 늘 꿈꿨다. 한 개인으로서 그리고 자유인으로서 헌신하는 사람이고 싶었다.
“세계의 인도주의 과제는 특정 국가나 종파의 분자로서가 아닌, 동류인 인간으로서 수행해야 한다.” 우리는 동류라는 것. 살아 있는 모든 육체, 병의 근원이 되는 바로 그 몸은 모든 인간에게 똑같이 주어진 것. 아프리카 흑인의 몸은 유럽인의 몸과 다르지 않다는 것. 사회문제와 전통과 윤리는 각각 처한 곳에 따라 달라지지만 육체의 고통은 한가지라는 것. 고통이야말로 인간의 지배자라는 것. 이렇게 신념의 내용은 극히 인간적인 것이었다.
이 책에서 언급된 시기는 슈바이처의 생애에서 최초로 아프리카를 접하던 시절이다. 모험과 현장의 급박함 속에서, 물질적인 극빈 속에서 오히려 놀라운 성과를 얻을 수 있음을 믿기 시작하던 무렵이다. 아직 확신으로 무르익지 않던 때라서 의심과 인간적인 약점을 감출 수 없던 나날이었다. 한 휴머니즘 투사가 태어나기 시작하는 태동기, 구체적 각성이 일어나는 수많은 계기와 작은 과정을 가장 정직하게 기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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