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과 원시림 사이에서

알베르트 슈바이처 지음 | 21세기북스 펴냄

물과 원시림 사이에서 (원시림 속 의사 슈바이처의 치열한 휴머니즘 기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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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6.3

페이지

26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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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시림 속 의사 슈바이처의 치열한 휴머니즘 기록을 담은 책. 슈바이처가 1913년 7월에 랑바레네에 도착하여 1917년 9월에 그곳을 떠나기까지 4년 반의 세월 동안, 원시림 속 의료 활동을 기록한 것이다. 6개월마다 유럽의 친구와 기부자들에게 편지 형식으로 쓴 보고서와 자발적으로 적어둔 수기에 의거했다.

이야기의 가장 큰 부분은 의료 활동이지만, 아프리카의 풍토에서 몸소 수많은 질병을 관찰하고 진료하는 동안 습득한 의학적 발견과 선교 활동, 인류학적 통찰 등이 담겨 있다. 이 책은 환자의 고름과 종기, 작은 상처, 고통으로 찡그린 표정 등 인간이 가장 비참한 순간을 살 때의 마음과 감정 상태에 대한 성찰에서 시작한다.

비좁은 카누 안에서 균형을 잡는 법, 강을 건널 때는 급물살을 피해 강둑에 최대한 붙어서 나아가야 한다는 것, 들짐승과 식물이 넘치는 곳이 한순간에 굶어죽기 십상인 곳으로 변하는 원시림, 햇빛의 날카로운 각도를 피해 어느 시간에 산책을 해야 한다는 등 생태와 생존을 논파하는 대목들이 수록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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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경제신문 펴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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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예거는 기묘한 예감에 사로잡혔다. 10대 초반 무렵, 부모님이 이혼하면서 누구와 살고 싶은지 그에게 물어봤을 때도 이와 비슷한 느낌이었다. 아니면 고등학교를 졸업하면서 대학 장학금을 받기 위해 육군에 입대하기로 결정했을 때도 느꼈던, 뒷걸음질치고 싶은 절박한 느낌. 지금 자신이 운명의 분기점에 서 있다는 사실이 확실하게 느껴졌다. 오른쪽과 왼쪽, 어느 쪽을 선택하는지에 따라 그 후의 인생이 완전히 달라지리라.

📃 불행이라는 존재는 그것을 보는 타인 입장인지, 직접 겪는 당사자 입장인지에 따라 완전히 견해가 달랐다.

📃 겐토는 어릴 적부터 아버지를 존경해 본 적이 없었다. 모든 일에 부정적이며 배배 꼬인 아버지는 대학 교수라는 직함을 가졌지만 어른으로서는 실패한 인생처럼 보였다. 그래서 바로 30분 전, 아버지가 잠든 관에 꽃을 채워 넣기 시작했을 때 슬픔인지 뭔지도 모르겠는데 눈물이 왈칵 솟아올라서 놀랐을 정도였다. 이것이 혈연인가. 그저 안경 안쪽에 묻은 눈물을 닦으며 생각했다.

📃 겐토는 화로 앞에 서서 유골이 된 고인을 맞이했다. 유백색의 뼈가 단상 위에 흩어져 있는 모습은 너무나 초라한 나머지 살풍경해 보였고 한 사람의 인간이 이 세상에서 소멸했다는 사실을 그대로 말해 주고 있었다.

📃 사실 진로는 아무래도 상관없었다. 박사 과정으로 진학하려고 생각한 이유는 그저 사회에 나올 각오가 되지 않았기 때문이었고, 연구직에 딱히 매력을 느낀 것도 아니었다. 오히려 대학에 들어간 이래로 줄곧 진로를 잘못 잡은 것이 아닌가 하는 느낌을 받고 있었다. 약학이나 유기 합성이 재미있다고 생각한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달리 할 줄 아는 일이 없으니까 어쩔 수 없이 계속 하고 있는 것이었다. 이대로 20년만 지나면 아버지처럼 과학계 곁다리에 맴도는 하찮은 연구자로 남게 되리라는 것은 불 보듯 뻔했다.

📃 하지만 납득할 수 없는 불운이었다. 리디아와 결혼하지 않았다면, 아이가 불치병으로 고통 받을 일이 없었을 터였다. 마찬가지로 리디아도 남편에게 책임을 전가하고 싶었을 것이다. 죄책감이 그들 사이를 끊임없이 오갔다. 상대에게 던진 공격의 칼끝이 같은 날카로움으로 자신에게도 파고들었다. 그럴수록 서로가 불행해진다는 것을 알면서도 멈출 수 없었다.

📃 도중에 들렀던 모텔에서 차를 멈춘 아버지가 혼자 프런트에 가서 체크인 수속을 마치는 것을 예거는 뒷자리 창에서 바라보고 있었다. 카운터를 사이에 두고 담소를 나누는 두 어른. 뒷주머니에서 꺼낸 지갑. 사인을 하기 위해 받은 볼펜. 소년이었던 예거는 언젠가 자신도 아버지가 되어 저 역할을 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본보기여야 할 존재는 주어진 책임을 수행하지 않은 채 가정을 떠났다.

📃 어찌되었건 인간이라는 동물은 원시적인 욕구를 지성으로 장식해서 은폐하고 자기 정당화를 꾀하려는 거짓으로 가득한 존재였다.

📃 루벤스의 눈에 비치는 모습은, 누구나 마음속에 야만적인 욕구가 잠재되어 있어도 생활과 잘 융화시켜 선량한 시민으로 지내는 사람들의 일상이었다. 이것이 미국이었다. 번즈 정권은 이 미국을 모욕하고 있었다.

📃 이 어리석은 짓을 근절하려면 우리 자신이 멸망의 길을 선택하는 수밖에 없었다. 다음 세대 인류에게 다음을 부탁할 수밖에.

📃 그리고 저열한 오락의 발신자와 수신자는 학살자들과 똑같은 생물종이면서도 자기만은 다르다고 생각하고, 입으로만 세계 평화를 부르짖으며 만족을 느낄 터였다.

📃 가드너가 정면으로 번즈를 쳐다보았다. 과학 고문의 인상이 변하기 시작한 것이 느껴졌다.

“대통령 각하. 각하께서는 과학자라는 인종을 잘 모르시는군요. 우리는 특별한 욕심에 사로잡힌 인간입니다. 우리의 본능적인 욕망이란, 지적 욕구입니다. 그 강력함은 보통 사람들에게 있는 식욕이나 성욕과도 같거나 그 이상입니다. 우리에게는 날 때부터 무언가를 알고 싶다는 욕망이 있습니다.”

말하는 동안 나이 많은 과학자의 눈이 비열한 빛을 발했다. 야만스럽게까지 느껴지는 굶주린 눈빛이 경악스러웠다. 온후하고 독실한 가면을 벗어던진 멜빈 가드너라는 인간의 본성이 드러났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거짓으로 광분하는 탐욕스러운 이들과는 달리 박사는 외양으로 본성을 감추려는 교활함을 가지고 있지는 않았다. 과학자는 숨김없이 정직하게, 그리고 노골적으로 지나치게 강한 욕망을 얼굴에 드러냈다.

“우리는 다른 누구보다도 알고 싶어 합니다. 무수하게 숨겨져 있는 수수께끼를, 우주의 전모를 기록하는 이론을, 아니면 생명 탄생의 비밀을. 사실 제가 가장 알고 싶은 것은 그런 것이 아닙니다. 제가 알고 싶은 것은 인간입니다. 호모 사피엔스의 뇌는 우주를 해명할 정도의 지성을 갖추고 있는지, 아니면 영원히 우주를 이해할 수 없는 것인지. 자연을 상대로 한 두뇌 싸움에 언젠가 승리할 수 있을지.”

📃 “인간은 자신도, 다른 인종도 똑같은 생물종이라고 인식하지 못하네. 피부색이나 국적, 종교, 경우에 따라서는 지역사회나 가족이라는 좁은 분류 속에 자신을 우겨넣고 그것이야말로 자기 자신이라고 인식하지. 다른 집단에 속한 개체는 경계해야 하는 다른 종인 셈이야. 물론 이것은 이성에 의한 판단이 아니라 생물학적인 습성이네. 인간이라는 동물의 뇌는 태어나면서부터 이질적인 존재를 구분하고 경계하게 되어 있어. 그리고 난 이거야말로 인간의 잔학성을 말해 주는 증거라고 생각하네.”

📃 “하지만 우리에게는 평화를 바라는 이성도 있지 않을까요?”

하이즈먼이 비웃듯이 말했다.

“이웃과 친하게 지내기보다 세계 평화를 외치는 게 더 간단하지. 알겠나, 전쟁이라는 것은 형태만 바꾸었을 뿐 서로 잡아먹는 건 똑같네. 그리고 인간은 지성을 써서 서로 잡아먹으려는 본능을 은폐하려 하네. 정치, 종교, 이데올로기, 애국심 같은 핑계를 주물럭대고 있지. 하지만 저 밑에 깔려 있는 것은 짐승하고 똑같은 욕구일세. 영토를 둘러싸고 인간이 서로 죽이는 것과 자기 영역을 침범당한 침팬지가 미쳐 날뛰며 폭력을 휘두르는 것이 어디가 다른가?”

📃 “인간에게 선한 측면이 있다는 것도 부정하지는 않네. 하지만 선행이라는 것은 인간의 본성에 위배되는 행위이기에 미덕이라고 하는 걸세. 그것이 생물학적으로 당연한 행동이라면 칭찬 받을 일도 아니지 않은가. 국가의 선은 다른 국민을 죽이지 않는 행위로밖에 드러나기 어렵지만, 그것조차 불가능한 것이 지금의 인간이야.”

📃 “자네에겐 안됐지만, 펜타곤 작전에는 협력할 수 없네. 새로운 인류가 나타났다면, 기쁜 일이지. 현생인류는 탄생한 지 20만 년이나 지나도 서로 죽이는 걸 멈출 수 없는 딱하디 딱한 지적 생명체네. 살육 병기를 모아서 서로를 위협하지 않으면 공존할 수 없는 이 현재 상황이야말로 인류가 가진 윤리의 한계였던 거지. 슬슬 다음 존재에게 이 행성을 넘겨 줘도 좋을 때라고 생각하네.”

📃 네오나치나 백인 지상주의자 등 자신의 폭력 행동을 정치사상으로 탈바꿈하는 가짜 우익에는 공통적인 심성이 있었다. 비뚤어진 자존심의 발로였다. 그들은 자란 환경 등의 문제로 자신을 직접 긍정하는 일이 불가능하기 때문에, 소속된 집단을 무턱대고 긍정하며 그 집단의 구성원인 스스로가 훌륭하다는 논법을 취했다. 하지만 실제로 그들의 관심은 자기 자신에게밖에 향하지 않는 것이 명백했다. 그 증거로 가짜 우익의 공격은 자신들의 주장에 이의를 다는 동포들, 심지어 그들의 의견에 무턱대고 긍정했던 구성원에게도 향할 수 있다.

📃 전지전능한 존재를 꿈꾸며 이교도를 적으로 간주하는 것은 호모 사피엔스에게 널리 보이는 습성이었다. 피부색이나 언어의 차이뿐만 아니라 어떤 신을 믿는지도 적과 아군을 식별하는 장치로써 기능했다. 그리고 신은 회개했다고 말하기만 하면 대학살의 죄악도 사라지게 해 주는 편리한 존재였다.

📃 오네카는 울음을 터뜨렸다. 두 눈에서 솟아난 눈물을 허공에 흩뿌리며 계속 뛰었다.

인간으로 태어나지 말 것을.

새나 짐승으로 태어나서 아빠와 엄마, 형, 여동생과 함께 맞대고 언제까지나 사이좋게 살고 싶었다.

📃 믹을 미워하고, 죽이고, 유해를 방치하고 떠났던 일에 대해 후회가 되기 시작했다. 그리고 평생 사라지지 않을 죄책감이 느껴져서 눈물이 흘러나왔다. 생명이란 것이 너무나 여려서, 인간의 소름끼치도록 끔찍한 부분 때문에, 선(善)의 무력함에, 그리고 선악의 판단조차 할 수 없는 자기 자신에게, 예거는 화가 나서 소리를 죽인 채 비통하게 울었다.

제노사이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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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세정보

원시림 속 의사 슈바이처의 치열한 휴머니즘 기록을 담은 책. 슈바이처가 1913년 7월에 랑바레네에 도착하여 1917년 9월에 그곳을 떠나기까지 4년 반의 세월 동안, 원시림 속 의료 활동을 기록한 것이다. 6개월마다 유럽의 친구와 기부자들에게 편지 형식으로 쓴 보고서와 자발적으로 적어둔 수기에 의거했다.

이야기의 가장 큰 부분은 의료 활동이지만, 아프리카의 풍토에서 몸소 수많은 질병을 관찰하고 진료하는 동안 습득한 의학적 발견과 선교 활동, 인류학적 통찰 등이 담겨 있다. 이 책은 환자의 고름과 종기, 작은 상처, 고통으로 찡그린 표정 등 인간이 가장 비참한 순간을 살 때의 마음과 감정 상태에 대한 성찰에서 시작한다.

비좁은 카누 안에서 균형을 잡는 법, 강을 건널 때는 급물살을 피해 강둑에 최대한 붙어서 나아가야 한다는 것, 들짐승과 식물이 넘치는 곳이 한순간에 굶어죽기 십상인 곳으로 변하는 원시림, 햇빛의 날카로운 각도를 피해 어느 시간에 산책을 해야 한다는 등 생태와 생존을 논파하는 대목들이 수록되어 있다.

출판사 책 소개

1. 슈바이처는 왜 원시림으로 들어가 그들의 의사가 되었는가-이 책의 집필 동기


슈바이처가 알자스 지방의 고향 마을을 떠나 프랑스령 적도아프리카의 랑바레네(현재 가봉공화국)로 향한 것은 1913년 7월이었다. 의사학위를 받은 것이 그해 봄이었다. 1905년 서른 살의 나이에 교수직을 그만두고 의사가 되기 위해 7년간을 매진한 결과였다. 1904년 우연히 프랑스의 한 잡지에 실린 기사를 읽었다. 콩고 강 유역에 사는 아프리카 흑인들의 참상에 대한 기사였다. 당시 그는 스트라스부르 대학의 신학교 교수였고, 스트라스부르 성 니콜라이 교회의 부목사였고, 신학교의 책임자였으며, 바흐의 오르간 곡 연주의 권위자였다.
슈바이처는 프롤로그에서 이렇게 스스로 묻고 답하고 있다. “내가 어떻게 그렇게 할 수 있었을까?” 의사가 없는 곳에서 고통에 시달리는 원시림 속 흑인을 돕는 일이 인도주의적 과제로 여겨졌다. 원시림 속 흑인이 성경 속의 거지 라자로라면, 이를 방관하고 도외시하는 유럽인은 배부른 부자로 보였다. 육체의 고통은 인종을 막론하고 모든 인간에게 가장 절박한 실존이라는 깨달음이었다.

2. 치열한 휴머니즘과 그 기록-이 책의 특징


1913년 독일의 고향 마을에서 기차를 타고 출발하여, 프랑스 파리를 거쳐 보르도로, 다시 기차를 타고 포이약 항구에 도착하여 콩고행 증기선을 타는 여정이 책의 서두에 등장한다. 파리 복음 선교회가 랑바레네에 거처를 마련해주고 병원 건물을 짓는 것을 도와주기로 약속했다. 그러나 여행경비와 의료 활동에 필요한 물자는 스스로 충당해야 했다. 많은 친구들의 성금 모금이 있었지만, 자신의 저서 ??음악가-시인 요한 제바스티안 바흐??의 인세와 오르간 연주회에서 나온 수익금으로 마련했다. 당시 슈바이처는 유명 파이프오르가니스트, 특히 바흐의 오르간 곡에 능통했다.
배 이름은 ‘유럽’이었다. 혼잡한 소음과 짐꾼들의 외침 속을 지나 배에 올라타면서, 슈바이처는 하나의 계획을 세운다. “여기 함께 배를 타고 있는 우리 모두가 이 시기에 행하는 것을 기록한다면 과연 어떤 책이 될 것인가? 어느 한 부분도 그냥 대충 읽어 넘기지 못하리라!”
‘과연 어떤 책이 될 것인가?’ 그 대답이 바로 이 책이다.

집필 기간
1913년 7월에 랑바레네에 도착하여 1917년 9월에 그곳을 떠나기까지 4년 반의 세월 동안, 원시림 속 의료 활동을 기록했다. 6개월마다 유럽의 친구와 기부자들에게 편지 형식으로 쓴 보고서와 자발적으로 적어둔 수기에 의거했다.
이야기의 가장 큰 부분은 물론 의료 활동이지만, 아프리카의 풍토에서 몸소 수많은 질병을 관찰하고 진료하는 동안, 저자는 의학적 발견과 선교 활동, 인류학적 통찰에 대한 해박한 지식을 습득한다.

의학적 탐구
먼저 의학적 방면에서 그는 원주민에게 맞는 약과 치료를 개발하기 위해 물심양면으로 애를 쓴다. 당시 랑바레네 지방은 수면병이 크게 창궐하던 지역이라, 수면병에 대한 치료는 의료 활동의 관건이었다. 또한 피부병, 말라리아, 나병, 코끼리피부병, 열대성 이질 등 각종 질환이 유행했다. 열대 지방의 풍토적 특수성과 부족한 의료 물자를 감안할 때 치료약을 찾으려는 슈바이처의 열정은 인간에 대한 커다란 긍정 그 자체이다.

__체체파리는 흰옷을 피한다!
__아무 데서나 조는 사람은 수면병 초기증상일 수 있다!
__배를 젓다가 하마가 보이면 어떻게든 돌아가야 한다.
__변비 환자는 우선 니코틴 중독을 의심해야 한다.
__일사병은 잠복한 말라리아가 재발한 것일 수 있다! 그러니 말라리아와 똑같이 처방해야 한다.

인류학적 통찰
인류학적 통찰 또한 빛을 발한다. 유럽의 소송광(狂)은 아프리카 원주민에 비하면 한낱 순진한 어린애에 지나지 않는다. 한 번 소송이 걸리면 만사를 제치고 여기에 몰두한다. 닭 한 마리를 두고 마을 어른들이 모여 오후 내내 논쟁하는 것이다. 그러나 슈바이처가 보기에, 이들이 소송에 그토록 매달리는 이유는 “소송 중독이 걸려서가 아니라 정의감이 아직은 남아 있기 때문이다.”
원주민이 보기에 마취 상태는 죽은 것이나 마찬가지다. “의사선생님은 일단 환자를 죽이신 다음, 병을 고치셔.” 놀랍게도 원시림 속에는 아직도 식인 부족이 상존한다. 이곳에서 ‘실종’이란 말은 곧 ‘잡아먹혔다’는 뜻이다. 그리고 자칭 ‘랑바레네 병원의 수석 간호조무사’ 흑인 요제프 이야기. 병원에서 번 돈의 반을 양복과 구두, 넥타이와 설탕을 사는 데 써버린다. 그리고 백인 의사보다 훨씬 신사답게 차려 입고 다닌다.

선교활동과 연계
슈바이처의 의료 활동은 구미 여러 선교회의 선교 활동과 공생 관계를 맺고 있다. 기독교 선교 본부는 아프리카 원시림 속에서 그야말로 막대한 임무를 떠맡은 형편이다. 교회일 뿐만 아니라 학교이자 시장이며 농업 기지이다. 이런 선교 본부의 일원인 서양의사는 원주민에게 가장 현실적이고 직접적인 도움이 되는 존재이다. “우리는 모두 죽기 마련이다. 그러나 그를 위해 고통의 나날을 줄여줄 수 있다는 것, 이야말로 언제나 새로이 나에게 주어진 커다란 은총이다.” 백인과 흑인이 마주 앉은 병상에서 슈바이처는 “너희는 다 형제니라(마태복음 23장)”라는 말의 참뜻을 깨닫는다.


3. 슈바이처의 휴머니즘은 어디서 유래하는가-이 책의 출간 의미

‘슈바이처는 알자스 지방의 작은 마을, 카이저스베르크에서 루터교 목사의 아들로 태어났다.’

여기엔 여러 의미가 함축되어 있다. 알자스 지방은 독일과 프랑스의 국경지대여서 예부터 두 나라의 경제적, 군사적 쟁탈장이었다. 프랑스 쪽에서는 알자스, 독일 쪽에서는 귄스바흐라고 불렀다. 양쪽 문화가 혼재한 곳이었다. 즉 다른 타자에 대한 인정, 상대편의 신앙과 믿음에 대해 관용이야말로 사회질서의 근간이 되는 곳이었다. 제1차 세계대전으로 독일이 패배하면서 이곳은 프랑스의 영토로 편입되기에 이른다.
종교와 정신적 측면에서도 이곳에선 가톨릭과 개신교, 독일과 프랑스의 정서가 공존했다. 당시 두 종파는 한 교회 안에서 다른 시간에 다른 자리에 모여 예배를 보았다. 이렇게 예외적일 정도로 종교적 관용이 받아들여지는 곳에서 자라났다. 문화적/인식적 상대성이 지성의 계기가 되고, 보편적 신념 체계에 대한 열의가 자연스레 발생하는 곳이었다.

이런 사정이 생래적인 환경이었다면, 아프리카 활동 이후 슈바이처 삶의 궤적은 이것을 뛰어넘은 신념의 산물이다. 1917년 9월 제1차 세계대전의 와중에, 슈바이처와 그의 아내 헬레나 브레슬라우는 국적이 독일인 까닭에 프랑스령 랑바레네에서 추방당한다. 급기야 프랑스의 포로수용소에 감금당한다. 이 전쟁 중에 그의 어머니가 프랑스 군의 군마에 치여 죽는다. 이후 풀려난 슈바이처는 랑바레네 병원으로 돌아가 계속 활동하기 위해 프랑스 국적을 취득한다. 예사롭지 않은 선택이다. 한 열린 정신이 어떻게 형성되고 어떤 계기를 통해 단련되는가를 이 책은
구체적인 단서를 통해 증명한다.

‘이 책으로 말미암아 슈바이처가 다양한 각도로 사물을 투시할 줄 아는 인간임이 드러난다.’

의료 활동이 급선무였던 까닭에 한 의사의 휴머니즘 열정을 기억하는 독자들이 많다. 그러나 책의 곳곳에서 인간과 자연에 대한 세밀한 관찰과 자연과학적 지식을 만나다 보면, 생각이 달라질 것이다.
슈바이처에게 형이상학적 열정은 선험적으로 도달해 있는 것이 아니다. 19세기 말부터 20세기 초, 유럽 대륙의 지식인 사이에서 유행처럼 떠돌던 신대륙 원주민에 대한 동경, 낭만주의에 뿌리를 두고 있는 원시성과 자연 친화에 대한 신비감과는 다른 차원이다. 샤토브리앙과 루소에 시작하여 바이런, 스트린드베리 등 많은 지식인들이 상찬하고 수식했던 ‘고귀한 원주민’(noble savage), 즉 오리엔탈리즘의 기원이 된 그런 개념적 지식이 보이지 않는다.
슈바이처는 자신의 행복을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일 수 없었다. 일찍이 결심했다. 서른 살까지는 학문과 예술에 정진하고, 이후부터는 인류를 위해 봉사하는 삶을 살기로 했다. 이렇게 학문적 탐구와 실천 사이의 극명한 대립을 스스로 자각한 상태에서 아프리카로 출발한 것이다. ??물과 원시림 사이에서??는 프레이저의 1890년 작품 ??황금가지??처럼 책상물림 인류학자가 쓴 그런 학술적 저작이 아니다. 슈바이처는 파우스트처럼 행동하는 인간이었다.
이 책은 환자의 고름과 종기, 작은 상처, 우는 눈, 고통으로 찡그린 표정 등 인간이 가장 비참한 순간을 살 때의 마음과 감정 상태에 대한 성찰에서 시작한다. 비좁은 카누 안에서 균형을 잡는 법, 강을 건널 때는 급물살을 피해 강둑에 최대한 붙어서 나아가야 한다는 것, 들짐승과 식물이 넘치는 곳이 한순간에 굶어죽기 십상인 곳으로 변하는 원시림, 햇빛의 날카로운 각도를 피해 어느 시간에 산책을 해야 하며, 원시림 속 생활의 무서운 단조로움을 피하기 위해선 자주 어려운 철학책을 놓고 궁리를 함으로써 상쇄해야 한다는 등 생태와 생존을 논파하는 대목 등은 누구나 고개가 끄덕여지는 논리적 진술이다. 감상적 진술은 비정한 자연, 생사의 현장에 대한 절박한 입장 뒤에서 자제된다. 차라리 극명한 묘사와 사실적 관찰이 대부분이다. 윤곽이 뚜렷한 텍스트, 한 자연과학자의 탐사 수첩에 가깝다.

종교적 선각자, 휴머니즘의 투사라는 슈바이처의 이미지에 사로잡힌 독자에게 이 책은 그것이 추문이라는 것을 알게 해준다. 슈바이처는 부득이하게 선교 단체와 협력하여, 그의 표현대로 ‘공생 관계’로 의료 활동을 펼치지만, 그는 늘 꿈꿨다. 한 개인으로서 그리고 자유인으로서 헌신하는 사람이고 싶었다.
“세계의 인도주의 과제는 특정 국가나 종파의 분자로서가 아닌, 동류인 인간으로서 수행해야 한다.” 우리는 동류라는 것. 살아 있는 모든 육체, 병의 근원이 되는 바로 그 몸은 모든 인간에게 똑같이 주어진 것. 아프리카 흑인의 몸은 유럽인의 몸과 다르지 않다는 것. 사회문제와 전통과 윤리는 각각 처한 곳에 따라 달라지지만 육체의 고통은 한가지라는 것. 고통이야말로 인간의 지배자라는 것. 이렇게 신념의 내용은 극히 인간적인 것이었다.

이 책에서 언급된 시기는 슈바이처의 생애에서 최초로 아프리카를 접하던 시절이다. 모험과 현장의 급박함 속에서, 물질적인 극빈 속에서 오히려 놀라운 성과를 얻을 수 있음을 믿기 시작하던 무렵이다. 아직 확신으로 무르익지 않던 때라서 의심과 인간적인 약점을 감출 수 없던 나날이었다. 한 휴머니즘 투사가 태어나기 시작하는 태동기, 구체적 각성이 일어나는 수많은 계기와 작은 과정을 가장 정직하게 기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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