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원장 여관의 정오
카운터 여자는 낮잠
얇은 벽 너머
한 사내가
구토하는 소리를 듣는 정오
느티나무 아래
벤치의 노인들이
말없이 한 방향을 바라보는 정오
양말 가게 남자가
수굿한 뒷모습으로
아들의 수학 문제에 열중하는 정오
우동집 앞
당신에게서 돌아서는 정오
돌아서 걷기 시작하는 정오
가는 비 내리고
손차양 한 사람들이
하나둘 처마 밑으로 모여드는 정오
신호대기 중인
버스기사가 창밖으로 내민
흰 손에서
날갯짓하는 작은 새의
심장소리를 듣는
거리의 나무에
빛이 무늬를 새겼다
사라지는
불시에
이별을 예감하는 정오
- ‘이별하는 정오’, 장혜령
그것은
물고기의 아가미 또는
지난밤에 깎은 사과 껍질
안쪽에서 만져진다
두꺼운 외투를 열어 보이는 것은
아름답지 않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다
오래 생각했다
겨울에도 철 지난 얇은 옷을 고집하는
가난하고 또 우아한, 어떤 취향에 관해
그들이 오래된 만큼
내 생각도 오래도록 이어졌고
빌려온 책을 읽을 때마다
누군가 몸속에 잠깐 불을 켰다
여긴 누구였을까
물결처럼 밀려왔다,
우리는 각자의 방식으로 잠든다
떨어진 모과처럼 여기저기 뒹굴며
같은 의미에서, 나는 이제 거의 존재하지 않지만
겨울, 청어와 모래, 작은 북과 캐스터네츠, 빗방울과 앵두와••••••
길을 잃을 때는
어둠 속에서도 반짝이는 것의 목록을 적는다
실패가 거듭될 때,
매일 입술에서 닳아 없어지는
이름들처럼
걷잡을 수 없이 얇아질 때
그래서, 살고 있는 그것을 만질 수 있을 만큼
여전히 사랑한다는 것,
흔들리는 한
모두 같은 물속일 거야
물결의 말이다
- ‘물결의 말’, 장혜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