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작 《나는 옐로에 화이트에 약간 블루》에서 계층 격차와 다문화 문제가 심각한 영국에서 아이를 키우며 겪은 이야기로 차별과 다양성이라는 첨예한 이슈를 풀어낸 브래디 미카코는 《타인의 신발을 신어보다》에서 ‘타인의 신발을 신어보는’ 상상력 엠퍼시(empathy)를 혐오와 분열의 해결책으로 제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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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인의 신발을 신어보다 내용 요약
『타인의 신발을 신어보다』는 브래디 미카코가 지은 에세이로, 정수윤 번역을 통해 2022년 3월 18일 은행나무에서 출간되었다(ISBN: 9791167371393). 📖 일본 출신으로 영국에서 보육사이자 칼럼니스트로 활동하는 저자는 『나는 옐로에 화이트에 약간 블루』(100만 부 판매)로 계층과 다문화 문제를 다룬 바 있다。 YES24 판매지수 1,967과 2018년 빅토리아 문학상 수상은 작품의 영향력을 보여준다()。 “공감은 한계가 있지만, 엠퍼시(empathy)는 타인의 입장을 상상
empathy : 타인의 감정이나 경험을 이해하는 능력
sympathy : 누군가를 가엽게 여기는 감정, 누군가의 문제를 이해하고 걱정하고 있음을 드러냄. 어떤 사상이나 이념, 조직 등에 지지나 동의를 표하는 행위. 비슷한 의견이나 관심을 가진 사람들 사이의 우정이나 이해.
혐오와 차별이 심화되고 있는 갈등과 분열의 시대인 현재,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
자, 다른 사람의 신발을 신어본다고 생각해 보자. 신발은 신으면 신을수록 신는 사람의 습관에 따라 달라지기 때문에 같은 브랜드, 사이즈의 신발이라 할지라도 타인의 신발은 나에게는 불편하다.
하지만 신어보면 왜 그렇게 걸었는지, 왜 신발이 그렇게 변했는지 알게 된다. 아마도 지금 우리에게는 이런 식의 이해와 공감이 필요한지도 모르겠다.
뜬금없이 신발 타령을 하는 이유는 이번에 읽은 책 '타인의 신발을 신어보다'를 리뷰하기 위해서다.
'타인의 신발'을 어떻게 신으면 되는지 기대감으로 읽기 시작한 이 책은 결국 '발밑에 담요를 깔고 민주주의 세우기'로 끝나 버린다. 결국 '타인에 대한 공감'은 어려운 것일까?
폴 블룸은 감정적 엠퍼시와 인지적 엠퍼시의 차이를 논하며 둘 중 위험한 것은 감정적 엠퍼시라고 지적했다. 이는 1950년대 심리학자들이 주장한 ‘타인에게 자신을 투사하는 것은 진짜 엠퍼시가 아니다.’라는 주장과 맥이 닿는다.
예를 들어 영국에서 아동을 성적으로 학대하는 사건이 일어날 때마다 ‘피해자와 가족의 마음을 상상하면 범인을 죽여버리고 싶다’라는 극단적인 목소리가 SNS에 떠돌고, 용의자를 호송하는 차량에 계란을 던지는 사람들이 나오기 마련이다. 이런 경우에도 냉정하게 피해자와 가족의 마음이 되어본다면, 당사자들은 불행한 사건을 잊고 하루 빨리 일상으로 돌아가기를 원하여 모르는 사람들의 행동으로 자꾸 사건이 뉴스가 되는 것을 민폐라고 생각할지도 모른다. 가해자에게 복수할 마음을 먹는 것은 자신의 상상과 분노를 피해자와 그 가족에게 투사하는 것에 불과하다고도 할 수 있다. 타인의 신발을 신어보겠다며 실은 자기 신발을 신고 타인의 영역을 제멋대로 휘젓고 다니는 꼴이다.
“무슨 말을 했든지, 생각을 언어로 꺼낸다는 건 중요하다는 걸 깨달았어. 나는 입 다물고 가만히 있었지만, 누가 그런 말을 하면 안 된다고 이야기해줬기 때문에 그 애는 자기가 한 말의 의미를 깨닫고 사과했잖아. 그래서 나, 오후는 굉장히 기분 좋게 보냈어.”
언어는 사람을 불행하게도 분노하게도 만들지만, 동시에 화해시키고 행복하게 만들 수도 있다. 그 아이가 사과하지 않았더라면 아이의 마음에는 같은 반 친구에 대한 어두운 감정이 깃들었으리라. 딱딱하게 굳어가고 검고 불온한 무언가가 “미안해”라는 말 한 마디로 사르르 녹아버렸다.
“실은 나도 좀 반성했어. 그 애, 자폐증이 있거든. 그래서 솔직히 내가 무슨 말을 해도 그 애가 이해하기 어려울 거라고 생각해서 가만히 있었던 거야. 그건 내 안에 있는 편견이었어.”
그 소년이 코로나바이러스를 퍼뜨리는 게 아시아인이라고 믿었다면, 아이는 아이대로 자폐증 소년에게 항의해봐야 이해하지 못할 거라고 믿고 있었던 것이다.
언어는 자기가 믿고 있던 것을 녹인다. 딱딱하게 굳은 것, 얼어버린 것, 불변이라고 여겼던 것을 녹여서, 바꾼다. 누군가의 신발을 신기 위해서는 자기 신발을 벗어야 하듯, 사람이 바뀔 때는 고리타분한 나를 녹일 필요가 있다. 언어에는 그것을 녹이는 힘이 있다.
타인의 신발을 신어보는 일이 가능한 사람들의 사회를 만들기 위해서는 우리가 우리에게 걸어놓은 저주를 풀 필요가 있다. 타인이 만들어놓은 상자 속에 있으면서 타인이 멋대로 붙인 라는 라벨이나 같은 원료 목록을 붙이는 것을, 그러한 저주를 거부하지 않는다면 나 자신을 지키기는 어려울 것이다.
인간은 이렇게 분류한 상자의 원료 목록을 쉽게 믿기 때문에, 사실은 그런 맛이 전혀 나지 않는데도 원료 목록 향신료 이름을 보고 “그러고 보니 분명 그런 맛이 난다”라고 생각하기 쉽다.
이 원료 목록에는 두개골 두께, 유전자의 염색체, 여성 뇌 남성 뇌 등이 있다. 그것들은 모두 역사적으로 차별이나 편견을 ‘합리적’으로 만드는 언설에 이용되어 왔다.
더 나쁜 건 이 원료 목록이 과학적 증거가 되어 자주 상식이 된다는 점이다. 그러나 나카무라 다카유키의 에서 ‘어떠한 사회의 상식은 다른 사회나 다른 시대에는 통용하지 않는 부분이 반드시 있다’고 썼다.
상자의 내용물을 설명하는 원료 목록이 차별을 정당화하기 위해 만들어졌다면, 이는 차별을 옹호하는 이들이 자기 주장을 증명하기 위해 쓴 것이다. 사카구치 안고 식으로 말하자면 인간은 가엾고 나약한 존재이므로, 누군가를 배제하건 차별하건 정당한 근거만 있으면 된다고 생각하는 것이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