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창적인 세계관, 시적인 문체로 문단과 독자의 주목을 받고 있는 윤해서 작가의 장편소설. 한 존재의 소멸이 상대방의 기억 속에 생성하는 움푹한 시공간의 단면을 살핀 작품이다. 애정하는 어떤 존재를 상실해본 경험이 있는 사람들은 그에 관한 기억을 문학적으로 복원해낼 수 있을 것이다.
밤의 한 가운데. 조용하게 앉아. 소리 내어 읽었다. 몰입하려고. 빠져들려고. 금세 윤해서의 세계로 흡수되었다. 사일런스 파크(Silence Park). 말은 필요 없었지.
한 사람을 둘러싼 세 사람. 한 사람이 사라졌기에, 이제는 각각이 서로를 둘러싸고 있는 형국. 작가는 그들의 마음속 움푹한 부분, 그러니까 그 고유한 움푹함에 천착하여 그걸 찬찬히 펼쳐 보인다. "움푹한 곳에서 소리를 지르면 메아리가 돌아오잖아. 소리가 빠져나가지 않고. '마음이 머물 공간이 필요했어. 계속 흩어지니까.'" (87쪽, ' '는 내가)
움푹한 곳에 고이고 머무는 어떤 생각과 시간과 순간과 공간. "다 그만두고 싶다고 생각"(177쪽)하면서도 끝내 "나에게도 어떤 소리가 있나요"(224쪽) 물어보는 사람. 자신이 "아무것도 믿지 않는다는 것을 알"(51쪽)면서도 "살고 싶어. 살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98쪽) 말하는 사람. "감옥에서 나와요"(164쪽), "나는 당신들을 기억합니다"(216쪽) 그런 말을 이들에게 건네는 사람. 각자의 움푹함은 같고도 다를 것이다. 삶이 항상 그렇듯이.
서사가 '시간의 흐름'으로 배치되어 있지 않아서 중간중간 앞을 다녀와야 했지만, 책장이 넘어가는 것을 막을 수는 없었다. 앉은 자리에서 다 읽지 않으면 안 되겠다고 생각. 그래서 읽었다. 계속. 많이 밑줄 치고. 어느새 나는 다시 밤의 한 가운데에 있었고. 앉은 자리가 조금 움푹해졌다. 멈춰 선 시간만큼의 부피로.
이 책을 다 읽고 내 마음에 가장 깊게 남은 문장은 이상하게도 이런 미완의 문장이었는데,
"운은 얼굴에 튄 바닷물을 바닷물에 다 젖은 손으로 닦으며 (후략)" (81쪽),
그것은 이미 젖은 손으로 얼굴을 닦는 운의 마음의 모양 앞에 오래 서 있었기 때문이다. 내가. 어떤 장면은 소설 전체를 대변할 수도 있겠지만 이 장면은 아니다. 이 장면은 이 소설의 어떠한 점도 말해줄 수 없다. 아니, 모든 것을 말해줄 수도 있지. 삶이 항상 그렇듯이.
어떻게 마무리해야 할까. 세 문장으로. 작가의 언어를 빌려.
"오늘의 움푹함이 필요해." (87쪽)
"아침마다 다른 마음으로 일기를 써.
그 마음으로 하루를 살아." (142쪽)
오늘과 아침과 마음과 일기와 하루가, 이 『움푹한』 움푹함 속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