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딘 교수는 주로 역사적 고찰을 통해 현재 이슈들의 기원을 탐구하는데 성별 소득 격차, 여성 노동력, 소득 불평등, 기술 변화, 교육, 이민 등 다양한 주제를 연구해 왔다. 이 책에서는 평생 연구해 온 성별 소득 격차라는 문제의 원인을 밝히면서 그 해결책을 제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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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리어 그리고 가정 :평등을 향한 여성들의 기나긴 여정 내용 요약
『커리어 그리고 가정 :평등을 향한 여성들의 기나긴 여정』은 클라우디아 골딘이 저술하고 김승진이 번역한 경제사회학 서적으로, 2021년 10월 25일 생각의힘에서 출간되었다(ISBN: 9791190955423). 📚 496쪽에 달하는 이 책은 하버드대 경제학과 최초 여성 종신교수이자 2023년 노벨경제학상 수상자인 골딘의 대표작으로, 미국 대졸 여성의 100년(1900~2020) 커리어와 가정 생활을 5개 집단으로 나누어 분석하며 성별 임금 격차의 원인과
# 예술 그리고 가정
해당 책에서는 '커리어'와 '가정'을 얘기할때, '커리어'의 측면은 주로 소득을 얻는 수단으로서 얘기한다. 예를 들어 부부간에 어떻게 분업해야 가정도 지키면서 가구 소득을 극대화할 수 있는지를 얘기하는데, 여기서 전제되어야 하는 것은 커리어측 역할을 맡은 사람은 많은 시간을 투자한 만큼 소득을 올릴 수 있는 구조여야 한다. 그런데 여기서 내 생각이 다른 방향으로 튀어나갔는데, 앞으로 말할 이 부분은 작가가 그 부분을 다루지 않았다고 탓하는 것은 아니며(작가는 일부러 배제했을 것이다), 순전히 그냥 내 생각의 흐름이다.
그것은 바로 소득의 향상이 동반되는 '커리어' 뿐만이 아닌, 다른 형태의 '커리어'도 있다는 것인데, 대표적으로 순수 예술 영역이다. 이 영역은 시간을 많이 투자한다고 해서 소득이 늘지 않으며, 운이 좋으면 소득을 얻을 수 있고, 죽은 뒤에 소득이 발생할 수도 있다. 그렇다면 이런 돈이 안되는 커리어는 어떻게 '가정'과 조화될 수 있는가? 라는 생각이 들었고, 자연스럽게 '젊은 시인에게 보내는 편지' 로 한국에 잘 알려진 시인 라이너 마리아 릴케의 생애가 떠올랐다. 이 독후감을 쓰기 전에, 1년전 읽었던 책을 급하게 훑어봤다. 그것은 바로 릴케와 로댕의 삶을 담은 '너는 너의 삶을 바꿔야 한다'이다. 이 책에서 "예술 그리고 가정"에 부합할 만한 내용들을 짧게 요약하여 써보려고 한다. (시간에 쫓겨 급하게 요약하고 있는 것이라 놓치는 부분이 있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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릴케는 1875년 12월 출생이다. 나중에 만날 아내의 나이까지 본다면 '클라우디아 골딘'이 나눈 집단1에 속할 것이다. 릴케도 대단한 예술적 욕망이 있었지만, 추후 만나게 될 아내 클라라 베스트호프도 조각가 였으며. 로댕학교에 다닐 만큼 예술에 열정이 있고 뛰어난 여성이었다. 1900년 릴케는 베스트호프를 만나게되고 그녀의 작품에 매력을 느끼게 된다. 서로의 예술적 기질에 끌린 것이다. 몇달이 지나지 않아 약혼을 하고 둘은 결혼하게 된다. 당시 릴케는 한 친구에게 "내 결혼의 의미는 이 사랑하는 젊은 여인이 자아를 발견하도록 돕는 데 있다"고 말하는데, 이건 사실 지키지 못할 말이 된다. 1년 후 금방 아기를 가지게 되고 1902년 딸 루스가 태어난다. 여기서부터 '예술'과 '가정'의 갈등이 시작된다. 릴케와 베스트호프 둘 다 예술적 커리어에 열망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둘 다 온전히 커리어를 챙길 수는 없었다. 양보해야 하는 건 베스트호프 몫이었다. 아이가 태어나고 몇 달 후 베스트호프는 친구에게 보내는 편지에서 이제 "꼼짝 못하고 집에 붙들린" 처지임을 토로했다.
릴케는 커리어를 쫓고 있음에도 가구 소득에 보탬이 되지 못했다. 아버지가 프라하에 은행 일자리를 구해주겠다고 했지만, 릴케는 그런 제안 자체가 자신을 허약하게 만든다면서, 그것은 지금까지의 모든 노력을 포기하고 돌아가는 '모든 것을 죽이는 실패'로 여겨 거절했다. 릴케는 사실상 '골딘'이 얘기한 회사의 온콜 상태라기 보다는, 자신의 머릿속 부름에 언제든 응해야하는 예술가적 온콜 상태였다. 그런데 그것은 당장 돈이 되지 못했다. 그런 와중에 한 출판사에서 릴케에게 로뎅에 대한 논문을 써달라는 요청이 왔다. 원고료는 작았지만, 돈이 없던 릴케는 수락할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릴케는 로댕이 있는 파리로 떠났다. 이 기간 중에 릴케는 로뎅에게 배우는 예술에 대해서 베스트호프에게 편지를 써댔는데, 베스트호프는 얼마나 얄미웠을까.. 릴케는 베스트호프의 육아 고통에 별 관심이 없었다. 그녀가 피로를 호소하면, 그는 조금 피곤한 것이 건강에 좋다고 대꾸했다.
릴케가 파리로 떠난 지 얼마 안 됐을 때, 릴케와 편지를 주고받던 베스트호프도 파리로 가겠다고 결정했다. 아기를 부모에게 맡기고 파리로 떠났다. 결국 두 예술가 모두 '가정'을 놓고, '예술'의 영역으로 갔다. 그렇게 베스트호프도 스승인 로댕 옆에서 영향받으며 잠시 커리어를 쌓아갔다. 그런데 그런 기간도 잠시 베스트호프는 다시 돌아가 아기를 직접 기르기 시작했다. 나중에 릴케의 아이는 오랜만에 본 낯선 아버지를 보고 '아저씨'라고 부르곤 했다.
결국 베스트호프는 다시 '가정'으로 돌아갔고, 릴케는 예술적 커리어를 계속 쌓아나갔다. 릴케는 후원을 받았지만 변덕스럽고 호사스러운 여행에 다 썼다. 가정에 보내는 돈은 없었다. 베스트호프도 이런 상황에 진저리가 났다. 결국 베스트호프는 릴케가 아버지로서의 의무를 하지 않는 것을 불평하고 편지도 썼으나. 릴케가 탕자의 길을 계속 걷겠다는 결심을 굽힐 수는 없었다. 아내 또한 릴케와 마찬가지로 예술적 커리어에 대한 열망이 있었고, 예술을 위해 이집트에 떠나기도 한다. 그 뒤로도 베스트호프는 계속 예술적 욕망을 조금씩 채우며 살아갔고, 점점 부부의 사이는 멀어졌다.
결국 1911년 중반 베스트호프가 이혼을 요구했고, 릴케도 베스트호프가 자신 때문에 자아를 찾는데 어려움을 겪었다는 것을 인정했다. 둘 다 이혼을 인정했지만 법적 문제 때문에 결국 죽을 때까지도 이혼 승인은 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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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예술가가 겪은 '예술' 그리고 '가정' 사이의 갈등. 사실 갈등과 어려움은 베스트호프 쪽에서만 겪었다. 릴케는 가정을 만들기만 하고 관리하지 않았다. 베스트호프 덕분에 릴케는 온전히 예술적 커리어에만 몰두할 수 있었는데, 그 결과 릴케는 역사에 이름을 남길 수 있었다. 그런데 만약 베스트호프가 릴케 대신 예술에 몰두할 수 있었다면, 이름을 날린 사람은 릴케가 아닌 베스트호프 쪽이었을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