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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통인 책
출간일
2021.11.19
페이지
208쪽
상세 정보
오스카 와일드, 앙드레 지드에 비견되는 러시아 퀴어문학의 고전. 지방 소도시 출신 소년이 대도시인 페테르부르크로 올라와 성 정체성을 깨닫는다는, 당시로서는 파격적인 소재로 쓴 이 소설은 20기 초 러시아 사회에 열띤 토론을 불러일으켰다. 문예지 ≪천칭자리≫는 한 호 전체를 ≪날개≫에 할애할 정도였다. 그러나 러시아의 성 소수자 청년들에게 열광적인 지지를 받은 한편 외설적이라는 비판이 따라오기도 했다.
흔한 성애 묘사 하나 없이 대화와 정황을 통한 암시에만 그쳤음에도 파문이 일었다는 것은 그만큼 당시 사회가 경직되어 있었다는 뜻일 테다. 그래서일까, 쿠즈민은 소설 발표 후 적잖은 성 소수자 청년들에게 감사의 표시를 받았다고 한다.
일반 대중은 ≪날개≫에서 당시 러시아 게이 사회의 성 풍속에 주목했다면, 당사자인 게이 청년들은 삶의 아름다움에의 초대를 발견한 것이다. 억압적인 사회 분위기에서 자기 자신을 온전히 받아들이기가 힘든 성 소수자들에게 바냐라는 평범하디 평범한 소년이 스스로도 몰랐던 자신의 정체성을 깨닫고 크게 한 발 내디디며 끝나는 이 소설은 많은 게이 청년들에게 용기를 주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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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ulkkotjayu
날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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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스카 와일드, 앙드레 지드에 비견되는 러시아 퀴어문학의 고전. 지방 소도시 출신 소년이 대도시인 페테르부르크로 올라와 성 정체성을 깨닫는다는, 당시로서는 파격적인 소재로 쓴 이 소설은 20기 초 러시아 사회에 열띤 토론을 불러일으켰다. 문예지 ≪천칭자리≫는 한 호 전체를 ≪날개≫에 할애할 정도였다. 그러나 러시아의 성 소수자 청년들에게 열광적인 지지를 받은 한편 외설적이라는 비판이 따라오기도 했다.
흔한 성애 묘사 하나 없이 대화와 정황을 통한 암시에만 그쳤음에도 파문이 일었다는 것은 그만큼 당시 사회가 경직되어 있었다는 뜻일 테다. 그래서일까, 쿠즈민은 소설 발표 후 적잖은 성 소수자 청년들에게 감사의 표시를 받았다고 한다.
일반 대중은 ≪날개≫에서 당시 러시아 게이 사회의 성 풍속에 주목했다면, 당사자인 게이 청년들은 삶의 아름다움에의 초대를 발견한 것이다. 억압적인 사회 분위기에서 자기 자신을 온전히 받아들이기가 힘든 성 소수자들에게 바냐라는 평범하디 평범한 소년이 스스로도 몰랐던 자신의 정체성을 깨닫고 크게 한 발 내디디며 끝나는 이 소설은 많은 게이 청년들에게 용기를 주었을 것이다.
출판사 책 소개
오스카 와일드, 앙드레 지드에 비견되는
러시아 퀴어문학의 고전
퀴어문학 출판사 큐큐에서 미하일 쿠즈민의 ≪날개≫를 출간했다. 큐큐에서 출간된 퀴어 작가들의 사랑 시집 ≪우리가 키스하게 놔둬요≫로 연작시 「알렉산드리아의 노래」 중 한 편이 소개된 적은 있지만, 쿠즈민의 소설이 국내에 소개되기는 처음이다. 「알렉산드리아의 노래」와 ≪날개≫ 모두 작가의 대표작이자 퀴어라는 정체성을 전면으로 내세운 작품들이기에, 큐큐에서 러시아 문학 전공자의 원전 번역으로 한국 독자들에게 소개하는 것은 뜻깊다 할 수 있다.
≪날개≫는 러시아어로 쓰인 최초의 퀴어 소설이기도 하다. 지방 소도시 출신 소년이 대도시인 페테르부르크로 올라와 성 정체성을 깨닫는다는, 당시로서는 파격적인 소재로 쓴 이 소설은 20기 초 러시아 사회에 열띤 토론을 불러일으켰다. 문예지 ≪천칭자리≫는 한 호 전체를 ≪날개≫에 할애할 정도였다. 그러나 러시아의 성 소수자 청년들에게 열광적인 지지를 받은 한편 외설적이라는 비판이 따라오기도 했다. 흔한 성애 묘사 하나 없이 대화와 정황을 통한 암시에만 그쳤음에도 파문이 일었다는 것은 그만큼 당시 사회가 경직되어 있었다는 뜻일 테다. 그래서일까, 쿠즈민은 소설 발표 후 적잖은 성 소수자 청년들에게 감사의 표시를 받았다고 한다. 일반 대중은 ≪날개≫에서 당시 러시아 게이 사회의 성 풍속에 주목했다면, 당사자인 게이 청년들은 삶의 아름다움에의 초대를 발견한 것이다. 억압적인 사회 분위기에서 자기 자신을 온전히 받아들이기가 힘든 성 소수자들에게 바냐라는 평범하디 평범한 소년이 스스로도 몰랐던 자신의 정체성을 깨닫고 크게 한 발 내디디며 끝나는 이 소설은 많은 게이 청년들에게 용기를 주었을 것이다.
≪날개≫는 오스카 와일드, 앙드레 지드, 프루스트의 작품들과 비견되었으며, 오히려 그들의 작품이 가진 한계를 뛰어넘는다는 평가까지 받은 바 있다. 대다수 퀴어 소설에서 주인공이 방황 끝에 파멸을 맞이하는 것과 달리, ≪날개≫의 바냐는 자기 정체성의 발견에 머물지 않고 그다음을 향해 나아가는, 미래를 향한 가능성을 보여준 주인공이기 때문일 것이다. 물론 퀴어 소설이라는 틀에 갇혀서만 바라보지 않아도 될 만큼 ≪날개≫는 아름다운 성장 소설이기도 하다.
사람들은 모든 아름다움과 사랑이 신들로부터 나온다는 것을
깨닫고는 자유롭고 용감해졌습니다.
그리고 그들에게서 날개가 돋아났습니다.”
바냐는 어머니를 여의고 사촌 형을 따라 페테르부르크로 향하는 기차에 오른다. 대도시로 향한다는 기대도 없지 않지만 소년의 눈에 비친 도시의 풍경은 우중충하기만 하다. 바냐가 머무르게 된 곳은 삼촌 알렉세이 카잔스키의 집으로, 그곳은 일대의 젊은이들이 드나드는 만남의 장소이기도 하다. 바냐는 그 집에 들른 부유한 영국인 라리온 드미트리예비치 시트루프를 본 후 자기 안에서 낯선 감정을 느끼지만, 그는 사촌 누나인 나타가 연모하여 결혼 상대로 생각하는 남자다. 이후 우연히 공원에서 시트루프를 마주치는데, 오히려 시트루프 쪽에서 바냐에게 관심을 보이며 다가온다. 그는 바냐와 그리스 고전에 관한 대화를 나누다가 아름다움의 세계에 대해 배워야 한다고, 원전으로서의 삶을 살아야 한다고 이야기하며 바냐에게 “완전히 새로운 인간이 될 씨앗이 있”다는 말을 남긴다. 바냐는 삼촌의 식구들에게는 시트루프와의 만남을 비밀에 부치며 은밀한 기쁨을 느낀다.
시트루프와의 대화가 남긴 여운 때문일까. 바냐는 그리스어 선생인 다니일 이바노비치의 집에까지 찾아가 그리스 문학과 문화에 대해 들으면서 그 역시 시트루프와 잘 아는 사이라는 우연을 맞닥뜨리게 된다.
한편 바냐는 사촌들과 함께 오페라를 보러 갔다가 그곳에 온 시트루프를 만나 그의 집에 초대를 받고, 그곳에서 완전히 새로운 세계를 접한다. 시트루프의 집에 모인 사람들은 전원이 남성으로, 목신들의 그림으로 아름답게 장식된 그곳에서 그들은 라모와 드뷔시의 음악을 듣고, 영문학에 대해 논하며 아름다운 식기들로 식사를 하고 이국의 이야기를 나눈다.
그런데 며칠 후, 바냐는 시트루프의 집에서 그의 집을 방문한 이다 골베르크와 이야기를 나누다가 시트루프가 어떤 주소지에 정기적으로 방문한다는 것을, 그 사실이 그녀에게 고통을 주고 있음을 알게 된다. 바냐는 그 주소지를 찾아가지만 시트루프를 만나지 못하고, 그를 기다리다가 옆방에서 들려오는 기묘한 대화를 듣게 된다. 부부 사이를 유지하면서 다른 남자와 지속적인 육체관계를 맺으며 금전 거래를 하는 남자들에 대한 이야기를 들으며 바냐는 혼란에 빠지고, 낯선 청년들과 함께 나타난 시트루프를 확인하고는 경악하여 집으로 돌아온다. 그러다가 어떤 이유에서 시트루프의 집으로 찾아갔다가 격앙된 채 문을 박차고 나가는 그의 모습과 그 직후 그곳에 도착한 사촌 누나 나타를 목격한다. 의문에 싸인 채 돌아온 바냐는 다음 날 아침, 라리온 드미트리 시트루프의 집에서 일어난 자살사건, 즉 이다 골베르크의 자살에 대한 신문 보도를 접하고, 시트루프를 둘러싼 수수께끼에 염증을 느끼고 그에게서 멀어지기로 결심하고 카잔스키 일가와 함께 바실수르크로 휴가를 떠난다……
삶의 아름다움을 향해 떠난 소년의 여정
≪날개≫는 어떤 독자라도 자신을 스스럼없이 투영할 수 있을 평범한 고아 소년 바냐(바냐는 러시아에서 가장 흔한 이름인 ‘이반’의 애칭이다)가 기차에 오르는 것으로 시작해 또다시 새로운 여행길에 오를 것을 결심하는 것으로 끝난다. 페테르부르크에서 바실수르크, 그리고 다시 이탈리아로 이어지는 여정에는 작가 쿠즈민의 자전적 경험이 녹아 들어가 있음을 짐작할 수 있다. 작가 자신이 깊이 감화된 러시아 구교도들의 삶, 이탈리아 여행, 그리고 페테르부르크에서 함께 어울린 (아마도 동성애자들일) 예술계 인사들과의 살롱 문화가 그것이다. 그리고 그 여정 내내, 작가는 바냐 자신의 고뇌에 찬 독백보다는 그를 둘러싼 인물들의 입을 빌려 작가 자신이 말하고자 하는 바를 이야기한다. 바냐가 마음을 기대고 따르고자 하는 그리스어 선생 다니일 이바노비치, 뜻대로 되지 않는 사랑에 불행히 삶을 마감하는 이다 골베르크, 바냐에게 그릇된 사랑을 품는 마리야 드리트리예브나, 속세에서 떨어져 사는 구교도 은수자, 사랑하는 남자를 빼앗기는 안나 블론스카야, 그리고 바냐가 사랑하는 라리온 드리트리예비치 시트루프, 이 모든 이들의 입을 통해 작가가 말하고자 하는 바는 사랑은 어떤 규범으로도 심판하거나 규정지을 수 없는 것이라는 자명한 진리이다. 이 진리를 말하기 위해 쿠즈민은 고대 그리스, 로마 신화에서부터 헬라이즘과 헤브라이즘, 기독교의 윤리, 그리고 세속 남녀의 사랑에 이르기까지 세상에 존재하는 거의 모든 사랑에 대해 이야기한다.
물론 20세기 초라는 시대적 배경으로 인한 한계 역시 존재한다. 동성애자 사회를 그리는 한편 계급 문제를 외면했거나 여성 인물들의 묘사가 상당히 문제적이라는 것이 그런 것들이다. 그럼에도 ≪날개≫가 제기하는 문제의식은 21세기가 된 지도 20년이 훌쩍 넘은 지금에도 유효하다. 여전히 누군가는 이 소설을 읽고, 당시 쿠즈민이 받았다는 다음의 독자 편지와도 같은 감상을 느낄지도 모르겠다.
“위대하신 분, 제 심장의 꽃, 이 장미 꽃다발을 받아주세요. (…) 당신께서는 제게 날개를 달아주습니다. 고맙습니다, 정말 고맙습니다…… 이제 저는 영혼의 탐색을 계속하기 위해 어떤 길을 가야 할지 알게 되었습니다. 이제 저는 ‘삶의 아름다움’으로 이끄는 믿음직스러운 길에서 결코 벗어나지 않을 것입니다.”
_17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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