빼어난 문학성과 정교한 서사로 이제는 하나의 스타일이자 장르라고 부를 수 있는 작가 이장욱의 네번째 소설집. 삶과 죽음, 현실과 환상의 경계를 지우고 생의 근본에 대해 꾸준한 물음을 던져온 이장욱의 소설세계에 사랑과 농담 그리고 아름다움까지 한층 더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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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약
트로츠키와 야생란 (이장욱 소설집) 내용 요약
『트로츠키와 야생란』은 이장욱이 2022년 5월 20일 창비에서 출간한 네 번째 소설집으로, 2005년 문학수첩작가상 수상 이후 독특한 문학 세계를 구축한 저자의 최신작이다(ISBN: 9788936438760). 📘 YES24 판매지수 336과 리뷰 총점 9.5는 김유정문학상, 문지문학상, 젊은작가상을 수상한 저자의 빼어난 문학성과 정교한 서사가 반영된 결과다()。300쪽에 달하는 이 소설집은 9편의 단편—「잠수종과 독」, 「귀 이야기」, 「트로츠키와 야생란」, 「유명한 정희
작가의 세계관이 묘했다.
현실인지 꿈인지 알 수 없는 모호한 경계에 혼란스럽다가
마지막장에 있는 작가의 말을 읽어 보고 나서야
이제 조금은 알 것 같은 이 책.
시간이 지나고 나이가 들면 사람들이 세상을 떠나듯이
이렇게 죽음이라는 건 자연스러운 것이고
살아내고 있는 이 찰나의 순간이 소중하다는 것.
그래서 이런 마음으로 살아가다보면
바쁘던 마음도 어이없이 한가해지고
차가운 마음이다가도 세상 모든것이 사랑스럽게 느껴진다는.
휴. 나한테는 좀 어려운 책이지만 임팩트는 강했다.
고백하자면, 이장욱의 책 절반 이상을 도서관에서 대출해본 적 있다. 그러나 시집 『영원이 아니라서 가능한』(문학과지성사, 2016) 말고는 읽은 적이 없네··· 왜지? 왤까? 생각해봐도 알 수가 없다. 어떤 사실은 영원히 모르는 채로 남겨진다.
그러나 출간된 지 한 달도 채 되지 않은 이번 소설집을 펼쳐 들었을 때, 수록된 아홉 편 중에서 삼분의 일을 이미 읽었다는 사실을 발견했지. 「●●」은 『에픽 3호』(다산북스, 2021)에서, 「유명한 정희」는 재작년 여름에 수업에서, 「코끼리 고구마 그리고 오조의 발목을 잡은 손들」은 『광장』(워크룸프레스, 2019)에서. 음··· 뭐지? 언제 읽었지?
*
며칠 전에는 아무 생각 없이 저녁에 커피를 마셨고, 자려고 침대에 누웠는데 잠이 하나도 안 왔다. 계속 시간을 놀릴 수는 없고··· 책을 읽을 수 있을까? 그러다 이장욱 작가를 좋아하는 분에게 받은 신간을 펼쳐 읽기 시작한다. 결과는··· 대성공.
이장욱의 이야기가 어찌나 나를 끌어당기던지. 힘이 느껴져. 이야기가 멱살 잡고 끌고 가는 느낌이라서 나는 열심히 눈으로 따라가며 좋다, 맞지, 그러네, 하며 읽었다. 실린 아홉 편 중에 여섯 편이 좋았다.
「트로츠키와 야생란」은 가본 적 있는 공간(이르쿠츠크와 바이칼 호)이 나와서 놀랐고, 생각해보니 작가님은 노어노문학으로 박사 학위 받으신 분이구나··· 나는 노문학을 어디까지 끌고 갈 수 있을지 싶고. 「유명한 정희」는 2년 전에 읽었을 때보다 지금이 훨씬 좋았는데, 음··· 이 소설의 거의 모든 부분이 좋았다. 어릴 적 정희와 형제 같은 관계였던 '나'는 어느 날 그를 보며 불쑥 살의를 느끼고 이렇게 말하지. "너는 망령이 들 거야." (170쪽) 2년 전 나는 이 말을 이해할 수 없어서 이 소설 대체 뭘까 고민했었고, 이번에는 소설의 마지막 장면을 읽으며 탄복했지.
"나는 그날 나를 사로잡았던 살의에 대해 제법 오래 생각해왔다. 거의 평생을 생각해왔는지도 모른다. 때로는 그게 어떤 종류의 것인지 알 것 같은 느낌이 들기도 했다. 하지만 우리가 머리로 안다고 해서 진정으로 자각하고 있는 것이 얼마나 되겠는가? 우리가 안다고 생각하는 것 모두를 우리가 진실로 깊이 자각한다면 이 세상은······ 벌써 천국이 되었거나······ / 지옥이 되었을 것이다." (171쪽)
맞는 말 같다. 정말 그런 것 같아. 나는 아까 어떤 사실은 영원히 모르는 채로 남겨진다고 했지. 알 것 같다고 착각하며 넘겨버리거나. 생각해보면 「잠수종과 독」에서 공은 방화자의 방화 의도를 끝내 알 수 없게 된다. 그는 또한 현우가 왜 그렇게 죽었어야 했는지도 알 수 없을 것이다. 「귀 이야기」의 '나' 역시도 친척이 왜 갑자기 서울로 돌아가자고 말하는지도 모를 것이다. 마찬가지로 이 이야기들을 읽는 나도, 이들을 완전히 이해할 수 없다. 그러나 이해할 수 없음의 상태에 멈춰 있는 것과, 그걸 이리저리로 돌려 가며 살펴보는 것은 분명 다르다. 설령 결과는 여전히 알 수 없음,이라고 할지라도.
그래서 이장욱의 소설이 좋은 것 같다. 이해할 수 없는 세상에 대해 어떻게든 이야기해보려고 하니까. 물론 이건 아홉 편 전부를 포괄할 수 있는 해석은 아니겠지만, 적어도 나는 이 소설집에 이러한 시도가 담겼다고 기억할 것 같다. 앞으로 읽을 책이 많네. 기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