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의 문화와 정서가 담긴 문학을 엄선해 가깝지만 먼 나라 일본을 깊이 이해하자는 취지로 20년 만에 새 단장을 시작한 '웅진지식하우스 일문학선집'의 네 번째 작품. 1994년 노벨문학상 수상작이자 인간의 실존을 끊임없이 고민해온 시대의 지성 오에 겐자부로의 대표작 <만엔 원년의 풋볼>이다.
역사는 과연 진보하는가. 역사가 진보한다면 시대를 살아가는 인간의 자세는 몇 가지로 나뉠 것이다. 진보하는 세상의 최전선에서 역사를 이끄는 자, 둔하게만 움직이는 세상의 중심에서 빛을 누리는 자, 나아가려는 역사의 목줄을 붙들고 어떻게든 주저앉히는 자 말이다. 진보가 인류의 나아갈 길이라면 무지한 대중을 끌어 어떻게든 한 발 더 나아가자 독려하는 이에게 존경을 표하지 않을 수 없는 일이다.
지난해 세상을 떠난 이 가운데 유독 아깝게 느껴지는 인물이 있다. 오에 겐자부로. 1994년 노벨문학상 수상작가로 널리 알려진 그는 시대의 지성이라 불러 마땅한 삶을 살았다. 제국주의를 정면에서 맞닥뜨렸던 나쓰메 소세키의 시대가 가고, 2차대전 뒤 패전국으로서의 일본을 조명하고 미래를 도모한 일련의 작가군 가운데 가장 빛나는 인물이다. 서구에서도 널리 알려진 작가들, 이를테면 가와바타 야쓰나리, 미시마 유키오, 엔도 슈사쿠, 다니자키 준이치로 등과 차별화되는 냉정하고 비판적인 시각으로 여러 작품을 남겼다.
<만엔 원년의 풋볼>은 500페이지를 훌쩍 넘는 꽤 긴 분량의 장편 소설이다. 어려서 남이 던진 돌에 눈을 맞아 한쪽 눈을 잃은 미쓰사부로는 주변에서 '쥐새끼같다'는 얘기를 들을 만큼 추하고 유약한 인물로 그려진다. 심지어 그는 저를 그렇게 부르는 이들에게 공감하며 살아가는데, 소설 전반에서 그 나약함이며 패배감이 꾸준히 묻어나온다. 충격적인 모습으로 친구가 자살한 뒤 그의 주변엔 묘한 절망까지 맴돈다.
반면 동생 다카시는 1960년 미국과의 조약 체결에 반대하는 투쟁을 벌이다 미국 방문을 위해 명목상이나마 전향한 이력이 있는 인물이다. 귀국 후 형 부부와 함께 고향으로 돌아간 그는 마을 안팎의 부랑자들을 규합하여 조직을 만들고 마치 100년 전에 있었던 봉기의 주모자와 같은 일을 꾸미기 시작한다.
소설은 제 내면으로 침잠해 들어가려는 미쓰사부로의 관점에서 쓰여 그 심리와 역사성을 이해하지 못하는 이에게 난해하고 지루하게 읽힐 수 있다. 그럼에도 100년 전의 역사와 오늘을 결부시켜 탐구하는 작가 오에의 자세는 동 시대는 물론 일본 현대문학 전체를 아울러서도 쉽게 찾을 수 없는 것이다.
특히 오늘의 입맛에 맞게 과거를 왜곡하고 저를 돌아보지 않은 채 남을 재단하는 이를 쉬이 만날 수 있는 2024년 가운데 이 소설은 여전히 유효한 생명을 지니고 있지 않은가 생각해본다. 제 못남을 기꺼이 드러내고, 제 종과 제가 속한 집단의 죄악들을 돌아보며, 그 구렁텅이에서도 어떻게든 희망을 모색하는 소설의 용기는 일본은 물론 한국문학에서도 찾아보기 어려운 자세라 할 것이다.
소위 신안보조약이라 불리는 일미안보조약은 그 뒤로 이어진 반세기 일본의 번영에 뿌리역할을 했다고 평가받는다. 그러나 그로부터 거세당한 국가의 주체성이 있음을, 또 그에 앞서 자행된 제 조국의 병든 가해행위가 있었음을 돌아보는 작업은 보통의 용기와 반성이 없으면 불가능한 일이다.
과연 한국 문학 가운데선 이와 같은 작업이 얼마나 있었는지를 돌아본다. 비슷한 역사적, 문화적, 경제적 성격을 지닌 한미안보조약에 대하여, 또 외세의 침탈과 저항 아래 깔려 있던 꺼내놓기 부끄러운 기억들에 대하여 한국의 문학과 역사는 어떤 자세를 취해왔던가 말이다.
EBS <인물사담회>를 우연히 보게 되었는데 장도연, 배성재, 곽재식이 오에 겐자부로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었다. 이런 프로도 있네? 하며 빠져들었다가 여기서 소개된 <만엔 원년의 풋볼>까지 챙겨 읽었다. 오에 겐자부로가 노벨상을 받을 수 있었던 건 이 책이 결정적이었다고.
바로 전에 무라카미 하루키를 연달아 읽었기에 훨씬 더 무겁게 느껴졌다. 장도연이 다른 책을 소개하면서 어깨를 내리누르는 것처럼 책이 무겁다고 했는데 이 책도 만만치 않았다. 몰입이 잘 되지 않아 첫 장만 페이지를 오가며 세 번을 봤다. 다른 책은 제쳐두고 끈기 있게 물고 늘어지고 씨름하듯 마지막 페이지까지 읽고 난 뒤엔 정말 대작이다, 하는 감탄이 나왔다. 조선인 부락 얘기가 얽힌 스토리이기도 하고 - 이민진 소설의 파친코가 떠올랐다. 아직도 한국인을 조센징이라며 미워하는 사람들이 많다 - 중반부터는 이야기의 흐름이 빨라서 읽는 데에도 속도가 붙었다.
일단 일본 오에 겐자부로는 일본의 근현대사를 공개적으로 비판하는 몇 안 되는 문학계의 거장이다. 헌법9조 개헌도 반대했고 일본의 제국주의 시대도 비판한다. 일본은 독일과는 달리 태평양전쟁 패전 이후 의기소침해 있다가 한국전쟁의 반사이익으로 짧은 시기에 경제와 산업이 눈부시게 부활해 자국이 일으킨 전쟁을 깊이 반성하는 시간을 갖지 못했다. 이런 점을 고려하면 오에 겐자부로는 참으로 소중한 작가다.
작품에서도 대를 이어 계속되는 폭동과 폭력의 문제를 지적한다. 큰 사건을 겪은 주인공은 힘들어하면서도 지나간 이들을 이해하려는 노력으로 자기 자신을 치유하고자 한다.
무라카미 하루키는 이 입장에 도전장을 던지듯 타인을 완전히 이해한다는 것은 가능하지 않다고 하지만 '오죽하면 그랬을까' 하는 말 한 마디만으로도 상대방에 대한 몰이해 때문에 받게 되는 스트레스는 상당히 약해질 수 있다. 완전히는 아니더라도 할 수 있는 데까지는 가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