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를 쓰는 시간과 시를 논하는 시간 속에서 분열하는 모순된 자아를 견디며 시와 비평을 향한 양 끝 지점으로 치열하게 달려온 시인 정한아의 다양한 작업이 ‘시산문집’이라는 명명 아래 한 권의 책으로 엮였다. 다 읽고 나면 ‘정한아의 시’로서 전달되는 하나의 시 세계를 보여준다.
도서 DB 제공: 알라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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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독서, 어떻게 시작해 볼까요?
요약
왼손의 투쟁 (시와 사랑에 대한 탐구) 내용 요약
정한아 시인의 산문집인 《왼손의 투쟁》은 시를 쓴다는 행위와 누군가를 사랑한다는 감정이 우리 삶에서 어떤 의미를 지니는지 깊이 있게 파고드는 작품입니다. 저자는 책의 제목처럼, 주류가 아닌 비주류의 자리, 혹은 더 서툴고 불편한 자리를 자처하는 ‘왼손’의 태도로 세상을 마주합니다.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완벽함이나 정답을 향한 질주가 아니라, 휘청거리고 넘어지는 인간 본연의 모습에서 진정한 아름다움을 발견해 나가는 과정을 담고 있습니다. ✍️
이 책에 관해 어떻게 말해야 할까. 어떤 책이든 안 읽어보고는 모르는 법이지만 이 책은 다 읽고도 모르겠으니까! 그렇기에 여러분이 해야 할 일은 이 감상을 읽는 것보다는 책을 집어 들어 읽기 시작하는 일에 가깝겠다. 그렇지만 감상? 안 쓸 수 없음. 계속해보겠습니다.
신기한 책이다. 만듦새가 눈에 띈다. 각 장의 제목이 데칼코마니처럼 왼쪽 페이지에 인쇄되어 있다. 이런 책은 처음 본다. 특히나 2장에서 1) 인물과 인물이 대화할 때 그들의 말은 각각 한 쪽 페이지만을 점유한다. 2) 왼편에 쓰여 있는 장시, 오른편에는 무(無). 3) 반대로 오른편에 쓰여 있는 심의 결과, 왼편에는 역시 무(無). 3장에서는 1장과 마찬가지로 왼편과 오른편 모두에 저자의 글이 인쇄되어 있다. 예사롭지 않네. 혹시 이것은 잉크로 하는 "오른손과 왼손의 화해와 투쟁"(24쪽)일까?
그런 것 같다. 이렇게 써놓고 보니 그렇네. 사실 읽을 때는 몰랐다. 그저 이 책에 산재하는 빈 페이지, 즉 무(無)가 이 책을 소화시키며 읽어나가는데 꼭 필요한 장치라고만 생각했을 뿐. 역시 꿈보다 해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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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의 부제는, 시와 사랑에 대한 탐구. 저자는 시인 김춘수를 가상으로 인터뷰하기도 하고, 「사랑의 궁리」라는 무척이나 긴 시를 풀어내기도 하고, 악몽과 실종에 대한 가설의 심의 결과를 설명하는 보고서를 작성하기도 하고, 시인지 산문인지 모를 두 편의 느슨한 연작을 흘려놓기도 한다. '좋은 시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대하여 결국 답을 내리지 못하며(그것은 미래에 대한 월권이니까!) 시작하는 이 책은, 이런 지난한 탐구 과정을 거쳐, 모순에 대한 중단 없는 사랑을 노래한다. 시에서 시작해서 사랑으로 마무리되는 책.
이 책에는 아마도 세 명의 화자가 등장한다. '나-시인'과 '나-비평가'와 '나-독자'. 이들이 자신임을 밝히지 않고 쓴 글들이 한 권의 책 안에 모여 있기에 이 책이 이토록 다채로운 것이 아닐까? 그런 것 같다. 그런 것 같다고 생각하면 그런 게 되는 거지, 뭐.
이건 이렇고 저건 저렇습니다,하고 간명하게 쓰인 책이라면 감상을 작성하기가 더 쉬웠을지도. 그러나 작성하기 쉬운 게 좋은 건가? 되묻게 된다. 이 책 때문이다. 이 책은 줄곧 그런 태도를 유지하니까. 글쎄··· 나의 몫이다. 저 질문도, 이 책의 질문들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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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이렇게 말하며 시작한다.
"그러니까 사랑한다는 것은, 진지하게 읽는다는 것은, 책이든 사람이든 무서운 일인가 보다. 사사키 아타루가 말했듯, 진지하게 읽는다는 것은 본질적으로, 읽을 수 없는 것을 읽는 일이기 때문에. 다 읽고 나서 내가 어떤 사람이 될지 미리 결정할 수 없기 때문에.
그런 무서운 일들을, 우리는 읽고 쓰고 찢고 흘겨보고 오늘은 점심 때 뭐 먹었냐고 슬쩍 물어보면서 기적적으로 해나가고 있다." (7쪽)
(kijul···) 이 처음을 인용하며 끝맺고자 한다. 내가 또 한 번의 기적을 만들어냈기 때문에! 진지하게 이 책을 읽었고―그리하여 사랑에까지 도달했는지는 알 수 없지만―다시 한번 읽을 심산이니까. 그렇다면 이제 기적이 두 번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