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수밖에 안 했는데
내 몸에서 살다 간 듯이
당신 손자국이 남았다
딱딱한 빵처럼 당신 손이 슬펐다
나 같지 않은 나
당신 같지 않은 당신
다른 세상, 다른 시간으로 헤어지기 전에
남극처럼 추운 이곳에서
얼어 죽을지도 모르지만
오늘만큼은 함께 있고 싶군요
- ‘오늘만큼은 함께 있고 싶다’, 신현림
이 시대 향기는 서둘러 날아간다
서둘러 태어나서 자라고
서둘러 입 맞추고 섹스 꽃을 피우고
서둘러 헤어진다 아니다 상처가 두려워
서둘러 만나지도 않고 혼밥 혼술족이 늘 뿐이다
서둘러 아파트가 재개발 단지로 바뀌듯
서둘러 얼굴을 재개발한다
서둘러 스마트폰 새로 갈고 또 갈고
서둘러 모든 향기는 날아간다
페북 게시물도 올리면 서둘러 사라지고
속도에 숨 막히면서도 남들이 달리므로
서둘러 당신도 달린다
당신은 없고 가방과 외투만 달린다
서둘러 모든 향기는 날아간다
서툴러서 서두르는 인생을 사는 건지
서두르다 보니 서툰 인생이 되는 건지
디지털 시대 적응하려 애쓰는 당신과 나
쿨하지 못한 디지털 당신과 나
속은 썩어 문드러져도
쿨한 척하느라 고생 많다
서둘러 꺼져가는 향기 속에서
- ‘쿨한 척하는 디지털 당신’, 신현림
당신을 생각하면 바다가 생각나요
젤리 물결이 되어 부드럽고 끈끈하게
저를 묶어 갔죠 절대로 헤어지는 일이 없게
당신의 모든 게 갖고 싶었어요 눈도 입술도
입속의 혀도 몸을 칭칭 감은 노끈 같은 다리와
먼 수평선이 지워질 포옹을요
당신이 옷을 벗을 때 근사하다고 생각했어요
커튼 새로 스미는 햇살 비단에 감싸인 누드
알몸이 보일 때까지 바라보는 게 좋았죠
옷 벗을 때의 공기, 그 흐름을 느끼고
슬프고 힘든 일은 잊었더랬어요
서로가 떠나간 후
멀어져 가는 버스나 기차를 봐도
아프지 않으려고 많이 아팠어요
이제 당신 없이 잘 사는 법을 터득하며
남녀의 국경선을 뛰어넘어
고단한 이들에게 노을 같은 꽃을 건네며 잘 지낼게요
다시 힘내자고, 다시 사랑하자고
붉고 뜨거운 소나기 박수
- ‘당신 없이 잘 사는 법’, 신현림
잘 살고 계시죠
잘 사니까 연락을 안 하시겠죠
흙더미에 발이 빠지고 힘드셨다면 미안해요
흔들리는 침대처럼
불안은 늘 새로워요
다들 먹이 버는 것만으로 벅차고
울 수도 없어서 슬프고
죽을 수도 없어서 날고 싶어해요
날개는 날지 못하여
무거운 돌 날개를 지고 삽니다
무덤 속에서 해를 꺼내 살고 싶어
몸부림치는 인생이니
쓸쓸해 마시고,
건강하고 잘 지내세요
- ‘안부 인사’, 신현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