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겨울부터 산뜻한 표지와 줄거리를 찾아다녔는데 마침 이사카 고타로가 눈에 띄었다. 홍보는 깨발랄한 히어로의 우당탕탕 정의 실현기처럼 소개해 놓았는데 이건 뭐 후가와 유가보다 더 질척한 진창이다.
'화성에서 살 생각이 아니라면 어쩌겠어. 마음에 안 드는 건 깨부셔서 해결하자구!'가 아니다.
무거운 소재와 배경을 상정해놓고 무정한 인간들을 곳곳에 깔아놓은데다 표지의 히어로는 유쾌하지도, 심지어 분량이나 역할에서 비중있는 주인공도 아니다. 오히려 주변인. 이제보니 소파에 앉은 히어로의 어깨가 무기력하게 굽었네.
후가와 유가에서부터 느꼈지만 이사카 고타로는 문장은 산뜻하게 쓰면서 자꾸 소진된 인간의 모습을 보여줘서 울고 싶게 만든다. 자기는 타박타박 가벼운 걸음으로 속도를 내면서 읽는 사람의 에너지를 갉아먹는다. 얄밉게.
뭐 어쨌든. 내가 기대한 전개는 아니었지만 이야기 자체는 괜찮았다.
작가는 구제할 길 없는 시스템 속에서 자기 편한대로 적응해 가는 사람들의 모습을 다각면에서 보여주는데, 그건 단순히 선하거나 악하다고 말할 것도 없이 너무 멍청해서 한심하게 느껴진다. 그 와중에 의지를 가진 인간은 배후에서 큰 그림을 그리느라 잘 보이지 않는다.
고구마 백 개 먹은 답답함에 가슴을 여러 번 치겠지만, 그런 상황을 아무것도 아니란 듯 이야기하는 이사카 고타로 때문에 승질도 나겠지만 어쨌든 이야기는 산뜻하게 끝이난다! 제발!
- 너희도 평화경찰을 돕다가 세뇌를 당한 건지 모르겠지만 지독한 일을 하면 자신도 똑같은 일을 당하게 되지.
- 어머니는 화를 냈다. "사람을 도울 수 있다고 생각하다니 주제넘은 인간!" 하며 통곡했다.
- 모두가 본능과 욕망에 따라 멋대로 행동한 결과가 다른 차원의 누군가에게는 메시지가 될 수도 있다는 이야기야.
전체주의를 주제로 한 내용의 책들 사이에서 그렇게 두드러지게 인상깊은 책은 아니다. 그러면서도 명확한 주제의식은 드러나는데, "인간이 인간답게 활동하는 것은 무리를 짓지 않을 때뿐이다."와 같은 것이다.
가볍게 술술 읽히는 책이지만, 왜 무리가 공개처형에 열광하는지 깊이 생각하면 오히려 무겁게 읽혀지는 책이다. 다만, 결말이 다소 무리한 긍정으로 치닫는데 있어 별 하나 뺐다.
이 책으로 이사카 고타로를 처음 알게 되었다
결말은 좀 힘빠진다는 느낌이 들 수 있지만 오히려 이쪽이 더 현실적이라는 생각은 든다
MCU처럼 엄청난 능력을 가진 히어로가 디스토피아 세상을 뿅 바꾸는 쪽이 더 말이 안된다
뭔가 이 소설처럼 세상을 좋은 방향으로 바꾸려는 사람이 곳곳에 숨어있지만... 그들의 계획은 과연 성공할 수 있을지 아직은 위태롭고 불안한 마음마저 느껴진다. 그렇더라도 미친 세상을 바꾸려는 사람들은 어느 시대에서나 나오기 마련... 그래서 결말이 꽤 마음에 들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