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사람이 문 안에 있다
문이 조용히 닫힌다
시끄러운 것은 문의 리듬이 아니다
문 안에서 여자와 남자가 소문을 거래한다
두 귀를 발끝까지 늘어뜨린
나는 문과 벽 사이
빈틈을 향해 빳빳하게 곤두선다
문틈으로 비어져 나온
불빛의 면도날에 얇게 저며진 몸으로
종잇장이 되어 숨어드는 순간,
문이 스르르 열린다
미소를 날름거리는 여자와 남자가 한 몸이 되어
허물을 벗듯 시야를 벗어난다
두 사람이 다시 문 너머에 있다
문이 천천히 닫힌다
열려 있는 것은 문의 누드가 아니다
두 사람은 이제 문을 거래한다
문 밖에 갇힌
나는 집채만 한 귀를 아침까지 끌어올린다
먼저 깨어난 새들이 주먹처럼
부리를 오므리고서 귓구멍을 두드린다
- ‘좁은 문’, 이민하
하루는 그녀가 새장을 쓰고 나타났는데요
시장에서 광장으로 이동하는 사람들
햇빛에 타오르는 붉은 깃털을 기다렸는데요
파라솔을 목에 끼운 사람들 속에서
너무 눈에 띄는군! 그녀 옆을 지나던 노인이 귀띔해주었는데요
그의 머리에선 희고 검은 건반들이 물결쳤는데요
태연히 웃어 보이는 그녀, 새장 창살에 잘린
그녀 입술은 일 센티 간격으로 칼집을 낸 생선 같았구요
입술을 달싹이자 토막 난 혓바닥이 비린내를 내뿜었는데요
사람들은 달아나거나 귀를 막았구요
바다를 건너온 사람들이 그녀의 새장에 매달려 밤늦도록 철쇄를 감았는데요
입속에서 타다만 붉은 숯덩이는 목구멍 아래로 침몰
했지만요
다음 날 그녀는 텅 빈 새장을 쓰고 나타났는데요
깃털만을 포획하던 뱃사람들은 몰랐더랬죠
바다 밑 모리셔스, 배꼽에서 혀가 자라고 있었다는 걸
- ‘새장 속의 혀’, 이민하
절벽 끝 날개를 파닥이며 거꾸로 매달린 여자와
바다를 밟고 선 세쿼이아처럼 목이 늘어난 남자
여자의 목덜미에서 흘러내린 청동구름에 싸여
꼬아 올린 남자의 혀는 석윳빛 어둠에 젖어 있다
- ‘램프’, 이민하
계단을 올라가네
한 계단 한 계단 흰색으로 칠하며 올라가네
첨벙첨벙 계단을 올라가네 미끌미끌 계단을 올라가네
갈기를 늘어뜨리고 밤늦게 약국을 다녀오는 계단
잠든 이빨로 질겅질겅 껌을 씹는 계단
난간에 앉아 계단을 쑥쑥 순산하는 계단
계단을 밟는 순간 지워야 하는 것이네
흰색 페인트는 어머니가 주고 간 유일한 유산
계단 틈에 웅크린 저것, 아
자기야 왜 그러고 있어 왜 발목을 붙잡는 거야
사랑하는 자기야 뿌리가 썩고 있어
나를 관통해줘, 자긴
내가 십 년 전에 잉태한 사과나무야
불룩한 배 속에서 사과즙이 출렁거리네
발목 아래로 흰색 바다가 출렁거리네
백태 낀 혀를 갈가리 찢어 만든 붓으로
계단을 칠하며 올라가네
층마다 단칼에 잘려 나간 하늘이 모서리 끝에서 덜렁거리네
무거운 몸뚱어리를 바다에 끌러 놓고
구름이 핑 도는 실핏줄만 남아
계단을 지워가네
한 계단 한 계단 흰색으로 칠하며 지워가네
첨벙첨벙 계단을 지워가네 미끌미끌 계단을 지워가네
나뭇결 머리에서 다시 계단이 생겨나네
계단 틈에서 다시 사과나무가 뿌리를 뻗네
- ‘계단을 오르는 사과나무’, 이민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