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hyaillon님이 이 책을 읽었어요
1달 전
'건축'이라는 단어에서 내가 느끼는 이미지는 둘 중 하나이다. 빽빽한 아파트로 둘러싸인 도시, 그 속에 난 반듯한 도로, 환경 오염 같은 이미지이거나 몇 백년의 역사 속에서도 여전히 그 자리를 지키고 있는 랜드마크, 자연과 공원, 그 안에서 어우러지고 돌아가며 난 골목길 같은 이미지.
왜 새로 지은 아파트 단지와 신도시들은 그렇게 암울하고 부정적인 이미지이며, 작은 도시의 골목길이나 어디 유럽의 불편하게 놓인 건축물과 길들은 꼭 한 번 가보고 싶은 낭만적인 곳으로 생각되는걸까?
저자는 강남 거리는 왜 걷기 싫을까? 강북 도로는 왜 구불구불할까? 질문으로 책을 시작한다. 건축의 다양한 측면을 인문학적 시선으로 풀어낸다. 이제껏 건축은 딱딱한 주제라고 생각했던 내게 사실 건축이란 여러 인문학적 요소가 복합적으로 작용하는 더 아름다운 주제라는 것을 알려주었다.
특히 건축을 완성된 건물, 하드웨어로만 볼 것이 아니라 소프트웨어로 보는 시각도 필요하다는 주장이 인상적이었다. 일례로 남대문이 불타 없어지면서 새로 짓는 과정에서 우리가 보존하려고 애쓰던 하드웨어는 사라졌으니 굳이 세금을 들여 다시 세우고 보존할 필요가 있냐는 목소리가 나왔다. 그러나 사실 우리가 보존해야할 것은 그 안에 담긴 조상들의 건축기법, 디자인, 심지어 위치나 놓인 방향 등 소프트웨어 측면이다. 남대문에 쓰인 자재는 현대의 것이지만, 남대문 그 자체가 상징하는 과거의 전통이 있기 때문에 보존해야 할 것이다.
저자는 또 공간을 이해하기 위한 방법도 간단하게 알려준다. 세 가지 정보의 종류인 Void, Symbol, Activity와 세 가지 Physical, Visual, Psychological 관계를 고려하면 공간을 이해하기에 도움이 된다고 한다. 공간은 실제 그 측정 가능한 공간(void)과 그 안에 담긴 상징적 정보들(symbol) , 그리고 그 곳에서 일어나는 일들(activity)로 이루어진다. 그런 공간 안에서 물리적, 시각적, 심리적 관계를 따져보면 이제 공간이 조금 이해가 되기 시작한다.
여러 제약으로 여행도 못 가는 요즘, 내 주변의 공간과 그 안의 관계에 대해서 조금 생각해볼 수 있게 해주는 책이다. 책을 통해서 건축은 그저 무언가 짓는 일이라는 좁은 틀에서 벗어나 여러 방향에서 건축을 바라볼 수 있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