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차 대전 중의 유태인 학살을 다룬 수많은 책과 영화 중 이 작품이 특별한 것은 가해자인 나치 장군의 9살 짜리 아이의 눈을 통해 인간의 증오와 광기, 전쟁의 공포를 다루고 있으며, 동시에 어린 소년들이 그려내는 감동적인 우정이 따뜻하고 슬프며, 아름답기 때문일 것이다.
참... 쉽게 쓰여진 글이다
윤동주 시인의 시 한 구절이 떠오른다. 물론 이 글을 쓴 작가는 쉽게만 쓴 것은 아닐테다. 하지만 직접 겪은 자들 앞에선 그저 쉽게 쓰여졌다는 말밖에는 할 말이 없는 듯하다.
브루노는 겨우 9살의 아이이다. 9살이면 아는 것도 모르는 것도 많은 나이다. 아우비츠로 이사간 뒤 브루노에게 이해되지 않는 일들이 쏟아져 나온다. 그리고 그 일들은 지루했던 아우비츠의 생활 속에서 호기심이 생기고 탐험하고 싶게 했다. 그런데 탐험을 하면 할 수록 이해 할 수 없고 끔찍한 것들을 마주하게 된다. 자꾸만 삐쩍 말라가는 친구, 사라진다는 사람들, 군인들을 필요 이상으로 두려워 하는 사람들, 착한 사람들이 이유없이 맞는 일들... 도저히 아이의 시각에선 이해할 수 없는 일들이었다.
그래... 이해할 수 없는 일들이다.... 정말 이해할 수 없는 일들이다.. 그런데 그 일들이 정말 일어났다. 이미 역사 속에서 확실한 사건으로 새겨진 이 일은 정말 이해할 수 없는 일이다. 어쩌면 9살 브루노의 시각을 통해 정말 이해할 수 없는 일이 일어났음을 이야기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어른들을 브루노에게 많은 것들을 설명하지 않았다. 그저 울타리 너머로 가지 말라고만 했다. 많은 것을 알고 있는 누나 그레텔과는 달리 울타리 너머가 어떤 곳인지 전혀 모른다. 그렇기에 이름만 들어도 끔찍하게 생각하고 혹은 더럽게 생각하는 사람들과 달리 브루노는 오히려 울타리 너머의 삶을 상상하며 부러워한다. 편안해 보이는 줄무늬 파자마, 군인들만 왔다 갔다 하는 심심한 집보단 수많은 아이들을 포함한 사람들이 모여있는 울타리 너머 사람들, 갑갑하기만 한 3층짜리 집보단 옹기종기 모여있는 오두막들을 브루노는.. 그래.. 부러워했다. 그래서 관심을 가졌고 결국 거기서 친구를 만나 그곳으로 넘어갔다.
어른들이 브루노에게 그곳이 어떤 곳인지 한 번만이라도 귀띔을 해줬다면 브루노는 그렇게 죽지 않았을 것이다. 그런데 왜 어른들을 브루노에게 설명해주지 않았을까? 너무 어려서? 사실 울타리 너머에 그들을 가둔 어른들도 울타리 너머의 일들이 이해할 수 없는 일들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던 게 아닐까? 그들의 행동이 당연하다고 말하지만 어린 아이들은 몰랐으면 하는.. 그런 이해할 수 없는 일........
나도 이제 밖에 나가면 '어른'이라 듣기 시작하는 나이가 되었다. 나에게도 아이들은 몰랐으면 하는 나의 모습이 있다. 그럴 때마다 나오는 어른들의 흔한 변명... 어쩔 수 없었어....... 내가 정말 하고 싶지 않던 말이었는데 결국 나도 이 말을 하는 어른이 되고 말았다.
브루노는 아무 이유도 모른채 죽었다. 비명을 지르고 살려달라며 밖으로 나가려는 어른들과는 달리 브루노는 한 가지만 생각했다.
무슨 일이 있어도 친구의 손은 절대 놓지 않겠다고...
내 안에도 무슨 일이 있어도 절대 놓지 않아야 하는 무언가가 있지 않을까? 그게 뭘까?
그걸 붙잡으면 나도 어쩌면 어쩔 수 없었다는 변명 하지 않는 어른...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일을 만들지 않는 어른이 될 수 있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