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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통인 책
출간일
2011.1.31
페이지
316쪽
상세 정보
죽음 앞에 선 체 게바라의 전설적 게릴라 일기. 총살되기 하루 전까지 핏방울로 써내려간 체 게바라의 마지막 기록을 담았다. 체 게바라의 일기는 죽음을 향해 나아가면서도 혁명의 이상을 위해 자신을 불사른 한 인간의 위대한 보고서이자 '한 편의 혁명비극'이라 할 수 있다. 볼리비아 정부 공개본을 김홍락 주 볼리비아 대사가 직접 스페인어에서 우리말로 옮겼다.
일기는 1966년 11월 7일 볼리비아 동남부 냥카우아수에 도착한 날 시작되어 유로 계곡 전투에서 체포되기 전날인 1967년 10월 7일에 끝난다. 체 게바라는 게릴라 부대가 행하는 모든 일, 즉 계획과 결정 사항, 회담 내용, 전투 및 작업 참가자, 대원들의 분위기와 건강 상태를 촘촘하게 기술했고 무장 투쟁에 관한 학습 상황과 라디오 방송의 정치 뉴스를 평가했으며 행군 지역과 거리, 고도 등도 기록했다.
한마디로 <볼리비아 일기>를 통해 게릴라 부대의 생활을 완벽하게 추적할 수 있으며 아울러 이들이 실패한 이유와 정황도 상당 부분 추정이 가능하다. 이는 <볼리비아 일기>가 체 게바라 자신의 가장 직접적인 육성으로 게릴라 부대의 생활을 기술하고 전술적 오류와 실패마저도 한 치의 미화 없이 기록했기 때문이다.
상세정보
죽음 앞에 선 체 게바라의 전설적 게릴라 일기. 총살되기 하루 전까지 핏방울로 써내려간 체 게바라의 마지막 기록을 담았다. 체 게바라의 일기는 죽음을 향해 나아가면서도 혁명의 이상을 위해 자신을 불사른 한 인간의 위대한 보고서이자 '한 편의 혁명비극'이라 할 수 있다. 볼리비아 정부 공개본을 김홍락 주 볼리비아 대사가 직접 스페인어에서 우리말로 옮겼다.
일기는 1966년 11월 7일 볼리비아 동남부 냥카우아수에 도착한 날 시작되어 유로 계곡 전투에서 체포되기 전날인 1967년 10월 7일에 끝난다. 체 게바라는 게릴라 부대가 행하는 모든 일, 즉 계획과 결정 사항, 회담 내용, 전투 및 작업 참가자, 대원들의 분위기와 건강 상태를 촘촘하게 기술했고 무장 투쟁에 관한 학습 상황과 라디오 방송의 정치 뉴스를 평가했으며 행군 지역과 거리, 고도 등도 기록했다.
한마디로 <볼리비아 일기>를 통해 게릴라 부대의 생활을 완벽하게 추적할 수 있으며 아울러 이들이 실패한 이유와 정황도 상당 부분 추정이 가능하다. 이는 <볼리비아 일기>가 체 게바라 자신의 가장 직접적인 육성으로 게릴라 부대의 생활을 기술하고 전술적 오류와 실패마저도 한 치의 미화 없이 기록했기 때문이다.
출판사 책 소개
쿠바 혁명의 영웅, 볼리비아 정글에서 처형당하다
1959년 카스트로와 함께 쿠바 혁명을 성공으로 이끈 뒤, 체 게바라는 33세의 나이로 산업부 장관, 국립은행 총재 등을 맡으며 사회주의 쿠바 건설에 헌신한다. 하지만 체 게바라는 사회주의적 ‘계획 경제’와 세계 적화 전략 등을 두고 소련과 (소련의 지원을 기대했던) 카스트로와 미묘한 견해차를 보이게 된다. 체 게바라는 소련이 노멘크라투라(특권 엘리트)의 국가가 되어버렸다는 생각을 품고 있었다. 이리하여 자신을 ‘돈키호테’로 부르길 좋아했던 이상주의자 체 게바라는 미련 없이 혁명 정부의 요직을 내던지고 혁명의 가시밭길로 달려갔다. 콩고 내전을 거쳐 1966년에는 그가 ‘남미혁명의 교두보’로 삼고자 했던 볼리비아에서 게릴라 부대를 일으킨 것이다.
총 52명의 게릴라 대원(볼리비아인 29명, 쿠바인 16명 및 페루 등 외국인 대원 7명을 포함)이 볼리비아 남동부의 험준한 산악지대에서 11개월 동안 벌인 게릴라전은 처절한 실패로 돌아갔다. 1967년 10월 8일, 볼리비아 산악지대 유로 계곡 전투에서 게릴라 대장 체 게바라는 볼리비아 정부군에 의해 체포되고, CIA의 개입으로 다음 날 라 이구에라에서 처형당한다. 볼리비아 정부는 국제 언론에 처형당한 체의 모습을 공개했는데 생포 당시 길게 자란 머리칼과 지저분한 수염은 말끔히 깎인 모습이었다. 당시 볼리비아 내무장관 아르게다스는 체 게바라의 배낭에서 발견된 일기장 사본과 양손을 잘라 쿠바의 카스트로에게 보내는 ‘잔인한 친절’을 보였고 곧바로 체의 시신을 비밀리에 소각했다고 발표했다.
그로부터 28년이 흐른 1995년, 당시 현장에 있었던 퇴역 대위가 체의 시신이 바예그란데의 공동묘지에 매장되었다는 사실을 밝히며 대대적인 유해 발굴 작업이 이루어진다. 1997년 7월 드디어 30년 만에 체의 유해가 발견되고 전 세계적인 추모 열기 속에서 쿠바로 옮겨져 산타클라라 시의 기념관에 안치되었다.
체 게바라의 가장 직접적인 육성으로 가장 인간적인 면모를 담다
체가 유로 계곡에서 생포당할 때 지녔던 올리브 그린색 배낭에 들어 있던 두 권의 일기와 몇 장의 사진은 카스트로에 의해 1968년 『볼리비아 일기』로 발간되어 세계에서 가장 많이 읽힌 체 게바라의 텍스트가 되었다.
일기는 1966년 11월 7일 볼리비아 동남부 냥카우아수에 도착한 날 시작되어 유로 계곡 전투에서 체포되기 전날인 1967년 10월 7일에 끝난다. 체 게바라는 게릴라 부대가 행하는 모든 일, 즉 계획과 결정 사항, 회담 내용, 전투 및 작업 참가자, 대원들의 분위기와 건강 상태를 촘촘하게 기술했고 무장 투쟁에 관한 학습 상황과 라디오 방송의 정치 뉴스를 평가했으며 행군 지역과 거리, 고도 등도 기록했다. 한마디로 『볼리비아 일기』를 통해 게릴라 부대의 생활을 완벽하게 추적할 수 있으며 아울러 이들이 실패한 이유와 정황도 상당 부분 추정이 가능하다. 이는 『볼리비아 일기』가 체 게바라 자신의 가장 직접적인 육성으로 게릴라 부대의 생활을 기술하고 전술적 오류와 실패마저도 한 치의 미화 없이 기록했기 때문이다.
1967년 3월까지 ‘사령관 체’는 여러 달에 걸쳐 정예부대를 선발하고 고산지대 적응 훈련을 실시하며 본격적인 게릴라전을 준비했다. 때로 전체 분위기가 동요되고 산발적으로 이탈자가 나오기도 했지만 전반적으로 게릴라 부대의 기강과 도덕은 훌륭했으며(“우리 편에는 비록 문제가 있기는 하지만 가장 정직하고 결의에 찬 사람들이 있기 때문이다”, 64쪽, 1월 31일) 이는 초반에 수적으로 우위인 정부군에 우세할 수 있었던 요인이었다.
『볼리비아 일기』, 혁명을 위해 자신을 불사른 한 인간의 위대한 보고서
겨우 50여 명의 게릴라 부대에 곧 어려움이 닥쳐왔다. 그들이 잠입한 남동부 고산지대는 인구가 희박하고 식량과 물도 거의 없는 지역이어서 줄곧 칼로 나무를 쳐내 길을 내야 했고 현지에 대한 사전 지식이 부족해서 번번이 길을 잃곤 했던 것이다. 후발대와 분리된 후 치른 3월 23일의 첫 교전에서 게릴라 부대가 압도적으로 승리했음에도 그들은 이미 노출된 지역을 서둘러 떠나야 했다.
이후로는 포위망을 피해 정글을 헤매고 굶주림 및 질병과 싸우는 고난의 행군이 이어졌다. 토착 농민들의 지지를 얻지 못했을 뿐만 아니라 연락책인 아르헨티나인 치로 부스토스와 프랑스인 레지스 드브레 등이 체포되어 외부 세계와도 연락이 끊겼다. 고립무원의 상태에서 (쿠바와 콩고에서와 달리) 홀로 부대를 통솔해야 했던 체 게바라는 끊임없이 혁명적 윤리에 호소하며(“우리의 투쟁은 인간으로서 가장 고귀한 혁명가가 될 기회를 줄 것이다. 또한 인간으로서 자기 자신의 한계를 시험할 기회이기도 하다”, 216쪽, 8월 8일) 동지들에게 육체 능력의 한계까지 가는 노력을 요구했다.
『볼리비아 일기』는 죽음을 향해 나아가면서도 혁명의 이상을 위해 자신을 불사른 한 인간의 위대한 보고서이자 ‘한 편의 혁명비극’이라 할 수 있다. 반군 지도자가 체 게바라로 밝혀지자 볼리비아 정부군의 움직임이 기민해지고 미국 CIA는 대 게릴라전 특전부대를 지휘하기 위해 24명의 특수요원을 파견한다. 점점 지쳐가는 게릴라들 주위로 정부군의 포위망이 좁혀졌고, 지병인 천식이 악화된 체 게바라는 자기 통제력을 잃고 말의 목을 칼로 찌르는 돌발 행동을 하는 등 사실상 육체적, 정신적 붕괴 상태가 된다. 실제로 9월 26일 이후 일기의 어조가 차분해지며 몸 상태나 사기, 낙관적 견해에 관한 말들이 사라진다. 이 시점부터 자신의 운명을 예감하고 간신히 기록을 이어나간 것이다.
주 볼리비아 대사의 생생한 스페인어 원전 번역
엄밀히 말해 체 게바라가 직접 쓴 단행본은 쿠바에서 발간된 게릴라전 이론서 『게릴라전』(1960)과 혁명 쿠바를 세우는 기초 작업 과정을 그린 『쿠바 일기』(1963)뿐이다. 여기에 사후에 출간된 『볼리비아 일기』가 추가된다. 따라서 한국어판 『볼리비아 일기』는 국내에 공식적으로 처음 번역되는 체 게바라의 세 저작 가운데 하나인 셈이다.
여기에 더해 체 게바라가 젊은 시절 남긴 여행 일기를 쿠바에서 출간한 『라티노아메리카』(『체 게바라의 라틴 여행 일기』, 2000, 이후/ 『체 게바라의 모터사이클 다이어리』, 2004, 황매) 등 체의 일기 및 논문 등을 모은 저작들이 있다. 우리나라에는 장 코르미에의 『체 게바라 평전』(2005, 실천문학사)이 잘 알려져 있고 최근 존 리 앤더슨의 『체 게바라: 혁명적 인간』(2010, 플래닛)이 번역되었다. 그밖에 체의 딸 알레이다의 회고록을 옮긴 『체, 회상』(랜덤하우스, 2008), 체가 남긴 일기에 적힌 시와 문학 관련 글을 옮기고 해설을 붙인 『체 게바라의 홀쭉한 배낭』(실천문학사, 2009) 등이 있다.
체 게바라가 볼리비아에서 남긴 일기가 사본 형태로 편집되어 출간된 적은 몇 차례 있었지만 일기 원본이 공개된 것은 최근의 일이다. 체 게바라의 일기 원본은 1980년 그간 보관해왔던 볼리비아 군 금고실에서 유출되었다가 런던의 한 경매장에서 모습을 드러내는 해프닝을 겪기도 했다. 볼리비아 정부는 이 경매에서 일기 원본을 낙찰 받은 후 볼리비아 중앙은행(BCB)에 보관해왔다. 그리고 체 게바라 탄생 80주년이었던 2008년 7월 볼리비아 정부는 처음으로 일반에 일기 원본을 공개했고, 실물을 재현한 한정판을 출간하기도 했다.
한국어판 『체 게바라의 볼리비아 일기』는 볼리비아 정부 공개본을 김홍락 주 볼리비아 대사가 직접 스페인어에서 우리말로 옮긴 것이다. 스페인어에 정통한 김홍락 대사는 이 책을 번역하며 체 게바라가 활동한 남동부 지역을 답사하고, 살아남은 볼리비아인 게릴라(로욜라 구스만 여사) 등과 인터뷰를 하는 등 생생하고 정확한 번역을 위해 노력을 아끼지 않았다. 특히 볼리비아와 아르헨티나에서 사용되는 지방색이 있는 스페인어(흔히 모디스모Modismo라고 함)를 현지 조사와 자문을 통해 명확히 옮김으로써 영어판과 일어판 등에서 보이는 오류를 피했다. 원본에서 해독하기 어려운 부분을 공란으로 처리하고, 비약적인 내용을 함축하는 부분은 유추 해석을 통해 뜻을 전달하고 옮긴이 주를 달았다. 또한 “게릴라들 간의 인간적 갈등이 표출된 부분에서는 각 개인의 성격과 출신 배경에 대한 이해가 필수적이라는 판단”(머리말, 9쪽)으로 ‘게릴라 약력’을 권말에 첨부하는 등 자료적 가치를 높이기 위해 애썼다. 김 대사는 2010년 볼리비아 최초의 인디오 원주민 출신 에보 모랄레스 대통령을 수행해 서울을 찾아 세계 리튬의 40퍼센트가 매장된 우유니 호수 개발 등을 논의하기도 했다. 2005년 당선된 후 재선을 거친 모랄레스 대통령은 2006년 천연가스와 석유 산업의 국유화를 선언하며 베네수엘라, 브라질 등 ‘남미 좌파 벨트’의 한 축을 이룬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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