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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꺼운 책
출간일
2013.9.30
페이지
748쪽
상세 정보
재즈와 블루스의 태동, 록큰롤의 폭발, 포크와 록의 만남, 사이키델릭과 프로그레시브 록으로의 진화, 하드 록과 헤비메탈 등 더 강한 비트와 현란한 테크닉 경쟁, 그리고 펑크와 모던 록의 탄생에 이르기까지 대중음악의 역사를 주도했던 주인공은 다름 아닌 기타리스트들이었다.
옛날에는 기타가 노래의 반주 악기 정도로 활용되는 게 전부였고, 재즈의 시대에도 관악기의 위세에 눌려 그 존재가치가 미미했었다. 1930년대 전후로 기타가 서서히 자리매김을 해나간 곳은 아이러니하게도 재즈의 메카인 미국이 아니라 유럽이었다. 그리고 그 중심에 장애를 이기고 세 손가락만으로 당대 최고가 된 벨기에 출신 기타리스트 장고 라인하르트가 있었다. 라인하르트 이후 불세출의 기타리스트들이 출현해 다양한 음악적 스펙트럼을 발현하면서 기타는 대중음악계를 이끈 핵심 악기로 발돋움했다.
이 책은 장고 라인하르트와 로버트 존슨 등 기타계의 레전드에서 시작해 티본 워커, 머디 워터스, 레스 폴, 비비 킹 등 초기 거장들과 지미 헨드릭스, 지미 페이지, 에릭 클랩튼, 에드워드 반 헤일런 등 7,80년대 기타 영웅들을 거쳐, 조니 그린우드, 잭 화이트, 매튜 벨라미, 존 메이어 등 21세기 신성에 이르기까지 105명 기타리스트들의 삶과 음악을 통해 대중음악의 역사를 조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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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aehyu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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펑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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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즈와 블루스의 태동, 록큰롤의 폭발, 포크와 록의 만남, 사이키델릭과 프로그레시브 록으로의 진화, 하드 록과 헤비메탈 등 더 강한 비트와 현란한 테크닉 경쟁, 그리고 펑크와 모던 록의 탄생에 이르기까지 대중음악의 역사를 주도했던 주인공은 다름 아닌 기타리스트들이었다.
옛날에는 기타가 노래의 반주 악기 정도로 활용되는 게 전부였고, 재즈의 시대에도 관악기의 위세에 눌려 그 존재가치가 미미했었다. 1930년대 전후로 기타가 서서히 자리매김을 해나간 곳은 아이러니하게도 재즈의 메카인 미국이 아니라 유럽이었다. 그리고 그 중심에 장애를 이기고 세 손가락만으로 당대 최고가 된 벨기에 출신 기타리스트 장고 라인하르트가 있었다. 라인하르트 이후 불세출의 기타리스트들이 출현해 다양한 음악적 스펙트럼을 발현하면서 기타는 대중음악계를 이끈 핵심 악기로 발돋움했다.
이 책은 장고 라인하르트와 로버트 존슨 등 기타계의 레전드에서 시작해 티본 워커, 머디 워터스, 레스 폴, 비비 킹 등 초기 거장들과 지미 헨드릭스, 지미 페이지, 에릭 클랩튼, 에드워드 반 헤일런 등 7,80년대 기타 영웅들을 거쳐, 조니 그린우드, 잭 화이트, 매튜 벨라미, 존 메이어 등 21세기 신성에 이르기까지 105명 기타리스트들의 삶과 음악을 통해 대중음악의 역사를 조명했다.
출판사 책 소개
1950년대부터 2010년대까지 대중음악계를 이끈
105명 마에스트로 기타리스트가 들려주는 저릿한 감동과 열정
재즈와 블루스의 태동, 록큰롤의 폭발, 포크와 록의 만남, 사이키델릭과 프로그레시브 록으로의 진화, 하드 록과 헤비메탈 등 더 강한 비트와 현란한 테크닉 경쟁, 그리고 펑크와 모던 록의 탄생에 이르기까지 대중음악의 역사를 주도했던 주인공은 다름 아닌 기타리스트들이었다.
옛날에는 기타가 노래의 반주 악기 정도로 활용되는 게 전부였고, 재즈의 시대에도 관악기의 위세에 눌려 그 존재가치가 미미했었다. 1930년대 전후로 기타가 서서히 자리매김을 해나간 곳은 아이러니하게도 재즈의 메카인 미국이 아니라 유럽이었다. 그리고 그 중심에 장애를 이기고 세 손가락만으로 당대 최고가 된 벨기에 출신 기타리스트 장고 라인하르트가 있었다. 라인하르트 이후 불세출의 기타리스트들이 출현해 다양한 음악적 스펙트럼을 발현하면서 기타는 대중음악계를 이끈 핵심 악기로 발돋움했다.
이 책은 장고 라인하르트와 로버트 존슨 등 기타계의 레전드에서 시작해 티본 워커, 머디 워터스, 레스 폴, 비비 킹 등 초기 거장들과 지미 헨드릭스, 지미 페이지, 에릭 클랩튼, 에드워드 반 헤일런 등 7,80년대 기타 영웅들을 거쳐, 조니 그린우드, 잭 화이트, 매튜 벨라미, 존 메이어 등 21세기 신성에 이르기까지 105명 기타리스트들의 삶과 음악을 통해 대중음악의 역사를 조명했다.
작은 오케스트라인 기타가 어울리지 않는 음악이란 없다!
기타는 누구나 주변에서 쉽게 접하고 배울 수 있는 악기이다. 기타만큼 만만하고 편하게 접할 수 있는 악기도 드물다. 하지만 그러면서도 기타가 표현할 수 있는 음악적 영역은 무한하다 할 만큼 넓다. 클래식에서 팝과 록, 재즈에 이르기까지 기타가 어울리지 않는 자리는 없다. 한마디로 기타는 음악이 있는 곳이라면 어디서나 어울리는 팔방미인이다. 그래서 일찍이 베토벤은 ‘기타는 작은 오케스트라이다’라는 말을 남기기도 했다.(12쪽)
기타와 이를 연주하는 기타리스트의 활약은 클래식보다는 대중음악에서 더욱 진가를 발휘해 왔다. 재즈와 블루스의 태동, 록큰롤의 폭발, 포크와 록의 만남, 사이키델릭과 프로그레시브 록으로의 진화, 하드 록과 헤비메탈 등 더 강한 비트와 현란한 테크닉 경쟁, 그리고 펑크와 모던 록의 탄생에 이르기까지 대중음악의 역사를 주도했던 주인공은 다름 아닌 기타와 기타리스트였다.
옛날에는 기타가 노래의 반주 악기 정도로 활용되는 게 전부였고, 재즈의 시대에도 관악기의 위세에 눌려 그 존재가치가 미미했다. 1930년대 전후로 기타가 서서히 자리매김을 해나간 곳은 아이러니하게도 재즈의 메카인 미국이 아니라 유럽이었다. 그리고 그 중심에 장애를 이기고 세 손가락만으로 당대 최고가 된 벨기에 출신 기타리스트 장고 라인하르트가 있었다. 라인하르트 이후 불세출의 기타리스트들이 출현해 다양한 음악적 스펙트럼을 발현하면서 기타는 대중음악계를 이끈 핵심 악기로 발돋움했다.
기타리스트의 계보를 통해 본 대중음악의 역사
기타리스트들이 저마다 지니고 있는 고유한 연주법과 멜로디, 리듬 등은 하나의 새로운 음악 장르를 창조해내는 디딤돌이 되었다. 또 레코딩 기술이 발달하면서 선대 기타리스트들의 음악은 후대 기타리스트들에게 무한한 자양분을 제공했다.
1938년에 스물일곱의 나이로 요절한 로버트 존슨은 일렉트릭 기타가 등장하기 전부터 시대를 풍미했던 기타리스트로 오로지 어쿠스틱 기타만을 연주했다. 그럼에도 그의 연주는 블루스 기타의 전범으로 남았으며 특히 슬라이드 주법은 에릭 클랩튼 등 후대 뮤지션들에게 결정적인 영향을 끼쳤다.(37쪽) 그리고 에릭 클랩튼의 음악은 다시 21세기를 대표하는 젊은 거장 존 메이어에게로 이어졌다.
1960년대 영국발 블루스 폭발이 일어났을 당시 영국의 많은 R&B 밴드들은 머디 워터스를 가장 많이 영향 받은 인물로 지목했다. 머디 워터스는 블루스의 성지였던 시카고에서 일렉트릭 블루스의 태동과 부흥을 이끌었던 기타리스트이다. 롤링 스톤스는 아예 밴드 이름을 머디 워터스의 히트곡 [Rolling Stone]에서 따왔을 정도였다.(45쪽)
1980년대 이후 현란한 속주 테크니션인 에드워드 반 헤일런과 잉베이 말름스틴, 크리스 임펠리테리, 폴 길버트 등의 앞자리에는 어김없이 지미 헨드릭스와 리치 블랙모어 같은 196,70년대 기타 영웅들이 자리했다. 제 아무리 탁월한 천재라 하더라도 선대 기타리스트들의 음악적 우산에서 벗어나는 것은 불가능했다.
이처럼 기타리스트만큼 대중음악의 영속성을 견고하게 이어주는 뮤지션도 없을 것이다. 결국 기타리스트의 계보를 살펴보는 것은 대중음악의 역사를 되짚어보는 것과 다르지 않다.
이 책은 장고 라인하르트와 로버트 존슨 등 레전드 기타리스트에서 시작해 티본 워커, 머디 워터스, 레스 폴, 비비 킹 등 초기 거장들과 지미 헨드릭스, 지미 페이지, 에릭 클랩튼, 에드워드 반 헤일런 등 7,80년대 기타 영웅들을 거쳐, 조니 그린우드, 잭 화이트, 매튜 벨라미, 존 메이어 등 21세기 신성에 이르기까지 105명 기타리스트들의 삶과 음악을 통해 대중음악의 흐름을 조명했다.
블루스와 록큰롤의 탄생을 주도하다
기타는 그 기능성의 측면에서 인류가 만들어낸 가장 탁월한 악기 가운데 하나이다. 리드 파트와 리듬 파트의 역할을 모두 맡을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리드와 리듬을 동시에 들려주는 것도 가능하다. 작고 가벼워서 어떤 장소로든 이동이 용이하며, 앉든 서든 어떤 자세로도 연주가 자유롭다. 하지만 가능성이 무궁한 악기임에도 불구하고 한동안 기타는 태생적으로 적은 음량 때문에 일정 규모 이상의 무대에서는 거의 사용되지 못했다. 기타가 폭발적인 성장을 하게 된 계기가 전기적 증폭장치(픽업과 앰프)의 발명과 맞물려 있다는 사실은 그래서 주목할 만하다. 거의 유일한 약점으로 간주됐던 적은 음량의 문제가 해결되면서 비로소 기타가 그 잠재력을 뿜어내기 시작했을 뿐만 아니라 일렉트릭 기타의 탄생이 록큰롤의 태동을 견인하는 기폭제로 작용하기도 했기 때문이다.
블루스가 록큰롤의 등장에 직접적인 영향을 주었다는 것은 누구나 알고 있는 사실이다. 하지만 일렉트릭 기타의 발명이 없었다면 블루스가 미시시피강 유역의 델타 지역을 벗어나 미국 전역으로 확산되는 과정이 훨씬 더디고 험난했을 것이라는 사실은 흔히 간과되곤 한다. 일렉트릭 기타는 블루스 연주자들이 보다 많은 청중 앞에서 공연하는 걸 가능하게 만들어주었다. 관객들이 기타리스트의 이미지로부터 보다 직접적인 영향을 받게 된 것도 바로 그 즈음이었다. 무대 위에 서서 관객을 쥐락펴락하는 마술사와 같은 존재로서의 뮤지션. 그러므로 우리가 기억하는 위대한 기타리스트들이 바로 그 시절부터 쏟아져 나오기 시작했다는 사실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이 책은 바로 그 지점을 출발선으로 잡았다. 기타리스트가 아이콘으로서 자리매김하기 시작한 이래의 음악사를 위대한 연주자들의 개인사로 엮어 냄으로써 궁극적으로 기타라는 악기의 매력과 마력을 소구했다.(7쪽)
서로 다른 장르의 음악을 연결시켜온 가교
블루스에 뿌리를 두고서 가지를 치며 뻗어 나온 록큰롤은 대중음악의 메인 스트림으로 군림하면서 여러 음악 장르에 막대한 영향을 끼쳐왔다. 이러한 록큰롤을 다양한 음악 장르에 전파시킨 메신저 역시 다름 아닌 기타리스트들이다.
1965년 7월에 있은 뉴포트 포크 페스티벌은 포크와 록의 역사에서 커다란 논쟁을 야기한 문제적 장면을 남겼다. 이 날 어쿠스틱 기타 대신 일렉트릭 기타를 둘러매고 무대에 선 포크의 제왕 밥 딜런이 자신의 새로운 히트곡 [Like a Rolling Stone]을 일렉트릭 기타로 연주하자 객석에서는 격렬한 야유가 쏟아졌다. 포크의 순수 팬들은 밥 딜런의 변절을 용서할 수 없었다. 비록 그 장면은 골수 포크 마니아들에게는 충격이었지만, 한편으로는 포크 록이라는 새로운 음악 장르의 탄생을 알리는 계기가 됐다. 그리고 바로 그 문제적 장면의 배후에서 위풍당당하게 일렉트릭 기타를 쳤던 이가 바로 기타리스트 마이크 블룸필드이다.(170쪽) 이처럼 기타와 기타리스트들은 대중음악사의 중요 장면들을 연출해왔다.
포크와 음악적 스타일이 유사한 컨트리의 발전도 기타라는 악기를 빼고는 생각할 수가 없다. 미국의 전통가요격에 해당하는 컨트리가 내쉬빌이라는 지역적 한계를 벗어나 전 세계로 뻗어 나갈 수 있었던 것은 기타리스트 쳇 앳킨스 덕택이다. 쳇 앳킨스의 기타 연주는 컨트리의 목가적 서정성에 팝적인 세련미를 더해 ‘컨트리의 세계화’를 이끌었다.
‘반주자’라는 오명, ‘연주자’로서의 정체성
비틀스와 롤링 스톤스가 출현하기 전인 1950년대까지 기타리스트는 한 명의 독립된 연주자라기보다는 가수의 반주자 정도로 여겨졌다. 아무래도 당시 사람들은 무거운 악기를 짊어진 무표정한 기타리스트보다는 잘 생긴데다 춤까지 잘 추는 보컬리스트에 더 많이 환호했다. 사람들은 대스타가 된 보컬리스트의 영광 뒤에 유능한 기타리스트가 있었음은 쉽게 간과했다.
엘비스 프레슬리 곁에는 항상 스코티 무어라는 기타리스트가 떠나지 않았다. 스코티 무어는 엘비스의 록큰롤 리듬감을 가장 돋보이게 했던 연주자였다. 엘비스도 무대에서 기타를 쳤지만 스코티 무어의 리드 기타 자리는 절대 넘보지 않았다. 엘비스는 자신의 음악을 완성시킨 일등공신 기타리스트에 대한 예우를 소홀히 하지 않았고, 그 덕분에 엘비스는 최고가 될 수 있었다.(106쪽)
존 레논과 폴 메카트니 뒤에서 묵묵히 기타를 쳤던 조지 해리슨이 없었다면 비틀스의 성공 또한 장담하기 힘들었을 것이다. 비틀스가 음악적으로 개화한 「Abby Road」 앨범을 들어보면 조지 해리슨의 역량이 어느 정도였는지 여실히 드러난다. 과거에도 현재에도 사람들은 주로 레논과 메카트니를 기억하지만 그렇다고 조지 해리슨의 공과가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1970년대 록계의 아이콘 데이비드 보위 곁에는 믹 론슨이라는 걸출한 기타리스트가 있었다. 믹 론슨을 만나기 전까지 데이비드 보위는 부족했다. 데이비드 보위의 머릿속에서는 온갖 기발한 아이디어와 상상력이 넘쳐났지만 그것을 실현시킬 연주력이 그에게는 없었다. 그 절박한 갈증은 믹 론슨을 만나면서 해갈되었다.(356쪽)
연주자로서의 정체성에 방점을 찍었던 기타리스트를 꼽는다면 (약간의 논란을 뒤로 하고) 아마도 지미 헨드릭스가 가장 많은 표를 얻을 것이다. 지미 헨드릭스도 척 베리처럼 기타를 치며 노래를 불렀지만 그가 대중음악사에서 보컬리스트로 기억되는 일은 거의 없다. 오히려 그의 노래는 그의 기타 연주를 위한 전주 정도의 의미를 가질 뿐이다. 지미 헨드릭스 이후 사람들은 무대에서 오로지 가수만을 바라보지 않게 되었고,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음악에서도 기타 소리에 귀를 기울이게 되었다.
기타 영웅들이 일궈낸 ‘진정한 록의 시대’
기타 천재들이 활약한 ‘기타 올림픽의 시대’
지미 헨드릭스는 미래 록 음악이 가야 할 방향을 제시한 위대한 예언자였다. 그의 기타가 써내려간 예언대로 사이키델릭과 하드 록, 헤비메탈이 고개를 들기 시작했고 또 그에게서 영향 받은 후대 기타 영웅들이 하나 둘 탄생하기 시작했다.
대중음악에서 록 음악이, 그리고 다시 록 음악 안에서 기타리스트의 존재가 부각되면서 그들의 기타 연주도 훨씬 화려해지고 음악적으로도 진화를 거듭했다. 에릭 클랩튼, 지미 페이지, 제프 벡, 리치 블랙모어, 피트 타운센드, 로이 부캐넌, 카를로스 산타나, 듀언 올맨, 피터 그린, 존 맥러플린 등 1960년대에 출현한 기타 영웅들은 1970년대를 ‘록의 시대’(Rock of Age)로 수놓는 밑거름이 되었다.
그리고 이들 기타 영웅들의 계보를 잇는 기타 천재들이 1980년대를 열었다. 에드워드 반 헤일런을 시작으로 잉베이 말름스틴, 크리스 임펠리테리, 폴 길버트 등 속주와 현란한 테크닉으로 무장한 이른바 ‘기타 선수’들이 세계 록 음악계를 평정한 것이다. 당시에는 이들의 연주 속도와 파워 리프를 뛰어 넘지 못하면 록 음악계에서 명함을 내밀지 못할 정도였다. 다른 한쪽에서는 역시 고감도 테크닉을 자랑하는 퓨전 재즈 기타리스트들이 출현했으니, 리 릿나워, 팻 메스니, 알 디 메올라, 에릭 존슨 등이 그들이었다. 1980년대는 이들 기타 테크니션들이 활약한 ‘기타 올림픽의 시대’였다.
기타를 잘 친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
그러나 사람들은 기타 천재들의 현란한 연주를 들으며 의문을 갖기 시작했다. ‘진정으로 기타를 잘 친다는 것은 도대체 어떤 의미일까?’라고.
이에 대한 답변은 이미 오래 전에 마크 노플러라는 기타리스트와 그리고 그보다 더 오래 전에 쳇 앳킨스라는 기타리스트가 제시했었다. 쳇 앳킨스는 불필요한 기교와 음들을 배제하고 효율적인 연주를 추구했던 기타리스트였다. 그의 연주는 기술적으로 낭비가 없는 효율성으로 유명했다.(75쪽) 절제와 완급조절 면에서라면 다이어 스트레이츠의 마크 노플러도 손꼽힌다. 그는 실제로 솔로 연주를 아주 잘하고 테크닉 또한 뛰어났지만 절대로 오버하는 법이 없었다. 그는 이렇게 말했다. “중요한 것은 곡이다. 현란한 테크닉의 솔로는 단지 보여주기 위한 것에 지나지 않는다. 화려함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곡과 잘 연결되는 솔로가 좋은 연주이다.”(420쪽)
아울러 U2의 엣지는 기타리스트의 애티튜드란 어떠해야 하는지를 직언했다. “지판 위에서 손가락을 정말 빨리 움직이는 것은 아무나 할 수 있다. 그건 그냥 기타 올림픽일 뿐이다. 그런 무의미한 일에 관해서라면 생각하고 싶지도 않다. 나는 이런 것도 할 수 있어 하는 식의 과시적인 연주에는 전혀 흥미가 없다.”(562쪽) 실제로 U2의 음악은 서너 개의 코드 진행만으로 되어 있는 경우가 많다. ‘Three Chord and the Truth’라는 U2의 슬로건은 엣지의 슬로건이기도 하다.(567쪽) 단 세 개의 코드로 만든 음악도 충분히 감동을 줄 수 있다는 것이 그의 철학인 것이다.
이제 사람들은 더 이상 기타 천재들의 현란한 테크닉에 놀라워하지 않았다. 그보다 예전 기타 영웅들의 연주에서 느꼈던 저릿한 감동을 다시 느끼고 싶을 뿐이었다.
기타와 기타리스트에서 대중음악의 미래를 보다
(그러나 음악에서 저릿한 감동을 느끼고 싶은 사람들의 욕구와는 거리가 멀게도) 컴퓨터 한 대만 있으면 어떤 장르의 음악도 순식간에 만들어내는 시대가 도래했다. ‘디지털’이란 이름 아래에서는 더 이상 기타 영웅도 기타 천재도 무의미하다. 컴퓨터 프로그램이 악기를 대체하고, 그러다 보니 세상에는 공장에서 찍어낸 듯 비슷비슷한 음악들이 넘쳐난다. 이제 음악은 디지털화된 파일을 통해 과거의 LP나 테이프나 CD처럼 음반이라는 실체가 없이도 잘도 돌아다니고 한쪽에선 음악이 예능의 재료로 소비되기도 한다.(12쪽)
우리나라의 상황은 좀 더 심각하다. K-POP이라는 이름으로 아이돌 가수들이 지구 저편 대륙에서 콘서트를 열고 모 가수는 코믹한 퍼포먼스의 뮤직비디오를 유튜브에 올리며 빌보드 정상권까지 진입했지만, 시간이 흐른 뒤에도 사람들이 그들의 음악을 얼마나 기억할지는 다시 생각해볼 일이다. 멕시코계 기타리스트 카를로스 산타나가 자신의 태생적 뿌리와 맞닿은 라틴 리듬을 록에 접목시켜 그래미를 석권하고 뮤지션을 꿈꾸는 전 세계 젊은이들로부터 커다란 존경을 받는 것과 K-POP 열풍은 그 격이 너무나 다르다.
세계 대중음악의 본산인 영국과 미국에서 커트 코베인과 라디오헤드가 여전히 젊은이들의 ‘음악 대통령’으로 군림하고 있고, 수년 동안 계속되는 U2의 월드투어가 매진 사례를 이어가는 것만으로도 밴드음악과 이를 진두지휘하는 기타리스트의 위상을 가늠할 수 있다. 과거에도 그랬듯이 대중음악의 미래는 여전히 기타리스트들의 두 손에 달려 있는 것이다. 이 책에서 다룬 기타리스트들이 이를 방증해왔고, 또 앞으로도 입증해 나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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