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얇은 책
출간일
2016.3.24
페이지
172쪽
상세 정보
읻다 프로젝트의 총서 '괄호' 시리즈의 세 번째 책. 루이-페르디낭 셀린 소설. 루이-페르디낭 셀린은 세계적으로 유명한 작가이다. 알베르 카뮈, 마르셀 프루스트와 어깨를 견주는, 현재까지도 꾸준한 독자층을 갖고 있는 20세기 프랑스 작가 중 하나이며 누구보다도 자유롭고 신랄하게 현실을 비판함으로써 당시 프랑스 문단에 큰 충격을 준 작가이기도 하다.
소설 <Y 교수와의 대담>의 줄거리는 간단하다. 루이-페르디낭 셀린 그 자신이기도 한 화자는 한 공원에서 자신의 인터뷰어인 Y 교수 즉 레제다 대령을 만난다. 그리고 둘은 갈리마르의 집까지 가는 내내 이야기를 나눈다. <Y 교수와의 대담>은 지극히 현실적인 이야기다. 현실적이어서 더 기괴한 소설이다.
상세정보
읻다 프로젝트의 총서 '괄호' 시리즈의 세 번째 책. 루이-페르디낭 셀린 소설. 루이-페르디낭 셀린은 세계적으로 유명한 작가이다. 알베르 카뮈, 마르셀 프루스트와 어깨를 견주는, 현재까지도 꾸준한 독자층을 갖고 있는 20세기 프랑스 작가 중 하나이며 누구보다도 자유롭고 신랄하게 현실을 비판함으로써 당시 프랑스 문단에 큰 충격을 준 작가이기도 하다.
소설 <Y 교수와의 대담>의 줄거리는 간단하다. 루이-페르디낭 셀린 그 자신이기도 한 화자는 한 공원에서 자신의 인터뷰어인 Y 교수 즉 레제다 대령을 만난다. 그리고 둘은 갈리마르의 집까지 가는 내내 이야기를 나눈다. <Y 교수와의 대담>은 지극히 현실적인 이야기다. 현실적이어서 더 기괴한 소설이다.
출판사 책 소개
“소설가에게는 무엇이 남은 건가요?”
셀린의, 셀린에 의한, 셀린을 위한
‘주우우우욱이는’ 소설
그런데 수업 시간에 우리가 뭘 배웁니까? 서로 닮는 법을, 그러고서는 서로 베끼는 법을 배우잖아요... 공쿠르상을 받고 싶어 하는 모든 작가들은 서로 베껴댑니다, 어쩔 수 없는 일이에요!...
읻다 프로젝트의 총서 ‘괄호’ 시리즈의 세 번째 책인 루이-페르디낭 셀린의 소설 《Y 교수와의 대담》이 출간됐다. 루이-페르디낭 셀린이라는 이름의 우리에겐 낯선 이 작가의 책이 ‘읻다’의 이름으로 한국에 처음 소개되었다면 좋았겠지만 아쉽게도 앞서 출간된 몇 권의 책이 존재한다. 동명의 책 또한 간발의 차이로 출간됐다. 그리고 무엇보다 루이-페르디낭 셀린은 이름만 낯설지 세계적으로 유명한 작가이다. 알베르 카뮈, 마르셀 프루스트와 어깨를 견주는, 현재까지도 꾸준한 독자층을 갖고 있는 20세기 프랑스 작가 중 하나이며 누구보다도 자유롭고 신랄하게 현실을 비판함으로써 당시 프랑스 문단에 큰 충격을 준 작가이기도 하다. 그렇다고 해서, 루이-페르디낭 셀린을 처음 들어본다고 해서 자신의 독서 이력을 탓할 필요는 없다. 공공연히 표명된 그의 반유대주의는 그를 문단과 강단으로부터 철저하게 고립시켰고, 독자로부터도 멀어지게 했으며, 그 이후로 제대로 된 평가를 받지 못했으니 당신이 셀린의 이름을 듣지 못한 건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 평생 읽지 않아도 되지만 알아두면 좋은 책, 다시 번역되었으면 하는 고전이나 꼭 읽어볼 필요가 있지만 발견되지 못한 책을 내고자 하는 읻다의 ‘괄호’ 시리즈 첫 세 권에 《Y 교수와의 대담》이 포함된 것은 그럼 무엇 때문인가? 간단하다. ‘주우우우욱이는’ 소설이니까. 《Y 교수와의 대담》은 정말 ‘주우우우욱이는’ 소설이다. 《Y 교수와의 대담》의 줄거리는 간단하다. 루이-페르디낭 셀린 그 자신이기도 한 화자는 한 공원에서 자신의 인터뷰어인 Y 교수 즉 레제다 대령을 만난다. 그리고 둘은 갈리마르의 집까지 가는 내내 이야기를 나눈다. 끝이다. 정말 이게 줄거리의 다냐고 되묻고 싶겠지만 이게 다다. 소설은 사무엘 베케트의 희곡 〈고도를 기다리며〉 속 두 주인공의 대화처럼도 보인다. 기괴하고, 엉뚱하고, 반쯤 미친 것 같게도 보인다. 하지만, 《Y 교수와의 대담》은 〈고도를 기다리며〉와는 완전히 다르다. 《Y 교수와의 대담》은 지극히 현실적인 이야기다. 현실적이어서 더 기괴한 소설이다. 고도를 기다리는 대신, 갈리마르를 찾아 나서니까. 루이-페르디낭 셀린이 《Y 교수와의 대담》을 집필한 시기는 그가 덴마크에서의 형기를 마치고 막 프랑스로 돌아온 직후였다. 그리고 그 당시 셀린은 소설가로서 남은 게 아무것도 없었다. 소설가로서 빈털터리나 마찬가지였다. 그러니까 그 당시 셀린에겐 그저 일종의 홍보용으로 기획한 책이 필요했다. 자신이 자신을 인터뷰하는 소설이 필요했다. 《Y 교수와의 대담》을 셀린이 셀린을 쥐고 셀린을 써 내려간 소설이라고 부르면 어떨까? 셀린의, 셀린에 의한, 셀린을 위한 소설 말이다. 교실에서의, 수업 시간에서의 평가와 상관없이 《Y 교수와의 대담》은 셀린에게도, 우리에게도, 현대 소설에도 매우 중요한 작품이다. 어떤 게 중요하냐고? 점 세 개가 중요하다. 점 세 개를 쓸 수 있는 용기가 중요하다. 나를 그대로 드러내고자 하는 그 태도가 중요하다. 《Y 교수와의 대담》을 셀린의 미학이 담긴 작품이라고 포장하고 싶진 않다. 미학 같은 건 수업 시간에나 배우는 거니까. 교실이나 수업 시간에서 셀린이란 이름을 들었다면 부디 이 소설을 통해 다시 셀린을 만나길 바란다. 셀린이 되어 Y 교수와 이야기를 나누길 바란다.
1950년대에 행해진 어느 라디오 인터뷰에서 셀린은 이렇게 말한다. “나는 아파트를 장만하기 위해 글을 썼을 뿐이오.” 가히 요즘 작가들이 본받을 만하지 않을까? ‘읻다’가 펴내는 ‘괄호’ 시리즈의 어떤 거창한 사명이 붙는지와 상관없이 셀린이 되어 이렇게 말해보고 싶다. “우리는 사무실을 장만하기 위해 이 책을 냈을 뿐이오.”
이건 그 정도로 중요한 글이 아니지만 그렇고 그런 소설보다는 중요한 글이다
“당신 얘기대로라면, 이제 소설가에게는 무엇이 남은 건가요?”
“정신박약자들이요... 축 늘어진 사람들 있잖아요... 신문도 안 읽고, 영화관에도 거의 안 가는 사람들...”
“그런 사람들이 ‘졸작’ 소설은 읽는다고요...?”
“물론이죠!... 특히, 자기들 서재에 틀어박혀서!... 거기서 사색의 시간을 갖는 겁니다!... 가지려고 갖는 시간은 아니지만!...”
컴퓨터가 바둑을 두고, 컴퓨터가 소설을 쓰는 시대다. 우리는 묻지 않을 수 없다. 소설가에게 남은 건 뭔가요? 수십 년 전 셀린 또한 같은 질문을 했다. 그리고 그 질문에 스스로 답을 한다. 간단한 답이다. 사람들이라고. 사람들이 남았다고. 사람들이 남은 거다, 라고. 거짓말 같겠지만 사람들은 여전히 소설을 읽는다. 정신박약자들이건, 축 늘어진 사람들이건, 신문도 안 읽고, 영화관에도 거의 안 간다고 해도 소설을 기다리고, 소설을 쓰다듬는 손길은 여전히 존재한다. 공쿠르상을 받지 않았어도 읽지만, “그럴듯한 정치적 과거가 있고, 좋은 편집자가 붙고, 할머니가 둘, 셋 있고, 유럽 어딘가에서 펼쳐지는 이야기”이거나 “공쿠르상”을 받은 작품이라면 더 잘 읽는다. 옆에서 오! 셀린! 위대한 작가! 이렇게 부추겨주면 더 잘 읽는다. 하지만, 소설가에게 남은 게 아무래도 사람들 같지는 않다. 셀린은 사람들을 택하기보다는 점 세 개를 택했다. 스타일을, 기교를, 천재를, 스스로를 택했다. “점 세 개 찍는 대신에, 적당한 단어들로 바꿔 채울 수 있는 거 아닙니까?”라고 묻는 사람들에게 셀린은 “당신, 반 고흐가 성당들을 찌그러지게 그렸다고 해서 비난한 적 있습니까?”, “드뷔시가 박자 무시했다고 비난한 적 있어요?” 하고 따져 묻는다. 소설가로서 “문장을 끝내는 법을 모른”다는 말을 들어도 결코 점 세 개를 포기하지 않는다. “무슨 무슨 풍으로 헉헉거리며 써 내려가는”, “서로 닮았고, 지루하고, 엇비슷한 소설”을 쓰느니 점 세 개를 택한 거다. 점 세 개가 뭐기에? 그게 얼마나 대단해서? 옮긴이 이주환은 말한다. “그에게 있어 글쓰기란 쓰고 싶어서, 또는 가치 있다고 생각해서 쓰는 것이 아니라, 쓰지 않을 수 없어서 하는 일에 가깝다”, “두려움을 글쓰기로 버텨낸 인간”이 셀린이다, 라고. 당신이 셀린을 알고 싶다면, 소설을 읽거나 쓰고 싶다면, 그저 누군가와 같이 걷고 싶다면, 그러니까 어떤 용기를 얻고 싶다면 이 소설을 읽으면 된다. 이건 그 정도로 중요한 글이 아닐지도 모르지만 그렇고 그런 소설보다는 중요한 글이니까 말이다. 《Y 교수와의 대담》 곁에서 속는 셈 치고 잠시만 있자. 우리처럼. 그러니까, ‘읻다’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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