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로를 구한다는 제목에 눈길이 갔다. 구한다는 말이 '구원'이라는 의미로 연결된 건 근래에 본 드라마들의 영향인가 싶기도 했다. 추앙이라는 말을 새삼 주목시켰던 그 드라마가 의식의 흐름처럼 그냥 연결되었다.
결혼을 앞둔 시점에 페미니스트로서의 자각이라는 걸 하게 되고, 더 깊이 생각하고 관련 서적들을 읽고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의견들을 제시하는 글들이 나름 타당성의 충족 요건을 증명했다는 느낌이다.
가장 인상적이었던 내용은 자신이 '한남'성을 발휘하게 된 구조와 상황에 대한 이야기할 때는 성차로 인한 불평등이 아닌 '구조와 상황'을 의미를 환기하게 된다. '바깥사람'으로서의 역할 바꾸기의 일상이 될 때, 귀가 후의 자신의 모습이 맘 카페에서 흔히들 말하는 한남 남편의 모습으로 변해가고 있다는 걸 저자가 인식하고 깨닫는 부분에서 스스로의 자각이라는 게 쉽지 않으며, 자각을 할 수 있는 단계와 자각 후의 변화에 대한 이야기들이었다.
생활동반자법에 대한 의견도 개인의 존엄성과 다양성, 규격화나 전형적인 삶에 대한 비판으로 차이와 차별에 대한 각성을 덧댄다.
페미니스트라는 말은 마이너라는 소수자의 감정과 같은 개념으로 수용된다. 읽었던 '마이너필링스'의 맥락과도 닿은 느낌이다.
73쪽
성차에 집착할수록, 관계의 문제는 풀기 어려워진다.
성차가 존재하듯 본능과 자연은 존재하지만, 그것은 동일한 모습이 아니라 언제나 해석의 대상일 것이다.